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재계 사정 풍향계

다음은…LG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올 한해 재계는 유난히 다사다난 한 모습이다. 특히 주요기업은 사정기관의 날카로운 칼날을 받아야 했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수감 돼 법정 다툼을 벌이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주요기업들 상황 역시 쉽지 않은 상황. 재계의 주요 현안을 정리했다.
 

대한민국은 2017년 큰 변화를 맞았다. 예상치 못하게 대선이 치러져 대통령이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새로운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재계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

혹독한 계절
매서운 외풍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은 지난 정부와의 악연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된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했다. 

특검 측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훈련 지원, K스포츠재단, 영재센터 지원 명목으로 298억2535만원(약속 433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 부회장 측은 경영권 승계작업이 특검의 가공의 프레임이라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 변호인은 “특검은 스스로 ‘세기의 재판’이라 평가한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존재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제출될 수 없다. 


그런 사실이 존재조차 안했기 때문”이라며 “특검의 일방적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고 맞섰다.

1심에서는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형보다는 낮지만 이 부회장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지난 8월 25일 선고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 은닉 규제법 위반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위증) 등 5가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수사칼날 위에 선 대기업·오너
초긴장 속 대응책 마련에 고심

삼성 측은 이에 반발해 이튿날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특검도 구형보다 낮은 형량에 반발해 항소했다. 이에 따라 2심은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재계는 삼성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 부회장의 부재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요 결정 사안에 이 부회장의 부재는 뼈 아프다는 목소리다. 재판 결과에 따라 재계에 미치는 영향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출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수출여건이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역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자동차 수입과 관련된 무역관세가 낮아 자국 자동차 산업이 피해가 막심하다며 재협상 조건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한미FTA는 미국에게는 거친 협정이었다”면서 재협상 문제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까지 한국 자동차 수출과 관련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에 피해가 갈 것으로 전망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는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한미FTA 이후 낮아진 관세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오히려 한미FTA로 인해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산 차량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대외적인 고민과 더불어 노사 문제 역시 불확실성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현재 현대차의 노사 갈등은 하나의 불확실성으로 인식되는 양상이다.

올해 임단협을 연내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데는 애를 먹고 있다. 노조는 34차 교섭에서 회사가 새로운 제시안을 내놓지 않으면 곧바로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사업부별 노사협의 중단 등 회사를 압박하기 위한 투쟁전략을 마련할 방침이다.

사고친 오너
사고난 회사

롯데도 각종 리스크에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롯데의 가장 큰 리스크는 정치권 관련 뇌물 공여 혐의다. 지난 20일 전병헌 전 정무수석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한국e스포츠협회를 통해 롯데홈쇼핑으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전 전 수석은 검찰은 전 전 수석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의원으로 있었던 2015년 4월 롯데홈쇼핑의 홈쇼핑 방송 재승인 문제를 봐주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e스포츠협회에 3억3000만원을 대가성 후원으로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불똥이 롯데홈쇼핑으로 확대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입장이다.

이와는 별개로 오너리스크도 동시에 발생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비롯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호텔롯데 전 부회장 등 오너 일가 다수가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 회장이 징역 10년형을 구형받아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롯데그룹 리빌딩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호텔롯데 상장이 무기한 연기될 우려가 있다. 

특히 신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도 받고 있어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향후 재판 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SK는 오너일가의 이혼소송 리스크가 있다.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다. 지난 15일 최 회장은 합의이혼을 위해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이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재판에 노 관장은 출석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노 관장을 상대로 지난 7월19일 이혼조정 신청을 내면서 이혼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노 관장 측은 이혼을 원하고 있지 않아 결국 이혼 소송으로까지 갈 것이란 관측이다.

재계의 관심은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이다. 현재 그룹내 지주사 역할을 하는 SK에 대한 지분율은 최 회장 23.4%, 노 관장 0.01%다. 그러나 노 관장이 그룹 성장에 대한 기여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LG그룹만…
이번에도 무사통과?

한화그룹은 돌발 오너 리스크가 터지면서 수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주인공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3남 김동선씨는 지난 9월28일 밤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술집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명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 자리서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는 등의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올해 초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 주점에서 술에 취해 종업원을 폭행하고 술병을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려 특수폭행 및 영업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결국 김씨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활동 80시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당시 사건에 대해 “정말 후회하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반성의 뜻을 내비쳤지만 불과 1년을 못 넘기고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또다시 사과를 해야 했다.

