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민생 제1당’ 향한 혼신 정의당 이정미 대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7.25 08:04:45
  • 호수 1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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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도전” 미래를 그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정미 의원이 정의당의 새로운 선장으로 임명됐다. 지난 11일 정의당 4기 전국동시당직선거 대표 선거 결과 이정미 후보는 56.05%(득표수 7172표)를 획득, 43.95%(득표수 5624표)의 박원석 후보를 제쳤다. 심상정 전임 대표의 선전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정의당은 이 대표 체제서 비상을 꿈꾸고 있다.
 

“국회에서는 ‘진짜 야당 정의당’, 국민 속에서는 ‘민생 제1당 정의당’의 대표로 혼신을 다해 뛰겠다. 2018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그 토대 위에 2020년 제1야당을 향해 나가겠다.” 이정미 신임 대표는 취임 일성서 이같이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와 함께 여성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에게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표는 1966년 부산서 태어났지만 인천으로 올라와 한국외국어대에 진학했다. 곧 학생 운동에 뛰어든 그는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인천에 위치한 영원통신에 입사했다. 이 대표가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가 그때였다. 

영원통신서 노동조합을 결성,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던 중 1989년 노조를 돕던 백순기 보좌신부를 사측이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대표는 사측과의 단체교섭 체결 과정서 해고됐다.

이후에도 이 대표는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1995년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서 조직국장을 맡으며 노조 결성을 교육하거나 지원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당에서 최고위원, 대변인 등을 역임하며 정당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2012년 부정 경선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이 대표는 진보정의당(2013년 정의당으로 당명 변경) 창당에 앞장섰다. 정의당 1기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맡으며 꾸준히 선거에 나섰지만, 17·18대 총선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심기일전하며 2014년 7월 재보선 때 경기 수원병에 출마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중도 사퇴했다.

결국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국회 입성 후에는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 방송 등에 출연해 초선 비례대표임에도 여느 중진 의원 못지않은 인지도를 가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달 15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이정미 정치카페테라스’ 사무소를 개소하며 지역구 위원이 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다음은 이 대표와 일문일답.

- 당선 소감부터 여쭙겠습니다.
▲여러 막중한 임무 앞에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지난 대선 이후에 정의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이제 단순히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저 당에 우리의 삶을 맡겨도 될 만한가’를 인정받아야 하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고요. 지방선거서 대선 때보다 한 단계 도약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하고 그 과정을 통해 2020년 반드시 제1야당이 되겠다는 그런 포부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일하는 당대표가 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 당대표가 되면서 의원 시절과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일주일 좀 지났는데요. 책임감이 크다는 게 가장 다른 것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시민들은 “정의당이 잘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절절함을 요즘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 여성 정치인 전성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실감하시는지?
▲어제(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4당 대표 회동이 있어서 청와대에 다녀왔습니다. 3당 대표가 여성이다 보니 모인 분들 중에 여성이 더 많더라고요. 여러 모로 앞으로 정치의 풍경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앞서 “2020년 총선에서는 반드시 제1야당으로 도약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임하실 건지?
▲일단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기초단체장을 최소 3석 이상 확보하겠습니다. 그래서 정의당의 자체혁신모델이 어떤 모습인지 국민들께 보여 드리고 검증을 받으려 합니다. 또 하나는 내년에 있을 개헌에서 실질적인 국민들의 의사,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의사만큼 국회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 개혁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국회가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굉장히 불합리한 선거제도로 구성이 되지 않습니까? 거기에 지금 집권여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의 지지율이 다 비슷합니다. 의석수와 상관없이 말이죠. 어떻게 보면 현재 대한민국은 정당정치의 재배열 과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정치질서를 새롭게 구성해 보라고 하는, 그런 실험대에 놓여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 대통령께서도 이번 개헌에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2020년에 정의당이 충분히 제1야당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학교급식노동자를 만나셨습니다. 어떤 대화를 하셨나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노동자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 한걸음 내딛으려 할 때,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연일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저희들도 이렇게 힘든데, 뜨거운 조리실 안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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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폄하하는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대신 사과의 말씀이라도 드리고 싶어 국회로 초대했습니다.

- ‘퀴어 문화축제’에 참석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기상조라는 게 중론인데요. 어떻게 추진하실 계획이신지?
▲많은 분들이 국민의 눈높이를 이야기합니다. “개개인의 인권? 그래 중요하지. 중요하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국민의 눈높이가 무엇인지.

고대사회에서는 여성들을 동물과 똑같이 취급했습니다. 모든 주권자의 권리를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참정권 획득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인권, 부합하지 않는 인권이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여론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여론조사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답이 80%가 넘었어요.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지금 필요합니다.

