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나들이’ 예능 정치 득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9.04 10:29:39
  • 호수 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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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정치인? 잿밥에 더 관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예능판서 펼쳐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정치인들이 2017년 예능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지도’ ‘친숙한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예능만큼 좋은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예능을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만 볼 것인가. <일요시사>는 정치인 ‘예능 나들이’의 득과 실을 살펴봤다.
 

JTBC 대표 프로그램 <썰전>은 정치가 예능의 소재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올해로 방송 4년차인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이슈를 낳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기간에는 시청률 7% 이상을 기록하며 이슈의 발원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썰전을 통해 한 주의 현안을 밀도 높게 살피고 있다.

예능 소재로
주목받는 정치

올해 <썰전>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회차는 지난 3월16일 방송된 210회 방송이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당시 8.417%(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웬만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이상의 시청률이다. 3월11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의 여파가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썰전>이 배출한 현역 국회의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썰전> 초기 멤버로 출연해 인지도를 쌓았다.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끝내고 여러 대학의 강단에 올랐다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상임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던 시기였다. 

<썰전>서 재치 있는 입담과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지난 20대 총선서 민주당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의원이 ‘방송출연→인지도 상승→국회 입성’의 좋은 예라면 강용석 전 의원은 인지도 상승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나쁜 예다. 

강 전 의원은 이 의원과 함께 <썰전>의 초기 멤버로 출연했다. 이내 이 의원과 합을 맞추며 예능 블루칩으로 발돋움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SNL>에도 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따낼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상처가 크듯, 강 전 의원은 한창 주목을 받던 시기 ‘도도맘’과의 불륜 의혹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스캔들에 휩싸인 강 전 의원은 이후 모든 프로그램서 하차하며 정계 복귀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인지도 ↑
구설도 ↑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약일까, 독일까. 한마디로 ‘양날의 검’이다. 소탈하고 친숙한 이미지는 과거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권위적이고 부패한 모습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정계의 범위서 생각했을 때 대한민국에 만연한 정치 불신을 완화할 수 있다는 측면서 권장할 만한 행보다.

정치인 개인적으로도 예능 출연은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과거 불명예 퇴진을 했던 정치인에게는 재기의 신호탄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중의 호응을 얻어낸다면 정계 복귀는 더욱 쉬워질 것이 분명하다.

초·재선 의원에게는 자신의 소신과 색깔을 알릴 수 있는 무대다. ‘인지도 = 재선 가능성’은 수많은 시간을 통해 증명된 정치권의 공식이다. 방송 출연 횟수 증가가 재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의정보고활동에 제약이 큰 초선 비례대표에게 예능 출연은 지역구 의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썰전>뿐 아니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인의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방송가도 이런 정치인의 니즈(needs)를 알고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출연이 잦았던 컨셉은 토크쇼 형태의 방송이다. <썰전>도 이러한 형태의 방송 중 하나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유창한 언변으로 장시간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이다.

특히 대선과 같이 중요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있을 때 후보들은 이러한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을 선호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썰전>에 출연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의혹을 해명하는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에게 “나는 전 변호사님이 저보다 선배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문 대통령 외에도 안희정·이재명·안철수·유승민·심상정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과거에도 MBC <무릎팍도사>에 안철수 후보, SBS <힐링캠프>에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출연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방송가 찾는 의원 급증, 블루칩
토크쇼 출연 여전, 전문성 어필

TV조선의 정치 토크쇼 <강적들>은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고정으로 출연한다. 새누리당 유정현 전 의원을 MC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장제원 의원, 바른정당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방송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12일 방송서 장 의원은 자신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 화제가 된 바 있다. 

“나 자신의 위치가 많이 변한 상황”이라며 “잃어버린 신뢰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발언한 것. 최순실 사태 때 ‘청문회 스타’로 거듭났던 그였지만 ‘자유한국당 복당 사태’ ‘아들 성매수 논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채널A <외부자들>을 찾는 정치인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출연해 한나라당 전여옥 전 의원과 ‘여걸 대결’을 펼쳐 화제가 됐다. 
 

지난달 22일 나 의원은 북핵 사태 해법에 대해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절대무기는 절대무기로만 막을 수 있다”며 전술핵 배치 찬성 입장을 밝히자 전 전 의원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군사 협의체가 없는 아시아서 이는 공허한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등 신경전을 펼쳤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유력 정치인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을 시작으로 정의당 심상정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민주당 추미애 대표, 한국당 홍준표 대표, 민주당 손혜원 의원, 한국당 나경원 의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등이 연이어 출연했다.

전문성→인간적
토크쇼의 변모

<냄비받침>은 앞서 토크쇼와는 컨셉이 다르다. 현안보다 정치인 개인의 인간적인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훨씬 대중적이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달 1일 방송된 손혜원·나경원 의원 편이다. 

