‘검복’ 벗고 변호사 개업한 이영기 전 서울고검 감찰부장

“검찰은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이영기 변호사는 지난 8월, 서울고검 감찰부장을 끝으로 23년6개월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1일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로 새 출발한 그를 만나 지난 검사 생활의 애환과 변호사로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 이영기 전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영기 변호사는 1969년생으로 석관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27세의 이른 나이에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25기) 부산지검서 첫발을 내디뎠고, 춘천지검, 서울지검, 청주지검 등을 거쳐 대검찰청서 마약과장 검사와 조직범죄과장 검사를 지냈다. 이후 의정부지검,서울동부지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거쳤고 지난 8월, 서울고검 감찰부장검사를 끝으로 사랑하던 검찰을 떠났다.

‘소리바다’ 수사
금융정보분석원

지난 1일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서 이 변호사를 만났다. 이 변호사의 방에는 그의 후배 검사들이 써놓은 편지들이 액자화돼있었다. “항상 그윽한 미소로 직원들을 격의 없이 대해 주시던 우리 차장님, 검찰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차장님은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셨습니다” “합리적인 일처리와 직원들을 향한 자상한 배려심, 위트 있는 말씀 등 멋진 간부님이셨습니다” “더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많지만 차장님을 모시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편지에는 따뜻한 이 변호사의 검사 시절 모습과, 존경하는 선배를 떠나보내는 후배들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소리바다 수사요. 대한민국 지적재산권 판결 중 가장 중요한 판결로 꼽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소리바다’는 2000년대 초에 전국민이 이용했던 음악 사이트다. 처음에는 사용자들끼리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P2P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음원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게 되자 음원 불법유통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무료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가수·작곡가 등 음악 산업 종사자들의 수입이 대폭 하락했다. 저작권이 명백히 침해됨에도 불구, 불법 유통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규정조차 없었다.

“미국에도 ‘냅스터’라고 소리바다와 똑같은 구조로 음원을 유통하는 사이트가 있었어요. 냅스터에 대해서 미국에선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판결이 이뤄졌었거든요. 이 이론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한국판 ‘냅스터’ ‘소리바다’ 성공적 수사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핵심 컨트롤 타워’

음원을 주고받는 당사자가 아닌, 연결해주는 사람에게 음원의 불법유통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하지만 이 판결은 1심에선 공소기각, 2심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거의 1년 넘게 수사를 했습니다. 1·2심 판결로 마음 고생 많이 했죠. 워낙 중요한 사건이어서 결국 대법원서 공개토론을 열었습니다.”

대법원은 결국 이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소리바다 개발자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고, 이 판결을 기준으로 유사 사이트들은 음원 유통을 유료로 전환했다. 저작권 침해가 횡행하던 음반시장에 질서를 형성한 결정적 사건으로, 이는 음반 제작자의 저작권 보호에 큰 전환점이 됐다.

“지금 음원 유통에 대해서는 불만들이 없으시잖아요. 음반 제작자들도 그렇고 가수 분들도 그렇고.” 이 변호사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 인터뷰 갖고 있는 이영기 변호사

2006년, 이 변호사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되기도 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보고받은 금전거래를 분석하고 범죄 자금이나 자금세탁과 관련돼있다고 판단될 경우, 금전 거래 정보를 사법기관에 제공해 불법자금 몰수를 추진하는 컨트롤타워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자금세탁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한 나라의 사법기관이 눈 여겨봐야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2013년 시행된 ‘특정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FIU법)’에 의해 국세청은 조세탈루 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업무 및 조세체납자에 대한 징수 업무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현재 대기업의 현금거래, 회계 투명성에 대한 세무조사가 가능해져 고액체납자의 현금거래 추적에 활용되고 있다.

형사부 경력
검사의 기초체력

“특수부 검사는 되기 싫었어요. 특수부 검사가 하는 일이 선과 악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잖아요. 특수부가 맡는 정치인을 수사하게 되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얘기도 가끔 듣게 되고요. 전 선과 악이 분명한 걸 좋아해요. 마약사범과 조폭은 선과 악이 분명하잖아요. 그런 건 어느 분들에게 물어봐도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하시고요.”

