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②그들은 어떻게?

“한번 죽이면 또 죽이고 싶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913건의 살인범죄가 발생했다. 이 중 총기, 칼, 독극물 등을 이용한 소지범죄가 771건, 미소지범죄가 142건으로 조사됐다. <일요시사>에서는 범행 강도가 높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유형별로 정리해봤다.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치정, 원한, 재물(강도), 정신병으로 인한 살인이 일반적이나 장기간에 걸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도 더러 발생한다.

대한민국 발칵 연쇄살인

연쇄살인은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살인범과 피해자 사이에 원한, 치정, 채무 등의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에 행해지는 살인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은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대구동구연쇄살인사건’ ‘정두영연쇄살인사건’ ‘유영철연쇄살인사건’ ‘서울서남부연쇄살인사건’ ‘경기서남부부녀자연쇄살인사건’ 등 7건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은 1975년에 발생한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사건’이다. 살인범 김대두(당시 27세)는 8월13일부터 10월7일까지 55일간 전남 광산군민 안종현(당시 63)씨를 시작으로 경기도 평택, 양주, 시흥, 수원 등 전국 9개 지역의 외딴집에서 17명을 살해했다.

가장 참혹한 살인으로는 평택의 외딴 초가집에 살던 할머니(당시 71)와 손주(당시 5·7·11세)를 장도리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과 시흥군의 20대 여성을 강간한 후 부엌칼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이 꼽힌다. 시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자녀인 생후 3개월 된 아기도 발로 짓밟아 내장 파열시켜 살해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세탁소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김대두는 1976년 12월28일에 사형됐다.


다음으로 알려진 연쇄살인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재조명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1986년 9월19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여성 10명이 살해된 이 사건은 2006년 4월2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1986년 9월1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서 하의가 벗겨진 노인(당시 71세)이 목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 데 이어 불특정 다수 여성 9명이 강간 살해됐다.
 

피해자 전원이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살해돼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80만명의 경찰이 동원돼 수사를 벌였으나 3000여명이 용의자로 지목된 채 미제사건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이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져 항간에 ‘화성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1997년 2월20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도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살인범 이승수(당시 21세)는 함께 잠을 자던 김(당시 27세)씨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데 격분해 흉기로 살해한 후 도주했다. 50m 근방의 분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려다 “식사 안 된다”는 종업원 이모양(18세)의 말에 또 다시 격분해 이양을 살해했으며 새벽기도를 가던 60대 여성도 살해했다. 총 4명을 살해한 이승수는 사형을 선고받아 현재도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 김찬일(당시 43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11년간 복역한 정두영(당시 32세)은 출소 직후인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6번의 강도짓을 하고 9명을 살해했다. 부산과 울산 등 경남 일대에서 살인강도 행각을 벌인 정두영은 충남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체포됐다.

1999년 6월2일 부산 서구 부민동의 한 부유층 주택에 무단침입한 정두영은 가정부의 머리와 얼굴이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해 살해했으며 2000년 3월11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고급 주택에서 두 명의 여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했다. 같은 해 4월8일에는 DCM철강 정진태 회장의 자택에 침입해 정회장과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유영철(당시 34세)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은 주로 80대 이상의 노인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으며 8월13일 구속 기소돼 ‘이문동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 사형 선고를 받았다. 미국 잡지 <라이프>의 ‘20세기 대표 연쇄살인자 30인’에 선정돼 역대 최악의 살인마로 통한다.

유영철과 살인수법이 비슷한 살인범 정남규는 2004년 2월26일부터 2년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월14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공터 놀이터에서 놀던 초등학생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인근 야산에 암매장한 데 이어 20대 여성 두 명도 둔기로 가격해 살해했다.


또 조선족 김모씨는 옆구리와 가슴 등 4곳을 칼에 찔렸고,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배달을 하던 김모씨도 20차례 칼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유행으로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주목받은 정남규는 2006년 4월22일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남규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납치·살해된 ‘경기서남부부녀자연쇄살인사건’도 발생했다. 강호순은 납치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인근 절벽 및 농가에 암매장했다. 

길가다 ‘푹’ 묻지마살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들이 있는가 하면, 동시간대에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 살해한 묻지마살인범들도 최근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군부대의 총기난사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82년 4월26일, 청와대 근무요원을 지낸 우범곤 순경(당시 26세)이 지방 발령 및 동거녀와의 불화에 인근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훔친 후 62명을 살해하고 3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우범곤은 우체국에 들러 집배원과 전화교화원을 살해해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경남 의령군 궁류면 일대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트렸다. 이튿날 새벽 5시 평촌리의 한 가정집에서 자고 있던 일가족 5명을 깨워 함께 자폭했다.

