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화 프로가 만난 사람>

‘5인5색’핑크하우스의 5박6일

한여름 아침에만 피는 메꽃 색채의 핑크하우스는 외벽이 온통 연 핑크색이다. 가라판 시내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이곳에 정현주(전 아나운서)와 그의 친구들은 새벽에 도착해 짐을 풀고 브런치로 사이판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이판에 1주일 먼저 도착한 필자도 오늘부터 함께 합류. 한국에서 만들어온 음식을 내 몸이 먼저 고마워했다. 쾌적하고 참 넓은 204호는 복층으로 5명의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기에는 충분했다. 

비치로드에 활짝 피고 지는 불꽃은 붉은 환타색이다. 잎보다 꽃이 범벅이다. 불꽃 같다 하여 불꽃이라 부른다고 어느 교민이 말해주었다. 원주민이 부르는 이름도 있는데 좀 외워지지 않는 꽃 명이라 나도 그냥 불꽃이라 부른다. 큰 창문 안으로 아침 햇살과 함께 비추어지는 불꽃을 열정의 꽃이라고 부르고 싶다. 환상이다. 바닷바람도 상큼한 향을 보태준다. 

친구들 5명 자신만의 눈으로 보고 자신만의 느낌으로 쓰기로 한다. 모두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필자에게 조목조목 전해왔다. 5인5색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MC 정현주

골프로 인해 수년 전에 만난 정 선생과의 인연은 사이판 여행을 함께함으로써 태초부터 잘 알고 지낸 사람 같다. 그의 골프 코치로 시간이 흐른 가운데 두터운 우정으로 참 배울게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나운서답게 말솜씨가 아름답다. 골프 칠 때는 한 샷 한 샷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상대를 배려하면서 여유 있게 라운딩을 한다. 진정으로 골프를 사랑하는 골퍼임이 틀림없다. 골프친구가 많다는 것은 인품이 그의 몸 안에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세상 살아가는데 구김 없는 그런 사람을 누구나 좋아한다. 


둘째 날,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킹피셔CC는 오늘이 축제날이다. 비, 바람, 거센 파도가 그린 가장자리를 뒤엎을 기세다. 이것 또한 자연의 에너지다. 잠시 고요해진다. 바다 물거품이 조용히 사그라든다. 킹피셔CC코스 안에는 필자 포함 5명뿐이다. 2조로 나뉘어 서로를 “파이팅!” 응원하며 자연의 혜택을 모조리 받으며 공을 날린다. 빗속을 뚫고 나가던 공은 보이질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비에 흠뻑 젖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배꼽잡고 웃는다. 홀인원 마크가 찍힌 공을 치기가 아까워 다른 공으로 바꾼다. 

홀인원의 추억에서부터
오랜 벗과의 우정까지

정현주 MC의 30년 만에 첫 홀인원이었다. 베스트 스코어 75. 요즘은 기본기를 다시 굳건히 다지는 시간으로 이기화 프로에게 사사받는다. 이 원고를 쓰기 바로 며칠 전, 필자와 이현 대표, 남영희. 소노펠리체 3번 홀. 두 달 만에 또 홀인원의 기쁨을 나눈다. 

“붙이는 것은 기술이고 들어가는 것은 운이라고 한다.”

홀인원은 붙이는 기술과 들어가는 운까지 합쳐진 종합 예술이다. 홀인원은 동반자와 함께한 울림이기도 하다. 필자도 그 해에 2회 홀인원이 있었다. 그때 기억으로 당시 가장 가깝게 우정을 나눈 벗들과 플레이할 때 일이 벌어졌다. 나의 기술 50%, 동반 친구들 50% 파동에너지가 합쳐졌다는 것을 나이 60이 되어서 알게 됐다.

