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4월 차출설’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3.11 10:37:45
  • 호수 1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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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의 묘수인가 비박의 함정인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 내에서 황교안 대표가 4·3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셀프 차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역은 경남 창원 성산으로 진보 진영 국회의원이 여러 차례 당선된 험지다. 해당 주장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황교안 체제가 완성됐지만, 리더십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는다. 정치권에선 앞으로의 한 달이 황 대표의 운명을 결정할 시기라 내다본다. 오는 4월3일 열릴 재보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야 2020년에 열릴 제21대 총선까지 내달릴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력이란 황 대표 리더십에 대한 당내 의구심 제거, 친박(친 박근혜)·비박(비 박근혜) 등 계파를 초월한 ‘원팀’ 구성 여부 등이다.

리더십 의심
증명 방법은?

동력을 얻기까지 험준한 과정이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4·3재보선이 5곳서 열린다고 발표했다. 국회의원 보선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와 통영시 고성군 2곳서, 기초의회 의원선거는 전북 전주시 라 선거구, 경북 문경시 나·라 선거구 3곳서 각각 실시된다.

이번 미니 선거의 핵심은 국회의원 재보선이 치러지는 경남 창원 성산과 통영 고성을 어떤 당이 차지하느냐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입장에서는 2곳을 ‘싹쓸이’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창원 성산은 대대로 진보 진영이 강세를 보여왔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창원 성산은 보수세가 강한 영남권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노동자 계층의 유권자가 많기 때문인데 이는 역대 선거를 통해 고스란히 증명됐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의원이 두 차례(17·18대), 정의당 고 노회찬 전 의원이 한 차례(20대) 당선됐다. 보수 정당이 당선된 사례는 새누리당 강기윤 전 의원(19대)이 유일하다.


창원 성산 재보선 결과는 진보 진영의 단일화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 전 의원이 당선된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진보 진영이 이 지역서 단일화에 실패했다. 반면 단일화에 성공했던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노 전 의원이 당선됐다.

이번 4·3재보선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이 단일화를 이룬다면 한국당은 깊은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 입장서 다행인 점은 진보 진영의 단일화 여부가 아직 안갯속이라는 점이다.

창원 성산 재보선 ‘솔솔’
리더십 검증받으러 험지로?

한국당 내에서 창원 성산의 필승을 위해 황 대표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흥미를 끈다. 그의 리더십을 검증하기에 이만큼 좋은 시험대가 없다는 것이다. 또 향후 당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도 황 대표가 원내로 진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일례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지난 1999년 6·3재보선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당선됐고,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4·27재보선서 경기 분당을에 출마해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원내에 진입한 두 사람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50%의 득표율로 당권을 차지한 원외 인사 황 대표가 ‘이회창’ 사례를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황 대표가 원내에 진입하면 얻게 될 이득은 크다. 황 대표는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등 굵직한 이력을 가졌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이다. ‘한 명 한 명이 입법기관’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현역 국회의원을 통솔하기는 쉽지 않다. 원외 인사라면 더욱 그렇다. 황 대표가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서 4개월여 동안 대여투쟁을 해온 나경원 원내대표에 비해 황 대표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황 대표 입장서 원내 입성은 지상과제와도 같다.

험지 차출설
무슨 이유로

그러나 황 대표의 창원 성산 출마를 선뜻 예상하기는 힘들다. 낙선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대표로 올라선 상황서 낙선은 황 대표 입장서 치명상이 될 수 있다.

한국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누구라도 첫 시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나”라며 “황 대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낙선의 위험을 안고 나서기는 힘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박 측에서 황 대표를 흔들기 위해 셀프 차출설을 ‘흘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황 대표를 험지로 내모는 차출설을 세간에 흘려 그의 리더십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비박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경남 민심이 한국당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몸소 경험한 부분도 황 대표의 출마 가능성을 낮춘다. 황 대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지난 5일, 일부 진보단체들은 기습 시위를 벌였다.

정의당 만나
드루킹 언급

적폐청산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등 소속 20여명은 황 대표가 도착하자 ‘5·18 망언 너희가 괴물이다’ ‘5·18 망언 한국당 정신차려’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망언 의원들 징계하라” “한국당은 해체하라”라고 외쳤다.

이어 황 대표는 경남 창원의 반송시장을 찾았다. 한국당 창원 성산 국회의원 재보선 후보인 강기윤 전 의원도 동행했다. 황 대표가 반송시장에 나타나기 전부터 창원진보연합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황 대표를 향해 “황교안이 박근혜다!” “5·18 망언 사과하라” “한국당은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최근 황 대표는 정치 신인으로서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황 대표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를 예방했다. 이 자리서 이 대표는 “한국당의 전대 과정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탄핵 수용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5·18 망언에 대해서도 조치가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황 대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댓글조작 사건에 대해 정의당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한 댓글조작 사건과 김 지사가 한 것에 대한 비교는 어떤가”라고 역공을 가했다.

황 대표가 말한 김경수 경남도지사 댓글조작 사건은 속칭 ‘드루킹 사건’을 의미한다. 이는 정의당 입장에서는 뼈아픈 사건이다. 이 사건이 단초가 돼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 대표는 “정의당에 처음 찾아와서 같이할 많은 일 중 드루킹을 말씀하시는 것은 유감스럽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힘 받는 ‘이회창’식 모델
진짜? “가능성은 있지만…”

당직 인선과 관련해서도 잡음이 많다. 전당대회 당선 일성서 황 대표는 ‘탕평’을 꺼내들었지만, 첫 당직 인선서 친박들이 대거 중용돼 논란을 낳고 있다.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한선교 의원은 원조 친박계로 꼽히는 4선 중진이다.

그 외 황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추경호 의원은 전략기획부총장, 민경욱 의원은 대변인, 송희경 의원은 중앙여성위원장에 임명됐다. 이들 모두 친박계 초선 내지는 친황(친 황교안)계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 고 노회찬 의원

황 대표는 이와 함께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복당파’ 김세연 의원을 임명했지만, 앞선 인사에 비해 힘이 많이 떨어지는 자리라고 정치권은 입을 모은다. 비박계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은 황 대표의 당직 인선을 두고 “아쉬운 감이 있다”고 평했다.

한국당의 당면과제인 5·18 망언 국회의원 징계에 대한 부분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논란이 됐던 김순례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서 태극기 부대의 지지를 받아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앞서 한국당은 망언의 당사자인 이종명 의원에게 제명 조치를 내렸으나,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서는 전당대회 출마자에 대해 징계를 할 수 없다는 당헌·당규를 들어 징계를 유보한 상태다.

강력한 징계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주를 이룬다. 김영종 당 윤리위원장이 돌연 사퇴하면서 징계 절차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황 대표가 신임 윤리위원장을 선임해야 징계 절차가 개시된다. 황 대표는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당면과제 산적
리더십 있어야

취임 초부터 친박계 측의 손을 들어준 황 대표는 이제 비박계 측의 불만을 눌러야 할 필요가 있다. 불만을 누르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황 대표가 원내 입성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비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황 대표의 창원 성산 출마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이야 배제할 수는 없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며 “1년 후에 총선이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하려 들겠나. 나서도 총선판에 뛰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B 나오니 GH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한국당 지도부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7일 당 최고위원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이 오래 구속돼 있고 건강도 나쁘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사면 조치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사면 결단을 내릴 때가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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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