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4당 ‘천하이분지계’ 로드맵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2.12 09:02:40
  • 호수 1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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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대 147’ 용쟁호투 정국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의 창당. 국민의당-바른정당의 통합. 정계개편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질 것 같던 4당 체제가 유지됐다. 캐스팅보터의 증가는 이번 정계개편의 가장 뚜렷한 결과물이다. 이로써 여소야대 정국은 더욱 큰 혼란 속에서 공고해진 모습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캐스팅보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일요시사>는 ‘일도양단’으로 나뉜 정치권이 앞으로 보여줄 모습을 전망해봤다.
 

민평당이 지난 6일 닻을 올렸다. 당 대표로 조배숙 의원, 원내대표에는 장병완 의원이 추대됐다. 김경진·윤영일 의원, 배준현 전 부산시당위원장 등 3명이 당 최고위원, 정인화 의원이 사무총장을 각각 맡았다. 대변인에는 최경환 의원을 임명했다. 

민평당 출항
순항할까?

최고위원 4자리는 향후 합류할 의원을 위해 공석으로 비워뒀다. 최 대변인은 “최고위원 공석 4자리는 추후 영입 인사나 당에 참여할 의원들을 안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평당 조배숙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서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서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국민 앞에 선언한다”며 “민생 제일주의, 햇볕정책 계승 발전, 다당제 제도화,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민평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로서 “첫째 빠르게 지방선거 체제로 바꿔 경쟁력 있는 인물을 영입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둘째 당의 지지율 높이며, 셋째 외연확장으로 원내교섭단체(이하 교섭단체)를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평당은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15명이던 민평당은 박준영 의원이 지난 8일 대법원 최종 선고로 의원직을 잃게 되면서 14명으로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된 박 의원에 대해 징역 2년6개월과 추징금 3억1713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 의원은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신민당 전 사무총장 김모씨로부터 공천 헌금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3억5200만원 상당액을 받은 혐의로 1·2심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전남도지사를 지낸 박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합당에 반대해 지난 5일 국민의당을 탈당해 민평당에 합류한 상태였다.

박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도 대법원 최종 선고로 의원직을 잃게 되면서 국회 재적 의원은 296명서 294명으로 줄게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석수는 121석,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117석, 바른미래당(국민의당 21석+바른정당 9석, 총 30석),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 대한애국당 1석, 민중당 1석, 무소속 4석이다(이용호 의원 지난 11일 국민의당 탈당).

과반을 넘는 정당이 전무한 상태서 누가 국회 운영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느냐가 큰 관심거리로 부상했다. 이를 전제로 재적 국회의원 294석이 147 대 147로 정확히 양분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범여권의 경우 민주당 121석에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 1석, 무소속 2석 등 여권에 우호적인 의석수를 합치면 산술적으로 144석에 그친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내에 있지만, 민평당과 뜻을 같이하는 비례대표 3명(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을 합하면 정확히 147석이 완성된다. 

민평당·정의당 등이 무조건 여권의 편에 선다는 보장은 없지만, 정치적 결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현안마다 협치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특히 민평당은 바른미래당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과의 연대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김영진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민평당은) 햇볕정책의 존중과 평화, 중도개혁 이상의 개혁적 정당을 추구한다”며 “우리(민주당)와 (민평당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공통점이 많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향후 협치가 가능한 대상으로 민평당을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민주당과 민평당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연대 가능성을 높였다. 민평당 조배숙 대표가 지난 7일 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예방했을 때 민주당과 정의당을 방문한 자리서 같은 여성 대표라는 공통점을 화두로 꼽는 등 회동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조 대표에게 “환영한다. 어제 훌륭한 연설처럼 (당을)잘 이끌어달라”며 “차제에 여성 당대표가 뭉치면 못해낼 일이 없다. 앞으로 협치의 중심에 서달라”고 당부했다.

여야 대리전
심해진다!

이에 조 대표는 “문재인정부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는 강하게 비판하고 견제하고, 때로는 개혁과제를 위해 협치하는 야당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겠다”면서도 “여성 3인 당 대표(민주당 추미애, 민평당 조배숙, 정의당 이정미)가 오찬이라도 하면서 심도 있게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조 대표를 만난 자리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대한민국의 온전한 평화를 만드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자”고 요청했고, 조 대표는 “정당 개혁과제에 대한 연대의 기회나 고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민평당은 교섭단체 지위 확보를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교섭단체가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예산안과 주요 쟁점 법안을 논의하는 데 장애가 따른다. 

자당의 핵심 지지층이 있는 지역 예산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주요 이슈서 자당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평당이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과 민주당 합류 가능성 등이 점쳐진다.

민평당 14석에 정의당 6석을 더하면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공동교섭단체를 구성까지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민평당과 정의당은 정치적 색깔과 노선서 다소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정의당도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평당 출범…민주당 2중대론 격화
정계개편 소용돌이 4당 체제 유지

정치권은 민평당이 6·13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으로 합류할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민평당 내부에는 이에 대한 공감 여론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민주당이 합류를 받아 줄지가 변수다. 

