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미스터 히치>라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영화가 있다. 알렉스 히치(윌 스미스)는 영화 속에서 데이트 코치로 등장한다. 짝사랑에 빠져 잠 못 이루거나 연애로 고민하는 수많은 뉴요커들을 구제하는 전설적 연애 조언가다. 성공률은 100%. “전략 없이는 여자도 없다”는 게 히치의 지론이다. 바야흐로 연애에도 교육과 기술이 필요한 시대에 이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장소는 뉴욕이 아닌 서울. 연애 문제로 고민하는 청춘남녀들에게 연애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그 역할이 변질돼 길거리와 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법,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성관계를 갖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어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찌질남들이 주요고객…60만~300만원까지
깔끔한 옷차림으로 길거리, 지하철, 카페, 클럽 등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들의 전화번호를 받아내는 남자들. 이들은 유혹의 기술을 배우는 학원에 다니고 있는 수강생들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코칭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들에게 돈을 받고 헌팅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명 ‘연애술사’다.
연애도 ‘돈’ 주고
전수 받는다?
‘픽업 아티스트(PUA)’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자칭 ‘연애 고수’ ‘작업의 달인’들이다. 국내에는 2006년 무렵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젊은 세대가 많은 서울 홍대 앞, 신촌, 강남역 근처의 카페나 클럽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픽업 아티스트들의 강연 등이 인기를 끌면서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전문적인 테크닉을 가르치는 관련 학원이 성업 중이다.
이들에게 연애의 기술을 배우는 대가는 60만~300만원. 통상 온라인 수강료는 30만원, 오프라인 수강료는 150만원쯤 하는데 한 달 수강료가 무려 1000만원에 이르는 고액 학원도 있다.
커리큘럼은 ‘단과반’과 ‘종합반’으로 나뉠 뿐 아니라 실전교육을 강화한 스파르타 코칭, 1박 2일 동안 집중 교육을 받는 ‘부트캠프(신병훈련소)’까지 다양하다.
수업은 크게 4단계로 진행되는데 스타일.화술.접근방법 등을 배우는 첫 대면부터 여성과 친해지기, 마무리 짓기, 마지막으로 여자의 심리를 읽는 ‘유혹기술’까지이다.
그러나 연애를 교육하는 학원이라고 해서 기상천외한 비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알려준다. 여성의 헤어스타일로 성격을 파악하는 법, 데이트 코스, 길거리 헌팅, 소개팅에서 칭찬하는 법, 카톡 보내기, 유머의 기술 등이다.
만약 첫 만남 어색한 분위기에서 여성이 “제 첫인상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남들이 칭찬하지 않은 세밀한 부분을 칭찬하며 연관 지어 말해주라는 식이다.
세부적인 과목으로는 길거리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헌팅이론’, 나이트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클럽이론’, 즉석 만남에서 잠자리까지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홈런이론’, 한 번 잠자리를 가진 여성과 또 한 번 만나기 위한 ‘재탕이론’ 등 이 있다.
이론교육이 끝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전훈련을 한다. 픽업 아티스트와 하루 동안 헌팅장소를 찾아 연습을 하는 것이다.
픽업 아티스트는 수강생의 헌팅장면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런저런 문제점을 파악해 알려준다. 또 수강생이 소개팅을 앞두고 있다면 소개팅 장면을 촬영해 잘못된 점을 고쳐주거나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픽업 아티스트 A씨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모태솔로들이나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분들이 주요 수강생”이라며 “대화하는 법부터 (전화)번호 따는 법, 홈런 치는 법까지 다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는 또 “직접 제작한 교재를 사용하고 한 번 강의를 듣고 나면 강사들과 지속적인 관계도 유지되니 인생이 180도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늑대의 탈을 쓰고
여자사냥(?)
그러나 픽업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부 픽업 아티스트들이 본질에서 벗어나 경쟁적으로 여성을 ‘데리고 놀며’ 실적 올리기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또 여성을 마치 자신들이 즐기는 인터넷 게임 대상처럼 생각하는 경박한 풍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픽업 아티스트 커뮤니티에는 그들만의 용어로 연애 기술을 공유하고 ‘작업’이 성공했음을 과시하는 후기가 꾸준히 올라온다.
