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위로 전철 다니는 사연

사고 나면 대형사고…시한폭탄 안고 열차 운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하철 1호선 북쪽 시종착역인 소요산역에는 출구가 한 개뿐이다. 열차가 멈추면 소요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출구 밖으로 쏟아진다. 출구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쇠둔치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과 철도가 보인다.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오가는 철도다. 그리고 철도서 채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재의 A주유소는 2006년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주유소는 도로와 철도 사이에 있다. 주유소 정면으로 뻥 뚫린 도로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얇은 담 너머 철도로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수없이 오갔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신호로 울리는 ‘땡땡’ 종소리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세 가지 소리가 한데 섞일 때면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철도와 주유소 뒤편 담벼락 사이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이 가득했다.

주유소 옆 철도
1일 수십회 운행

B씨는 2013년 주유소를 인수해 운영하는 과정서 늘 소음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열차가 다니다보니 소음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밤이면 열차가 오가면서 튀는 불꽃에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B씨는 “주유소에는 5만 리터의 무연 휘발유를 포함해 25만 리터 용량의 기름 저장 탱크가 있다”며 “승용차 기준으로 6200대를 동시에 주유할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정전기나 작은 불꽃으로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주유소 특성상 열차 운행이 대형 사고의 불씨가 될까 두려웠다는 것.


B씨의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공사와 관련해 주유소 뒤편으로 고가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사업(총연장 20.87㎞)은 단선 비전철 철도노선을 단선 전철철도로 만드는 사업으로,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10월31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은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했다. 이 노선은 동두천-소요산-초성리-전곡-연천 등 5개 역을 지난다. 

이 중 초성리역은 이전되고 기존 한탄강역은 없어지며, 소요산·전곡·연천역은 개량된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 등 대륙철도와 연계까지 고려한 대형 사업이다. 교통망이 부족한 연천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큰 사업이기도 하다.

주유소 주인 안전 진단 요구
공단·감리단 측 ‘절레절레’

전체 2개 공구 중 초성리역을 기준으로 동두천-초성리 구간(1공구)은 한화건설과 가야 경남기업, 초성리-연천 구간(2공구)은 포스코건설, 태평양건설, 포스코 엔지니어링이 맡아서 각각 시공 중이다. 

A주유소는 1공구 구간에 일부 포함된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A주유소 주변 일부 공사 구간의 고가화 때문이다. 이른바 소요고가의 시공이다.

현재 열차 건널목 관리는 직원 1명이 20∼30분마다 흰색과 빨간색 깃발을 들고 나와 교통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면 자동차가 멈춰 길게 늘어서는 모습이 1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직원과 차단기 외에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4월18일에는 해당 건널목서 70대 경비원 이모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널목 간수 일을 하던 이씨는 운전자 곽모씨가 몰고 가던 아반떼 승용차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운전자는 “건널목을 지날 때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자가 차단기가 내려오기 직전 차를 빨리 몰아 건널목을 통과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은 교통 정체, 안전 문제 등 열차 운행 과정서 드러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소요고가의 시공을 추진했다. 고가 위로는 철도, 아래로는 자동차가 지나가도록 만들어 교통 순환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다. 

소요고가는 현재 철도 위치보다 A주유소 쪽으로 가깝게 설계돼있다. 고가가 완성되면 열차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수평으로 가까워지는 대신 위로 높아진다. 최종 완성될 경우 철도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약 19m 정도다.

공단은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제15조 규정에 의거, 언론사에 공고하고 보상 계획의 열람을 안내 통지했다. 이번 사업에 편입되는 토지의 보상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 2014년 2월 초 <문화일보>에 공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토지 보상 안내 과정서 우리 주유소 일부가 공사 지역에 포함됐다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도 철도와 주유소 간 거리가 멀지 않은데 고가가 생기면 너무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우려했다.

이때부터 A주유소와 발주처·감리단·시공사 사이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불거졌다. 앞서 공사 시작되기 전에도 소음이나 안전 문제 등에 대해 항의를 제기했던 B씨가 공단이나 동명감리단(이하 감리단), 시공사 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B씨가 문제 삼은 부분은 ▲안전 검사 여부 ▲설계 과정에서 위험물 처리시설(주유소) 고려 여부 ▲작업 조건 변경과 선로 변경 가능 여부 ▲주유소 진입 동선 대책과 보상 방안 ▲사고 발생 시 대책 마련 여부 등이다.

B씨에 따르면 A주유소 내 위험물은 인화성이 강하고 발화점이 낮기 때문에 순식간에 발화해 화염과 폭발 등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열차는 대형 운송수단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과 재산 피해 규모가 큰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 또 사고가 발생하면 도로처럼 우회 노선이 없어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씨 입장에선 2013년부터 제기한 소음 및 안전 문제가 소요고가의 시공으로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셈이다. 

B씨는 “주유소 운영은 생업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명확한 답변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가 시작점 부근에 위험물 처리시설이 위치하는 만큼 대형 사고나 안전사고에 노출돼있는 현 상황을 공단 등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게 골자였다.


