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바른정당 빅딜설, 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30 10:53:02
  • 호수 1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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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씩 주고받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바른정당 통합파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 집단 탈당하는 그림이 다음달 초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기는 바른정당 전당대회가 있는 11월13일 전.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하면 탈당의 명분이 약해지기에 통합파는 전대가 실시되기 전, 탈당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복수의 관계자는 전했다. 정계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당-바른정당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다.
 

“(11월)13일 전에 결판이 나야하지 않겠어요?” ‘한국당과 언제 통합하느냐’는 질문에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실 관계자는 이같이 답했다. 어떤 결판인지 콕 찍어 말하진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통합파 내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였다. 아니나 다를까 국정감사 기간임에도 한국당-바른정당 통합론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라질 당→
통합 파트너

당초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바른정당을 ‘곧 사라질’ 당으로 규정했다. 당 대표 취임 후 ‘지류(바른정당) 소멸론’을 내세웠다. “첩이 아무리 본처라 우겨도 첩은 첩일 뿐”이라는 자극적인 말로 바른정당과의 대등한 통합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던 홍 대표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취임 100일을 맞아 “바른정당 전당대회(이하 전대) 전에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보수대통합을 해야 한다”고 급선회했다.

“연휴기간 동안 바른정당뿐 아니라 늘푸른한국당까지 전부 포함하는 보수대통합을 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많았다”는 게 그 이유다. “바른정당이 전대를 하게 되면 고착화가 된다”며 “사무총장은 고착화되기 전, 즉 전대 전에 보수대통합할 수 있는 길을 공식적으로 시작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홍 대표의 발언은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과의 물밑 교감을 통해 도출된 결과로 보인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당대 당 통합을 언급한 것은 통합파에 탈당 명분을 만들어주려는 성격이 강하다.

통합파는 그간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바른정당 탈당을 주저해왔다. 통합파 수장인 김무성 고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출당되면 어느 정도 명분이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박 전 대통령 출당만으로는 탈당 명분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던 중 홍 대표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동등한 입장에서의 통합인 당대 당 통합을 약속한 것이다.

양당 의원들은 ‘보수대통합 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를 구성했다. 통추위 대변인 역할을 맡으며 대표적 통합파로 분류되는 황영철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저희(바른정당 통합파)가 한국당에 혁신의 결과물들을 내놓기를 요구하고 있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 일정한 시그널이 오면 통합 분위기는 더 무르익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가 떠도는
수상한 소문

홍 대표의 갑작스런 입장 전환을 두고 일각에선 ‘한국당 비박(비 박근혜)계’-‘바른정당 통합파’ 빅딜설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당 측이 바른정당 의원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의 연장선으로 한국당이 정권을 탈환에 성공할 경우 바른정당서 넘어온 사람을 ‘총리’로 앉힐 것이란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달 한국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하면 바른정당 A 의원에게 총리직을 주겠다는 식으로 ‘딜’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딜’은 바로 차기 원내대표 자리를 약속했다는 설이다.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은 올 연말로 예정돼있다. 바른정당 인사들이 대거 한국당으로 돌아오면 비박계 몸집이 커지기 때문에 원내대표직을 두고 친박(친 박근혜)계와 한판 승부가 가능하다. 

당 지도부 절반 이상이 친홍(친 홍준표)계로 채워져 있다는 점도 바른정당 출신 원내대표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 같은 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내 1당 자리를 한국당에게 넘겨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121명)과 한국당(107명)의 의석차는 단 14석. 만약 바른정당서 15명이 한국당으로 넘어가면 한국당이 원내 1당이 된다.

디데이 초읽기, 탈당은 시간문제
외골수 ‘홍’, 갑자기 입장 바꿔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현재 바른정당 통합파 중 한국당으로 넘어가는 데 적극적인 사람은 10명 이내인 것으로 전해진다. 즉 원내 1당 자리에 변화를 줄 15명에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른정당 통합파 중 단 1명이라도 탈당하면 바른정당은 교섭단체의 지위를 잃게 된다. 도미노 탈당으로 이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15명이 한국당으로 넘어가는 그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24일 <뉴시스>가 바른정당 소속 20명 의원들을 상대로 ‘향후 바른정당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 중심의 전수조사를 펼친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 핵심이 청산된 한국당과의 보수통합이 필요하다’고 답한 의원이 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보다는 전당대회를 거쳐 내년 지방선거까지 자강론으로 가야 한다’는 답변과 ‘무응답 및 기타의견’은 각각 5명에 그쳤다. ‘국민의당과 중도 통합이 필요하다’는 답은 단 한 명 뿐이었다.

당초 10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던 자강파는 5명에 그친 것이다. ‘무응답 및 기타 의견’을 밝힌 5명의 의원들이 향후 자강론을 펼칠 수 있지만, 현재 한국당과의 통합이 바른정당의 주류 의견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당장”
발등에 불

한국당이 원내 1당 자리를 되찾게 되면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진다. 당장 한국당이 후반기 국회의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 운영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이 한국당 소속인 상황서 국회의장마저 한국당 몫이 되면 사실상 의회권력이 교체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이 약화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원내 1당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체급을 키운 한국당이 문재인정부를 향한 총공세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민주당 입장에선 부담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연구모임 ‘열린 토론, 미래’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으며 최근에는 경제·안보 분야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바른정당 김무성 고문은 최근 ‘북핵 미사일 위협과 우리의 대응방안’을 주제로 한 정례 토론회에 참석해 “문재인정부의 갈팡질팡 안보 정책이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며 “북핵과 미사일 대응체계를 갖춰야 할 시점에 포퓰리즘으로 나랏돈을 퍼주면서 국방 예산을 홀대하는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겁박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태세가 미덥지 못하고, 갈팡질팡·우왕좌왕하며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보수 야권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만큼은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비록 다음 대선이 4년 넘게 남았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초부터 ‘절차탁마’의 시간을 가졌던 당시 민주당을 거울삼아 지금부터 차근차근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 첫 발걸음이 한국당-바른정당 통합이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전대 전 탈당 가능성을 꾸준히 환기해왔다. 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 출당을 나서면서 통합파의 탈당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앞서 통합파는 전제조건으로 친박 인사들의 청산을 거론해왔다.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이들 세 사람의 출당을 의결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통합파의 요구에 화답한 것이다.

