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질당한 외감법 보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1.29 17:38:14
  • 호수 1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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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만 거치면 ‘너덜너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지난 10월 말 공포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거치며 추가된 예외조항이 도리어 감사 범위를 축소시켰다는 지적이다. <일요시사>는 칼질당해 너덜너덜해진 외감법을 집중 분석했다.
 

2015년에 터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의혹이 외감법의 출발점이다. 그해 7월 대우조선해양이 해상플랜트 분야서 수조원대 누적손실 사실을 재무제표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측은 “관계기관의 (실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위반사항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해당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탄탄했던 원안

그해 9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건은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 최대 이슈였다. 여야 정무위원들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의혹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손실을 왜 파악하지 못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이 ‘부실을 이미 알았느냐’고 질문하자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수차례 문의했지만 이미 1조2000억원의 손실이 선반영됐기 때문에 손실 여부는 없을 것이란 보고를 지속적으로 받았다”며 “부실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조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15일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20대 국회가 시작되자 정무위는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외감법을 발의했다.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규율대상에 포함 ▲감사인의 독립성과 책임성 강화 ▲회사의 외부감사인 선임 절차 등 개선 ▲회계법인의 품질관리에 관한 제도적 장치 마련 ▲회계감사기준 위반 등에 대한 행정조치 정비 ▲회사의 회계 관련 내부통제 강화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도입 등이 제안 내용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9월21일 정무위를 통과했다.

정무위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에 대해 기업이 감사 보수를 주고 외부 감사인을 선택하는 현행 ‘자유선임제’가 주원인이라 분석했다. 이에 2019년부터 상장사는 6년간 자유수임 후 3년간 정부로부터 감사인을 직권으로 지정받는다는 ‘6년 자유선임+3년 지정’이 주요 골자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선택지정제’를 추진한다고 발표했지만 정무위 논의 과정서 더욱 강화되는 쪽으로 수정됐다. 선택지정제는 상장사가 3개 회계법인을 골라 제출하면 증권선물위원회가 이 중 한 곳을 지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무위를 통과한 외감법은 법사위로 넘어갔다. 이후 법사위는 외감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유한회사의 ‘예외조항’을 부활시켰다. 
 

외감법 개정으로 유한회사도 감사대상에 포함됐는데 당초 금융위는 유한회사에 대한 예외조항을 두고자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치면서 예외조항은 삭제됐었다.


추가 예외조항 도리어 감사범위 축소
정책적 내용까지 심사? 법안묶기 비판

정무위원들은 외감법 제4조1항3호 문구를 ‘그밖에 직전 사업연도 말의 자산, 부채, 종업원수 또는 매출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회사’로 수정, 의결했다. 법사위는 이를 ‘다만 해당회사가 유한회사인 경우에는 본문의 요건 외에 사원 수, 유한회사로 조직변경 후 기간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유한회사에 한정한다’는 예외조항을 신설했다.

정무위원들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삭제한 예외조항을 법사위서 부활시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정무위원은 <일요시사>를 통해 “기업에 불리한 내용은 빠져버린 것”이라며 “이렇게 범위를 축소시켜버리면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의미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정무위 내에서 한때 로비설이 돌기도 했다. 법사위가 정부·기업의 로비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다. 

앞서 지난 9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타 부처 소관 법안들을 저지하기 위해 법사위를 로비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기재부가 상임위에선 법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법안이 법사위로 올라가면 재정 문제 등 이유를 들어 법사위원 및 소속 전문위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사위 전문위원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예외조항이 수석전문위원의 수정으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법사위원들은 정무위원이 예외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단서조항을 삭제해 의결한 사안을 딸랑 소속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 하나로 변경한 셈이다.

현행 전문위원제도는 국회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1948년 국회법 제정 당시부터 시작됐다.

법사위 전문위원의 역할은 ▲고유법안(형사법) 및 청원·진정(법무부소관 총괄) ▲예산안 결산 및 국정감사(법무부소관 총괄) ▲타 위원회 법률안 체계·자구심사(운영위, 정무위,기재위, 행안위, 국토위 소관 총괄) 등으로 한정돼있다. 

그럼에도 외감법의 경우 전문위원이 법률안의 정책적 내용까지 심사한 모습이다.

국회 상임위원들은 법사위가 도를 넘은 월권을 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역할을 넘어 ‘상원’ 노릇까지 한다는 것이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가 존중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부실해진 수정안

법사위의 ‘법안 묶어두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8월 “모든 법안이 모이는 법사위서 법안을 묶어놓으면 속수무책이라는 옥상옥 폐단을 알지만, 여야 모두 악용한 원죄가 있어 계속 존치시킨 것”이라며 “반대만을 위한 반대와 발목잡기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9월 원내대표 취임 100일을 맞아 같은 주장을 내놨다. 정세균 국회의장마저 지난달 “법사위는 상원이 아니다. 상임위 법안을 막아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야 법사위원 정면충돌, 왜?

검찰의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법무부 상납 의혹을 놓고 여야 검사 출신 의원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정면충돌했다. “검찰 활동에 쓰인 특활비는 문제가 없다”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장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맞섰다.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지난 23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상기 법무부장관에게 “(검사 때) 나도 받았다. ‘법의 날’ 행사 잘 치렀다고 장관이 500만원씩 줬다. 빳빳한 현찰로 금고에 빼 가지고, 특수부장할 때 수사 잘했다고 총장이 500만원 내놓는다”며 “국가정보원의 특활비 청와대 상납이 뇌물이 된다면 동일한 논리로 법무부장관이 예산 일부를 떼 수사 활동과 관계없는 부분에 쓰는 것도 범죄로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과는 엄연히 다른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특활비를 유용했다거나 검찰 몫의 특활비를 다른 기관에서 썼다면 문제지만 애초에 검찰 활동, 검찰 업무에 쓴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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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