바닥에 깔린 철길
교통 정체 심각

오랫동안 철도 전기 관련 사업을 해온 전문가는 “화재 발생 여부를 단언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무래도 위험물(기름)을 취급하기 때문에 화재 가능성이 다른 곳보다는 높을 수 있고, 일단 사고가 나면 큰 피해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B씨는 “내 요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전 여부를 판단해달라’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확답을 달라’ 정도”라며 “민원을 제기하고 전화로 상황 파악과 대책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돌아온 답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B씨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공단이나 감리단은 B씨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또 “안전하다. 문제없다”며 “개인의 요구로 안전 진단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민원 제기 사항을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A주유소 측에서 제기한 안전 관련 사안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고 체계가 시공사-감리단-공단 순으로 돼있는 만큼 건설사는 지시사항을 이행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고가화 과정서
안전문제 불거져


시공사 측은 지난 3월27일 B씨와 마주앉았다. B씨가 3월23일 공단에 민원을 접수하고 나흘 뒤 시공사와 면담이 진행된 것이다. 공단에 들어간 민원에는 안전상의 문제와 소요고가 시공으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영업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포함됐다.

먼저 공사가 완료될 경우 유조차 진입이 어려워 유류공급을 받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와 동시에 대형차 진입도 불가능하며 교각 끝점과 주유소 캐노피(덮개 부분) 끝점 간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감전 위험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고압선과 인접해 있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전기안전진단보고서’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다.

민원 내용을 검토한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요구사항과 (공단·감리단 측의 입장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대형차 진입 문제, 시야 확보, 고압선 지장 여부 등에 대해 추후 정밀 조사를 실시한 후 요구 사항 반영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취재 들어가자 “검사 의향 있다”
초기 허가 과정서 협의도 누락돼

시공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받은 감리단 측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감리단 측은 지난 5월 B씨와 감리단 사무실서 만나 민원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감리단 관계자가 “국가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결국 진행될 것” “계속 민원을 제기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B씨”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안전 검사를 진행했다는 감리단 측의 주장에 “감리단서 했다고 주장한 ‘안전 검사’는 주변 주유소 관계자 몇몇에게서 나온 의견일 뿐”이라며 “주유소 몇 군데를 돌아다녀 얻은 답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감리단 측은 “공사 구간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뿐, 전문가가 포함된 제3기관에 용역 발주 절차를 거쳐 수행한 정식 안전 검사를 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공단 측 역시 안전 진단 요구 등 B씨의 민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서 공단 수도권본부 재산지원처 용지부 차장만 만났을 뿐, 공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담당자나 안전 관련 전문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B씨는 “공단 관계자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추측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면서도 상상이 현실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는 질문에는 말을 얼버무렸다”고 설명했다.

B씨와 이야기를 나눴던 공단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가 취재를 시작하자 “나는 토지 보상 문제만 담당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고 답했다. 

공단 측은 민원인의 요구가 계속된다면 안전 검사를 해줄 의향이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B씨가 지난 3월 민원을 제기한 이후 묵묵부답이었던 공단이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답을 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공단은 소요고가 시공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 수도권본부 수도권사업단 경원선진접선PM 관계자는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에 의거, 소요고가와 A주유소 간의 이격거리는 확보된 상태”라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 ‘특고압 가공전선과 지지물 등의 이격거리’ 항목에 따르면 특고압 가공전선과 그 지지물, 완금류, 지주 또는 지선 사이의 이격거리는 사용전압이 15kV 이상 25kV 미만일 경우 20㎝ 이상 확보하면 공사가 가능하다.

또 공단과 감리단 측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바는 주유소 영업보다 철도 운행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주유소가 처음 운영을 시작했던 2006년에도 철도는 운행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지적이다. 

소요산의 이름을 딴 소요산역은 1976년 1월11일 영업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수도권전철이 들어왔다. 시기상으로 수도권전철이 들어온 시기와 A주유소 영업 시작 시기가 겹친다.

이 때문에 공단과 감리단 측은 철도안전법 제45조 ‘철도보호지구에서의 행위제한’ 조항에 따라 A주유소 허가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도안전법 제45조는 철도경계선(가장 바깥쪽 궤도의 끝선)으로부터 30m 이내의 지역에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또는 인공구조물의 설치 등의 행위를 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에게 신고해야 한다. 

감리단 측은 “A주유소가 철도보호지구 내에 있기 때문에 허가 과정서 ‘민원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등의 단서 조항이 붙었을 것”이라며 “당시 허가 조건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동두천시에 확인한 결과 A주유소 허가 과정서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A주유소의 경우 철도경계선서 30m 이내인 철도보호지구 내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 쪽에서 코레일 혹은 공단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누락됐다는 얘기다.

동두천시청 건축과 관계자는 “협의 과정이 누락된 게 맞다. A주유소 허가 과정서 단서 조항이 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요구해도
답 없어 ‘분통’

B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지만 한국은 아직도 ‘위험공화국’이 맞는 것 같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법, 상식이 통하지 않는 탁상행정, 여전히 만연해 있는 공무원의 안전 불감증 등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안전한 나라는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답답해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차’ 하면 불붙는 주유소
정전기만으로도 폭발

지난달 13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한 주유소서 기름 탱크 교체 작업을 하던 중 공기 중으로 기화된 기름, 이른바 유증기에 불꽃이 튀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용접 작업 중이던 작업자 한 명이 숨졌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주유소는 정전기만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는 정전기 발생이 잦아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소방당국은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주유소에선 유증이 많이 발생한다. 춥고 건조한 시기에 정전기로 인해 유증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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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