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자유한국당 혁신안 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8.07 10:23:43
  • 호수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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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저래도 동네북 신세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극우 논란 속에 출범한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그들이 내놓은 혁신안이 정치권 및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름만 혁신안이지 실제 담고 있는 내용은 혁신과 거리가 먼 이념에만 집중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지난 박근혜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촛불집회를 평가 절하하는 내용도 포함돼있어 구설을 양산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말 많고 탈 많은’ 자유한국당 혁신안을 면밀히 파헤쳐봤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는 지난달 31일 혁신안을 발표했다. 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이 발표한 혁신안은 크게 3가지. ▲당 사무처 혁신(인사) ▲당원협의회 조직혁신(조직) ▲정책위 혁신(정책) 등의 혁신 계획을 담고 있다. 

당 사무처의 크기는 줄이고 지역구 관리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유령 당협을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민이 체감하고 함께하는 대안을 수립하는 등 현장서 살아있는 정책을 발굴해 정책적 혁신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인사 조직 정책
3대 혁신 발표

먼저 당 사무처 혁신에 대해 혁신위는 현 7개국으로 구성된 당 사무처 실·국을 통폐합해 10%가량의 사무처 직원을 감축하겠다는 생각이다. 홍 총장은 “아직 여당의 사무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야당다운 사무처로 바꾸어 ‘작지만 강한’ 사무처를 구축하겠다”며 “희망퇴직을 먼저 받고 정년퇴직을 통해 30명 정도 감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내 사무처 직원들 사이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실상의 구조조정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 같은 사무처 반발을 의식한 듯 혁신안 발표 당시 “구조조정이 아닌 개혁과 혁신”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의 주인공들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 사무처에만 희생을 요구한다”는 목소리가 새나왔다.

혁신위의 발표가 있기 전, 사무처 직원들과 당 지도부 간의 갈등이 한 차례 발생한 적 있다. 

지난달 28일 중앙당 실·국장 및 시도당 사무처장들이 참석한 회의서 사무처에 대한 2단계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우선 계약이 만료된 계약직, 정년 초과자, 저성과자 등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은 후 사무처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통해 정리해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목적은 비용 절감이다. 한국당은 ‘20대 총선’ ‘바른정당 창당’ ‘19대 대선’을 거치며 몸집이 줄어든 만큼 살림살이도 줄여야 하는 형편이다. 

조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던 지난 2월 당이 사무처 직능국과 여성국, 청년국, 국민소통국, 여의도연구원 뉴미디어실 등 5개국을 폐지하고 외부 건물에 있던 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을 당사 2층으로 들어오게 한 것도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다.

식구 자르기에
내부 불만 폭발

이처럼 대선 전에도 사무처 통폐합을 실시했던 한국당이 최근 다시 한 번 칼을 빼들려 하자 사무처 직원들의 불만이 배가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홍준표 대표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사무처 구조조정에 나서면서도 나경범 전 경남도청 서울본부장 등 측근 4명을 당 대표실 계약직으로 채용하자 불만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공채 출신이 대부분인 당 사무처 직원들에게는 구조조정을 외치면서 당 대표 측근 4명과는 신규 계약하는 모순된 행보도 불만의 이유 중 하나다.
 

당 지도부의 모순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당사 인근에 혁신위 사무실을 마련해 주는 등 비용 절감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현재 당사 맞은편 건물 6층에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임대료는 추천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구조조정의 주체를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칼을 쥔 홍 총장은 앞서 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했다가 대선 직전 재입당한 이력이 있다. 홍 대표는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사실에 사무처 직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점심시간 한국당 당사 근처에는 술 한잔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 당직자의 수가 늘었다는 말까지 나돈다.

혁신위는 지난 2일 ‘혁신선언문’을 발표했다.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연단에 올라 ‘한국당 신보수주의’ 가치 아래 ‘긍정적 역사관’ ‘대의제 민주주의’ ‘서민중심경제’ ‘글로벌 대한민국’ 등 4가지 혁신 방향을 담은 선언문을 낭독했다. 

류 위원장은 선언문서 “한국당 신보수주의는 정의와 형평을 바탕으로 양극화와 불공정한 기득권을 타파하고 활기차며 따뜻한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선언문에는 당 핵심 관계자 및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인적 쇄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평가도 빠져있었다.

사무처·원외당협 구조조정 방침
“왜 우리가 책임져?” 당내 반발

이에 대해 이옥남 혁신위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 부분은 향후 인적 쇄신 문제를 다룰 때 자연스레 나올 이야기로 생각했다”며 “철학과 가치를 담는 혁신 선언문에 그런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를 내리는 등 여전히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류 위원장은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을 막는다”며 촛불집회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류 위원장의 ‘일베(일간베스트)’ 발언까지 곁들어져 선언문이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류 위원장은 청년 대상 행사서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활동을 독려하는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서 혁신위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센터가 마련한 대학생·청년 간담회에 참석한 류 위원장은 ‘한국당이 진보진영에 비해 SNS 등 온라인서 이미지 정치가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자 “내가 아는 뉴라이트만 해도 일베 하나밖에 없다. 일베를 많이 하시라”고 조언했다.