- 최저시급 인상에 반대하는 측은 소상공인의 경영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대표님은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최저임금 문제와 소상공인 보호 문제에 대해 저희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애초 저희들의 정책도 그것과 연계돼 있고요.

다행히 정부가 내년에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평균임금 상승분 이외에 상승분에 대한 지원을 3조원 들여서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카드수수료 우대정책, 계약서 갱신 청구권을 10년으로 연장하는 등의 몇 가지 정책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고요. 기본적으로 이런 정책들이 잘 추진되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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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이 단기적인 재원 대책에 그쳐선 안 됩니다. 좀 더 구조적인 문제, 구조적인 해법으로 나아가야죠.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경제성장의 많은 과실을 독점해 왔던 대기업들이 국가가 세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세금을 내야합니다. 또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일소하면서 최저임금 상승분에 대한 원청기업, 본사들의 부담도 높여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서로 상생할 수 있어요. 이제까지 성장의 과실을 많이 독점했던 기업들이 아래로 좀 더 나눌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까지 만들어졌으면 하는 게 우리 정의당의 바람입니다.

- 기업의 다양한 갑질을 고발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왜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래도 되니까 하는 거죠. 갑질해도 괜찮으니까. 저와 정의당은 법도 잘 지키고, 상생의 원칙으로 기업을 운영해야 기업이 오히려 더 잘된다는 것을 입증할 것입니다.

- 대중에게 알려진 일명 ‘스타 의원’이십니다. <무한도전>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셨는데요. 달라진 인지도를 실감하는지?
▲길에서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고 약간 실감하고 있습니다.

- 현재까지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평가해 주신다면?
▲국정운영 5년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국정운영의 나침반으로 삼아 국민주권과 정의실현을 약속한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적절한 방향설정입니다.

하지만 미흡한 부분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재원조달입니다. 이번 국정과제서도 대선공약과 마찬가지로 사회보험에서 지출되는 부분을 추계서 제외해 정공법을 어겼습니다.
 


증세액은 대선 공약 5년간 31조5000억원에서 11조4000억원으로 감소해 총 178조원의 재원 조달액 중 6.4%만이 증세로 충당됩니다. 새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가 파탄난 뒤에 탄생한 정부입니다. 적극적이고 솔직한 재정 대책이 없다면 스스로 제시한 ‘포용적 복지국가’의 길은 험난할 것이고, 향후 복지정책 추진서 스스로 발목이 잡힐 우려가 있습니다.

환경정책과 관련해서도 ‘설악산케이블카 재추진’ ‘지리산 산악철도’ ‘새만금 공항 건설’ 등 우리나라 연안 및 백두대간을 보존하는 대신 개발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에 대한 훼손이 우려되며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정의당은 “개혁에는 적극 협력하지만, 미흡한 개혁에는 책임 있게 비판하겠다”고 여러 번 말씀드려왔습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대한 정당한 지적에 대해 정부는 보완하고 수정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선 3차 TV토론’에서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등 다당제를 받쳐줄 선거제도로의 개혁을 약속하며 시기를 내년 지방선거로 잡았습니다. 이후 진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회에 정개특위가 구성됐습니다만, 정개특위에만 맡겨놔서는 안 됩니다. 과거처럼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개악이 될 가능성까지 우려됩니다. 물론 국회가 주최가 돼 책임 있게 논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대통령 역시 공약 이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논의 시작부터 방향설정을 잘해야 하는데, 정의당이 그런 나침반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 일각에서는 정의당이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찬성표를 자주 던지고 있다며 야당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여당의 모든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야당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우리 시민들의 삶이 좋아지는 것에는 힘을 싣고, 개혁 후퇴에는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야당 본연의 역할을 발목잡기, 무조건 반대하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이 어떠신지?
▲우선 수사 중인 것과는 별개로, 정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국민의당의 조직적 개입에 의혹을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명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사실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입니다.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게 국민의당의 패착이 아닌가 합니다.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청와대가 ‘캐비닛 문건’을 공개, 검찰로 자료를 넘긴 것을 두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황교안 전 총리가 청와대 압수수색에 응했다면 이미 검찰에 있어야 할 자료들입니다.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당 입장에서는 모든 일이 정치보복처럼 보이겠지만, 잘못된 것이 바로잡히는 과정이라고 시민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밝혀주신다면?
▲우리 국민들의 삶이 바뀌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일요시사> 독자님들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들의 성원과 지지가 절실합니다. 잘할 때는 팍팍 밀어주시고, 잘못하면 호되게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chm@ilyosisa.co.kr>


[이정미 대표는?]

▲1966년 부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2년 중퇴)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제20대 국회의원(정의당, 비례대표)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정의당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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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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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