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대환 전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반일 종족주의’ 동행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8.08 08:31:19
  • 호수 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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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가입하고, 행사도 갔는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바른미래당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이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과 위안부와 노무동원노동자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에 가입한 사실을 <일요시사>가 단독 확인했다. 해당 모임을 만든 사람은 최근 ‘친일 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이우연씨다. 주 전 위원장은 <반일 종족주의> 북콘서트와 두 모임이 주최한 소녀상 설치 반대집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다.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은 지난달 17일 <반일 종족주의> 북콘서트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책이 출간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날 광화문에서 열린 행사에는 책의 대표저자인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교수)과 이우연씨를 비롯한 다수의 저자, 그리고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다. 주 전 위원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조국 비판
“매국 친일”

축사자로 연단에 오른 주 전 위원장은 참석자들에게 “46년의 세월을 좌파 진영서 생활했는데, 한국의 좌파가 타락한 것은 민족주의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지성을 마비시키는 독약이다. 마실 때는 기분이 좋지만, 자꾸 마시다 보면 중독이 돼 지성이 마비된다”고 말했다. 이어 “좌파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평등가치를 저해하는 기득권 지키기를 하다 보니 반일 민족주의서 알리바이를 찾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반일 종족주의>는 시의적절하고, 그 내용이 절실하고 구체적이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최근 친일 서적 논란에 휩싸여 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5일, 이 책과 관련한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첨부하며 “이하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학자,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과 기자를 ‘부역·매국 친일파’라는 호칭 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며 “이들(책의 저자)이 이런 구역질 나는 책을 낼 자유가 있다면, 시민은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일 종족주의>에는 논란이 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이 글의 저자인 이영훈 교장과 이우연씨 등은 ‘식민지 근대화론’(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일제강점기로 보는 역사적 관점)을 주장하는 뉴라이트계 학자들이다.


책 소개를 보면 반일을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라고 설명한다.
 

▲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씨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역사왜곡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법원 판결을 시작으로 일본은 경제보복에 나섰다. 

그는 책에서 “징용 이전의 모집과 관알선을 통한 조선인의 일본행은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이후 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10만명 정도였는데, 이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다”고 적었다. 

북콘서트서 축사 “좋은 책”
바미당 당무위원장 때 가입

조선인이 겪은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불했고 업무 중 구타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는 일본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은 자유로웠다. 어떤 이는 조선여인이 있는 특별위안소서 월급을 탕진하기도 했다”고 적시했다.

이씨는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과의 과거사가 청산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결과 이씨는 2017년 9월 ‘위안부와 노무동원노동자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이하 동반모), 2018년 10월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이라는 페이스북 비공개 모임을 만들었다.
 

▲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에 올라온 이미지

두 모임에선 친일·반정부적 성향의 게시물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친일은 애국이다” “조국(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신종 나치 파쇼”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유니클로 불매운동, 조 전 수석의 <반일 종족주의> 비판, 일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등을 저격하는 글이 꾸준하게 올라오고 있다.

강제징용이
자발적이라고?

동반모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씨는 모임의 성격에 대해 “소녀상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하는 분들의 모임”이라며 “여기서 동상반대는 징용노동자상과 소녀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주 전 위원장은 지난 2018년 10월 두 모임에 가입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당무감사위원장으로 임명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이 소녀상 설치 반대집회에 참석한 모습(주대환 페이스북 캡쳐)

주 전 위원장은 두 모임이 주최하는 오프라인 행사에도 참석했다. 지난 6월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열린 ‘위안부와 노무동원노동자 동상 설치를 저지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서울집회’가 그것이었다.

당시 주 전 위원장은 참석자들에게 “국민들이 과거에 비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바보가 되어 가는 것은 민족주의라는 독약에 중독됐기 때문”이라며 “지금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진보운동은 민족주의에 오염돼서 타락했다. 좌우도 좋지만,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바미당 당무감사위원장이던 그는 행사일로부터 10여일이 지나 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당 철학과
맞지 않아

주 전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들은 바미당의 입장과 거리가 멀다. 그가 두 모임에 가입한 지난해 10월 바미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하점연 할머니의 별세를 추모하며 “일본군에 피해를 입은 것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 정부에 의해 짓밟힌 상처만 생각해도 울분이 치민다. 할머니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10억엔짜리 서명은 일본군의 칼날에 의한 상처보다 더 쓰라린 것”이라고 논평했다.

같은 당 최도자 수석대변인은 지난 4일 논평을 통해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개막 사흘 만에 강제로 중단됐다. 일본 우익세력의 항의와 정부 인사들의 전방위적 중단 압박 때문이다. 전시장을 찾은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망언도 쏟아냈다”며 “아시아 국가들이 공동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복수의 바미당 관계자들은 주 전 위원장이 보인 일련의 행보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 전 위원장은 수십년간 진보진영서 활동해온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 전 위원장은 지난 1973년 서울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부마항쟁에 관여하는 등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선 정책위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진보정치의 논리>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좌파논어> 등이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사회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표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다.

당 “무책임한 발언”
주 “당원 아냐” 해명


<일요시사>는 자세한 내막을 듣기 위해 지난 6일, 주 전 위원장과 직접 통화했다.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반일 종족주의> 축사를 요청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경로가 어디 있겠나. (내가)가서는 안 되는 곳을 갔는가”라고 답했다.

이씨가 만든 온라인 모임에 가입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가입한 것은 아니다. 초청받았을 것이다. 페이스북 모임이니까 초청으로 가입했던가 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미당 당무감사위원장 신분일 때 소녀상 설치 반대집회에 참석한 일은 당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행보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 나는 바미당 당원이 아니다. 너무 억지로 연결 짓지 말라. (나는) 어떤 단체나 모임의 회원이 될 수 있다. 이씨가 하는 모임의 회원이라는 인식은 없었고, 물어보니까 페이스북 모임 같은 곳에 초청받은 느낌이 드는데, 그것을 너무 억지로 연결 짓지 말라. 오프라인 모임을 할 때도 나는 초청 손님이었다. 회원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이씨의 입장을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민족주의가 지성을 마비시키는 독약과 같다는 입장이다. 현 집권여당이 하는 행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현 집권여당은)지성이 마비된 놈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 나의 입장이다. 다른 건 유추하지 말고 써달라. (행사에 참여했다고)‘누구의 생각과 같다’는 식의 갖다 붙이기는 자유민주주의 선진 국가에서 맞지 않은 것 같다. 개인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살지 않나. 나는 자유인으로서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연인?
당직은…

그러나 바미당 측의 생각은 달랐다.


당 관계자는 지난 6일 <일요시사>를 통해 “처음 (주 전 위원장이)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때 당에서 그분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권력만 좇는 모습에 많이들 실망했다”며 “오죽하면 (주 전 위원장에 대해)국회의원 배지 준다고 하면 무슨 짓이듯 하실 분이라는 말이 나오겠나. 자연인이라고 하고 당직을 갖고 있었으면 당의 정체성과 반하는 행사에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미당 당직을 걸고 행사에 참석한 것 아닌가. 특히 당무감사위원장은 부총장급으로 책임 있는 자리다.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아마 (해당 모임과 행사가) 반정부적 성향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겠느냐”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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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