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신호탄 ‘자강연합’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1.06 09:29:45
  • 호수 1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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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탈 저래도 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치권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바른정당 통합파의 탈당은 기정사실화됐으며 국민의당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에 잠들었을 뿐 해결되지 않았다. 여기에 정치권의 대표적 ‘책사’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출판기념회를 열며 기지개를 켰다. 일각에선 ‘바른정당 자강파’와 ‘국민의당 비호남계’가 신당을 창당하는 데 김 전 대표가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흘러나온다.
 

정계개편의 깃발이 올랐다. 이번 정계개편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바른정당 자강파의 홀로서기는 도미노 같은 연쇄작용을 불러올 시작점이다. 단적으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국민의당과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공산이 크다. 

닻 올린
정계개편

이를 증명하듯 정계개편의 분수령이었던 바른정당 의원총회가 열리기 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특별감찰관법·방송법 개정 등 각종 입법과제를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 정책연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입법과제 공동추진은 국민의당 내부 반대로 동력이 상실된 양당 간 ‘중도통합론’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앞서 국민의당 호남계는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 중도통합에 나서자 분당과 탈당 등을 거론하며 결사반대한 바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서 ‘탈당 또는 이탈 의지를 밝힌 것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내 생각을 들키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와 지역위원장 일괄사퇴 문제를 왜 의원총회서 소통 한 번 없이 밀어붙이느냐”며 안 대표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천정배·정동영·최경환·유성엽 등 당내 대표적 호남계 인사들도 박 전 대표처럼 탈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 의원은 “합의되지 않은 정체성 변경은 분당을 야기할 것”이라며 “바른정당과의 가치·정책연대는 필요하고 시급하며 이를 토대로 한 선거연대도 추진할 수 있으나 통합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 의원 역시 “통합은 있을 수 없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개혁적 노선을 걸어야 할 국민의당이 기득권서 벗어나지 못한 바른정당과 합친다는 것은 전혀 바른길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정치지형은 국민의당 호남계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논의에 반대했던 당시와 극명히 달라졌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탈당 결행만을 남겨둔 상태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3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5일 바른정당 의원총회→6일 바른정당 통합파 탈당→금주 내 바른정당 통합파 복당 수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자강파로 분류되는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5일 의총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통합파 의원들은) 나간다”라고 말했다.

친정 복귀
남은 이들은?

탈당의 규모는 중요치 않다. 현재 당 안팎에선 8명 내외의 의원들이 한국당행 ‘복당 열차’에 오를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의석수 20석을 가진 바른정당 입장에선 1명이 탈당하든 8명이 탈당하든 결국 원내교섭단체 조건을 상실하게 된다.

핵심은 바른정당 자강파의 다음 행보다. 더 이상 교섭단체가 아닌 바른정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벼랑 끝에 놓인 바른정당 자강파로서는 국민의당과의 연대 이외에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이미 국민의당과 정책연대에 합의한 만큼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해 선거연대로 한 발짝 더 나가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문제는 국민의당 호남계의 반발 수위다. 박지원 전 대표는 “바른정당과 정책·선거연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통합에는 반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통합이 아닌 영입 대상”이라며 바른정당의 미래를 어둡게 진단했다.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발언은 묘하다. 바른정당 ‘대주주’인 유승민 의원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는 듯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안 대표는 최근 기자들 앞에서 “국민의당은 공화주의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마음에 담고 이제 중도개혁의 길로 나가는 게 저희들의 방향이라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태일 제2창당위원장 역시 “중도라는 정치노선서 벗어나 공화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각자도생…예고된 수순
원내교섭단체 상실, 선택지는?

정치권은 안 대표가 ‘공화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공화주의는 유 의원이 추구하는 정치 철학과 일치한다. 

대선 전인 지난해, 한 대학 강연서 유 의원은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공화주의 실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자신의 SNS에 “공화주의 철학에 기초한 보수혁명을 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펼쳐질 무렵에도 “공정경제와 공화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같은 메시지를 낸다는 건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국민의당 비호남계가 안 대표의 공화주의 메시지를 기반으로 자강파만 남은 바른정당과 통합 논의를 다시 시작할 것이란 정치권의 해석이 제기된다.

변수는 통합 논의가 재점화될 시점이다. 만약 지방선거 전 안철수-유승민이 통합 논의에 박차를 가할 경우 국민의당 호남계의 집단 탈당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박지원 전 대표 등 호남계 인사들은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바 있다.

