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3당 당권전쟁 막전막후

총선보다 치열…당권에 대권 달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총선은 끝이 났지만 내년 대선을 향한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차기 당권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여야 3당의 대권 그림까지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차기 당 대표 자리를 놓고 여야 3당 모두 벌써부터 당권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일요시사>가 총선보다 치열한 여야 3당의 당권경쟁을 미리 들여다봤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3당의 당권경쟁이 시작됐다. 각 당의 당권경쟁은 급기야 계파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차기 당 지도부는 내년에 치러질 당내 대선경선을 관리하는 막중한 권한을 갖게 된다. 누가 당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경선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계파 간 유불리가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여야 3당 당권의 향배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당권 향배 따라
대권구도 달라져

우선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고 있다. 당 비대위원장을 임시로 맡았던 친박계(친 박근혜) 원유철 원내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쇄신파의 끊임없는 압박에 한발 물러나 새로 선출되는 원내대표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넘기겠다고 선언했다.

당내 비박계는 총선 참패의 책임자 중 한 명인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원 원내대표를 비판해왔다. 이 같은 비박계의 비판에도 원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이 뭐 대단한 벼슬이냐? 내가 지금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이라고 버텼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당 지도부 공백사태가 장기화되며 당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원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당권경쟁을 앞둔 친박계와 비박계의 전초전 성격에 불과하다. 새로 선출되는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만큼 향후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계파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대 계파가 ‘비대위원장 합의 추대’와 같은 극적 합의를 해내지 않는 이상 차기 원내대표 선거는 계파 간 진흙탕싸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당내에서는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 개혁하기는커녕 계파싸움을 벌이면 내년 대선에서도 참패는 불보듯 뻔하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총선 참패에 따른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당을 이끄는 투톱인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양대 계파가 각각 나눠서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비박계가 원내사령탑을 맡고, 친박계가 당권을 맡아야 한다는 이른바 ‘권력 분점론’이다. 당내 쇄신파를 자청하는 한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를 치르면 아무리 내부적으로 단속을 한다고 해도 계파갈등이 외부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며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친박계와 비박계의 공천다툼이었는데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반성하기는커녕 또다시 밥그릇싸움을 한다면 우리 당은 정말 끝장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원내대표 자리와 당대표 자리를 나눠가짐으로써 양 계파가 대립하기보단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새누리 참패 자숙? 벌써부터 계파싸움
합의 추대 움직임에 셀프 추대 맹비난

당 일각에서는 아예 외부인사를 영입해 당대표로 합의 추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이 외부인사인 김종인 대표를 영입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듯 쇄신 이미지가 강한 외부인사를 영입해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새누리당 의원 중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국민들은 그 나물의 그 밥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바로 내년에 대선이 치러지는데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퇴임 후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편의점 사장으로 변신해 화제가 됐던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나 호남 출신으로 이명박정부에서 안정적인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줬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의 인물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외에도 김수한 전 국회의장,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이석연 전 법제처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의 인사들도 거론된다.
 

그러나 차기 당 지도부는 임기 2년에 대권 경선을 관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부인사를 합의추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집권여당의 당대표 자리를 외부인사에게 맡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어차피 외부인사를 영입한다고 해도 영입 과정에서 자신들과 좀 더 가까운 인사를 영입하려고 계파싸움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며 “혁신위원장 정도를 외부에서 모셔오고 당대표는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조속한 당의 재건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는 대표적인 친박 이정현 의원은 이미 당권 도전 의사를 공식화하고 있다. 이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당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당권 도전 의사를 재차 밝혔다. 이 의원은 “선수(選手)와 지역, 계파 구분에서 벗어나 당이 변화해야 한다”며 자신은 새누리당 불모지인 호남에서 23년간 출마한 끝에 재선에 성공하는 등 새누리당의 과거 기득권을 초월했다고 주장했다.

외부인사 영입?
내부경쟁 돌입?

