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독도 지켜낸' ICAPP 총회 비하인드 스토리

의원들이 영유권 분쟁 막아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중국-베트남의 갈등으로 촉발돼 자칫 독도 영유권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던 상황을 대한민국 의원들이 막아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제9차 총회에서 베트남이 ‘국제법에 따라(in accordance with international law)’라는 문구를 선언문에 넣자고 주장했는데, 이는 “국제법상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맞아떨어진다.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 <일요시사>는 당시 9차 총회서 일어난 일을 취재했다.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는 현재 세계 52개국 360여개의 정당이 소속된 세계 최대 규모의 정당 협의체다. 아시아 역내 정당 간 상이한 정치적 이념과 배경을 초월, 정치지도자 간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국가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00년 9월 출범했다. 17대 국회의원이었던 정의용 ICAPP 상임위원회 공동의장 겸 사무총장이 실질적인 설립자며, 상설 사무국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해있다.

남중국해 불똥

ICAPP는 2년마다 열리는 총회, 매년 1회 이상 개최되는 특별회의 등 역내 정치지도자들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아시아 국가와 국민들 상호간의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지난 2006년 9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제4차 총회(40여개국 100여개 정당 대표자들이 참석)는 ICAPP 역사상 최초로 여당과 야당이 공동 주최함으로써 다당제를 토대로 한 민주주의 제도를 아시아 역내에 확산시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반응이다.

ICAPP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정당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이다. ICAPP 활동은 국회 (사)ICAPP의원연맹(회장: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 이하 의원연맹)에 회원으로 가입한 국회의원만 가능하다.


의원연맹은 지난 2008년 2월 창립총회를 개최했으며 그해 3월 국회로부터 법인 설립을 승인받은 상태다. 현재 현직 국회의원 52명이 임원 및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새누리당 21명, 더민주 25명, 국민의당 3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 지난달 29일 기준).

지난 9월 초는 ICAPP 9차 총회가 있던 날이다. 이를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푸트라 세계무역센터에 36개국 86개 정당 대표들이 모였다. 한국에선 새누리당 이혜훈·박인숙 의원, 더민주 박영선·최명길·권칠승 의원,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정의당 노회찬 의원과 황진하 전 의원이 대표로 참석했다.

그런데 선언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베트남 측이 선언문에 ‘국제법에 따라(in accordance with international law)’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태는 촉발됐다. 남중국해 주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요구였다.

중국 공산당 측은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자국 정부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두고 베트남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문구로 인해 자칫 무게의 추가 베트남 쪽으로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7월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PCA)가 남중국해 전역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어 중국 측은 해당 문구 삽입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해당 문구가 독도 영유권 분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찾은 이후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국 정부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8·15 광복절 때도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여야 국회의원 10명이 독도를 찾자 일본 정부는 ICJ 제소를 거론하고 나섰다. 비록 북한의 핵 개발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제소 방침을 보류했지만, 언제든 독도 문제를 ICJ로 가져갈 수 있다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국제법에 따라’라는 문구는 일본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일본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국제법을 들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지난 2014년 4월 발간한 외교청서에 ‘독도는 역사적 사실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적시한 바 있다.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때문에 참석한 대한민국 의원들은 베트남의 주장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의원연맹 회장으로 있는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상임위 발언에서 대한민국은 해당 문구를 선언문에 넣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ICAPP의 모든 합의는 전원 일치가 원칙으로 대한민국과 중국이 반대하면 베트남 측의 요구는 관철될 수 없다.

아시아정당국제회의 영토 국제법 급부상
한국대표 적극 반대에 사실상 없던 일로

그러나 베트남 측은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얼마 전 동아시아정상회의서 채택한 공동성명을 거론하며 해당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과 중국을 포함해 각국 정상들이 합의한 공동성명에도 ‘국제법에 따라’라는 표현이 들어갔으니 ICAPP 선언문에도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때 정의용 ICAPP 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섰다. 정 총장은 베트남 측에 “‘영토 분쟁’같은 역내 갈등 사항은 ICAPP에서 거론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해당 문구를 넣으면 분란이 생길 수 있다”라고 설득했다. 결국 정 총장은 영토 분쟁에 있어서는 ‘국제법에 따라’를 쓰지 않는 대신 다른 분쟁에는 해당 문구를 선언문에 넣는 선에서 중재에 성공했다.

ICAPP 선언문은 정부가 합의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나비효과’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정 총장은 말한다.

그는 “역내 정당 간의 합의로 문구가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문구가 들어갔다면 우리 입장에 도움이 될 건 없다”라며 “그러니 (합의를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 차려야”

해당 문제는 2년 후에 있을 10차 총회서도 이어질 수 있어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 총장은 “지난 8차 총회 때도 베트남 측이 영토 분쟁 문제를 거론해 ‘역내 영토 분쟁은 당사국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말을 선언문에 넣었다”며 “베트남의 제의가 중국 견제의 의미가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독도 문제가 걸려 있다. 그러니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지 가만있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독도 문제를 ICJ에 제소하려 할 것이다. 어느 날 불쑥 제소할 경우 당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우리 정부도 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차기 ICAPP 사무총장은?

실질적 설립자로 ICAPP를 10년 넘게 이끌어온 정의용 ICAPP 상임위원회 공동의장 겸 사무총장이 후계자를 찾고 있다. 정 총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며 “젊고 유능한 사람을 구하고 있다. 국제기구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이러한 기구를 통해 대한민국 외교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 역내 공동체 건설에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환영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락했으면 좋겠다”라고 속내를 전했다.

ICAPP는 내년 커다란 도약을 준비 중이다. 정 총장은 ICAPP가 주도하는 ‘정당의 범세계적 포럼’을 만들기 위해 역외 정당 대표들을 만나고 있다. 또한 ‘UN 옵서버’ 지위 획득을 위해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세계 193개국 중 오직 두 나라만이 반대해 어느 때보다 희망적인 상황이다. 과연 역내 정치민주화를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ICAPP의 차기 사무총장은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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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