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2017 대선판 데자뷰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2.19 10:21:38
  • 호수 10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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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이인제 보면 문재인-이재명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순실 게이트’는 주권자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정치 혐오라는 장막 뒤에 숨어 각종 이권에 개입, 국정을 농단했다. 분노한 국민들은 그들에게 철퇴를 내렸고, 차기 대선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겠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야권 입장에선 정권교체의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지난 1997년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정권교체는 요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레이더P’ 의뢰로 실시해 지난 15일 공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지난주 대비 0.9%포인트 오른 24.0%를 기록했다. 또 다른 유력 대권후보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앞선 1위 자리를 수성했다. 문 전 대표는 7주째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반문연대 돌출

‘문재인 대세론’을 부정할 순 없다. 문 전 대표가 현 시점서 가장 앞서 있다는 점은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난다. 지난 8월 말 치러진 더민주 전당대회를 통해 ‘친문 체제’가 공고해졌다는 점도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로 조기대선이 치러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여론조사 1위를 섭렵하고 있는 문 전 대표가 대권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정치권 안팎의 분석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때문에 문 전 대표가 최근 대세론에서 비롯된 조급증에 걸렸다는 분석이 있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던 그 주, 문 전 대표는 “탄핵 표결(지난 9일) 이전에 사임하면 나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 시기를 앞당기는 전략적 발언이었다고 해석했다. 문 전 대표가 대세론을 의식해 박 대통령의 즉각 사퇴를 유도, 사실상 내년 2~3월 중 조기 대선이 치러지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때문에 더민주 친문계열을 제외한 다른 정치권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새누리당 비박계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가능하면 빨리 대선을 하겠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CBC라디오와의 인터뷰서 “그분(문 전 대표)은 처음엔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가는 것도 꺼렸다. 광장에서 바로 정권을 넘어뜨리자는 식으로 말했는데 조기 대선을 하면 자기가 이롭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그건 문 전 대표 혼자(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급한 행보
이재명 때문?

이러한 분위기 속에 최근 야권에선 ‘문재인 고립작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개헌·반문 전선을 형성할 것이란 예상이다. 손학규, 김종인과 같은 개헌파들이 개헌을 반대하는 문 전 대표에 대해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 등 당내 대선주자들이 소위 ‘반문연대’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성남시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시장은 촛불집회의 열기를 타고 비상하고 있는 야권 대선주자다. 그의 지지율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을 기준으로 분명한 변화를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가 촉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만 해도 이 시장의 지지율은 4∼5%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1차 촛불집회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의 지지율은 9∼10%로 두 배가량 수직 상승했다. 기세를 탄 이 시장의 지지율은 최근 15%를 돌파, 16∼18% 사이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굉장히 유의미한 숫자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대선주자가 국민들의 주목을 받아 인지도가 상승할 때 두 개의 지지율 장벽을 만나게 된다”라며 “첫 번째로 마주치는 게 10% 장벽이고, 두 번째가 15%다. 9%까지 올라가긴 쉬워도 10%를 넘는 건 굉장히 힘들다. 15%는 더더욱 뚫기 어렵다. 만약 15%를 뚫어냈다면 진정한 의미의 대선주자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이 시장은 문 전 대표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 ‘반문연대’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대항마 이미지가 더욱 공고해진 상태다.

이재명 ‘우산론’, 박원순 손 잡았다
“문, 동반자” 해명에도 ‘반문연대설’

이 시장은 탄핵이 가결되고 하루가 지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박 시장님은 국민권력시대를 말씀하신다. 국민들이 주인 되는 나라를 위해 검찰, 재벌을 포함한 사회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하신다. 이는 나의 생각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며 “비 내리는 국회 앞에서처럼 (박)원순 형님과 함께 같은 우산을 쓰며 국민승리의 길을 가겠다”고 ‘우산론’을 펼쳤다.

이 시장은 글을 올린 후 곧바로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특강에 참석했다. 이 자리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우리의 팀이 이기는 것이 중요하고 그 중 누가 MVP(대통령)가 될 것인가는 결국 국민이 정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 시장님과 제일 먼저 함께하는 것이고, 곧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문재인 전 대표와 다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 시장은 이 사장에 대해 ‘청출어람’이라고 평가하는 등 함께할 뜻을 내비쳤다. 또한 이 시장의 우산론에 대해 자신의 SNS에 “우리를 씌우는 우산이 아닌 국민들의 눈비를 막아주는 우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무엇보다 이 시장과 박 시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에서 함께 활동한 이력이 있어 연대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후 반문연대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에 이 시장은 당 내부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 “이재명 이름 석 자로 정치하지, ‘반’이나 ‘비’자가 들어가는 패거리정치는 해온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일도 없다. 문 전 대표님을 배제하려는 제3지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의 제3지대는 국민의 신뢰도, 지지도 받을 수 없다’고 확신해서 답했다”며 반문연대 성격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반문계·개헌파
합종연횡 가능성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반문연대는 현실화 될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리고 그 포인트는 앞으로 만들어질 개헌특위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여야는 이달 말부터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따라서 개헌파의 움직임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예정이다.

