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지위' 박근혜 최악의 시나리오

당정청 모두…박근혜정권은 끝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지금, 곳곳에서 악재가 터지고 있다. 레임덕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이다. 진앙의 중심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곪아왔던 일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것이란 게 정가의 일반적인 시각.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정운영의 3대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 당·정·청에서 동시에 논란이 쏟아지면서 야권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집권 이후 최대 위기가 찾아온 셈이다. 자칫 박근혜호가 조기에 좌초될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당에서는 친박 핵심의 공천 개입 파동, 정부에서는 사드 배치로 인한 민심 이반, 청와대에서는 ‘실세 중의 실세’ 우병우 민정수석의 김정주 NXC 회장, 진경준 검사장과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흔들리는 보스
레임덕 가시화

새누리당은 친박 실세들의 공천 개입 파동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8·9 전당대회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터진 악재다.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은 지난 18∼20일에 걸쳐 윤상현·최경환·현기환 새누리당 의원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18일 보도에 따르면, 윤상현 의원은 김성회 당시 화성갑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빠져야 된다. 형. 내가 대통령 뜻이 어딘지 알잖아.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 ‘친박이다. 대통령 사람이다’ 서청원, 최경환, 현기환 의원... 완전 (친박) 핵심들 아니냐”라며 지역구 변경을 종용했다.

그날 저녁 최경환 의원의 통화 내용도 공개됐다. 그는 “사람이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정치를 하나”라며 핀잔을 줬다. 김 후보가 지역구 변경이 대통령의 뜻이냐고 묻자 “그럼, 그럼, 그럼, 그럼. 옆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일에는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과 통화한 내용도 공개됐다. 공천 개입에 청와대도 연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서 (서청원 전) 대표님한테 저한테 얘기했던 거 하고 똑같이 얘기하세요. 대표님 가는 데 안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물어보세요”라며 “나하고 약속하고 얘기한 거는 대통령한테 약속한 거랑 똑같은 거 아녜요”라고 반문했다. 또한 현 전 수석은 “정말 이런 식으로 합니까? 서로 인간적 관계까지 다 까면서 이런 식으로 합니까”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친박 실세들
공천개입 의혹

하나하나부터 모든 게 다 문제다. 윤 의원은 지난 총선 전 “김무성 죽여버려” 등 막말을 한 녹취록이 공개돼 공천에서 배제된 바 있다. 최 의원은 최근 당대표 불출마 선언을 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난 총선 기간 나는 최고위원은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고 한 말이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현 전 수석은 지난 3월,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과 서울 시내의 모 호텔에서 극비 회동했다는 보도가 나갔을 때 이를 부인했는데, 또 다른 총선 개입 의혹을 받게 됐다.
 

녹취록 공개 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야권은 지난 20일,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친박 핵심의 녹취록이 공개된 만큼 청와대의 공천 관여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현 전 수석의 녹취록까지 공개가 됐다. ‘나의 뜻이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말은 기가 막힌 대사다.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했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것을 정무수석이 확인시켜준 녹취록”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용태 의원은 공천 개입과 관련해 “대통령을 판 사람들에게 (박 대통령이) 속은 게 맞느냐”라며 “이제 박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주호영 의원도 YTN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불법행위에 가깝다. 당의 책임 있는 기구가 과정들을 소상히 밝혀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처벌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기 막바지 곳곳서 대형 악재 돌출
‘어쩌나’ 핵심 측근들이 진앙의 중심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있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앞서 사태가 터지기 전 서청원 의원의 당대표 출마가 유력해 친박 당대표가 가시권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터진 후 서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현재 비박계 후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어 가능성이 낮아진 실정이다.
 

이에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실시될지 주목된다. 비박계는 ‘진상조사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반면 친박계는 ‘진상조사 무용론’으로 맞서고 있다. 조사 여부에 따라 공천에 개입한 사람이 추가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드의 성주 배치 결정으로 인한 전통 지지층의 이탈은 내년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만한 사안이다. 국방부는 지난 13일 “한미 공동실무단은 사드의 최적의 배치 용지로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건의했고 이에 대해 양국 국방부 장관이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대대적인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서울과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가 발족한 지 5일 후인 지난 21일 성주 주민 2500여명(경찰 추산 2000명)은 서울역 광장에 운집해 결사 반대를 외쳤다.

김안수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드 배치라는 실수를 모두에게 알리고 반드시 철회할 것을 알리고자 천리를 달려 왔다”며 “(정부가) 어제는 후보지, 오늘은 바로 최적지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장관이나 정부 관계자가 현장 방문 한 번 없이 책상 위에서 결정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어떻게 (주거지와) 1.5㎞밖에 안 떨어진 곳에 ‘듣도 보도 못한’ 무기를 들여놓을 수 있나”라고 항의했다.

