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일 행적’ 김무성 부친 동상 추적

꽁꽁 감춰놓고 “보여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한국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고 친일과 식민지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 친일에 대한 대가로 누렸던 지위와 권력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후손에 의해 친일행적이 부인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가 그런 경우다.  
 

김용주(1905∼1985, 창시명 金田龍周, 가네다 류슈)의 ‘친일 행적’이 속속 발굴되는 가운데, 김용주의 청동 전신상 등 각종 ‘찬양시설’이 광주 전방공장과 서울 안암동 용문고등학교 등지에 있는 것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확인했다.

전범기업 자리
1986년 세워져

전남 광주의 전방(구 전남방직) 공장 내에 있는 김용주의 동상은 비문으로 볼 때, 김씨의 사후 1년 뒤인 1986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동상은 전방공장 정문 입구 옆 넓은 잔디밭에 위치해 있는 대형 전신상이다. 해당 동상에 대해 광주시민들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아 그동안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해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방은 1935년 전범기업 가네보(鐘淵)공업의 전남공장이 그 모태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놓고 간 공장설비를 미군정이 인수했다가 1953년 ‘적산’(적의 재산이라는 의미)으로 김형남(후에 숭실대 초대총장)과 김용주가 함께 불하받은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엔지니어였던 김형남이 자본을 가진 김용주에게 방직공장을 인수하도록 설득한 것이다. 1961년 8월 두 사람은 이 적산 공장을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으로 분할해 나눠가졌다.

일제강점기 가네보 공장은 평균 연령 12.8세에 불과한 어린 여공들이 하루 12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작업반장의 폭언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고 성폭력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해방 후에도 방직공장은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여성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하에서 하루 2교대로 12시간씩 일하는 작업장으로 악명 높았다.


현재 전방의 명예회장은 김창성(84)씨로 김무성 대표의 큰 형이다. 광주 전방공장은 현재는 가동되지 않고 있다. 중고자동차 매매단지와 대형 물류센터가 임차해 있다. 지난해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14일, 지역의 시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이 광주 내 일제강점기 유적을 답사하면서 공장 정문 안쪽에 조성돼 있는 동상을 보기 위해 공장을 방문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불과 2∼3분 사이에 안에서 전방 유니폼을 입은 남자 8명이 나와 일행을 가로막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연락을 받은 듯 갑자기 남자들이 뛰쳐나왔다. ‘나가라’며 우리 일행을 밀쳤다. ‘경찰을 불러라’ ‘사진촬영을 하지 마라’면서 실랑이를 벌였다”고 밝혔다. 일행 중 한 명이 “학생들을 데리고 역사기행을 다닌다. 동상이 있어서 보러왔다”고 양해를 구하자 “안 된다. 돌아가라”며 강하게 제지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안에 가동되는 공장은 없고 담양 등 타 지역으로 이전해갔다. 유통센터와 중고자동차 매매단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일 뿐인데 삼엄하더라”고 덧붙였다. 
 

현장엔 역사해설사, 학생들과 교사, 해당 시민단체의 성인 회원 등이 있었다. 다음날인 15일, 김 대표는 부친의 전기 <강을 건너는 산>을 발표했다. 평소에도 김씨의 동상 앞 잔디밭에 서 있으면 전방직원들이 나와 사진촬영을 저지하고, 카메라를 뺏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김용주에 대해 친일파 논란이 거세지면서 전방 측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주 전신상 광주 전방공장 존재
지역 시민단체 방문했다가 문전박대

김용주 찬양시설은 포항 영흥초등학교와 서울 용문고등학교에도 존재한다. 영흥초등학교는 1911년 설립됐으나, 1936년 3월 김용주가 인수해 설립자 변경 인가를 받았다. 이 학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영흥초는 지난 2011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김용주의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이 자리엔 설립자 가족을 대표해 김 대표가 참석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가 <아사히신문> 조선판에 게재된 김용주의 전투비행기 헌납 기명광고를 새롭게 발굴해 기자회견을 하는 등 친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말, 김 대표가 영흥초를 방문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큰누나이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87)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용문학원에도 김용주의 대형 초상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안암동 소재의 용문학원은 용문중학교와 용문고등학교를 함께 운영 중인 학교법인이다.

1986년 용문고 본관 뒷편에 ‘해촌기념관’이라고 이름 붙인 강당을 준공했는데, 이 강당 내 무대 우측에 김용주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해촌은 김용주의 호다.

보러 갔는데… 
직원들이 막아

김용주의 친일 행적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김씨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수산업, 해운업, 무역업 분야에서 활동했다. 김씨의 친일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면모를 띤다.

김씨는 경상북도 도회의원,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사업부장 등을 역임했다. 배우자 방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고모이며, <친일인명사전> 등 각종 친일파 명단에서 이름이 확인되는 호남 출신 갑부 현준호(1889∼1950)와 사돈을 맺었다.