문제는 집행유예 기간에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가중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단 피해 변호사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이 벌어진 주점의 CCTV를 복원하고 있어 혐의가 확인되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한진그룹은 총수가 배임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마음을 졸이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이 계열사 회삿돈을 자택공사대금으로 유용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22일 특정경제범죄법위반 배임혐의를 받는 조 회장과 부인 이명희씨, 대한항공 전무 조모씨, 인테리어 업체 대표 장모씨 등 4명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서울 평창동 자택의 인테리어 공사비 총 70억원 중 30억원을 영종도 H2호텔(현 그랜드하얏트인천) 공사비용으로 전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6일 조 회장에 대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하루 만에 증거 부족을 이유로 보강 수사를 지시하며 반려했다. 이후 경찰은 기존에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한진 임직원으로부터 조 회장 혐의와 관련된 구체적인 진술을 얻어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며 보강조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조 회장이 관여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며 지난 3일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지만 검찰은 또다시 기각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구속된 회사 관계자 포함 관련자들 모두 보고 사실을 부인하는 등 직접 진술이 없는 상황이고 정황 증거만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만으로는 구속 수사를 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은 인테리어 설계업체 K사에 대한 세무비리 수사과정서 조 회장이 자택 공사대금을 치르기 위해 계열사에 손실을 끼친 정황을 포착,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8월16일 구속된 한진그룹 건설부문 고문 김모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효성그룹도 심상찮다. 지난 17일 검찰로부터 본사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사정칼날 위에 섰다.

줄줄이 불려가는
대기업 총수들

검찰은 17일 오전 9시부터 서울 마포구 효성 본사와 관계사 4곳, 관련자 주거지 4곳 등 8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 내부문서와 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조석래 전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 조현준 회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서 비자금 혐의를 포착하고 압수수색을 결정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돼 비중 있게 수사가 진행되다 지난해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로 더딘 속도를 보이다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을 놓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효성그룹은 이 전 대통령의 사돈 그룹이다. 조석래 전 회장의 조카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이 이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부부다.

효성은 또 담합 의혹을 받고 있어 대응책 마련에 고심인 모습이다. 경찰이 현대중공업, 효성, LS산전이 한국전력 자회사와 변압기 납품 과정서 입찰 담합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현대중공업, 효성, LS산전이 한국전력 자회사와 한국수력원자력 신고리원전에 변압기를 납품하는 과정서 입찰 담합을 벌였다는 제보를 받고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한전 자회사와 한수원 신고리원전 등에 변압기를 납품 낙찰 업체와 가격 등을 사전에 합의하고 고의로 유찰해 수의계약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같은 제보를 받고 이달 초부터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주요기업들이 줄줄이 사정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가운데 LG그룹은 비교적 조용히 넘기고 있는 모습이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배구조 차원서 가장 모범적인 곳은 LG그룹”이라고 치켜 세울만큼 정부와의 마찰이 적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LG그룹에 우호적이지 않다. <한겨레21>은 지난 6일자 ‘청(청와대)·국(국정원)·대(대기업) 삼위일체로 지원’ 제하의 기사를 통해 LG그룹과 보수단체 간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그동안 LG그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태풍에서 비켜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보도로 LG그룹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21>는 LG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이하 공학연)’에 지난 2013년 10월2일 전시협찬금 명목으로 1억원을 지급한 세금계산서를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자금은 공학연 사무총장 이희범씨가 사무총장을 겸하던 (사)대한민국 감사위원회가 주관한 ‘기적을 캐고 나라를 구하라’는 행사에 쓰였다. 전시는 박정희 정권 시절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공학연이 최근 공개된 국가정보원의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LG는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LG 관계자는 <한겨레21>를 통해 “우리 쪽에서만 지원이 이뤄진 게 아닌데 LG만 표적이 되는 것 같다”며 “박근혜정권의 분위기가 그랬다. LG는 ‘n분의 1’ 역할만 했을 뿐 핵심적 역할을 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보수단체에 대한 지원이 당시 분위기에 따른 외압이라고 설명한 것.

그러나 향후 해당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면 그동안 피해갔던 사정의 칼날이 LG그룹을 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 최순실…
의심의 눈초리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비교적 조용하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LG가 다음 타겟이 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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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