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나락으로 떨어진 강만수

정권 실세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회장이 현직 시절 저지른 비리가 포착돼 이슈다. 화려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강 전 회장은 MB정권의 각종 경제정책을 이끌던 선장으로 이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신뢰를 받아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사의를 표하며 재야로 떠났지만 최근 다시 문제의 주인공이 됐다.

강 전 회장은 경남 합천 출생으로 경남고를 수석 졸업한 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1969년 서울대를 졸업한 강 회장은 이듬해인 19708회 행정고시 재정직에 수석 합격하면서 엘리트 코스에 합류한다.

행정고시 수석
반짝한 MB노믹스

그는 첫 공직생활을 세무서에서 시작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재무부로 배치받았다. 이후 세제국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지난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실무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늘 많은 프로젝트가 그에게 몰릴 정도로 재무 분야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1985년 강 전 회장은 미국 한국대사관 재무관으로 추천돼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재무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그의 엘리트 본능은 식지 않았다. 친분이 있던 IMF 테이트 재정국 부국자의 추천서를 받아 전공인 법학 대신 경제학을 선택, 뉴욕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다섯 학기 만인 1987년 뉴욕대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강 전 회장 앞에는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재무부 보험국장·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치고 1994년부터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세제실장으로 근무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는데…비리 망신
지인 업체에 투자·대출 압력 혐의

강 전 회장은 IMF 사태를 직접 실무로 경험한 경제통이다. IMF 이후 금융시스템의 초석을 다진 것도 그다. IMF 당시 강 전 회장은 지원 자금 협상은 물론 금융감독·중앙은행제도 개편 등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한편으론 지난 1998년 당시 무리한 원화 방어정책을 펼치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 관료 중 1인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시기부터 강 전 회장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 1981년 소망교회서 처음 만났다. 이후 그들은 강 전 회장이 한나라당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지난 2000년부터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미래경쟁력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서로 뜻이 맞은 둘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활동하던 지난 2005년 공적인 자리서 재회했다. 이 전 대통령이 강 전 회장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으로 부른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부임하며 이룬 굵직한 업적은 강 전 회장의 손을 거쳤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주도한 청계천 복원 사업과 대중교통 제체 개편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강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의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3년 뒤 이 전 대통령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 전 대통령은 강 전 회장을 주요 요직으로 불렀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추후 서민경제를 파탄 낸 주범으로 꼽히는 ‘MB노믹스도 이때 계획된다.


MB노믹스는 이 전 대통령의 이니셜 MBEconomics의 합성어로 이명박 경제학을 말한다. MB노믹스의 주축은 경쟁 촉진형경제 운용으로,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세금을 줄여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저성장과 양극화 같은 한국경제의 문제가 풀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MB노믹스는 오히려 양극화를 극대화하는 정책이 됐다. IMF 외환위기 사태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 기획재정부장관이 됐다는 사실은 이명박정권의 도덕불감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재무부 시절부터 금융시장 자율화와 개방 등을 추진하며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드러냈던 강 전 회장은 이명박정권 초기부터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수입 물가를 상승시켰다. 그는 장관으로 임명 전 재야서 고환율정책을 썼다면 IMF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고환율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환율 정책은 서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 이 전 대통령과 강 전 회장은 리만브라더스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는 지난 2008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고환율정책은 외국에 나가있는 유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계기가 됐으며 대기업을 더 부자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중 법인세 관련 브리핑은 가장 유명한 일화다.

국민정서 외면
정책 밀어붙여

그는 기획재정부 취임 첫 공식브리핑에서 법인세 인하와 관련해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에 대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세금 경감 시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건 당연하다고 반박해 서민들을 배려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모습은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던 이명박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외면으로 돌아왔다.

종합부동산세 완화역시 마찬가지의 절차를 밟았다. 비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을 펼치던 그는 종합부동산세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조세라는 주장을 펼치며 부자들만 혜택을 본다는 각계의 지적을 무시하고 그대로 진행했다. 상속세와 관련해서도 앞으로 상속세를 두는 나라는 자본도피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IMF의 권고를 소개하며 상속세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때부터 강 전 회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지난날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고환율 정책은 결국 대기업 배불리기에 불과했다는 평을 샀다. 고환율정책으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지난 2014년 기준 477조원에 달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환율 정책을 시행해 외환을 낭비해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는 주위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이명박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인 ‘747 경제공약에 대해서도 여론의 비난에 캐치프라이즈로 내건 것이지 구체적으로 달성하라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 2009년 강 전 회장은 기획재정부장관서 퇴임했다. 이후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1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에 취임했다. 경제 관료 출신이 산업은행 책임자로 선임된 전례가 없다는 비난 속에서 강 전 회장은 금융 산업 개혁의 기조를 걸고 회장직을 맡았다. 이를 두고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이 계속됐다.

강 전 회장은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되자 기획재정부장관 시절부터 주장한 우리금융과 산은금융, 기업은행의 합병을 추진했다. 이 작업은 자본유출 위험성이 높아 우려를 낳았지만 그는 산은금융지주 민영화와 메가뱅크론을 역설하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메가뱅크론는 국내 은행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업무영역을 다변화하기 위해선 초대형은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산은은행지주가 우리금융의 인수에 실패한 것이다. 우리금융의 입찰 무산은 여러모로 파급이 컸다. 인수 당사자인 우리금융과 학계로부터 관치금융의 극치라는 뭇매도 맞았다. 이와 동시에 산은금융지주의 민영화 계획도 무산됐다.

