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정윤회 기획설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1.29 08:52:11
  • 호수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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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키운 진짜 조력자 따로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순실 게이트’가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에 의해 촉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말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던 정두언 전 의원이 처음 공론화하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정가에선 이를 둘러싼 추가 의혹이 나오고 있다. 정씨의 배후에 이번 게이트를 움직이는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의혹이다. 과연 장막 뒤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지난 2014년 11월,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이 정국을 덮쳤다.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존재한다는 소식이 <세계일보>를 통해 최초 보도됐다. 주요 언론사는 이를 대서특필하며 관심을 쏟았다.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관련 보도에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에 불과하다”고 부인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문서 유출은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고, 찌라시에 나라가 흔들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정윤회 의혹
정국 뒤덮어

문건은 청와대 내부 권력 다툼을 담고 있다. 정씨와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이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몰아내고자 사퇴설을 확대·재생산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 실장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경정 등을 시켜 정보를 수집해 오도록 지시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정윤회 문건’이다.

이때 조 비서관은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로부터 “정씨가 나를 미행했다”는 첩보를 입수, <시사저널>을 통해 최초 보도됐다. 당시 관련자들에 대한 폭로전은 정국을 뒤덮었다.


해당 건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문건 내용의 진위보다 유출 경위에 맞춰졌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비선 실세의 만남이나 국정 개입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선 실세의 만남은 없었다던 검찰의 발표는 최근 신뢰를 잃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진 후 당시 십상시로 지목된 인사들이 강남의 한 중식당에 자주 모였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번 ‘최순실 게이트’서도 해당 식당에 최씨 일가 사람들이 주요 만남을 가졌던 곳으로 드러났다. 결국 검찰 수사의 진위에 의문이 남게 됐다.

문건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일단락되면서 정씨가 비선 실세라는 의혹도 함께 묻혔다. 그러나 최근 다시 정씨의 이름이 정가에서 거론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씨의 폭로로 촉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지난달 말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가 박 대통령에게 앙심을 품은 정씨의 복수극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정 전 의원은 <동아일보> 등 복수의 언론을 통해 “태블릿 PC가 갑자기 기자들 손에 들어가고 이게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누가 지휘를 하지 않으면 일이 이렇게 진행되기가 쉽지 않다”고 정씨를 지목했다.

정 전 의원은 최씨가 문제의 태블릿PC에 담긴 청와대 연설문을 수정한 시점이 정씨와 이혼하기 전인 2014년쯤인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또한 해당 PC가 정씨 소유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게 ‘드레스덴 연설문’이다. 해당 연설문은 최씨와 정씨가 이혼하기 두 달 전인 지난 3월28일 발표됐다. 최씨는 이 연설문을 발표 하루 전날인 같은 달 27일 받아 수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어 정 전 의원은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었던 조순제씨가 최태민의 구국봉사단 등을 도맡아 실권을 잡고 있다가 권력 서열서 밀려나자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 당시 박 대통령과 최태민 관계에 대해 폭로에 나섰던 것과 정씨가 최씨를 겨냥하고 나선 게 같은 맥락일 수 있다”며 “권력 투쟁서 밀린 정씨가 한번 칼을 빼들었으면 끝까지 가려고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 장막 뒤 숨어있는 그림자 색출작업
일각선 ‘정윤회 복수설’ 제기 목소리도

또한 정 전 의원은 “박 대통령도 이번 사건의 배후에 정씨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겠지만, 정씨가 얼마나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 전 의원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서 이명박 캠프에 소속돼 박근혜 당시 후보에 대한 검증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지난 2007년은 지금만큼이나 자극적인 의혹들이 쏟아졌던 시기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서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후보 간의 관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최태민과의 애가 있다’는 내용도 공중파를 타고 전달됐다.

또한 이명박 캠프 인사 중 한 명인 김해호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후보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최순실)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이처럼 당시 이명박 캠프는 박 대통령의 최씨 일가와의 관계에 대해 전 방위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인사는 “정 전 의원은 박 대통령과 관련해 핵심 정보를 들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며 “캠프에 있을 때부터 수집한 정보들을 문건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서 “그 분(정 전 의원) 참 황당하다. 근거도 없는 그런 얘기를 함부로…”라며 “나는 오래 전부터 모두 잊고 조용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발단은 복수?

정씨와 최씨가 최근까지 부부관계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지난 1995년 결혼한 두 사람은 지난 2014년 3월, 최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며 갈라섰다. 그해 5월 정씨는 “최씨의 재산을 파악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가 돌연 취하한 일도 있었다.

당시 정씨가 재산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했던 일도 주목받고 있다. 시점상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이전 일로 정재계 각종 이권과 연관된 최씨의 재산에 대해 정씨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일종의 정보수집 차원서 낸 소송이라는 의미다.

정씨가 최씨를 상대로 재산분할청구 소송이 제기한 것은 지난 2월. 문건 파동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그는 그 일로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당시 정씨의 소송 제기를 최초 보도한 곳은 TV조선이다. 그리고 TV조선은 5개월 뒤인 지난 7월, 미르재단의 수상한 자금 모금을 단독보도했다. 바야흐로 ‘최순실 게이트’의 포문을 열렷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정씨는 재산분할청구 소송을 돌연 취하했다. 소송 취하 시점이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의혹에 연루되기 직전이었다.

태블릿PC 소유자 두고 갑론을박
“최순실, 정윤회 질투” 이유는?

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드러난 경위를 정씨와 연결 지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가는 정씨의 배후에 또 다른 누군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한 야권 관계자는 본지를 통해 “정황상 이번 사태의 원 소스를 정씨가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러나 단순히 복수를 위해 정보를 흘렸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국정을 마비시킬 정도의 정보를 혼자 결정해서 흘렸을 리 없다. 결국 정씨의 배후에 누군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야당서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정씨는 복수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그는 자신의 딸 정유라씨의 부정입학 의혹 등에 대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충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조사를 성실히 받는 게 중요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정씨는 최씨와 이혼한 사유에 대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분(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며 일각서 최씨가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정씨를 질투했다는 의혹에 대해 “질투를 하긴 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부친 또한 최근 <신동아>와의 인터뷰서 “최씨가 아들(정씨)을 질투했다”고 말해 사실화되는 모습이다.

정씨는 이어 “박 대통령에 대한 하야 여론이 누구보다 안타깝다. 이혼 후 최씨를 제대로 관리 못한 본인의 불찰”이라며 검찰 조사를 앞둔 박 대통령에게 “요즘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나. 결과에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면 된다”고 입장을 전했다.

정윤회 폭로설
배후 누군가

최근 정씨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지난해 9월부터 살고 있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한 아파트서 돌연 모습을 감춘 것이다. <뉴스1>이 가스 검침 담당자와 인터뷰한 결과, 정씨는 11월 초 짐을 싼 가방을 차에 싣고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정씨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의 거취는 사정기관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씨가 비리관련 의혹을 전면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씨의 증언이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씨가 검찰 소환을 피해 잠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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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