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발 ‘친이당’ 로드맵

‘대권 도전’ MB 가신들 뭉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이계 좌장’ 이재오가 움직였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창당을 시사했다. 전공인 ‘개헌’을 전제로 한 ‘중도 신당’이 바로 그것. 앞서 그는 친이(친 이명박)계 전현직 의원 20명과 만나 창당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알렸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중도’ 바람에 합류하는 모습. ‘제4지대’ 창조에 나선 정의화 전 의장과 안철수·유승민 등 여타 중도 성향 인사들과의 셈법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7년으로 예정된 제19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는 정계 개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다수의 전현직 의원들이 군불을 지피는 중이다. ‘중도’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 한때 ‘왕의 남자’라 불렸던 이재오 전 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부는 개헌론 바람에 오랜 침묵을 끝마친 그는 ‘중도 신당’이라는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제시한 상태다.

개헌론 바람에
침묵 깬 이재오

이 전 의원은 지난 2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임을 알렸다. 그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정권부터는 새로운 헌법에서 새로운 정치 체제로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국민의 동의를 받기 위한 개헌 추진 국민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개헌을 전제로 한 정당을 만들기 위해 내 정치적 노력을 하려고 한다.”

그를 깨운 것은 최근 정치권에 불고 있는 '개헌 바람'이다. 여야를 초월해 개헌에 공감하는 의원들은 최근 목소리를 높이며 그 필요성을 부르짖고 있다.


단적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친박(친 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등 야권에서는 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대통령 4년 중임제 등 다양한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체로 정부 형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알려진 대로 이 전 의원은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더민주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과 함께 19대 때까지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는 복수의 언론 인터뷰는 물론 시민단체 포럼에서도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유감없이 말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일례로 지난해 7월경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의 주최로 열린 ‘지방분권개헌원탁토론’에 참석한 이 전 의원은 “개헌은 블랙홀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재 국가 경쟁력 장애요인 중 제일 큰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말한 내용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후에도 이 전 의원은 지금의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공고히 할 뿐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제왕적 대통령제
“이젠 바꿔야”

앞서 라디오에서 밝혔듯 이 전 의원은 향후 계획으로 ‘개헌 추진 국민운동’ 또는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런 그의 최근 행보를 보면 창당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지난달 31일, 이 전 의원과 친이계 전현직 의원 20여명은 만찬 회동을 가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내년 12월에 있을 대선 전까지 개헌을 기본으로 한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구상을 참석자들에게 전했다. 회동에 참석한 이들은 정병국·권성동 등 현역 친이계 인사들과 주호영·고흥길·진수희·최병국 등 전직 인사들로 모두 이명박정부 당시 요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해당 소식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 전 의원이 대선 후보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회동 자리에서 “당을 만들어 후보도 상황에 따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당은 정권 창출을 목표로 했을 때 생명력이 유지된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당들이 많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그리고 국민의당이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외연 확장에 신경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전 의원의 발언 또한 단발성에 그친 정당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전 의원 본인이 직접 나설 뜻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회동 자리에서 그는 “직접 공직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동 참석자들의 만류도 있었다. 창당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정치 인생의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중도 정당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개헌론에 잠행 풀고 활동 재개
친이계 회동서 “차기 대선주자 낼 것”

친이계 좌장의 창당 소식에 정치권은 속칭 ‘친이당’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창당 계획을 최초로 알린 곳이 친이계와의 회동 자리였기에 더욱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해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낸 세월만큼이나 친이계의 유대는 끈끈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은 친이당으로 불리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하나로 묶여 있어야 하느냐”며 “나는 내 길을 갈 테니 부담을 갖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이계 재결집으로 비쳐지는 것에 일찌감치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확장성을 고려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만약 시작도 하기 전에 친이당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다면 여야의 중도 세력을 흡수하는 데 그만큼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도 신당을 위한 환경적 요건은 갖춰져 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4·13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하자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바 있다. 지난 3월2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그는 “불의한 권력에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친정을 떠났다.
 

최근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복당했음에도 이 전 의원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내가 복당시켜달라고 이야기할 그런 형편이 아니다”며 “그런 생각(복당)은 갖고 있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즉 현재 이 전 의원은 당적이 없는 상태다.

창당에 무게
대선 후보도?

이 전 의원은 과거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적이 있어 중도 색채가 강하다. 박정희정권 당시 유신독재를 비판해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공개석상에서도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옥살이 5번 중 3번을 박 전 대통령 시절에 겪었다”며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지난 1990년 김문수, 장기표 등과 함께 진보 정당인 민중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민중당 후보로 지난 14대 총선에 출마한 적도 있다.