이 변호사는 인천지검 강력부장과 서울동부지검 형사부장 시절, 조직범죄수사와 도박범죄수사, 성폭력사범수사 등 숱한 사건들을 담당하며 탁월한 경륜으로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특히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시절, 이 변호사가 맡았던 조직범죄수사는 대검 강력부 우수업무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사 당시, 이 변호사는 청소년 가출 소녀들을 모집해 성매매를 알선한 보도방 업주 31명과 유흥업소 업주 7명 등을 구속했다. 치밀한 내사와 팀제수사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조직폭력배를 대거 적발해, 폭력조직 자금원 차단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울동부지검 형사부 부장검사 시절에도 이 변호사는 두각을 보였다.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된 후 DNA 대조로 검거된 연쇄 성폭행범 ‘송파·강동구 발바리’를 구속기소, 서울동부지검 최초로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했다. 아울러 범죄피해자 지원,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부수처분을 적극 활용해 이 수사는 대검 형사부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전한 국가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밤거리에 맘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 조직 범죄나 마약 범죄로부터 안전해야 하죠. 그런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 공권력의 행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변호사가 검사 시절 수사에 임해왔던 소신과 사명감이 묻어났다. 그가 특히 형사·강력 사건에 두각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3년 6개월
특수·형사 지휘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으로 불린다. 검찰은 마약수사직렬을 신설하는 등의 검찰청법의 꾸준한 개정을 통해서 마약전문 인력을 대폭 증강했다. 강력부가 설치된 6개 지검에 는 ‘마약류사범 검찰 ·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해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에 대처 중이다.


“지금 국내엔 마약·필로폰 제조업자들이 거의 없어요.” 이 변호사는 마약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검사였다.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시절 한국 여성을 운반책으로 이용한 나이지리아 국제 마약밀수조직을 적발했다. 당시 한국 세관과의 공조로 나이지리아 국내 총책과 한국 여성 등 3명을 구속기소해 필로폰 3kg을 압수했다.

“사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대부분 검사들은 승진에 대한 욕구가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아쉬웠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빨리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죠.” ‘검사장 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변호사는 담담히 웃어보였다.

부산지검을 시작으로 서울고검까지 23년 6개월의 검사 생활, 부장검사 10년, 묵직한 사건들을 맡아 진두지휘한 이 변호사의 커리어와 능력은 검찰의 꽃인 검사장을 노려보기에 충분했다.

“검찰의 80% 검사들은 형사부 사건을 담당하고 특수·공안·기획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비중에 10~20% 밖에 안 됩니다. 지금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대형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나 정기적으로 오는 선거철에 선거사건을 다루는 공안부, 기획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실질적으로 인사에 있어서도 그분들이 잘 나가고요. 형사부 검사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있는데, 기본을 다루고 있다 보니 부각이 안 되죠. 그 부분에 대해서 후배 검사들이 자괴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선악이 분명히 구별되는 ‘형사통’ 출신
“다양한 법률서비스로 고객과 소통할 것”

수사를 통해 당사자 간 분쟁을 해결하는 게 검찰 본연의 역할이다. 형사부는 검찰을 지탱하는 바탕으로, 형사부 근무 경력은 검사의 기초체력를 쌓는 가장 큰 자양분이 된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기본 책무로, 국민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때부터 검찰은 일선 형사부 강화를 주장해왔다. 일각에선 형사부장 자리는 형사부 출신 검사들에게 100% 할당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아울러 형사부 출신 검사들이 형사부장이나 보직 간부들이 갈 수 있는 길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계속되고 있다. 향후 인사서도 특수·공안·기획 경험이 없는 형사부 출신 검사들의 검사장 승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검찰 개혁’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 변호사는 최근 화두가 된 ‘정치검찰’에 대한 형사부 후배검사들의 의견도 조심스레 전했다.
 

“후배들도 호소를 많이 하죠. 매일 8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묵묵히 일하는데 모든 국민적 관심은 다 특수부에 가 있어요. 10~20%의 검찰 모습이 전체 검찰의 모습으로 비춰져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욕은 욕대로 먹으니 자괴감이 들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재밌게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젊은 검사들이 많이 희생하고 있어요.”

이 변호사는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함을 짚었다.

직접수사 축소
검찰 본연에 집중

“검찰도 결국 국가기관입니다. 국민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국가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는 것이 필요해요. 국민들이 검찰을 정치검찰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정치적인 사건을 너무 많이 다뤄왔기 때문이잖아요. 직접수사 기능을 자제하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필요하다 봅니다. 또 모든 기관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좀 지켜볼 필요도 있어요. 법대로 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자세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이 변호사로부터 한국을 묵묵히 지켜온 검사의 사명감과 조직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자리와 위치에 따라, 본연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 그는 변호사로서의 포부도 함께 덧붙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의뢰한 내용에 맞춰 변론하는 직업이잖아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변호’라는 서비스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쓸 겁니다.”


<sangmi@ilyosisa.co.kr>


[이영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5기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과장검사
▲대검찰청 조직범죄과장검사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장검사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검사
▲서울고검 감찰부장검사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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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