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한국당 총선 필승카드

산토끼 잡으러 또 산으로 갈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민생투쟁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한국당은 황교안 당 대표를 주축으로 전국을 순회했다. 현장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며 패스트트랙을 원천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얻고자 했다. 한국당은 보수층들을 결집해 ‘집토끼’ 잡기에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민생 법안을 제쳐두고 국회를 오래 방치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총선이 11개월 남짓한 시점서 한국당이 떠난 ‘산토끼’들을 잡을 카드는 무엇일까.
 

▲ 민생 순회 도중 대구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내년 총선은 문정권과 한국당의 마지막 빅매치다. 총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기세를 몰아 다음 대선을 승리로 이끌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대로 한국당이 이긴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에 속도가 붙어 정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

동물국회
책임론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앞두고 최근 한국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동물국회’ 사태와 한국당 의원들의 막말 논란으로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혐오 프레임을 씌운 정치를 벗어나 국회로 돌아가 통합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이유다.

당마다 총선을 두고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지만, 국민들에겐 사실상 의미가 없다. 기득권 양당의 자존심 싸움으로 텅 빈 국회가 된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남은 여·야 사람들에게 국회 정상화는 해야 할 과제가 됐다. 한국당에게 출구의 길을 열어 줄 ‘다크호스’는 누가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새 취임사를 통해 “내일이라도 당장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뵙겠다”며 국회 현안을 논하고자 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신임 오신환 원내대표 역시 나 원내대표와 이 원내대표와의 호프타임을 제안했다.

극적으로 성사된 세 원내대표의 만남은 20일 저녁 여의도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5월 임시국회 소집을 비롯한 현안 논의와 국회 정상화의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패스트트랙의 원천 무효, 민주당의 사과, 대통령과의 일대일 영수회담을 요구했다. 집을 떠난 한국당과의 협치를 위해 남은 당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 20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유권자 조사 결과 민주당이 상당 폭 결집한 반면, 한국당은 상승세를 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상승세가 꺾였다. 이를 두고 한국당이 보수층을 결집해 ‘집토끼’는 잡았으나 동물국회와 혐오 프레임을 씌운 정치 행보로 중도층인 ‘산토끼’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등 돌린 중도층…어쩌나
갈등만 남아, 정치혐오↑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2년 국회 폭력을 없애고 몸싸움이 아닌 설득과 대화로 입법을 유도하고자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7년 후, 국회서 빠루가 등장하고, 무력 충돌로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다수 다치면서 이는 무용지물이 됐다.

한국당은 선거법과 검찰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 선정에 격렬히 반대했다. 바미당 채이배 의원이 패스트트랙에 찬성표를 내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당 의원들은 채 의원을 의원실 안에 감금했다. 의안과에 들어가려는 민주당 의원들을 한국당 의원과 보좌진이 서로의 팔을 엮어 저지했다. 밤샘 대치와 몸싸움에 골절상과 실신, 깁스 등 부상자가 속출하며 의안과 사무가 불가능해지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33년 만에 경호권을 발동했다.

이후 국민적인 비난이 거세지자, 한국당은 “한 당만 일부러 제외한 ‘야합’으로 패스트트랙을 해결하려 한 여야 4당의 잘못”이라며 의회 민주주의 절차를 먼저 어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는 “여당이 한국당을 따돌리고 다른 야당과 협력해 법안 통과를 추진하는 것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서 일상인 연정의 모습이다. 정치적 자유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돼있는데도 독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불평을 드러낸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다.
 

▲ 국회서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며 시위 중인 자유한국당 ⓒ사진공동취재단

성난 민심은 예상대로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동물국회 이후 한국당의 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글은 180만명에 육박하는 동의를 얻었다.

한국당 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서 “패스트트랙이 무효인 것은 자명하고 절차와 내용이 모두 틀렸다”며 “청와대와 여당서 분명한 사과와 원천 무효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압박했다.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국당의 요구안을 민주당이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만큼 원내수석 간 협상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만났지만
성과는…

당 일각에서는 체면을 차리기 위한 명분을 따지며 장외서 싸우는 대신 원내서 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 파행이 계속 장기화 되면, 민생은 뒷전이라는 여론의 역풍이 고스란히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국회에 돌아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면, 조건 없이 등원하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다”며 “조건 없이 등원해서 추경도 심의하고, 법안도 논의하면서 묵은 감정을 풀어가는 것이 훨씬 진지한 정치”라고 주장했다.

