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위로 전철 다니는 사연

사고 나면 대형사고…시한폭탄 안고 열차 운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하철 1호선 북쪽 시종착역인 소요산역에는 출구가 한 개뿐이다. 열차가 멈추면 소요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출구 밖으로 쏟아진다. 출구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쇠둔치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과 철도가 보인다.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오가는 철도다. 그리고 철도서 채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재의 A주유소는 2006년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주유소는 도로와 철도 사이에 있다. 주유소 정면으로 뻥 뚫린 도로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얇은 담 너머 철도로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수없이 오갔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신호로 울리는 ‘땡땡’ 종소리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세 가지 소리가 한데 섞일 때면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철도와 주유소 뒤편 담벼락 사이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이 가득했다.

주유소 옆 철도
1일 수십회 운행

B씨는 2013년 주유소를 인수해 운영하는 과정서 늘 소음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열차가 다니다보니 소음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밤이면 열차가 오가면서 튀는 불꽃에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B씨는 “주유소에는 5만 리터의 무연 휘발유를 포함해 25만 리터 용량의 기름 저장 탱크가 있다”며 “승용차 기준으로 6200대를 동시에 주유할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정전기나 작은 불꽃으로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주유소 특성상 열차 운행이 대형 사고의 불씨가 될까 두려웠다는 것.


B씨의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공사와 관련해 주유소 뒤편으로 고가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사업(총연장 20.87㎞)은 단선 비전철 철도노선을 단선 전철철도로 만드는 사업으로,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10월31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은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했다. 이 노선은 동두천-소요산-초성리-전곡-연천 등 5개 역을 지난다. 

이 중 초성리역은 이전되고 기존 한탄강역은 없어지며, 소요산·전곡·연천역은 개량된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 등 대륙철도와 연계까지 고려한 대형 사업이다. 교통망이 부족한 연천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큰 사업이기도 하다.

주유소 주인 안전 진단 요구
공단·감리단 측 ‘절레절레’

전체 2개 공구 중 초성리역을 기준으로 동두천-초성리 구간(1공구)은 한화건설과 가야 경남기업, 초성리-연천 구간(2공구)은 포스코건설, 태평양건설, 포스코 엔지니어링이 맡아서 각각 시공 중이다. 

A주유소는 1공구 구간에 일부 포함된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A주유소 주변 일부 공사 구간의 고가화 때문이다. 이른바 소요고가의 시공이다.

현재 열차 건널목 관리는 직원 1명이 20∼30분마다 흰색과 빨간색 깃발을 들고 나와 교통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면 자동차가 멈춰 길게 늘어서는 모습이 1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직원과 차단기 외에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4월18일에는 해당 건널목서 70대 경비원 이모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널목 간수 일을 하던 이씨는 운전자 곽모씨가 몰고 가던 아반떼 승용차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운전자는 “건널목을 지날 때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자가 차단기가 내려오기 직전 차를 빨리 몰아 건널목을 통과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은 교통 정체, 안전 문제 등 열차 운행 과정서 드러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소요고가의 시공을 추진했다. 고가 위로는 철도, 아래로는 자동차가 지나가도록 만들어 교통 순환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다. 

소요고가는 현재 철도 위치보다 A주유소 쪽으로 가깝게 설계돼있다. 고가가 완성되면 열차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수평으로 가까워지는 대신 위로 높아진다. 최종 완성될 경우 철도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약 19m 정도다.

공단은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제15조 규정에 의거, 언론사에 공고하고 보상 계획의 열람을 안내 통지했다. 이번 사업에 편입되는 토지의 보상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 2014년 2월 초 <문화일보>에 공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토지 보상 안내 과정서 우리 주유소 일부가 공사 지역에 포함됐다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도 철도와 주유소 간 거리가 멀지 않은데 고가가 생기면 너무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우려했다.

이때부터 A주유소와 발주처·감리단·시공사 사이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불거졌다. 앞서 공사 시작되기 전에도 소음이나 안전 문제 등에 대해 항의를 제기했던 B씨가 공단이나 동명감리단(이하 감리단), 시공사 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B씨가 문제 삼은 부분은 ▲안전 검사 여부 ▲설계 과정에서 위험물 처리시설(주유소) 고려 여부 ▲작업 조건 변경과 선로 변경 가능 여부 ▲주유소 진입 동선 대책과 보상 방안 ▲사고 발생 시 대책 마련 여부 등이다.

B씨에 따르면 A주유소 내 위험물은 인화성이 강하고 발화점이 낮기 때문에 순식간에 발화해 화염과 폭발 등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열차는 대형 운송수단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과 재산 피해 규모가 큰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 또 사고가 발생하면 도로처럼 우회 노선이 없어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씨 입장에선 2013년부터 제기한 소음 및 안전 문제가 소요고가의 시공으로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셈이다. 

B씨는 “주유소 운영은 생업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명확한 답변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가 시작점 부근에 위험물 처리시설이 위치하는 만큼 대형 사고나 안전사고에 노출돼있는 현 상황을 공단 등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게 골자였다.