해방 후엔 대한해운공사 사장, 주일본공사, 전남방직 사장 겸 신한제분 회장, 민주당 국회의원, 신한해운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초대회장, 동해제강 사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9월17일 연구소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주의 친일행위에 대한 새로운 증거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연구소는 김용주가 고위직에 있는 동안 ‘애국기 헌납운동’을 선전했다면서 <아사히신문> 국내판 1944년 7월9일자에 실린 일본어 기명 광고를 공개했다. 김용주는 또 같은 신문 국내판 1943년 9월8일자에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이라는 내용의 일본어 기명 광고를 실어 조선청년들의 징병제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소 측은 기자회견에 앞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본적으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친일행위자의 후손이나 연고자가 ①친일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을 하는 경우 ②친일행적을 부인 또는 왜곡하는 경우 ③친일청산운동을 방해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 측의 대응이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 연구소의 판단이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김용주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김 대표가 공당의 대표로서, 공공연한 대권 행보자로서 선친의 친일행적과 관련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그간의 행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27일에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를 근거로 부친이 ‘치안유지법’을 위반하고 조선인 학교를 세우는 등 애국자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치안유지법 위반이 사실이라면 도의원에 선출될 수 없다. 동아·조선일보에 실린 인사는 동명이인이다. 김용주가 1920년대에 문화운동에 관계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경력이 1940년대까지 일관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지난 2011년 일본정부로부터 직접 건네받은 ‘조선인 공탁기록’에도 김용주의 친일행위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영흥초·용문고에도…
대형 흉상·초상화 전시 
 

기록에 따르면, 일제 말기, 일본정부가 전쟁 수행을 독려하기 위해 전투기, 조선, 군수물자 등을 생산한 전범기업 주식을 일본과 조선의 유력자를 대상으로 판매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일제의 전쟁 승리를 의심치 않았던 친일파들이 투자 목적과 충성심을 앞세워 가장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이 총 51만7504엔어치를 매입, 최고액을 기록했다. 명성황후 친척 민규식이 46만8200엔, 김용주의 사돈인 현준호가 9만3425엔으로 그 다음을 이었다.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도 전범기업 니혼고주파중공업의 주식 7500엔을 매입한 것이 확인됐다. 이외에도 1204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호남은행 현준호 일가를 비롯해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 경성방직(현 경방) 및 삼양사(현 삼양그룹) 설립자 김연수, 배우 이지아씨의 조부인 김순흥, 대한국민항공사(대한항공 전신) 설립자 신용욱, 명성황후 민씨 일족, 유명 사립대 설립자 등 현재 확인 가능한 500여명 중 사회 유력자 집안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투자한 전범기업들은 2차 대전 당시 조선인 동포들을 끌고가 강제노역시키던 기업들로, 당시에도 조선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친일파 동상이 철거되고 일본식 지명이 변경되거나 친일파 묘가 이장됐다. 김 대표 본인에게 연좌제를 지울 수는 없으나 김용주의 친일행적이 명백한 만큼 공공재인 학교와 주주들이 주인인 주식회사 내에 있는 찬양시설은 철거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계의 대체적 반응이다. 앞으로 광주전남지역의 시민단체는 김용주의 동상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동상 철거를 적극적으로 의제화 해 나갈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행적 확인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사무국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친일반민족 행위를 했던 인사들의 찬양시설이 전국 도처에 세워져 있다”며 “후세에 좀더 투명한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선 이러한 친일 찬양시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시설이 어떻게 현재까지 서 있게 됐는지 안내문이나 단죄비를 세워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일파 찬양시설 철거 사례      

‘일제잔재지우기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친일파 찬양시설이 철거되는 예도 부쩍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소재 광신고교는 지난 2001년 12월 이 학교의 설립자 겸 초대 재단 이사장을 지낸 친일파 박흥식의 동상을 철거했다.

박흥식의 아들 박병석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음에도 동문회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을 빌려 동상이 철거됐다. 이에 앞서 민족문제연구소 관악동작지부 회원 등은 학교 앞에서 박흥식의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수개월 동안 시위를 벌였다. 학교 측은 고심 끝에 동상을 철거키로 결정하고 이같은 사실을 연구소 측에 알린 후 그해 말 철거했다.

지난 2000년 7월엔 서울 중앙여고가 일제 말기 제자를 정신대에 내보낸 황신덕씨의 동상을 철거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전북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에 걸렸던 수당문 현판이 철거됐다. 수당은 경성방직(현 경방) 사장 김연수의 호로, 경기장 건립 당시 김연수가 기부금을 내면서 현판이 걸리게 됐다. 경방은 조선 농민에게 헐값에 사들인 면화로 조선주둔군의 군복 천을 생산해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1939년엔 만주국 심양 근처 소가둔에 남만방적을 설립, 1943년부터 ‘관동군’ 군복 천 생산을 개시했다.    

광주에선 시민단체들의 오랜 문제제기를 통해 광주중외공원에 세워져 있던 친일인사 안용백의 흉상을 지난 2013년에 철거했다. 안용백은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면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하는 사설을 쓰고 창씨개명에 앞장선 인물이다. 지난 2014년엔 광주 서구 백일로가 ‘학생독립로’로 명칭이 변경됐다. 지난 삼일절엔 백일초등학교가 성진초등학교로 개명됐다.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친일파 김백일의 이름을 딴 지명과 학교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

2013년엔 강원도 춘천과 정선군에 이범익 전 강원도지사의 단죄비가 각각 설치됐다. 단죄비는 그의 친일행각을 꾸짖는 내용을 새긴 것으로 공적비와 나란히 세워졌다. 이범익 단죄문설치추진위원회는 단죄문에서 “조선시대 관리인들의 공덕비를 모아 놓은 이 비석군에 일제강점기 대표 친일파인 이범익의 비석이 포함된 것은 잘못됐다”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강원도민의 뜻을 모아 광복 68주년을 기념해 단죄문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1929∼1935년까지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은 조선총독부 정책을 앞장서서 선전해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특히 1938년 9월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 172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고문한 부대인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지난해 7월엔 경기 군포시 산본2동 능안공원 내 친일작가 이무영의 작품비가 철거됐다. 이무영은 친일파 청산을 헐뜯거나 친일파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글을 여러 편 남겼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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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