문재인정부의 순항을 위해 민평당이 가진 호남 영향력을 가져와야 한다는 민주당 내부 목소리가 있는 반면, 지난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계와 호남 중진 의원들이 ‘친노 패권주의’ 및 ‘반문(반 문재인) 정서’를 외치며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맞서는 범야권은 산술적으로 한국당 117석, 바른미래당 30석, 대한애국당 1석, 무소속 2석으로 총 150석이다. 이는 범여권의 147석을 3석 차이로 앞서는 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허수가 존재한다.

출당 문제로 원치 않는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 등 비례대표 3명은 바른미래당 내 몸을 담고 있지만, 마음은 민평당을 향해 있다. 앞서 각 정당 지도부를 예방하던 조배숙 대표는 안철수 대표를 만나 비례대표 의원들을 출당시켜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안 대표는 일언지하에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표는 안 대표와의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민평당 창당 과정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쪽(바른미래당)에 합류할 뜻이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드렸다”고 전한 반면, 안 대표는 기자들에게 “조 대표에게 원칙적인 부분을 말했다. 이미 내가 여러 번에 걸쳐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출당을 불허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방선거 후
민주당 합류

실질적으로 바른미래당 범야권 세력은 30석이 아닌 27석에 가깝다. 이를 대입하면 범야권 또한 147석이 된다. 여야 힘의 균형이 맞춰진 셈이다. 수감 중인 한국당 최경환·이우현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범야권이 145석으로 147석의 범여권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이처럼 정치 지형이 급격하게 요동치면서 바른미래당과 민평당 사이의 3지대 주도권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당 통합파, 즉 바른미래당 측은 바른정당과 통합을 거쳐 탄생할 (바른)미래당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세력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당은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지, 미래를 위해 올바른 일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되면 여당에 협조하고, 그렇지 않다면 저희가 대안을 내놓고 대안정당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평당 측은 캐스팅보터는 바로 민평당이라며 강조한다. 

조 대표는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교섭단체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회 의석을 보면 과반 기준은 147석이 된다. 지금 (민평당을 제외한) 범여권 의석이 129석이니 우리 당에서 18석(14석+4석)만 투표를 같이하면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국을 주도할 힘이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캐스팅보터로서의 주도권 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전이 시간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은 서로를 각각 한국당과 민주당의 2중대라고 평가절하한다.

맞춰진 균형, 여야대전 시작
개헌부터 삐끗, 말짱 도루묵?

민평당 창당에 대해 바른미래당 측은 “정부여당 편에서 무조건적인 거수기를 자처하며 민주당 2중대, 도로민주당이 되는 불상사가 없기를 진정 바란다”며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부랴부랴 출범한 민평당이 호남의 멱살을 잡고 호남정치의 전국화를 가로막는 등 호남팔이당이 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점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란다”고 힐난했다.

한국당도 “국민의당이 실패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시작은 야당, 끝은 여당.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역할을 한 것”이라며 “많은 국민이 민평당이 민주당의 2중대 역할을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바란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반면 민평당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신당 이름이 ‘미래당’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당명서부터 한국당 2중대를 자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우리 정당사에 ‘미래’가 정당명으로 쓰인 사례는 과거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한국미래연합’이 있다”고 응수했다. 

이어 “이명박정부 당시 한나라당 친박(친 박근혜)계가 탈당해 만든 ‘미래희망연대’도 있었다.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만든 ‘시스템미래당’도 있고, 우익 민족주의 정당인 ‘한반도미래연합’도 있다”며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미래가 들어간 당명은 죄다 극우보수의 거룩한 계보를 잇는 한국당 계열”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국민의당-바른정당은 ‘미래당’을 신당 이름으로 결정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결정으로 해당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재논의를 거쳐 외견상 바른정당의 정체성이 담긴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바른미래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바 있다.

불붙은 전쟁
2중대론 심화

정치권은 바른미래당 대 민평당의 대결 구도가 정치권 전체로 번져 범여권과 범야권의 갈등으로 확장될 것이라 예견한다. 당장 개헌 정국만 봐도 이러한 행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평당은 “지금이야말로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며 문재인정부 및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준 반면, 바른미래당은 문 대통령의 정부주도 개헌 언급과 민주당의 4년 중임제 당론을 지적하며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맞붙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준용 의혹 2라운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가 정치권서 제기된 ‘평창미디어아트프로젝트’ 특혜 참여 의혹을 전면 반박했다.

문씨 측은 입장문을 통해 “평창미디어아트프로젝트는 정부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지원 없이 민간기업이 자율적으로 주최했다”며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바른정당 황유정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논평을 통해 “문씨는 아버지가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고용정보원 직원이 됐고 대통령일 때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전시회 28인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며 “공정한 심사로 선발됐다고 하지만 객관적 기준보다 개인의 선호가 심사기준이 되는 예술 세계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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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