유동열 사퇴
혁신위 흔들

소위 일베 발언에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 혁신의 지향점은 결국 일베인 것이냐”며 “한국당 혁신위 구성이 극우 편향됐다는 것에 한국당 내부서조차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은 “(한국당이) 일베의 홍보대사를 스스로 자임했다”며 “바른정당이 부럽다면 뼈를 깎는 혁신을 선행해야지, 극우 성향의 단체를 치켜세우고 바른정당을 파괴시키는 공작을 진행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혁신위 내부서도 갈등이 불거졌다. 자유민주연구원장인 유동열 전 혁신위원이 혁신위의 ‘서민중심경제’ 발표에 반발해 자진사퇴한 것이다.

혁신위는 선언문에 “중산층과 서민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서민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주력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이 사회적 약자 보호에 나서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유 전 위원은 “헌법적 가치 중 하나인 시장경제에 반한다”며 사퇴했다.

혁신위는 유 전 위원의 사퇴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입장문을 통해 “유 전 위원은 혁신선언문 용어인 ‘서민중심경제’서 ‘중심’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데 대해 본인이 ‘평생 지켜온 가치(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가 존중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사퇴했다”며 “유 위원의 일방적 사퇴에 유감을 표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혁신위는 “(선언문에 ‘중심’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이 유 전 위원의 지적대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국당의 혁신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유령 당협을 정리한다는 계획을 또 다른 혁신안으로 제시했다. 전국 253개 당협에 당무감사를 실시, 지역구 관리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당협을 솎아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반·책임 당원을 늘리는 한편, 대선 패배 후 흐트러진 조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서 조직 강화는 필수적 요소 중 하나다.

박근혜·최순실·친박계 ‘3무’
‘신보수주의’ 홍대표 화법 일치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이 같은 계획을 두고 친박(친 박근혜)계 배제를 위한 홍 대표의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당의 당협은 253개. 그중 현역 의원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107개다. 그 외 나머지 146개 지역은 원외당협위원장이 맡고 있다(25개 지역 공석).

이들 중 상당수 원외당협위원장이 지난 박근혜정권 당시 임명된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분당 사태 때 새로 임명된 사람들도 있다. 이 때문에 원외는 아직 친박계 색채가 가시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친홍계(친 홍준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홍 대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현역 친박계 의원들을 내치는 대신 친박계 원외당협위원장부터 구조조정한다는 것이다. 

친홍계가 원외를 장악하면 친박계 현역 의원들의 당내 영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외당협위원장 구조조정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친홍계로 전면 물갈이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해범 혁신위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보수가 이렇게 몰락하게 된 첫 단추는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인물들, 즉 친박으로 전부 채워 공천하려고 했던 게 시발점”이라며 친박계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원외당협위원장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만약 친박계 현역 의원들까지 반발에 동참한다면 큰 계파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원외 구조조정
파벌의 도화선

향후 공개될 세부적인 혁신안을 지켜볼 일이지만, 현재까지 당 지도부 및 혁신위가 발표한 내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대로 된 혁신보단 ‘이념 무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혁신위는 선언문서 ‘한국당 신보수주의’를 혁신 방향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지난 조기대선 국면서 홍 대표가 강조해온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홍 대표는 그동안 “한국당은 신보수주의를 통해 가치·이념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혁신위는 “산업화 세대의 기득권은 물론 ‘강성귀족노조’ 등 민주화 세대의 기득권도 비판하고 배격하는 혁신을 통해 중산층과 서민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서민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주력한다”며 칼끝을 귀족노조에게 겨눴다. 

‘강성귀족노조’라는 단어 사용과 그에 대한 태도가 홍 대표의 그것과 일치한다.

혁신위 독립성 보장은 성공적인 개혁·혁신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한국당 혁신위의 선언문 낭독이 있던 날 이옥남 혁신위 대변인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서 “혁신위는 선언문에도 나와 있듯이 실질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구”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러나 혁신위의 발표 내용이 그간 홍 대표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어 “당 지도부에 종속된 혁신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레밍’김학철 처리 논란
반성은 없나?

국민을 ‘레밍(쥐의 일종)’에 빗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한 김학철 충북도의원이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중앙당에 재심을 신청했다. 앞서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물의를 일으킨 김 의원을 제명한 바 있다.

소명할 기회를 달라는 게 김 의원의 요구다. 그는 발언이 왜곡됐음은 물론, 유럽 연수를 떠나게 된 과정을 해명할 기회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달 22일 귀국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책임은 행정문화위원장인 내가 떠안겠다”며 “다른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고려해 달라”고 말해 재심을 신청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김 의원은 재심 신청 마감일인 지난 2일 관련 서류를 제출해 예상을 뒤엎었다. 한국당 당헌·당규 내 윤리위원회 규정 제26조에 따르면 ‘징계에 불복할 경우 징계 의결을 통보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 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4일 제명이 확정됐으며, 이로부터 10일째인 2일이 재심 청구 마지막 날이었다. 재심을 청구 받은 윤리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심 청구가 있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 이에 이번 달 내 회의를 열어 해당 사안을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된다.

“발언 왜곡…소명 기회를”
한국당에 제명 재심 신청

당내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기 힘들뿐더러, 만약 받아들여지더라도 징계 결과가 달라질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아 재심 청구 자체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달 16일 청주 지역이 폭우로 물난리가 났음에도 김 의원을 포함한 충북도의원 4명은 이틀 뒤인 18일, 8박10일의 일정으로 유럽 연수를 떠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조기 귀국한 바 있다. 그런데 김 의원은 귀국 후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세월호부터도 그렇고, 국민이 이상한, 제가 봤을 때는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 행동하는 설치류”라고 말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김 의원은 소속 정당이던 한국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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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