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선정> 금주의 국감스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30 10:45:42
  • 호수 1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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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시작됐다. 추석 연휴를 뒤로 한 국회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 국감을 진행되며 16개 상임위원회(겸임 상임위 포함)서 701개 기관을 상대로 치러진다. 
 

이번 국감은 큰 줄기서 ‘적폐청산’ 대 ‘무능심판’의 대결 구도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이명박근혜정권 때 행해졌던 각종 비리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감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개혁과 적폐청산을 화두로 꺼내며 여당을 지원사격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정부의 지난 5개월간 무능을 심판하는 이른바 무심 국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5대 신(新) 적폐를 파헤쳐 국민들이 정부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강대강 대립에 국회 일각에선 파행으로 인한 ‘부실 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정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송곳 같은 문제제기로 눈길을 끈 의원들이 있다. <일요시사>가 금주의 국감스타를 선정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세월호 후 현장근무 승진 단 4명”

세월호사고 이후 해양경찰청 총경 승진자 42명 가운데 함정 근무 등 현장 근무자가 4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4일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 이후 현재까지의 총경 승진자 현황에 따르면, 전체 승진자 42명 가운데 지방청 근무자는 10명뿐이었다. 이 중 함정 근무 직원은 단 4명에 불과했다.

세월호사고 발생 직후인 2014년 총경 승진자 3명 모두가 본청서 배출됐고, 2015년에는 6명중 4명, 2016년 10명 중 9명, 2017년 23명 중 16명이 각각 총경승진 당시 본청서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 정원 총 9960명 가운데 본청 정원은 4.5%에 불과한 449명임을 감안할 때 본청의 승진인사 독점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해경의 주요 임무는 해양주권 수호, 해양재난 안전관리, 해양교통질서 확립, 해양범죄 수사, 해양오염 예방·방제다. 해양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은 해양경찰서장의 직책을 맡는 고위간부로서 현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필수적인 자리다. 

하지만 현장 근무자가 아닌 본청의 행정근무자가 고위직 승진을 독차지 하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승진자들이 과거 함정근무 경력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본청 근무자 위주의 승진인사가 계속될 경우 본청서 근무해야만 승진할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과 우려가 제기된다.

총경 이상 해양경찰공무원은 해양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해양수산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에 인사 개선을 위해서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위 의원은 “지난 잘못에도 해양경찰청이 부활한 것은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국민안전을 위해 더욱 매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양사고 예방과 대처에 능력을 갖춘 직원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인사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무위원회] 김성원 의원(자유한국당)
“저축은행…사실상 대부업체”

일부 저축은행들이 대출금리가 18∼27%에 이르는 고금리 가계신용대출에 집중하고 있어 사실상 대부업체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예금보험공사의 2017년 2분기 저축은행 통계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총자산 기준 상위 10개 저축은행 가운데 절반이 총대출 대비 가계신용대출 비중이 40%를 넘었다.

특히 웰컴저축은행(63.0%), OK저축은행(53.2%), JT친애저축은행(51.7%)은 대출의 절반 이상이 가계신용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조사대상인 79개 전체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평균 비중은 12%”라며 “업계 상위 저축은행일수록 고금리 신용대출에 의존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상위 10개사의 가계신용대출 평균금리는 24.4%로,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JT친애저축은행(22.61%)만 51억원의 당기순손실(2017년 2분기)을 기록했고 다른 저축은행은 모두 순이익을 기록했다.

김 의원은 “한때 서민금융기관이라고 불리던 저축은행이 이제는 대부업과 같은 사업방식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며 “저축은행의 평균 수신금리는 2% 내외인데 20%가 훌쩍 넘는 예대차로 가계신용대출에만 몰두한다면 ‘저축은행’이 아니라 ‘대부은행’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저축은행이 고금리 가계신용대출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제1금융권과 대부업계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보이나 가계부채 증가문제와 중금리 대출 취급요구, 금리정책 변화 등 앞으로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며 “저축은행들은 이자놀이에만 급급하지 말고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한 치밀한 대책을 세워야 하고, 금융당국도 금융업권간 경쟁이 시장에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위원회] 최경환 의원(국민의당)
“장애인콜택시 안전기준 미달”

서울시가 운영 중인 장애인 콜택시 437대 전부가 충돌 시 휠체어가 넘어지는 등 국제 안전 기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난달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은 “장애인 콜택시시험평가서 휠체어 안전벨트 고정 장치가 ‘부적정 판정’이 내려졌다”며 서울시에 리콜 조치를 촉구했다.