이 의원은 친박계 당 대표는 안 된다는 당내 비판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기조에 적극 협조하는 것은 당원의 도리”라며 “대통령과 한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이 집권 여당에 있는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이외에도 현재 친박계에서는 친박계로 분류되지만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옅은 이주영 의원이나 최경환 의원, 유기준 의원 등이 유력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반면 비박계에서는 5선에 성공한 정병국 의원이나 나경원 의원 등이 당권주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복당을 신청한 유승민 의원의 행보도 주목된다. 유 의원의 복당이 성사된다면 비박계에서 가장 강력한 당권주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복당이 허용되면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 의원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대 총선을 통해 원내 제1당을 차지한 더민주의 당권경쟁도 조기에 불붙고 있다. 이번 총선을 승리로 이끈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합의추대론이 거론되자 당내 친노(친 노무현)계와 비노(비 노무현)계를 막론하고 모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친노계 인사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은 “셀프 공천도 문제지만 셀프 합의추대라는 게 가능한 일인가. 북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합의 추대는 100% 불가능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 정 의원은 김 대표의 태도가 염치없다고 비판한 뒤 “이번 총선 승리의 견인차는 20대, 30대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 것 아니냐”며 “(총선 승리는) 그 분(김 대표)이 아니었어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SNS를 통해서는 “비리 혐의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대표 자격기준에서 원천 배제해야 한다”며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김 대표의 과거사까지 거론하며 김 대표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총선 승리를 견인한 김 대표의 역할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합의추대에 대한 당내 공감대가 형성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김 대표 측은 합의가 되면 추대로 가는 것이지만 경선까지 해서 당대표를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김 대표는 당 비대위 회의에서 “내가 합의추대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경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최근 이철희 선대위 상황실장을 전략기획위원장에 임명하고, 손혜원 홍보본부장을 유임하는 등 친정체제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고 있다. 당 일각에선 대표직을 사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합의 추대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엔 김 대표가 비례대표 의원직까지 포기하며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3월 이른바 비례대표 공천파동 당시에도 사퇴를 시사하며 당무거부에 나서 비례대표 2번을 유지한 바 있다.


합의 추대?
셀프 추대?

김 대표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지난 2012년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다섯 차례나 당무 거부를 선언한 적이 있다. 김 대표가 물러나면 더민주엔 도로 친노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가 있다. 이럴 경우 또 한 번 문재인 전 대표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현재 김 대표 자신의 힘만으로는 당대표직에 추대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김 대표가 당대표에 추대되기 위해서는 문 전 대표의 도움이 절실하다. 현재 더민주 내 최대 계파의 수장인 문 전 대표가 김 대표 합의 추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다른 의원들도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총선 당시 김 대표가 셀프공천 논란으로 집중포화를 맞게 되자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의 자택을 찾아 공천 논란을 해소시킨 바 있다.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옹호하고 나서자 당내 의원들은 순식간에 모두 김 대표에 대한 공격을 멈췄었다.

일단 문 전 대표 측은 ‘당권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문 전 대표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김 대표는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공신”이라며 “내년 대선에서도 김 대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김 대표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며 우려하는 인사들도 많다. 만약 전당대회가 치러진다면 정세균 전 대표, 김부겸 전 의원, 김진표 전 원내대표, 박영선 전 원내대표, 송영길 전 인천시장, 정청래 의원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2야도 주도권 잡기 레이스
“절대 양보 못해!” 총력전

김 전 원내대표는 “정권교체에 필요하다면 당대표든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다”고 출마 의사를 밝혔고, 송 전 시장은 이미 총선 출마와 동시에 당권도전을 공식화했다. 나머지 인사들도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열어 둔 상황이다.

국민의당도 당권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새다. 20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의 높아진 위상만큼 차기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당 내에서 유력한 당권주자로 꼽히는 인사들은 천정배 공동대표를 비롯해 4선의 박지원 의원, 3선의 정동영 의원, 박주선 의원 등이다. 이들은 모두 호남 출신 중진 의원들로 각각 당권 도전을 시사하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반면 안 대표가 당권에 도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헌·당규상 국민의당은 창당(2월 초) 후 6개월 내에 새 당대표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당헌·당규대로라면 오는 7월 전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시 당헌에 따르면 대선에 출마하려는 당직자는 1년 전에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불과 4개월 만에 스스로 대표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천정배 공동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대표 재추대론에 대해 “4개월짜리 대표는 안 된다”며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분들과 당 지도부와는 분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안 대표 측은 기득권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호남 중진 의원이 국민의당의 대표로 선출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는 이들이 당대표로 선출되면 표 확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전당대회 연기론
안철수 사당화?

따라서 안 대표를 지지하는 인사들은 전당대회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들은 창당 2개월이 갓 지난 신생정당이 제대로 된 전당대회를 치를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또 당권경쟁을 늦춤으로써 당내 분열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현재 일부 지역에선 국민의당의 조직이 전무한 실정이다.

전당대회를 열기 전에 전국적인 조직개편 작업을 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한두 달 만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가 연기돼 안 대표가 내년 초까지 대표직을 맡게 되면 대선행보엔 파란불이 켜진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연기될 경우 ‘안철수 사당’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정동영 의원 등이 대선 도전을 염두에 둔 행보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어 전당대회 연기 결정이 순조롭게 승인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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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