‘5·18 망언 3인방’에 대한 미징계도 민심이 얼어붙는 데 일조했다. 올해 2월, 한국당 이종명 의원의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 발언과 5·18 유공자를 ‘세금을 축내는 이상한 괴물집단’이라 말한 김순례 의원의 발언은 논란을 불러왔다.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자, 당 내부서도 세 의원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았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에게는 경고와 당원권 정지 3개월이 내려졌다. 이 의원의 제명 절차는 여전히 의원총회 의결을 넘지 못했다. 솜방망이 처벌과 미징계로 한국당은 5·18 희생자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18일 한국당 황 대표는 광주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여했다. 광주 시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됨에도 호남 민심을 위한 불가피했던 선택으로 보인다.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 없는 기념식 참석을 반대해 온 시민단체가 황 대표를 향해 달려들면서 현장에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 역시 이날 연설문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며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속한 출범을 국회에 촉구했다. 보수층에서는 황 대표가 5·18 추모식에 참여한 것을 ‘잘한 결정’이라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이와 반대로 진보층과 호남에선 80% 전후가 ‘잘못한 결정’이라고 응답했고, 무당층과 중도층서도 ‘잘못한 결정’이라는 부정적 응답이 우세했다.

황 대표가 20일 전북 지역 핵심현안들을 집중 부각하고 나선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당 차원의 청사진 마련을 통해 불모지의 표심을 이끌어 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치 신인 황 대표의 행보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공개적인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내년 총선을 대비해, 호남에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면 색깔론을 접어두고, 5·18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게 의견이 우세하다.

▲ 5·18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잇단 망언
유야무야


황 대표는 색깔론으로 강성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고자 했다. 문정부를 ‘좌파독재’로 규정하고, “좌파 중에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 싸우고 투쟁해서 뺏은 것” 등과 같은  적대적 발언으로 수위를 높여갔다. 지난 21일 황 대표는 장외투쟁 현장서 “내가 왜 독재자의 후예냐”며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게는 말 하나 못하니까 대변인 짓을 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을 겨냥해 각을 세웠다. 황 대표의 말에 청와대는 “막말이 또 다른 막말을 낳는 상황”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혐오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권의 흐름은 이뿐만 아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황 대표는 거의 싸이코패스 수준”이라는 말에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문 대통령을 국민들의 고통을 못 느끼는 ‘한센병 환자’로 맞받아쳤다. 이후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의 큰 반발이 일자, 김 의원은 발언 다음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나 원내대표는 대구서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향한 ‘달창’ ‘문빠’ 발언 이후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며 사과했다. 이에 여야 4당 여성의원들은 ‘최악의 여성 혐오와 비하 표현’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징계안을 제출했다. 정의당은 “한국당이 표 벌이를 위해서 혐오정치를 조장하고 있다”며 유감을 표했다.

경제지표 악화와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중도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한국당서 문정부의 레임덕 문제를 지적하며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달창’ 발언에 묻혔다. 정부의 실책들이 고스란히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중도층의 관심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게 된 셈이다.

▲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는 민생 법안들이 국회 의안과에 방치돼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 교수는 “현재 장외투쟁은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겠다는 한국당의 총선 전략은 강경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지속할 경우 중도층의 반감과 염증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9대 총선서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서 민주당과 무소속에 두 자릿수 이상의 의석을 내주고 말았다. 중도층의 이탈이 지난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꼽혔다.

합리적 충청 민심
보수대통합 언제?

지난 지방선거서 홍준표 전 대표는 강경보수 노선으로 대구·경북 중심의 당 운영을 고수했다.

“호남 민심을 배제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홍 전 대표는 “나는 거(그곳) 민심 안 봅니다"라고 답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방선거서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선거서만 승리했고, 호남 지역에선 3% 미만의 ‘싸늘한’ 지지율로 심판 받았다.  홍 전 대표의 보수 우파 결집 수단이었던 호남 배제 전략이 패배에 이르게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절반이 중도인 나라다. 지역을 불문하고 중도층의 반감이 이대로 극심해지면 한국당은 내년 총선서도 패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충청 민심을 얻기 위한 쟁탈전서 한국당이 선점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충청도는 지금까지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역대 대선서 충청권서 승리한 후보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당선됐다. 총선서도 예외가 아니다.


13대 총선부터 충청권서의 성적이 좋을 땐 그 당의 전국 성적표가 좋았다. 14·17·19대는 충청권 1당이 다수당이 됐다. 20대는 여야가 고르게 충청권 의석수를 고르게 나눠 가졌다. 충청도는 연고 정당에 상관 없이 실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방증이다.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그랬듯 내년 총선 역시 충청권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며 “이 때문에 내년 선거 역시 충청권 표심을 잡기 위한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나 원내대표는 유튜브 방송 ‘신의한수’에 출연해 “창원 성산 보궐선거서 대한애국당(이하 애국당)의 표가 저희에게 왔으면 이길 수 있었다”며 “우파는 통합해야지만 다음 선거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나 원내대표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애국당과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할지는 미지수다. 애국당과의 통합이 ‘중도층 표심 확장’에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달창’으로
기회 놓쳤나

또, 당내 개혁 보수층과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이 세력 규합을 통해 현 지도부 등 주류층과 조율에 나선다면 보수 통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바미당은 최근 내홍으로 내년 총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바미당 유승민 전 대표는 “내년 총선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한국당에 다시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입당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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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