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총선 필승카드’ 현미경 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4.12 15:05:08
  • 호수 12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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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곳간이 열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보수 야당의 호들갑일까, 당·정·청의 노림수일까.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문재인정부의 잇단 정책 결정을 ‘총선용 카드’로 규정하고 있다. <일요시사>에서는 총선용 카드로 의심받는 것들을 추려 심층 해부했다.
 

▲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서 발언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기-승-전-총선’ 차원의, 일부 고교 3학년생들의 내년 투표권을 보는 꼼수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지난 10일,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서 한 말이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 의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고교 무상교육=총선용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1년 당겨
무상교육

다른 보수야당의 반응 역시 한국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임재훈 의원은 “지난해 세수가 충분히 확보돼 올해 2학기부터 시행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내년과 내후년에 각각 연 2조원가량의 막대한 재원이 투입된다면 (고교 무상교육이 지속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보수야당도 고교 무상교육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나 원내대표, 정 의장, 임 의원 모두 “고교 무상교육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보수 야당으로부터 고교 무상교육 정책이 총선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 9일 올해 2학기 고교 3학년부터 단계적 무상교육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에는 고교 2학년까지 확대하고, 2021년에는 고교 전 학생을 대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서 “교육받을 권리는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라며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 고교 무상교육의 완성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조정식 정책위의장도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춰 국민 삶에 도움을 드릴 것”이라며 “학비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정의 부담이 크게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당·정·청은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기존의 고교 무상교육 로드맵을 1년여 앞당겼다. 보수야당이 고교 무상교육을 총선용이라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2020년 4월15일에 열린다.

고3 무상교육, 올 2학기로 앞당겨
선거연령 19→18세와 맞물려 파장

공직선거법상 21대 총선의 선거인 명부 작성 기준일은 2020년 3월24일이다. 이를 기준으로 만 19세인 자는 투표가 가능하다. 올해 무상교육 혜택을 받게 될 고교 3학년생 중 생일이 3월24일 전인 자는 유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민주당, 바미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선거연령을 현행 만 19세서 18세로 낮추는 안을 추진 중이다. 선거연령 하향을 포함한 ‘선거제 개혁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논의가 국회서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선거법 개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현 고교 3학년 49만여명에게 선거권이 주어진다. 21대 총선의 판세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다. 당·정·청이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을 우선 실시한다는 발표는 새로 유입될 유권자를 고려한 정책이라는 뒷말을 낳고 있다.
 

▲ 당정청 고교무상교육 갖는 더불어민주당

무상교육의 우선 대상자가 고교 1학년이 아니라는 점도 보수야당이 석연찮아 하는 지점이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시행을 하려면 고교 1학년부터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한국당은 “당·정·청이 저소득층이나 농어촌 등이 아닌 학년으로 적용 대상을 구분한 이유도 불확실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김한표 의원은 “선거연령 하향에 해당하는 고교 3학년부터 무상교육을 시행하는데 (당·정·청의)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고교 무상교육이 실시될지 여부에 대해서도 보수야당은 회의적이다. 이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재원이 없다는 이유다.

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국가부채는 심각하게 쌓여가고 경기는 둔화되면서 세금 낼 국민은 아우성인데 정부가 무상이라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원 확보
가능한가?

당·정·청은 2024년까지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절반씩 부담해 고교 무상교육의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고교 3학년 무상교육 예산은 교육청의 자체 예산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2021년 고교 전 학년 무상교육을 위해서 17개 시도교육청이 내야 하는 예산규모는 약 1조원이다.

고교 무상교육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연 2조원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정·청이 밝힌 계획은 시도교육감의 협조에 기대는 방식이다. 이에 ‘누리과정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6년 박근혜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부담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겨 보육대란을 초래한 바 있다.

교육부는 이미 각 시도교육감의 협조를 구했다는 입장이다. 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각 시도 교육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설명하고 협의했다”며 “고교 무상교육의 필요성에 모두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3년 뒤 새 교육감이 선출돼 당·정·청과 대립각을 세운다면 고교 무상교육은 큰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문제는 2024년 이후다. 교육부는 향후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다. 이주희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과장은 “2024년까지 5년간은 무상교육에 필요한 실소요금액을 국고에서 지원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그때 가서 방안을 논의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현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고교 무상교육을 완성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장관과 진영 신임 행정안전부장관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도 총선용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한국당은 “재난 추경을 이유로 문재인정부가 총선용 추경에 올인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나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정부에게 “분리 추경 해주시라. 추경안을 두 개로 내주시라”라고 요구했다. 재난 추경과 비재난 추경을 분리해서 제출하라는 뜻이다.

그는 “일단 가장 시급한 과제인 화재복구와 피해주민 지원, 그리고 포항지진 및 미세먼지 관련 대책을 세우고 추진하겠다. 이 정권의 ‘총선용 끼워팔기 추경’서 ‘재난 안전 추경’을 따로 뽑아내서 초스피드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재난 추경에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등이 포함된다면 반대하겠다”고도 했다.


