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조사국 시뮬레이션> 한반도 전쟁 난다면…

중·일·러 뛰어들면…3차 세계대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미-북 간 갈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 의회조사국(CRS)은 잠재적 대북 군사행동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한반도 전쟁이 발생할 시 감수해야 하는 피해 규모도 산정했다. 미 의회가 한반도 전쟁을 전제로 보고서를 낸 일은 이례적이다. <일요시사>는 CRS 보고서 내용을 낱낱이 파헤쳐봤다.
 

미 의회의 초당적 연구기관인 CRS는 ‘북핵의 도전 군사행동과 의회 관련 쟁점(The North Korean Nuclear Challenge: Military Options and Issues for Congress)’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현행 군사력 유지부터 주한미군 철수까지 미국이 시행 가능한 7가지 대북 군사행동 옵션과 찬반 의견이 실려있다. 이 보고서는 미 연방의원 모두에게 전달됐다.

7가지 옵션

보고서가 제시한 7가지 대북 군사행동 옵션은 ▲군사력의 현상 유지 ▲억지력 강화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운반체 요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 및 발사대 제거 ▲핵 관련시설 제거 ▲북한 정권교체 ▲주한미군 철수다.

크게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직접적 옵션과 북한이 더 이상 무기 개발을 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간접적 옵션으로 나뉜다. 

분류하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운반체 요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 및 발사대 제거 ▲핵 관련시설 제거 ▲북한 정권교체가 직접적 옵션에 포함된다. ▲군사력의 현상유지 ▲억지력 강화 ▲주한미군 철수가 간접적 옵션이다. 


이 중 주한미군 철수는 미-중이 합의해 한반도 분쟁서 손을 떼는 외교적 옵션에 가깝다.

이 보고서는 7가지 대북 군사행동 옵션을 나열하며 “어떤 방안도 배타적으로 고려되고 있지 않고 모든 잠재적 옵션이 나열되지는 않았다”라고 전제했다. 즉, 미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나열한 7가지 외 다른 옵션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한 정권교체 ▲주한미군 철수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9월 “북한에 관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하면 군사적 옵션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4노(NO)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4가지 ‘노’는 북한의 체제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정권 붕괴를 도모하지 않으며, 한반도의 급속한 통일을 바라지 않고 비무장지대 북쪽으로 군대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이 밝힌 4노 원칙에 북한 정권교체도 포함돼있지만 CRS 보고서에는 북한 정권교체를 하나의 옵션으로 상정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틸러슨 장관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향해 계속 공격적 방식으로 행동할 경우 여전히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 정권교체 옵션은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을 전제로 접근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 핵 기반 시설뿐 아니라 주요 지도자들, 지휘·통제 시설, 미사일·화학무기 시설, 비행장, 항구까지 공격하는 포괄적 작전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옵션이다. 보고서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옵션은 북한 정권교체로 귀결된다는 주장과 이런 시도는 대규모 지상군 전개를 동반하는 만큼 이를 사전에 포착한 김정은 정권의 선제공격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CRS 보고서, 미 연방의원에게 전달
중 북동부에 대규모 난민 유입 예상

보고서는 북한과의 전면전서 발생할 우리 측 피해 규모도 공개했다.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더라도 전쟁 발발 며칠 내에 최대 30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1분에 1만발을 발사하는 포 사격능력을 갖춘 점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재래식 무기만 쓰더라도 교전 초기 며칠 동안 3만~30만 명이 숨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높은 인구밀도를 감안하면 군사충돌은 주한 미국인 최소 10만명을 포함해 한국과 북한 인구 2500만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주변 열강의 참전으로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서의 무력충돌 시 주한미군이 대거 투입될 것이고, 이들의 전사 비율 역시 높을 것”이라며 “여기에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이 직간접적으로 빠르게 전쟁에 개입해 전사자는 더욱 늘어나고 전쟁은 한반도 차원을 넘어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한미군 철수 옵션은 ‘미-중 빅딜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지난 8월 제기한 미-중 빅딜론은 중국의 강한 대북 압박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옵션까지 포함한 ‘북한 붕괴 이후 시나리오’를 중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 같은 내용을 트럼프정부에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앞둔 지난 10월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조언을 구해 큰 주목을 받은 시나리오다.

CRS 보고서는 미-중 빅딜론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의 옵션인지를 두고 미국 내 의견이 분분하다고 소개했다. 

“주한미군 철군 시 안보위협에서 벗어난 김정은정권이 중국의 조언을 듣고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과 (핵동결 혹은 핵폐기의 대가로) 미군 철수가 이뤄진다 해도 번번이 약속을 위반한 북한의 전력을 감안하면 이 방안이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공존한다”고 전했다.

전쟁불사


CRS는 “북핵 제재를 골자로 한 미국의 외교·군사력은 변함없지만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은 저지하지 못했다”며 “일부 분석가들은 김정은정권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지역(한반도) 전쟁 발발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경고했다. 

또 “미국은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중국과의 직접적 군사적 충돌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며 “전쟁이 발발할 경우 상당수의 한국인이 거주하는 중국 북동부 지역에 대규모 난민 유입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반도행 핵항공모함 임무는?

미군의 3개 핵항공모함 전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동안 한반도 주변에서 작전을 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 미 항모 3척이 한반도에서 합동작전을 펼칠 예정이며 이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북한 핵무기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북한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훈련에는 로널드 레이건함, 니미츠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부터 14일까지 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이중 한국에는 11월 7∼8일에 들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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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