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노회찬’ 누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2.10 10:13:43
  • 호수 1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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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만 되면 내리 3선까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으로 치러지는 경남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다. 등록 첫날부터 다수 후보들의 등록 러시가 이어지며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과연 ‘포스트 노회찬’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은 누구일까. <일요시사>가 그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 (사진 왼쪽부터)권민호(더불어민주당)·강기윤(자유한국당)·손석형(민중당)·여영국(정의당)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자

등록 첫날인 지난 4일에만 여야 후보 4명이 등록을 마쳤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권민호 전 창원성산지역위원장,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강기윤 창원성산당협위원장, 민중당 손석형 창원시당위원장, 정의당 여영국 경남도당위원장이 그들이다.

출마 러시

예비후보자는 선거사무소 설치와 명함 배부, 어깨띠 착용, 문자메시지 발송, 전화 선거운동 등이 가능하다. 이들은 어깨띠를 착용하고 명함을 배부하는 등 본격적인 표심잡기에 돌입한 상태다.

민주당 권민호 후보는 등록을 마치고 첫 일정으로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후 지역 내 장애인 급식소를 찾아 성산민주봉사단과 봉사활동을 함께했다. 오후에는 상남시장을 방문해 시장 상인들을 만나 민생을 청취했다.

지난 6일에는 한국지엠(GM) 창원공장 정문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창원성산 지역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권 후보 측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을 살리고 고용안정을 강조하기 위해 이곳서 출마선언을 한다고 밝혔다.


권 후보는 “4·3 보궐선거는 문재인정부의 국정 운영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라며 “반드시 선거에 승리해 창원의 첫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선 경남도의원, 재선 거제시장 출신이다.

한국당 강기윤 후보는 지난 4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충혼탑을 참배했다. 이어 지역 내 장애인 급식소 봉사 및 자동차 부품업체를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창원광장 주변에 있는 한 빌딩에 사무실을 낸 그는 건물 외벽에 이름과 기호를 넣은 현수막을 내걸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성과를 내기는커녕 삶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며 “국가와 창원성산 지역의 살 길은 결국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다. 기업 현장과 중앙, 지방 정치를 두루 경험한 경영 마인드를 가진 내가 적임자”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강 후보는 재선 경남도의원, 창원성산 국회의원 출신이다.

민중당 손석형 후보는 지난 5일 창원시청서 이상규 당 대표 등과 함께 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서 그는 “노회찬, 권영길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창원성산 보궐선거서 승리해 노동 개악을 막아내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도약기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후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두산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인 손 후보는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을 거쳐 경남도의원 재선을 지냈다. 지난 2016년 열린 20대 총선서 노회찬 당시 후보와 진보단일 후보 경선서 져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정의당 여영국 후보는 지난 3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진보정치 1번지, 경남의 자존심, 창원서부터 노회찬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기 위해 창원성산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4일 창원시청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번 보궐선거는 노회찬의 빈자리를 채우는 선거이기 때문에 정의당은 절박한 심정”이라며 “상주의 심정으로 치러야 할 너무나 아픈 선거”라고 밝혔다.


보선 등록 첫날부터 4명 몰려
21대 총선 ‘리트머스지’ 역할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여 후보를 지원사격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여영국은 노회찬의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정의당과 여영국에게 맡겨달라”고 당부했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창원시민의 마음을 모아 여영국을 노회찬의 꿈, 서민의 꿈, 일하는 사람의 꿈을 위해 곧게 세워낼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의 대선주자인 심상정 의원은 “여영국이 국회서 투명인간을 대표하는 파수꾼 역할을 할 것”이라며 “창원 보궐선거는 국회의 황금주를 선택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선 경남도의원 출신인 여 후보는 기자회견 후 마석모란공원을 방문해 노 의원과 전태일 열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창원성산지역은 지난 2010년 7월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하면서 신설된 지역으로 지난 6·13지방선거 기준으로 선거인 수가 18만4600명이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진보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지방선거서 민주당 소속 허성무 창원시장이 54%의 득표를 얻어 당선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위치하는 등 ‘노동자 표’가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대표가 진보정당 최초로 당선된 후 진보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노 의원도 지역구를 창원성산으로 옮겨 지난 2016년 당선됐다.

정치권은 권 전 대표와 노 의원의 뒤를 이어 세 번째 진보정당 당선인이 탄생할지 주목하고 있다.

변수는 단일화다. 민중당 손석형 후보는 같은 진보진영이면서 창원성산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의당 여영국 후보에게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진보진영 단일화를 제안했다.

이번 보궐선거는 오는 2020년 4월 열릴 제21대 총선을 약 1년 앞두고 치러진다는 점에서 정치권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선거 이후의 여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각 정당은 21대 총선의 민심을 가늠할 예정이다.

변수는?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내년 4월3일 치러진다.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보는 21대 총선까지 약 1년여 동안 임기를 맡는다. 예비후보 등록은 내년 3월13일까지 할 수 있으며, 공식 후보등록은 보궐선거 투표일 20일 전인 내년 3월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 동안 받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훈장 받는 노회찬 

문재인정부가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에게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노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추천으로 인권 향상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됐다. 

국가인권위는 “노 의원이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서 활동을 시작한 1982년부터 노동자 인권향상에 기여해왔고 정당과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약자들의 인권향상에 기여했다”고 추천 사유를 설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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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