최 의원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서 실시된 휠체어 탑승객 안전장치 시험평가 결과 차량 충돌 시 휠체어 이동량 기준 초과, 차량 내 충돌, 휠체어가 넘어지는 등 휠체어 탑승자의 안전에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설공단의 장애인 콜택시는 그랜드 카니발과 그랜드 스타렉스 등을 임의개조한 차량이다. 현재 437대가 운행 중이며 하루 평균 탑승 인원은 3654명이다.

하지만 교통안전공단 실제 차량 시험평가에선 휠체어 이동량 200㎜ 초과, 차량 내 격벽 충돌 등이 발생했으며 후방 휠체어고정 장치가 풀리거나 바닥이 파손돼 국제 표준화 기구(ISO) 기준에 부적합했다. 

휠체어 단품 시험평가서도 휠체어 이동량이 200㎜를 초과했고 휠체어가 넘어져 유럽 기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현재 서울시엔 장애인 콜택시 선정 때 차량 실내 안전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안전 기준이 없는 상태다.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차량 개조 시 연료장치, 전기·전자장치, 차체 및 차대 등에 대한 안전기준 평가가 있어야 하지만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는 게 최 의원의 지적이다.

여기에 장애인 콜택시 운영 기관인 서울시설공단이 ‘부적정’ 사실을 파악하고도 한 달 넘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부적정 사실이 지난달 21일 열린 교통안전공단과의 ‘제6차 특별교통수단 등 휠체어 이용자 차 실내 안전장치 기준검토 의견수렴 협의체’에서 제기됐음에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콜택시의 고정 장치, 차량 변형에 따른 문제점을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제작사측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정의당)
“구조했더니 면허 없다고 고발”

#1. 한 대학병원서 응급구조사로 근무하는 경력 8개월차 A(27·여)씨는 지난 5월 환자 보호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로부터 지시를 받고 환자의 호흡기능을 확인하기 위한 동맥혈가스분석(ABGA)를 실시했으나 현행 의료법상 응급구조사는 ABGA를 할 수 없게 돼있다. 결국 A씨는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로 검찰에서 수사 중이며 병원에선 퇴직한 상태다.

#2. 다른 대학병원도 최근 지자체 보건소로 민원이 접수돼 곤혹을 치렀다. 이 병원 응급구조사가 업무범위가 아닌데도 심전도 측정을 실시했다는 게 민원인의 주장이다. 병원 측은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측정은 간헐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나 의료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응급의료업무에 종사하는 응급구조사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고발당하는 사례가 빈번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비합리적으로 제한돼 응급환자의 생명은 물론 응급구조사의 직무수행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응급구조사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재난을 겪은 후 응급의료체계 구축과정에서 1995년에 탄생했으며 2017년 현재 2만9000여명의 응급구조사가 소방구급대, 해경, 응급의료센터 등에서 응급의료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범위가 제한적이어서 현실과 괴리가 있다. 윤 의원에 따르면 개념상 응급의료는 환자상태의 파악과 적절한 처치, 중증도 분류 등이 환자 개개인에게 총체적으로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기도유지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기 이용한 호흡의 유지 ▲포도당, 수액 등 약물투여 등 14개로 업무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응급구조사의 의료행위나 의료행위 보조업무는 규정된 업무범위를 벗어나기 일쑤다. 응급구조사가 응급상황에서 전문의의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고 윤 의원은 지적했다.

윤 의원은 “전문의나 응급실 전담의사의 구체적인 의료지도 하에서는 응급의료보조업무가 가능해야 한다”며 “14년 넘게 보완이 없었던 시행규칙의 개정 등을 통해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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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