실제로 지난 20일 한 픽업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L카페에는 ‘수강생 5분 만에 클럽 K-close’이라는 후기로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외에도 수강생들의 F-close했다는 후기, A급 여자 강남로드 헌팅 동영상, 일본인과의 잠자리 후기와 인증샷 등이 올라와 있었다.
‘#-close’는 여성에게 전화번호를 받은 것을, ‘K-close’는 키스까지 한 것을, ‘F-close’는 성관계까지 가진 것을 뜻한다. ‘홈런’과 달리 성관계를 하지 못하고 돈만 쓰고 나왔을 경우엔 ‘새됐다’라는 용어를 쓴다.
‘클럽이론’ ‘홈런이론’, 아찔한 후기인증까지
즉흥성에 의존한 인간관계 만연 우려도…
후기상에서 상대 여성의 외모를 지칭한 용어도 노골적이다. 얼굴과 몸매가 뛰어난 여성은 ‘엘프(요정이란 의미)’, 평범한 여성은 ‘휴먼(사람이란 의미)’, 외모가 떨어지는 여성을 ‘오크(괴물이란 뜻)’로 표현하는 식이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으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카페에서 활동하는 전문 픽업 아티스트들은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접근해, 무엇을 했는지를 증거 사진까지 곁들여 카페에 올리는 ‘필드 리포트’를 작성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면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어설프게 모자이크 처리한 여성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올리고, 나이까지 적어놔 자칫 신상정보가 공개될 우려도 낳고 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관리나 해!
한 픽업 아티스트는 이를 “픽업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라고 하면서 “본래 픽업 아티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자의 몸을 탐하기보다는 여자의 마음을 얻고 서로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현실 속 픽업 아티스트를 자처하거나 목표로 하는 이들의 절대다수는 결국 여성의 몸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간단히 말해 ‘선수’에 가깝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직장인 명모(29·여)씨는 “여성을 놀이도구로만 여기는 것 아니냐? 불쾌하다”면서 “여자와의 하룻밤을 얻기 위해서는 여자를 낚는 기술을 배우는데 돈을 쓸게 아니라, 차라리 피부 관리를 받고 운동을 다니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교양과 에티켓을 갖추고,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남자가 되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가하는 픽업 아티스트들에 대해 대인관계의 왜곡은 물론 사생활 침해 등 우리 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즉흥성에 의존한 인간관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깊숙한 관계가 되기 위해선 인간관계의 친밀도가 필요한데 젊은이들 사이에선 인터넷 기술 등의 발달로 인스턴트 섹스의 갈망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증샷 등을 볼 때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도 느슨해지고 있다. 일부 픽업 아티스트의 증가로 기형적이고 불구 상태의 대인관계가 사회에 만연할까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픽업 아티스트 용어>
로드헌팅 : 길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접근 후 여성을 유혹하는 행위.
클럽헌팅 : 나이트클럽 또는 클럽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행위.
덜덜덜 A급 : 가슴이 덜덜덜 뛸 정도로 괜찮은 여자.
당일간지 : 오늘 원나잇 스탠드(하룻밤 잠자리)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 (줄임말 '당간')
오까네 : 돈
구라신공(구라DHV) : 된장녀를 잡을 때 쓰는 기술로 약간의 스펙을 부풀리는 방법.
(한 분야에 대해 1시간 정도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습득 후 사용할 것)
레이저신공 : 맘에 드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방법으로 호감의 바디랭귀지의 일종.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가 왔을 때는 V자를 날려주는 센스)
엔빵 : 나이트 비용이나 여러 가지 비용이 나왔을 때 더치페이를 이르는 말.
ONS : 원나잇 스탠드. (동의어 '홈런')
새되다 : 아무런 성과 없이 해 뜨는 새벽을 맞이하여 훨훨 집으로 날아감.
AA : 접근공포증.
공작새 이론 : 의상에 화려한 포인트를 줘서 여자의 시선을 끌게 함. (명품옷, 명품시계, 명품가방 등)
풀 : 외모의 수준이 떨어지는 여성을 이야기 하는 말. (비슷한 말 '오우거' 반의어 '엘프')
도시락 : 나이트나 클럽에 여자를 데리고 감. (뷔페에 도시락을 싸가는 격이라는 의미)
레포(라포르) :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신뢰를 얻는 것, 공감대 형성.
스팀팩 :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이 뽕 맞듯이 무한 들이대기를 위해 약간의 알코올 섭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