사드 성주 배치
극렬한 민심이반

MBC의 ‘외부세력 개입’ 보도가 나오면서 성주 군민들의 반발은 더욱 극심해졌다. 지난 16일, MBC는 3차례에 걸쳐 관련 의혹을 보도했다.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시위에 외부인사가 참여한 것을 확인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 보도가 ‘윗선’의 지시로 진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을 낳았다. 지난 21일 전국언론노조 주최 ‘사드 배치 논란 언론보도 긴급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도건협 언론노조 대구MBC 지부장의 주장에 의하면, 지난 16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에 방문했던 날 지역 MBC 관리부서인 ‘전국부’에서 리포트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대구MBC로 들어왔다고 한다.

도 지부장은 토론 중 “리포트에서 성주 군민의 폭력을 앞세우고 이에 대해 경찰이 엄단하기 위한 전담반을 구성했다는 내용을 붙이고, 그 뒤에 성주 군민의 집회 내용을 언급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거부했더니 서울MBC에서 관련 내용을 자체적으로 리포트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0일 KBS 지역총국 기자들의 모임인 전국기자협회는 “‘윗선’이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부당하게 ‘공안몰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공영방송 모두 보도의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단단히 뿔이 난 성주 군민들은 시위 때마다 성주해병대전우회 회원을 중심으로 자율 질서요원을 배치하는가 하면, 상징인 파란 리본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시위 대열로 합류하려 하면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며 막아서는 등 더 이상의 왜곡 차단에 나서는 모습이다.

공천 개입 의혹 “대통령의 뜻”
민심 이반 점입가경 사드 사태
'우병우 사태' 권력실세 스캔들

사드 배치 발표를 전후로 민심 이반이 두드러진다. 이는 동남권 신공항 사태와 맞물려 가속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매일경제·MBN의 의뢰로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전국 유권자 2526명(총 통화시도 2만3314명 중 2526명 응답 완료. 응답률 10.8%)을 대상으로 조사한 박근혜 대통령 취임 177주차 국정수행 지지도(7월 2주차) 여론조사 주간 집계 결과를 지난 18일 발표했다.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7월 1주차에 비해 전체 지지도는 0.8%포인트 오른 33.8%(매우 잘함 8.9%, 잘하는 편 24.9%)를 기록했다.

그러나 성주 사드 배치가 발표되기 전인 지난 12일과 발표 이틀 후인 지난 15일 지지율을 비교하면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울산의 지지도가 각각 9.2%포인트 9.9%포인트 하락해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전통 지지층의 이탈이 심한 상황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드 배치 규탄 목소리는 비단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예상한 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고 나섰다. 한미 실무단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지난 8일 중국 외교부는 “한미 양국은 중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의 단호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며 “중국은 이에 강력한 불만과 반대를 표명한다”고 전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부 또한 “사드 배치는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움직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에 전략적 균형을 훼손시키는 행동”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청와대 실세’ ‘리틀 김기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최근 넥슨과의 스캔들에 휘말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18일 넥슨이 우 수석의 처가가 보유한 강남 부동산을 1326억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진경준 검사장의 주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 검사장은 넥슨코리아로부터 주식을 공짜로 받아 126억원의 차익을 남긴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해당 언론사는 진 검사장과 함께 수사를 받고 있는 김정주 NXC(넥슨 지주 회사) 대표가 우 수석과 일면식도 없다는 점, 반면 김 대표와 진 검사장이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는 점, 진 검사장이 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 2년 후배로 평소 가까운 사이였었다는 점 등을 들어 주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해당 언론사는 넥슨이 우 수석 처가의 부동산을 매입해주는 대가로 우 수석이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문제 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도 당일 우 수석은 “처가 소유의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며 즉각 해명에 나섰다. 그는 “처가에서 정상적으로 중개수수료를 지급하고 이루어진 부동산 거래에 대해 진 검사장에게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이유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다”며 “명백한 허위 보도이고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확산되는 추세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 수석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우 수석에 대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해서 대통령의 치마폭에 숨어 있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즉각 사퇴를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병우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거리고 있다”라며 “우 수석이 사퇴해야 박 대통령이 살고 검찰도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병국·주호영·김용태 등 새누리당 비박계 인사들도 사퇴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께 부담을 안 드리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는 게 좋다”(정병국),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정 기관을 관할하는 민정수석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은 맞지 않는다(주호영)”, “양심이 있으면 물러나야 한다(김용태)”고 한목소리로 우 수석을 압박했다.

실세 중 실세
우병우 사태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해 논란이 됐다. ‘우병우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게 중론이다.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는데 당시 박 대통령은 “요즘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저항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며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얼핏 사드 문제에 대한 심경 고백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발언이 우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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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