바닥에 깔린 철길
교통 정체 심각

오랫동안 철도 전기 관련 사업을 해온 전문가는 “화재 발생 여부를 단언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무래도 위험물(기름)을 취급하기 때문에 화재 가능성이 다른 곳보다는 높을 수 있고, 일단 사고가 나면 큰 피해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B씨는 “내 요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전 여부를 판단해달라’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확답을 달라’ 정도”라며 “민원을 제기하고 전화로 상황 파악과 대책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돌아온 답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B씨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공단이나 감리단은 B씨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또 “안전하다. 문제없다”며 “개인의 요구로 안전 진단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민원 제기 사항을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A주유소 측에서 제기한 안전 관련 사안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고 체계가 시공사-감리단-공단 순으로 돼있는 만큼 건설사는 지시사항을 이행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고가화 과정서
안전문제 불거져


시공사 측은 지난 3월27일 B씨와 마주앉았다. B씨가 3월23일 공단에 민원을 접수하고 나흘 뒤 시공사와 면담이 진행된 것이다. 공단에 들어간 민원에는 안전상의 문제와 소요고가 시공으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영업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포함됐다.

먼저 공사가 완료될 경우 유조차 진입이 어려워 유류공급을 받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와 동시에 대형차 진입도 불가능하며 교각 끝점과 주유소 캐노피(덮개 부분) 끝점 간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감전 위험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고압선과 인접해 있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전기안전진단보고서’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다.

민원 내용을 검토한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요구사항과 (공단·감리단 측의 입장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대형차 진입 문제, 시야 확보, 고압선 지장 여부 등에 대해 추후 정밀 조사를 실시한 후 요구 사항 반영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취재 들어가자 “검사 의향 있다”
초기 허가 과정서 협의도 누락돼

시공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받은 감리단 측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감리단 측은 지난 5월 B씨와 감리단 사무실서 만나 민원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감리단 관계자가 “국가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결국 진행될 것” “계속 민원을 제기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B씨”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안전 검사를 진행했다는 감리단 측의 주장에 “감리단서 했다고 주장한 ‘안전 검사’는 주변 주유소 관계자 몇몇에게서 나온 의견일 뿐”이라며 “주유소 몇 군데를 돌아다녀 얻은 답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감리단 측은 “공사 구간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뿐, 전문가가 포함된 제3기관에 용역 발주 절차를 거쳐 수행한 정식 안전 검사를 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공단 측 역시 안전 진단 요구 등 B씨의 민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서 공단 수도권본부 재산지원처 용지부 차장만 만났을 뿐, 공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담당자나 안전 관련 전문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B씨는 “공단 관계자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추측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면서도 상상이 현실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는 질문에는 말을 얼버무렸다”고 설명했다.

B씨와 이야기를 나눴던 공단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가 취재를 시작하자 “나는 토지 보상 문제만 담당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고 답했다. 

공단 측은 민원인의 요구가 계속된다면 안전 검사를 해줄 의향이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B씨가 지난 3월 민원을 제기한 이후 묵묵부답이었던 공단이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답을 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공단은 소요고가 시공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 수도권본부 수도권사업단 경원선진접선PM 관계자는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에 의거, 소요고가와 A주유소 간의 이격거리는 확보된 상태”라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 ‘특고압 가공전선과 지지물 등의 이격거리’ 항목에 따르면 특고압 가공전선과 그 지지물, 완금류, 지주 또는 지선 사이의 이격거리는 사용전압이 15kV 이상 25kV 미만일 경우 20㎝ 이상 확보하면 공사가 가능하다.

또 공단과 감리단 측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바는 주유소 영업보다 철도 운행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주유소가 처음 운영을 시작했던 2006년에도 철도는 운행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지적이다. 

소요산의 이름을 딴 소요산역은 1976년 1월11일 영업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수도권전철이 들어왔다. 시기상으로 수도권전철이 들어온 시기와 A주유소 영업 시작 시기가 겹친다.

이 때문에 공단과 감리단 측은 철도안전법 제45조 ‘철도보호지구에서의 행위제한’ 조항에 따라 A주유소 허가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도안전법 제45조는 철도경계선(가장 바깥쪽 궤도의 끝선)으로부터 30m 이내의 지역에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또는 인공구조물의 설치 등의 행위를 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에게 신고해야 한다. 

감리단 측은 “A주유소가 철도보호지구 내에 있기 때문에 허가 과정서 ‘민원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등의 단서 조항이 붙었을 것”이라며 “당시 허가 조건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동두천시에 확인한 결과 A주유소 허가 과정서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A주유소의 경우 철도경계선서 30m 이내인 철도보호지구 내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 쪽에서 코레일 혹은 공단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누락됐다는 얘기다.

동두천시청 건축과 관계자는 “협의 과정이 누락된 게 맞다. A주유소 허가 과정서 단서 조항이 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요구해도
답 없어 ‘분통’

B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지만 한국은 아직도 ‘위험공화국’이 맞는 것 같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법, 상식이 통하지 않는 탁상행정, 여전히 만연해 있는 공무원의 안전 불감증 등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안전한 나라는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답답해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차’ 하면 불붙는 주유소
정전기만으로도 폭발

지난달 13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한 주유소서 기름 탱크 교체 작업을 하던 중 공기 중으로 기화된 기름, 이른바 유증기에 불꽃이 튀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용접 작업 중이던 작업자 한 명이 숨졌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주유소는 정전기만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는 정전기 발생이 잦아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소방당국은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주유소에선 유증이 많이 발생한다. 춥고 건조한 시기에 정전기로 인해 유증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