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친노 끌어안기' 플랜 실체

청와대·JP까지 나서는데 아니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대선에 나올까요?” 그의 출마 여부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이 불붙었다가 금방 사그라들었던 앞선 사례들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좀처럼 방한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반 총장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최근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과 만남을 추진했다가 무산됐다. <일요시사>는 분명해지고 있는 그의 권력 의지를 진단해봤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한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남은 임기를 생각해본다면 총장의 지위로는 마지막 모국 방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반 총장이 대한민국 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대망론’을 넘어 ‘조기 등판론’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출마는 기정사실이고 그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이전 대망론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반 총장이 보여주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출마를 선언한 사람과 진배없다.

이전과는 다른
반기문 행보

반 총장은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을 초청해 좌담을 가졌다. 그의 발언 중 특히 4가지 부분이 주목받았다. 첫 번째는 ‘내년 1월1일’이라는 발언, 두 번째는 국내 정치권에 대한 비판, 세 번째는 북한과의 관계에서의 역할론, 네 번째는 나이와 체력에 대한 어필이다.

반 총장은 대권 도전 질문을 받자 “10년간 (유엔사무)총장을 했으니 기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며 “내년 1월1일이면 유엔 여권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나를 그때 결심하겠다.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국내 정치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반 총장은 “아주 좁은 커뮤니티 인터레스트(community interest), 파티 인터레스트(party interest) 등을 갖고 (정치를) 하는데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다”라고 평가했다. 여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파 갈등에 대해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남북 간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 간에 그래도 유일 대화채널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내가 유일한 것 아닌가”라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출국 후에도 계속되는 ‘반기문 대망론’
이해찬과 회동 불발, 친노·부산 노렸나

나이와 체력을 우려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언급한 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모두 70대라는 사실을 거론했다(반 총장 72세, 힐러리 클린턴 후보 70세, 빌 샌더스 후보 76세).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직설 화법에 정치권은 놀랐다. 앞서 지난해 4월경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며 “은퇴 후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손자, 손녀를 돌보며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지난해 5월경 송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나를 대선 주자 여론조사 대상에서 빼달라”고 말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스스로 ‘권력 의지’를 내비쳤다는 게 중론이다.

시간이 2주나 흘렀음에도 여파는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뉴욕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사라졌던 권력 의지가 이번에는 영속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뉴욕으로 돌아간 후 국내 언론에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이해찬 의원과의 만남 소식이 전해졌다. 대상이 친노계 좌장이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가 커 보였다. 더욱이 반 총장 측에서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고 전해지면서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화해의 제스처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계산으로 봐야 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화해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반 총장이 노무현정부 시절 인사와 만나는 것이 취임 이후 9년 만이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처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멀어진 관계 회복에 방점을 뒀다는 해석이다.


“내년 1월1일
결정하겠다”

알려진 것처럼 반 총장은 노무현정부 시절 외교부장관을 역임했었다. 또한 그의 재임 기간인 지난 2006년 총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 의원은 반 총장이 유엔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반 총장과 이 의원의 관계 또한 멀어졌고 이후 반 총장이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면서 더욱 안 좋아졌다. 때문에 퇴임을 앞두고 반 총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 총장이 이 의원을 만나려 한데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란 해석이 더욱 신빙성을 얻고 있다. 대권 행보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방한 당시 김종필(JP) 전 총리를 만나 충청대망론을 키우고, 안동을 방문해 TK 민심을 확인한 반 총장이 이번엔 친노계와 부산 민심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몇 가지 점에서 근거가 존재한다. 이 의원 측에서 먼저 만남을 취소했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이 의원의 미국 방문을 주관한 노무현재단은 지난 8일, “이 의원은 반 총장과의 면담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재단 측은 “당초 비공개 일정으로 차 한 잔 하기로 한 만남의 성격이 변화 돼 최종적으로 면담을 취소키로 결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단 측은 면담 일정이 먼저 언론에 공개됐다는 점, 반 총장이 먼저 만남을 제안했음에도 사실과 다르게 이 의원이 먼저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간 점, 그리고 반 총장 측에서 면담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온 점을 들어 만남의 성격이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이 이번 만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장외 설전’도 면담이 무산되는 데 일조했다. 이 의원은 면담이 취소되기 전인 지난 5일 재미 동포와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외교관은 국내 정치와 캐릭터가 안 맞다”며 “갈등이 심한 정치에 외교관 캐릭터는 맞지 않다. 정치는 돌다리가 없어도 물에 빠지면서 건너가야 하는데, 외교관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너간다”고 지적했다. 다분히 반 총장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반기문-이해찬
장외 논쟁 발발

이어서 이 의원은 “그동안 외교관을 많이 봐왔지만, 정치적으로 대선 후보까지 간 사람은 없었다”며 “(외교관들은) 외교 차원의 정치는 하지만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외교 이외의 영역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깊지 않다. (반 총장도) 국내 정치를 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세간에서 도는 반기문 대망론을 평가 절하했다. 외교관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그는 “반 총장을 야권 (대선) 후보로 생각하는 야당은 없는 것 같다”고 쐐기를 박았다. 반 총장을 여당 대선주자로 한정시키는 발언이었다.