이는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문 전 대표는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 오래된 적폐들에 대한 대청소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야 될 때”라며 대선 전 개헌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당내 개헌파는 문 전 대표에게 쓴소리를 내고 있다. 김부겸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서 “시간을 핑계로 (개헌) 논의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개헌 추진 의지를 밝혔다. 김종인 전 대표도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대통령 후보(문재인)가 개헌 찬성을 안 하니까 개헌을 못한다는 식으로 개헌 문제를 다뤄선 안 된다”라며 “공약을 해서 개헌하겠다는 것은 전부 다 부정직한 사람들 얘기”라고 날을 세웠다.
 

또한 당내 비주류 인사들이 세 규합에 나서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대표와 박영선 의원 등 비문재인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최근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한 명인 손학규 전 더민주 대표의 싱크탱크다.

당시 손 전 대표는 정계개편을 시사했다. 그는 “여러분과 함께 제7공화국 건설에 나설 개혁세력을 한 데 묶는 일을 하겠다”며 “7공화국을 위해 ‘국민주권 개혁회의’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국가적 대개혁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회창 VS 인제 구도 ‘남의 일 아냐’
야권 분열 기대하는 새누리당 속내

결국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문세력과 이재명 시장을 중심으로 한 반문연대와의 대립이 불가피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정치권 관계자들은 과거 1997년 대선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자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는 지난 15대 대선, 그러나 대선 전에는 서로에 대한 난타전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됐다.


당시 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전 평민당 총재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출마를 선언해 유권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신한국당 경선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이내 팽팽한 균형이 맞춰졌다.

당시 신한국당에선 이른바 ‘9룡’이라 불린 대선주자들이 있었다. 김영삼정권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이홍구·이수성과 민주계의 최형우·김덕룡·이인제, 민정계의 김윤환·이한동, 그리고 14대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까지 유력 대권후보들이 난립했다. 이들 중 이회창과 이인제가 1,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올랐고 최종 후보로 이회창 당시 총재가 후보로 최종 낙점됐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가 돌연 신한국당을 탈당한 뒤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의 탈당은 서석재 등 지지자들의 도미노 탈당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비슷한 시기 야권에선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결성됐다.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 총재인 김종필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손을 잡은 것이다. 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김 총재를 국무총리로 임명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함께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당시 <한국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 32.1%, 이회창 31.5%, 이인제19.9%로 나타났다.

이인제 독자출마
이재명 선택은?

이후 상황은 네거티브전으로 이어졌다. 그해 12월에 열린 TV토론회에 참석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는 작심한 듯 서로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김대중 후보가 “20억원을 선거위문금으로 받았다”고 하자 이회창 후보는 “5·18 학살자로부터 받은 돈도 위문금인가”라고 캐물었다.

다시 이회창 후보가 ‘3김정치 청산’을 주장하자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는 군사독재정권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나”라며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할 망정, ‘3김이다’ ‘낡은 세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같은 당에 몸담았던 이회창, 이인제 후보 간 난타전도 신랄했다. 이회창이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 “현재 지지도로서는 (이인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등의 말로 공격하자 이인제는 “이회창은 새로운 지역패권주의를 만들고 있다”라며 응수했다.

한때 여론조사 결과가 김대중 1위, 이인제 2위, 이회창 3위로 나오다가 TV토론 이후 이회창이 2위로 치고 올라오면서 상황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끝내 이회창, 이인제는 손을 잡지 않았고, 결국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당시 대선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대선주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2위간 표차는 불과 39만여표(1.6%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당시 김대중 후보 측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표를 모은 반면,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후보로 인한 보수표 분산이 결정적 패배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경상도 표심 분열이 뼈아팠다. 만약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15대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의 몫이었다.

이를 현 상황에 대입해보면 정권교체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시장이 더민주 경선에서 맞붙을 시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경선을 하지 않고 독자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짐짓 이러한 분열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곧장 감지되곤 한다는 점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야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문재인과 이재명의 대승적 결단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과 이재명 신경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탐색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문 전 대표는 이달 초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이 시장에 대해 “아주 잘하고 있는 건 맞고 정말 사이다 같다. 내가 들어도 시원하다”면서도 “어쨌든 사이다는 금방 목이 마른다.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다”라고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이에 이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목마르고 배고플 때 갑자기 고구마를 먹으면 체한다”며 “사이다로 목 좀 축이고 난 다음에 고구마로 배 채우고 든든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받아쳤다.

‘고구마’와 ‘사이다’는 최근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에게 붙은 별명이다. 문 전 대표는 최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서 모호하고 답답한 답변으로 일관, 고구마란 별명이 붙었다.

반면 이 시장의 사이다는 박 대통령 퇴진과 관련해 빠르고 명쾌하게 움직여 생겨났다. 의미하는 바는 상반되지만 야권의 두 대선주자들은 자신의 별명을 적극 활용해 이미지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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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