낙하산 인사란 꼬리표 때문에 내부 지지도 얻지 못했다.

산은금융지주 노조는 강 전 회장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간부급은 힘있는 회장의 취임으로 속도감 있는 변화를 예상했는데 실망스럽다며 등을 돌렸다. 결국 강 전 회장은 상황의 반전을 위해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서울지점 인수를 추진했지만 협상은 결렬로 끝났다. 산은금융지주는 HSBC가 제안한 직원 고용승계 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협상 3개월 만에 산음금융지주는 HSBC의 인수계획에서 손을 뗐다.

지인 회사 특혜
뇌물수수도 논란

그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다이렉트 뱅킹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강 전 회장은 취약한 자금 조달 구조 개선을 목표로 이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와 관련해 산은금융지주의 2012년 총 자산이 전년 대비 20조원이 증가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강 전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다이렉트 뱅킹을 홍보하는 등 자신감을 보였다. 지점 유지비용을 고객에게 수익으로 돌려준다는 발상은 국민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감사원은 다이렉트 뱅킹이 역마진으로 손실이 나는 구조라는 것을 밝혀냈다. 예금자 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등 관리비용을 잘못 산정해 2012460억원의 손해를 봤고, 2013년 말까지 예금 손실액이 1094억원, 고금리 예금상품 전체 손실은 1440억원에 달할 것이라 전망하며 구체적인 액수도 집었다. 이어 영업이익을 부풀려 임직원의 성과급을 최대 41억원이나 더 지급한 점과 개인금융부문 확대를 위해 영업점을 늘리면서 59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점도 문제 삼았다.

금융권 최초의 사내대학으로 알려진 KDB금융대학교 역시 사실상 일자리 기념관이라는 비아냥을 얻으며 감사 대상에 올랐다. 부임시 민영화 추진과 함께 글로벌 성장기반을 확대하고 강한 KDB그룹문화 형성에 힘쓰겠다며 보인 의욕과 상반된 결과를 보인 셈이다.

큰 사업들에서 연이어 실패한 강 전 회장은 이후 해외 출장을 반복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강 전 회장이 국내외를 오가는 동안 이명박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강 전 회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에 발맞춰 감사원은 강 회장의 목줄을 죄었다.

공직 엘리트 코스 ‘승승장구’
MB 소망교회 인연…요직 맡아

당시 민영화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던 박근혜정권은 산업은행 민영화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와 함께 이명박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분류 된 강 전 회장의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결국 강 전 회장은 임기를 1년 남긴 지난 2013년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자리서 물러났다.

일선에 물러나 재야에 머물던 강 전 회장은 최근 과거 저지른 비리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강 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산업은행 재임 시절 대우조선해양에 영향력을 행사에 지인이 운영하는 바이오업체 A사와 종친의 회사인 중소 건설업체 B사에 100억원대 투자를 하도록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강 전 회장에게 혜택을 받은 A사 대표는 지난 13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해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 상용플랜트 기술 개발과 관련해 프로젝트의 완성 의사와 능력이 없는데도 투자금 명목으로 총 44억원을 수수한 혐의다.

강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과 비슷한 시기에 약 5억원을 A사에 투자한 한성기업과 관련된 혐의도 받았다. 임우근 한성기업 회장은 강 전 회장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한성기업은 대출 허용 기준에 맞지 않은 특혜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 전 회장은 기획재정부장관이던 지난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한성기업이 특혜성 대출을 받도록 은행장들을 임 회장에게 소개해주는 등 대출을 청탁했다. 한성기업은 산업은행서 다른 은행보다 낮은 이자율로 총 240여억원을 대출받았고, 이 중 수십억원은 신용등급 조작과 부실한 대출심사 과정을 거쳤다.

이뿐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올해 초까지 한성기업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여행·사무실 경비를 비롯해 고문료를 포함한 억대의 뇌물을 챙긴 혐의도 있다. 그가 소장직을 맡고 있는 디지털 경제연구소의 사무실 운영비도 한성기업서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수사단은 한성기업 관계자로부터 강 전 회장이 고문을 맡은 것은 돈을 지불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사실과 다르다”
혐의 모두 부인 

다른 의혹들도 꼬리를 물었다. 강 전 회장이 주류 수입 판매업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관세청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다. 지인들을 대우조선해양 고문으로 취업시켰다는 의혹도 이어졌다.

앞서 지난달 7일 강 전 행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과 다른 보도가 이어져 평생을 공직에 봉사했던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조세심판원장에게 주류업체 추징금과 관련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다한국과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돼 있는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검찰에 가서 말하겠다고도 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고문 자격으로 지원받은 경비와 명절 떡값을 모두 더해 한성기업으로부터 1억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지난 23일 심문에 들어갔다. 임 회장은 명절 때마다 강 전 회장에게 현금 500만원씩 건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현금 수수 사실 자체를 전면 부인하며 진실공방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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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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