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세비 삭감 로드맵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3.27 09:02:39
  • 호수 1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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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진짜 월급 줄일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국회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보수를 최대 15%까지 삭감하는 안을 여야 원내대표에게 제시했다. 그 외 몇 가지 주요 특권 내려놓기안이 들어있는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 회의 자료를 <일요시사>가 입수했다.
 

국회 운영위원회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원회는 지난 21일 오후 2시30분경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사전에 입수한 회의 자료를 보면 ‘국회의원 보수체계 개편(국회의장 의견제시, 원혜영·정종섭 의원안)’ ‘회기 중 4분의1 이상 무단결석 의원의 특별활동비 전액 삭감(원혜영 의원안)’ ‘구속된 국회의원의 수당 등 지급 제한(정종섭 의원안)’ ‘보좌직원 면직예고제도 도입(김영우·김관영 의원안)’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따라 당연 퇴직한 보좌직원에게 30일분 보수 지급(김승희 의원안)’ 등이 대표적 특권 내려놓기다.

파격 개혁안

현행 국회의원 보수 구성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수당(일반수당)으로 매월 663만원을 지급 받고 있다. 여기에 국회의원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활동비가 매월 313만원 지급된다. 

또 회기 1일당 3만1360원 지급되는 특별활동비가 더해진다. 그 외 관리업무수당, 정근수당, 명절휴가비, 정액급식비,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등이 있으며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에게는 직급보조비 및 직책수행경비가 추가 지급된다.

이를 기준으로 연간 총지급액은 국회의장의 경우 2억8972만원, 부의장 2억4224만원, 상임위원장 1억9547만원, 그 외 직책 없는 국회의원 1억4993만원이다. 국회의원 기준 10년 전인 2008년에 비해 약 3150만원이 상승했다. 


실수령액은 국회의장 2억4504만원, 부의장 2억791만원, 상임위원장 1억7109만원, 국회의원 1억3227만원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보수체계 개편안을 제시했다. 앞서 2016년 7월 여야 합의로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구성됐으며 2016년 10월 활동결과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정 의장 안에는 기존 수당 개념을 보수(봉급+수당) 개념으로 개편하고 입법활동비 및 특별활동비 폐지, 보수 전액을 과세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비과세였던 입법활동비 및 특별활동비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보수를 모두 과세 대상으로 포함함으로써 세후 소득 기준 약 15% 정도의 소득감소가 예상된다.

이를 대입할 경우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연간 총지급액 1억4993만원은 변함이 없지만, 실수령액이 기존 1억3227만원에서 1억2645만원으로 583만원 감소한다. 

국회의장은 실수령액이 1017만원(2억4504만원→2억3487만원), 부의장은 1558만원(2억791만원→1억9233만원), 상임위원장은 1572만원(1억7109만원→1억5537만원)이 감소한다. 만약 여야가 정 의장 안에 합의하면 2019년 1월1일 이후 지급하는 보수부터 적용된다. 

해당 안은 법률이 아니어서 여야만 합의하면 실시될 수 있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기 중 4분의1 이상 무단결석 의원의 특별활동비 전액을 삭감하는 안을 제시했다. 현행은 무단결석일수만큼 특별활동비가 감액하도록 돼있다(국회법 제32조 제3항). 
 

즉 회기 1일당 지급되는 3만1360원을 결석일수만큼 감액하는 방식서 결석일수가 4분의1 이상이면 전액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경하는 안이다.

특권 내려놓기 일환 정세균 국회의장 앞장
최대 15%까지 축소…무노동무임금 원칙도

단 의원이 의장의 허가를 받거나 정당한 사유로 결석해 결석계를 제출한 경우는 결석일수서 제외된다. 

원 의원은 해당 안을 제안한 취지를 “회기 중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독려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의장이 제안한 특별활동비 폐지 항목이 여야 협상으로 반영될 경우 원 의원이 제안한 특별활동비 감액 부분은 실익이 없어져 시행되지 않을 수 있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구속된 국회의원의 수당 지급 등을 제한하는 안을 냈다. 현재 수당 지급 제한 규정은 국회의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출석하거나 징계를 받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즉 국회의원이 구속된 경우에도 수당 등의 지급이 가능한 상황이다.

정 의원은 국회의원이 구속된 경우 그 기간 동안 수당 등(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을 지급하지 않도록 현행 규정을 개정하려 한다. 또 이미 수당 등을 지급한 경우에는 그 금액을 환수 조치하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명시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국회의원도 부합하고자 하는 취지로 보인다.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좌직원 면직 예고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근로기준법상 해고예고제도처럼 국회의원이 보좌직원을 면직하려는 경우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하도록 규정하는 안이다. 이는 면직되는 보좌직원이 재취업에 필요한 최소기간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제안자는 설명한다. 

면직 시 면직 사유와 면직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했으며, 미리 30일 전에 예고하지 않았을 때에는 30일분 이상의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따라 당연 퇴직한 보좌직원에게 30일분의 보수를 지급하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는 일반직 공무원 및 민간근로자에 비해 고용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회 보좌직원들이 수없이 요구해오던 내용 중 하나다.

국회별정직공무원 인사규정 제8조를 보면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는 경우 소속 보좌직원은 당연 퇴직한다. 김 의원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보좌직원에게 30일분의 보수를 지급, 보호장치를 마련하려는 취지로 해당 안을 제시한 것으로 읽힌다. 

반영될까?

해당 개혁안들이 실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21일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를 거친 개혁안은 22일 운영위 전체회의에 의결되지 않았다. 소위서도 논의는 큰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개헌 등 묵직한 현안들에 밀려 있기 때문이다. 과연 국회가 특권을 내려놓을 것인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직 대통령·영부인 경호기간 늘어난 이유


전직 대통령 또는 영부인의 경호 기간을 최장 20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22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

대통령경호처에서 10년간 경호를 제공하고 요청이 있으면 5년의 범위서 연장해 최대 15년동안 경호를 제공하는 현행 규정을 최대 20년으로 연장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호대상을 안정적으로 경호하기에 15년이라는 기간이 짧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 기간이 지난달 24일 만료되면서 기간연장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여야는 이희호 여사의 경호 기간이 만료되기 전인 지난달 22일 소위서 법안을 처리하고, 28일 본회의 처리를 시도한 바 있으나 이후 국회 운영위가 파행을 겪어 처리가 늦어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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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