안철수-유승민의 통합 논의가 국민의당 호남계 탈당을 불러올 원심력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위기의식은 호남계 인사를 당겨올 구심력이다. 민주당은 이번 바른정당 통합파의 집단 탈당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의 체급 키우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통합파가 한국당에 합류하게 되면 한국당 의석수는 115석 내외로 늘어난다. 여당인 민주당(121석)의 의석수가 여전히 앞서지만, 한국당은 향후 법안처리 등 국회운영 과정서 전보다 효율적으로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민주당이 국민의당 호남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통합 움직임
민주당 주시

실제 국민의당 호남계 인사들은 지방선거가 있기 전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만큼, 국민의당 호남계 의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며 “민주당 입장에선 단 한 명의 호남 의원이라도 아쉬울 수 있는 지방선거 전에 민주당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국민의당 호남계 의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야권발 정계개편이 범여권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국민의당 호남계가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사태까지 이르면 남은 것은 바른정당 자강파-국민의당 비호남계의 진정한 통합, 즉 신당 창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국민의당 통합 시너지를 기대한다. 앞서 지난달 중순 국민의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조사 결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을 가정했을 때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3%, 국민의당·바른정당 19.7%, 한국당 15.6%, 정의당 5.3%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을 제치고 전체 2위로 올라서는 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일각에선 조사 신뢰도에 의문을 던지고 있지만 안 대표 입장으로선 구미가 당겨질 만한 결과다. 실제 안 대표는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론에 군불을 지핀바 있다.


도미노 가능성, 힘 받는 통합
김종인의 ‘오작교론’ 기지개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양 당 통합의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 2일 김 전 대표는 대규모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첫 공식 석상이었다. 

바른정당 통합파의 탈당, 국민의당-바른정당 연대론 즈음에 열리는 행사였던 만큼 김 전 대표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출판기념회를 연 것 아니냐는 해석이 쏟아졌다. 향후 정계개편 과정서 자신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김 전 대표가 통합론의 당사자인 안철수-유승민과 인연이 깊다는 점 때문에 신뢰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안 대표의 제안으로 국민의당 공동정부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유 의원과는 ‘경제민주화’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앞서 대선 때 유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골자로 한 경제공약을 제시했다. 지난 2월에는 유 의원과 김 전 대표, 그리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경제정책 토론회를 개최, 경제민주화 연대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김 전 대표가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정치 노선을 걸어왔다는 점도 역할론이 더욱 힘을 받게 하는 요소다.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드러낸 김 전 대표는 정계 복귀 신호탄이란 항간의 관측에 대해 “역할은 없다”고 부인했다. 또 출판기념회가 정계 복귀 신호탄이란 해석에 대해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정치 행보와 오늘 출판기념회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김 전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최근 <뉴시스>에 “정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서 김 전 대표의 역할이 클 수도 있다”며 “(정치권서) 필요로 하는 때가 있으면 모셔가는 일이 벌어질 수는 있다”고 여지를 뒀다.

정계복귀 신호
김종인 역할론

이 때문에 김 전 대표 본인이 전면에 나서는 형태가 아닌 안철수-유승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종의 오작교 역할을 하면서 필요한 경우 조언가로서 역할을 할 것이란 가능성이다. 

김 전 대표는 이번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경제민주화 포럼 구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포럼에 안 대표, 유 의원의 합류 여부가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감 무용론 왜?

2017년도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20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이번 국감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국감이라는 점에서 출발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다.

‘이번에야 말로’ 여야가 정쟁이 아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국감을 치를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여야는 국감 전 정부에 대한 공정한 감시와 견제를 바탕으로 한 정책 감사를 약속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갑질이 없도록 해달라”고 여야에 당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감은 막말과 파행으로 얼룩졌다. 헌재 대행체제, 정계개편, 공영방송 정상화 이슈 등 외풍까지 맞으면서 정쟁과 구태만이 남았다. ‘국감 무용론’ ‘맹탕 국감’이라는 지적은 올해도 반복됐다. 정치권의 다짐은 역시나 ‘공염불’에 그쳤다.

[막말]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감서 볼썽사나운 고성이 오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위원장이 의사진행발언을 막은 데 대해 “위원장으로 인정 못한다”고 질타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인정하지 못하면 법사위에 출석하지 말라. 완장질하지 말라”고 맞섰다. 중재에 나선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은 “창피해서 (국감을)못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말실수]

김외숙 법제처장에 대한 ‘성차별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당 정갑윤 의원은 김 처장의 목소리가 작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인 선발대회가 아니니 마이크 바짝 대고, 큰 소리로 답변하라”고 말해 뒷말을 낳았다.

[파행]

첫 스타트는 법사위가 끊었다. 지난달 13일 열린 법사위 헌법재판소 국감은 야당이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또 한국당 보이콧을 선언, 소속 의원 모니터 앞에 ‘문재인정부 무능 심판’이라고는 문구를 붙여 일부 상임위는 정회를 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은 한국당이 빠진 반쪽 국감으로 진행됐다.

[고발]

청와대가 ‘적폐청산 TF(태스크포스)’ 구성 공문을 작성한 일을 두고 한국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집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스타 부재]

주목할 만한 인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도 이번 국감이 맹탕국감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야당은 공격 포인트를 모르고 헛발 짓만 했으며 여당은 아직 자신들의 자리가 실감이 안 나는 듯 소리만 크게 내질렀다. 대체로 정권교체가 아직 어색한 모습이었다. 

이에 전·현 대통령 공격에만 몰두해 정작 중요한 이슈 선점에 실패했다. 이슈가 없고 비슷한 지적만 반복되다 보니 송곳 같은 질문으로 국민들을 시원하게 만드는 국감스타도 부재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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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