남은 과제는 통합의 형태다. 가장 힘을 받았던 형태는 당대 당 통합, 즉 합당이었다. 양당 지도부 간 논의를 벌여 두 당이 전면 통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향후 있을 지방선거와 총선서 기존 한국당 의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길 원하는 통합파 입장서도 합당이 가장 이상적인 통합 형태였다. 

이에 통합파 중 일부는 자강파 설득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기류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바뀌었다. 친박 청산이 서청원 의원의 ‘성완종 리스트’ 폭로로 제동이 걸렸다. 이에 바른정당 탈당파가 하루라도 빨리 한국당에 합류해 홍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한국당 내에서 형성됐다.

빠르게 힘을 합칠 수 있는 탈당 후 통합, 즉 부분 통합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홍 대표와 한국당 내 비박계는 서 의원의 폭로로 친박과의 세(勢) 대결서 밀리는 양상이다.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제명안을 의원총회서 통과시키기 위해 단 한 명의 표도 아쉬운 상황이다. 국정감사 기간 중이라도 바른정당 통합파 일부가 탈당해 한국당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친홍계 인사들은 바른정당 탈당파들에게 하루 속히 복당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탈당파들이) 좀 빨리 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데드라인을 두고 (통합을) 진행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전체가 오기는 어려우니 부분 통합이라도 빨리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 오시는 분들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통합 반대 세력인 한국당 친박계와 바른정당 자강파의 반발이 걸림돌이다. 친박계는 바른정당 인사들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복귀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사람들의 정당(바른정당)”이라며 “정권을 뺏기게 한 사람이 영웅이 돼 돌아오는 정치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당 출신 원내대표 가능성↑
민주당 속앓이 “1당 만은…”

바른정당 의원들은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을 나왔으며 대부분의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친박이 세를 모아 집단 반발할 경우 부분 통합 역시 제 속도를 못 낼 가능성이 높다.

바른정당 자강파는 한국당의 내분으로 탈당 명분이 약해졌다고 자평한다. 자강파의 대표격인 하태경 최고위원은 “국민이 보기에 홍 대표나 서 의원은 둘 다 썩은 보수”라며 “탈당 명분이 확 약해지면서 탈당 규모는 최대 5명으로,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지지부진한 통추위 활동이 통합의 어려운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3선 의원들이 추석 직전 회동을 갖고 구성한 통추위는 지난 25일 오전 긴급 회동을 가지려 했었다. 이 회동에서는 조기 탈당 등의 문제가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동은 국정감사 이후로 연기됐다.
 

대외적으로는 국감에 최선을 다한다는 이유였다. 통추위 대변인 황 의원은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파인 저(황영철)와 김영우 최고위원, 김용태, 이종구, 주호영 의원과 만나 논의했다”며 “국감 기간 중에는 국감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고,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국감 기간 동안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상은 친박계의 거센 저항으로 통합 논의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통합에 적극적인 양 당의 수장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번 주 통합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4박5일간의 미국 일정 후 홍 대표는 지난 27일, 해외 국감을 마친 김 고문은 하루 늦은 28일, 각각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국감은 뒷전
이슈는 통합

통추위 황 의원은 최근 브리핑을 통해 “오늘 회의에선 보수대통합의 큰 물줄기를 되돌릴 수 없다. 끝까지 보수대통합을 통한 보수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홍 대표가 27일쯤 미국에 갔다가 귀국하고, 김 고문도 해외출장서 27일께 돌아오는데 두 분이 돌아오면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예고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매년 반복되는 국감 무용론

문재인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반환점을 돈 가운데, 각 상임위서 여야 의원들이 막말, 고성, 파행이 되풀이 됐다. 이에 국감 무용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국감은 9년 만에 여야가 공수를 바꿔 각각 ‘적폐청산’과 ‘무능심판’ 등의 프레임 전쟁을 펼쳤다. 

최근 국회 산자위 강원랜드 국감에선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이 함승희 사장 답변태도를 문제 삼았다. 이에 함 사장은 “지금 반발하는 것이냐?”고 발끈했고 정 의원은 “내가 왜 반말을 못하냐?”고 소리쳐 국감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헌법재판소 국감에선 청와대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 유지방침을 밝히자 여야 의원들이 충돌, 국감이 파행됐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국회인준을 못 받은 김 대행에게 업무보고를 받을 수 없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복”이라며 맞섰다.

교문위 역시 보수정권 국정교과서 여론조작 의혹 문제를 둘러싸고 낯 뜨거운 고성이 오갔다. 농해수위 국감서도 ‘세월호 질의’를 놓고 여야가 기 싸움을 벌이다가 파행됐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에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감은 피감기관에 대한 견제와 감시 대안제시가 목적인데 매년 정쟁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국감제도 손질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짧은 시간 수많은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일 년에 한 번 여는 국감을 폐지하고 상시국감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큰 힘을 받고 있다. 

상시국감은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해 소관 상임위별로 자율적으로 연중 시기와 기간을 정해 감사를 상시적으로 진행토록 하는 것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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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