반기문 측은 즉시 불쾌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반 총장의 측근들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외교관들이 국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반 총장 만큼의 지위에 올라간 외교관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만남 이전에 나온 발언치고 수위가 높았다는 말도 나왔다. 장외 논쟁이 발발한 후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반 총장과 이 의원의 만남은 한국 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 나왔고 결국 노무현재단은 면담을 거절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최고위원은 면담 무산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반 총장의 광폭 행보에 이 의원이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한 이 최고위원은 “반 총장은 노무현정권이 애써 배출한 사무총장이다. 그러니 노무현정권 사람들 입장에선 반 총장이 새누리당으로 가버리니 ‘월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그는 반 총장이 JP를 예방한 것과 관련해 “지난 방한 기간 보여준 행보는 완전히 정치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기가 막혀” 친박 후보 프레임에 발끈
청와대 개각설에 충청-TK 연대설 솔솔

또한 반 총장은 최근 자신을 두고 친박 후보라 부르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 만남에 어떤 노림수가 숨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중이다. 계파를 초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친박계에서 반 총장을 원한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친박계 핵심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최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이를 분명히 했다. 그는 반 총장과 이 의원 간 만남에 대해 “많은 분들이 그(반 총장)가 (대권) 플랜을 펼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냐”며 “아마 출마 의지를 상당히 굳혀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상수란 말씀도 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홍 의원은 반 총장 출마에 대해 “변수 아닌 상수”라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은 친박계 후보설에 선을 긋고 있다. 앞서 관훈 클럽에서 ‘반 총장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홍 의원이 주장하고 다닌다.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나는 홍 의원을 알긴 하지만 지난 10년간 전화 한 통화 한적 없다”고 답했다. ‘친박 후보설’에 대해선 “너무 확대 해석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일이 기가 막히다”고 부인했다.

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선 “박 대통령을 자주 만나냐고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 때도 그랬고 어느 대통령이건 다 만났다”며 “(박 대통령을) 7번 만났다고 하는데 다 공개된 장소이고, 회의가 있어서 가니 사진이 찍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친박 후보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친박 후보설
적극 차단


또 다른 노림수로 부산 민심을 잡으려는 시도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새누리당은 부산 민심이 돌아서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부산 지역 5석을 야당에 내주면서 심상치 않은 야풍이 불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대권을 잡기 위해선 부산 민심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점과 맞물려 반 총장이 이 의원과의 만남을 진행했을 것이란 관측이 전해진다.

청와대가 수석비서진을 개편하면서 충청대망론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김재원 정무수석을 새로운 당청 소통 창구로 임명했다. 김 수석은 이완구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내며 충청대망론을 지척의 거리에서 지켜보는 등 충청과 정치적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 지역 의원이면서 친박계 인사인 이장우(대전 동구), 김태흠(충남 보령 서천)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김 수석과 함께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임명된 것도 결국 충청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이 실장은 충북 제천 출신이다. 그 외 김용승 교육문화수석(대구), 이준원 농림부차관(충남 아산)과 이정섭 환경부차관(충남 보령) 등 충청·TK 출신들이 두루 기용됐다.

이에 정권 재창출을 위해 ‘충청·TK’가 힘을 합친다는 ‘충청-TK 연대설’이 정치권에 제기되고 있다. 오는 9월을 기점으로 청와대가 개각에 나설 수 있는데 이번 수석비서진 개편이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는 곧 반기문 대망론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반 총장은 최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출입기자단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선 출마와 관련해 “사무총장으로서 임기 마지막까지 저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을 것이다”고 말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사무총장 업무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비판은 지나치고 불합리하다”고 셀프 변호했다. 그러나 같은 날 JP는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반 총장이) 단단히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고 말해 엇박자를 보였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 구성 승패 공방
새누리 승? “남의 떡이 커”

상임위 배분 결과를 두고 과연 승자가 누구냐는 질문이 정치권에 던져졌다. 일각에서는 실리를 챙긴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진단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국회의장을 가져간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가 이겼다고 분석한다.

새누리당은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비록 당초 밀어붙였던 국회의장직은 사수하지 못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와 운영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와 성과가 크다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있었던 새누리당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필요한 상임위는 빼놓지 않고 지켜냈다”며 “책임을 지는 보수정당, 집권여당으로서 확실히 가치를 지켜야 될 상임위들은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특히 법사위와 미방위를 가져온 것에 대해 “나름대로 큰 소득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법사위는 사실상의 상원으로 통하며 상임위의 꽃으로 불린다. 앞으로 국회에서 발의되는 모든 법안은 해당 상임위를 거치게 된다. 미방위는 내년에 있을 종편 심사 등 중요 쟁점 사항이 발발할 수 있는 지점이다.

새누리당이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에 더민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CBS라디오에 출연한 우상호 원내대표는 주요 상임위를 새누리당에 내줬다는 평가에 대해 “남이 가진 떡이 크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상임위는 원래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가지고 있었다”며 “의장까지 양보받은 입장에서 상임위원장 한 두 석 때문에 국회를 공전시킬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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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