당시 ‘정치인의 외모 비교’에 대해 나 의원은 “문 대통령의 외모가 별로라고 생각하느냐”고 손 의원에게 질문하자 “홍준표 대표보다는 조금…”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 의원이 “문 대통령보다 유승민, 안철수 후보가 내 스타일”이라고 덧붙이자 손 의원은 “취향이 이상하다”라고 가감 없이 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인의 자상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 <냄비받침>에 출연한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과거 민주당 추미애 대표에게 했던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추 대표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는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미인이었다”며 “그런데 2년 동안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고 회고하는 등 기존 ‘스트롱맨’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친분이 있는 두 정치인이 동시 출격하는 형태도 추세 중 하나다. 최근 <냄비받침>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정치계 ‘남사친-여사친’으로 케미를 맞췄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12월 말 동남아 쓰나미 재난이 발생했을 당시 국회 시찰단으로 파견돼 8박9일 고락을 함께 나누며 동지 같은 관계가 됐다는 후문을 전했다.
 

이어 두 사람의 진솔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계기를 밝히는 부분에서 셋째를 출산할 당시를 회고했다.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회사 산행을 하던 중 산통을 느껴 출산했는데 회사 측이 “또 출산휴가를 쓰냐”며 화를 냈다는 것. 

워킹맘의 비애를 느낀 이 대표는 이때 정계 진출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노 원내대표는 사회자인 이경규와의 인연을 전했다. “이경규씨 친형과 잘 아는 사이”라고 운을 땐 그는 “이경규씨, 초등학교 때 많이 맞고 다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족·음악 예능까지 활동폭 넓혀
인기영합으로 재선? 부작용 우려

최근 방송가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방송 컨셉은 가족관찰 예능이다. 최근 SBS는 일주일 중 닷새 저녁에 가족관찰 예능을 편성했을 정도다. ‘가족+관찰’이라는 예능계 트렌드를 접목한 형태다. 유력 인사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대표적인 가족관찰 예능 중 하나인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부인 김혜경씨와의 알콩달콩한 평소 모습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소신 있는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발명을 얻은 이 시장이지만, 방송에서는 평범한 부부의 생활상을 보여줘 ‘성남 고길동’이라는 친근한 별명도 얻었다. 주말에 늦잠 자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이 일반 가정과 큰 차이가 없었다. 

휴가 때 제주도 풀빌라를 원하는 아내의 소망을 멀리하고 바다 배낚시를 하러 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그것과 같은 모습임을 보여줬다. 이 시장의 이 같은 예능 나들이를 지켜본 정치권 일각에선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대중성을 강화하는 행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가족관찰 예능 tvN <둥지탈출>에는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아들 기대명과 함께 출연해 정치인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은 유력 인사의 2세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지켜보는 SBS <미운우리새끼>의 컨버전(conversion) 형태다.

방송가의 파격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KBS 2TV <불후의 명곡> 측은 국회의원 특집을 방송한다고 밝혔다. 비록 KBS 총파업 사태로 녹화가 잠정 연기된 상태지만, 현직 국회의원의 가요 예능 출연 소식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각 정당을 대표하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출연해 가수들과 팀을 이뤄 듀엣 무대를 펼치는 기획이다. 앞서 민주당 표창원 의원, 한국당 장제원 의원,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의 출연이 예정됐으나 표창원‧장제원 의원은 KBS 총파업을 지지하며 해당 프로그램 출연을 취소한 상태다.

이렇듯 예능 나들이에 나선 정치인을 두고 ‘폴리테이너 2.0’ 시대라도 한다. 폴리테이너(Politainner)는 정치인(Politician)과 예능인(Entertaniner)의 합성어다. 과거 정치권에 진출했던 연예인이 1세대라면 2세대는 정치인이 방송 프로그램을 누비는 것을 일컫는다.

폴리테이너 2세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입법기관 본업에 충실하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혈세를 월급으로 받는 국회의원이 예능 출연으로 가외수입을 버는 모습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가족예능 출연
집·일상 공개

무엇보다 자칫 정치를 ‘희화화’ 내지는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정치를 보다 친숙하게 여기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패널과 가십에만 집중하는 질문 등으로 현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문제를 일으킨 정치인들이 ‘이미지 세탁’을 위한 창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선후보의 공약, 정치인이 발의한 법안보다 이미지에만 치중하는 정치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사항 중 하나다. 인기영합주의로 재선에 성공하는 정치인의 등장을 걱정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자유담’ 기동민 아들 화제
훈훈한 외모 “연예인 꿈 없어요”

tvN <둥지탈출>에 출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아들 기대명의 훈훈한 외모가 화제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딸 유담의 이름을 따 ‘남자유담’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유담은 지난 대선기간 동안 연예인에 버금가는 외모로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남다른 외모를 가졌기에 일각에서는 그가 연예계 진출을 노리고 방송에 출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 7월10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서 “나는 연예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아무것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지금 평범한 대학생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직 연예인은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연예계 진출 노리고 방송 출연?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일축

이어서 그는 “현재는 로스쿨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촬영하면서 오늘 하루 겪은 일을 공유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내일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들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자신의 꿈을 밝혔다.

한때 <둥지탈출>은 ‘연예인 세습’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유력 연예인 2세들의 ‘자립 어드벤처’를 그리고 있어 방송사에서 대놓고 밀어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출연자 6명 중 연예인 지망을 꿈꾸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부모의 후광으로 쉬운 연예계 데뷔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제작자인 김유곤 PD는 발표회서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친구들과 살아보고 싶은 아이들을 선발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에게서 진정성을 봤다”며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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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