지난 1994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민주자유당으로 전향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진보주의자”라며 “국가경영에서 건전한 진보주의자가 건전한 보수와 함께 나가야만 우리 시대의 과제인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

최근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이 전 의원을 친이계 인사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이 전 의원의 경우 합리적인 보수 인사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때 국민의당이 이 전 의원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대선을 도와달라”며 이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갔다는 기사가 종편을 통해 보도된 후였다. 국민의당 창당 전부터 “합리적 보수 인사는 끌어안겠다”고 밝혀온 안 대표였기에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이 전 의원과 안 대표의 인연이 과거 이명박정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도 영입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안 대표와의 만남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의화 새한국의비전과 연대 가능성↑
친정 복귀 여부…정병국 당권에 달려

결국 향후 이 전 의원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제4지대’에서 독자 세력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어느 누구와 손잡게 될 지가 더욱 주목된다.


가장 힘을 받고 있는 것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을 잡는 그림이다. 정 전 의장 또한 최근 사단법인 ‘새한국의비전’ 출범식을 갖고 제4지대 세력화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퇴임식에서 “정파를 뛰어넘어서는 미래지향적 중도세력의 ‘빅 텐트’를 펼쳐 새로운 정치 질서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는데, 이는 중도를 표방하는 이 전 의원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또한 정 전 의장, 이 전 의원 두 사람 모두 개헌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측면에서 가능성을 높인다. 이 전 의원처럼 정 전 의장 또한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한명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 전 의원의 주도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꾸려졌을 당시 정 전 의장은 개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최근에 있었던 새한국의비전 창립 기념사에서도 “단임제를 선택했던 시기의 장기집권 우려는 사라진 지 오래고 이미 권력 집중 등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개헌을 통해 단임제의 흠결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이다.
 

새한국의비전 발기인 명단에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친이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도 두 사람의 연대에 힘을 보태는 요소다. 새누리당 김용태·정병국 등 현역은 물론 여권의 정두언·조해진 전 의원 등 다수의 친이계 인사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개헌에 적극적인 더민주 우윤근 전 의원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정 전 의장과 이 전 의원 사이의 소통창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화·이재오
개헌으로 단결

새한국의비전이 예상보다 바람을 못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연대를 예상케 하는 요소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정 전 의장과 더민주 손학규 전 고문,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합심해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만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6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손 전 고문에게 ‘정 전 의장과 제4세력에 함께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함께 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답변을 해서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전해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최근 새누리당 복당에 성공해 정 전 의장과의 정치적 연대는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중도 신당을 내건 이 전 의원의 등장은 정치결사체를 생각하는 정 전 의장 입장에서 반가울 수 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제3지대에서 정 전 의장이 초당적인 신당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초당적인 것들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개헌 문제가 부상하면서 나에게 의견을 묻는 데가 여럿 있다”라며 “정 전 의장이 (개헌 등을 추진)하는 것도 좋다”는 입장을 전했다.

비록 이 전 의원이 새누리당 복당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신당을 통해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향후 전당대회(이하 전대)를 통해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충분히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당 대표 출마자들이 많으며, 실제로 이주영·이정현·정병국 의원 등은 이미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 중 친박계는 이주영·이정현 의원 등 다수의 후보가 난립한 반면 비박계는 정병국 의원 단일 후보로 정리된 모습이다.

정 의원이 당선된다면 이 전 의원의 거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이자 이명박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인 정 의원은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이 전 의원이 신당 청사진을 내비친 자리에서도 정 의원이 참석해 있었다.

때문에 정 의원이 당권을 잡은 후 이 전 의원의 신당과 새누리당이 흡수·통합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민련·선진통일당 등 군소정당들이 새누리당과 합쳐진 사례만 봐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이달 초까지 개헌 추진과 창당을 위한 조직 정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2014년에 출범한 ‘개헌추진국민연대’의 임원들과 만남을 갖고 향후 행보에 대한 조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개헌전도사’의 신당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 전 의원의 다음 행보는 국회 개헌 특위 구성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권성동 전격 사퇴 내막
전대 잡기 위해 내쳤나?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보였던 권성동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전격 사퇴했다. 권 총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복당 결정의 책임을 나에게 묻는 듯한 처사로 인해 사무총장직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오늘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전반적으로 유감을 표명해주고 앞으로 혁신비대위를 잘 이끌겠다고 각오를 말씀하신 만큼 (사퇴를 요구하는) 비대위원장의 뜻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권 총장의 사퇴로 계파 대리전 양상은 일단락됐다. 앞서 혁신비대위가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여권 무소속 의원 7명의 ‘일괄 복당’을 승인하자 친박계가 권 총장 책임 사퇴를 주장하고 나온 바 있다. 이에 권 총장은 “명분이 없다”며 버텼지만 결국 사흘 만에 자진 사퇴로 선회했다.

친박계가 권 총장 사퇴를 주장한 것이 전대를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주장이 비박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당규상 비대위 사무총장은 전대준비위원장으로 임명돼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친박계가 권 총장 찍어내기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친박계에서는 해당 주장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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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