재난·비재난
분리 무시하고…

김정재 원내대변인도 별도 논평을 통해 “한국당은 재난 추경을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원 산불, 미세먼지, 포항지진과 같은 재해를 극복하려면 정부 지원이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민주당은 재난 추경을 ‘절름발이’ 추경이라며 장애 비하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추경에 ‘세금 일자리’를 끼워넣겠다는 심산”이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당·정의 입장은 다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한국당이 신속한 추경 처리를 위해 요구한 재난 추경안 분리 제출에 대해 “함께 제출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국민 안전과 민생을 위한 추경을 총선용이라고 폄훼하고 있다”며 맞섰다.

앞서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강원도 산불 피해 지원 방안, 미세먼지 저감 대책, 민생경제 긴급 지원 계획 등이 담긴 추경 예산안을 보고했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홍 부총리는 올해 추경안 규모가 7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세먼지 대응을 포함해 국민의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추경의 한 축이다. 특히 기획재정부 등 재정당국에서는 산불 진화·예방 인력확충, 산불 대응 헬기 구매 비용 등 산불 대응 시스템을 강화하는 구상을 검토 중이다.

3·8개각 역시 총선용이라는 시선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달 8일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서 “김부겸, 김영춘, 김현미, 도종환, 유영민, 홍종학 등 내년 총선을 위해 경력 한 줄 부풀린 사람을 불러들이고, 박영선 등 한 줄 달아줄 사람들로 교체 투입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당·정이 서로 바통을 주고받은 것이다. 강원도 산불 현장서 전임자인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장관은 진영 신임 장관에게,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장관은 문성혁 신임 장관에게,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박양우 신임 장관에게,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박영선 신임 장관에게 각각 인수인계를 했다.

반면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장관 후보자와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장관 후보자가 동시 낙마하며, 김현미 국토부장관, 유영민 과기부장관은 여의도 복귀에 실패했다.  

추경 7조 중 강원 산불은 얼마?
당정 바통터치, 한 번 더 남았다

총선 출마 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청와대를 통해 김 장관이 올해 연말까지 국토부를 이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8월에 민주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존 관측보다 약 4개월 늦은 복귀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 장관은 3선 국회의원이다. 비례대표로 시작해 경기 고양정서 내리 재선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김 장관의 복귀가 늦어진다고 해서 4선 가도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반면 유영민 과기부장관의 상황은 다르다. 그는 민주당 현 부산 해운대갑 지역위원장으로 부산 해운대갑은 바미당 하태경 최고위원이 재선에 성공한 지역구다. 

유 장관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는 지난해 말 일부 민주당원들 앞에서 총선 출마 의지를 밝혔을 만큼 출마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장관으로 취임 후 지역을 관리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유 장관이 최근 청와대에 “빨리 후임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최근 부산·경남(PK) 민심이 집권여당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유 장관이 조바심을 내게 하는 요소다. 민주당은 4·3재보궐선거서 두 지역 모두 다른 당에게 내줬다. 비록 경남 창원·성산은 진보 단일화로 정의당과 손을 잡고 승리를 거뒀지만, 의석을 늘리는 데는 실패했다.
 

▲ 당정청 고교무상교육 협의 후 기념촬영 갖는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당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 경남도당위원장인 민홍철 의원은 선거 직후 “비겼으나 졌다”며 “경남의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소회를 밝혔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이번 재보궐선거서 기록적인 투표율을 보인 것은 ‘정치로 민생을 살피라’는 국민들의 간절한 여망일 것”이라며 “이번 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 여야가 민생경제 회복과 개혁 입법 처리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다소 부정적인 해석을 내놨다.

총선용 인선은 그 효과가 이미 검증됐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개각을 단행, 경쟁력을 갖춘 다수의 장관들을 당으로 돌려보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 의원,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낸 이주영·유기준 의원, 행정자치부장관을 지낸 정종섭 의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지낸 윤상직 의원 등이 그들이다.

난감해진
두 장관님

이들은 모두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사표를 낸 청와대 참모진들도 총선 때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미 효과가 검증된 방법을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마다할 리 없다. 김 장관, 유 장관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21대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큰 장관은 다수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진선미 여성부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등이 그들이다. 올해 연말쯤 중폭 개각이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총리추천제’ 국회의장 왜?

문희상 국회의장이 다가올 21대 총선서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하는 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지난 10일 국회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사를 통해 그는 “국회서 총리를 복수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을 2020년 총선서 국민투표에 부쳐 다음 정권서 시작하는 개헌에 대한 일괄타결 방안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는 차원서 제안됐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공감한 여야는 이를 극복할 분권형 개헌안을 논의했으나, 권력구조 개편 등 핵심 쟁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합의에 실패한 바 있다.

이계성 국회 대변인은 국회의 총리 추천제에 대해 “여야가 각각 추천한 총리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을 대통령이 택하는 방식으로, 국회가 추천한 만큼 임기가 보장돼 ‘책임총리제’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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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