구력 28년 김혜숙

파란하늘, 푸르른 바다, 파란 잔디는 김혜숙 골퍼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한다. 베스트 스코어는 80이지만 공이 잘 안 될 때에는 아직도 짜증이 난다. 하지만 골프는 신사도를 지켜야 하므로 표정을 숨기고 쳐야하는 자신이 바보스러워지는 것 같다고 한다. 김혜숙 골퍼의 솔직한 고백은 많은 골퍼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체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몇 십 년 됐지만 실질적으로 공을 친 횟수는 충분하지 않다. 골프는 그래서 달리 구력이란 표현을 쓴다. 일반적으로 프로들은 몇 톤 트럭 분량의 공을 연습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안 맞으면 안 되는 대로 잘 맞으면 잘 맞는 대로 골프코스 이 구석 저 구석 공과 함께 다니는 것도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비오는 날 한가하게 골프코스를 자유롭게 누비며 다니면서 뷰 포인트의 절벽을 배경으로 친구들과의 기념사진은 오랜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연주자 강인희

짧은 3년의 구력은 골프를 좋아하기에 충분했다. 여성이 3년 만에 95전후 스코어를 낸다면 분명 타고난 운동신경과 노력의 대가가 있었을 것이다. 잠시 갤러리 운영도 하면서 틈틈이 점토를 구어 만드는 테라코타 작업을 하고 있는 강인희 작가는 좋은 친구들과 바람, 햇살을 받으며 보드라운 잔디를 밟고 걷는 게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한다.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프로샵에서 산 단체복 나이키 골프치마로 갈아입고 서로의 옷맵시를 바라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난다. 같은 모양과 같은 컬러 치마를 한국에서도 똑같이 입고 골프모임을 한 번 더 한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종이컵이 아닌 세라믹 커피 잔에 커피향 온전히 100%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뒷조에서 비를 잠시 피하고 커피 배달 왔으니 함께 마시고 가자고 한다. 커피 잔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갓 뽑아온 커피는 따뜻하다. 코스 안까지 정성스레 서비스를 해준 킹피셔 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우정 그리고 삶이 듬뿍 담긴 커피 맛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핸디10 권성례

미국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골프는 클럽 멤버들과 소통하는 재미에 세월 가는 것을 잊은 체 지금 나이 64세,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당시 무료한 시간에 골프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씩 생각을 한다. 참 다행이다. 그때 배우기 시작한 운동은 멤버들과 골프사랑에 빠져 오늘까지 이어온 셈이다. “모든 시작은 그 이전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 다양한 문양의 밝은 색채를 띤 까스텔바작 골프웨어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자전거와 쇼핑하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각계각층의 골프사랑
구력보단 라운딩 의미

골프를 거침없이 친다. 특별히 더 잘하려고 조이지도 않는다. 슬렁슬렁 치는 모습은 남 보기도 편하다. 어느 날 사이판 마리아나CC 우먼즈 데이 게스트로 출전해 우연찮게 이글을 기록한다. 마리아나 10번 홀 그린은 포대그린이므로 공이 낙하하는 것을 정확히 볼 수 없다. 그린에 올라가 주위를 살폈으나 보이지를 않아 없어진 줄 알았는데 운 좋게도 홀 속으로 들어가 주인이 공만 빼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글이다. 남의 잔치에 와서 그 날 ‘오늘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의사 박정희

골프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 어깨너머로 시작한 골프는 5년이 되었다. 골프의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사이판 골프 여행을 하면서 골프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더 잘치고 싶다는 희망과 욕심이 생겼다는 박정희 골퍼는 여행이 취미다. 맑은 공기와 햇빛과 구름마저도 만끽하고 싶다. 날마다 새로운 골프장의 새로운 환경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걷고 준비하고 공을 날린다. 

30대의 골프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50대가 되면 골프가 재밌어진다. 60대가 돼서야 골프의 진수를 알게 된다. 골프는 무제한의 자연공간에서 동반자들과 함께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핑크하우스에서 갈비, 두루치기, 김치찌개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한층 여행을 고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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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