1991년 10월17일,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는 농부 김정수(당시 29세)가 무대 위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16명이 사망했다. 그는 옷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 받자 격분해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아동황산테러사건’은 1999년 5월20일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김태완(당시 6세)군이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황산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황산테러를 당한 김태완군은 실명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49일 만에 숨졌다. 경찰은 2013년과 2014년에 재수사를 벌였으나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다. 이 사건은 2014년 7월7일부로 공시시효가 만료됐다.

최대 참사로 꼽히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는 지난 2003년 2월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했다. 이 화재참사로 19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됐으며 151명이 부상당했다.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은 경찰 조사에서 뇌졸중으로 오른쪽 상·하반신의 장애 및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되자 삶을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대한은 이듬해인 2004년 8월30일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
 

2005년 6월19일에 발생한 ‘연천군부대총기난사사건’으로 28사단 소속 GP 간부 1명과 병사 7명이 사망했다.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4발을 난사해 현장에서 8명 모두 즉사했다. 당시 연천군총기사건유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련해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닌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김동민 일병은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5월13일에는 서울 서초구 소재의 한 예비군훈련장에서 사격훈련 도중 한 예비군이 동료 예비군 4명에게 총기를 난사해 3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자살한 가해자에게서 범행 계획을 적은 유서가 발견됐다.

벌레 취급하는 엽기살인


살인범들은 살해 대상자에게 독극물을 먹이거나 살인 후 사체를 토막 내는 등 극악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파주전기톱살인사건’과 ‘시화호토막살인사건’, ‘상주농약사이다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4월1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던 조선족 오원춘이 28세 여성을 납치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범행 직전 여성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경찰이 주변을 수사하던 중 스패너로 여성을 내려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오원춘은 사체를 358점으로 토막내 여행용 가방과 비닐봉지에 담아 팔달산에 버렸다. 검찰은 오원춘이 장기매매 목적으로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원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지난해 5월26일, 파주에서 핸드폰 채팅어플로 성매매를 해온 A(당시 37세, 여)씨가 모텔에서 성매수자 B(당시 50세, 남)씨의 신체 41곳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A씨는 B씨의 사체를 전기톱으로 토막 낸 후 인천 남동구의 한 공장 앞과 파주시의 농수로에 상·하반신을 나눠 버렸다. A씨는 범행 직후 B씨의 신용카드로 귀금속을 구매하고 다른 남성과의 성매매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A씨에 대해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4일, 수원시의 팔달산에서 얼굴과 팔, 다리가 없는 상반신 사체가 비닐봉투에 담긴 채 발견됐다. 당시 신장으로 추정되는 장기 일부만 있고 심장, 간 등의 주요 장기는 없었다. 사체 발견 지역은 오원춘 사건 발생 지역에서 1km도 채 되지 않은 곳이었다.

일주일 후 수원천 매세교 인근에서 검은색 비닐봉투에 담긴 살점과 속옷이 추가 발견됐다. 두 장소에서 발견된 사체 일부가 동일인이라는 국과수 감정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피해자와 동거한 박춘봉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월4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일대에서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 인근 거주자 박(당시 67세, 여)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박씨의 별채에 불이 난 점 등을 수상히 여겨 별채에 세 들어 살던 김(당시 58세, 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조사 결과, 김씨가 내다버린 육절기(고기뼈를 자르는 기계)에서 박씨의 혈흔과 인체 조직이 발견됐으며 인터넷에 ‘인체해부학’ 등을 검색한 사실을 확보해 김씨를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박씨가 김씨의 구애를 거절하고 방을 빼라고 한 데 앙심을 품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7일, 조선족 김하일이 토막 사체를 유기하다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방조제에서 토막난 김하일의 부인 사체가 발견된 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김하일은 부부싸움에 우발적으로 아내를 망치로 때린 후 목 졸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하일은 아내의 사체를 화장실에서 부엌칼로 토막낸 후 시화방조제와 조카의 집 등 4곳에 유기했다.

지난 7월14일,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금계1리의 한 마을에서 초복 잔치를 하던 7명의 할머니가 사이다를 마신 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태에 빠졌다. 3일 후 초복 잔치에 동석했으나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모(당시 82세) 할머니가 긴급 체포됐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오는 12월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기사 속 기사> 살인사건 최다 발생지역 "역시 살인의 추억"
경기 화성시 태안읍 불명예, 10건 중 4건 '집안'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 범죄자를 중심으로’연구자료에 따르면, 살인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집안’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0년간 살인사건의 발생장소를 취합한 결과, 집안 발생이 41∼45%의 비율로 나타났으며, 이어 노상(16∼19%), 기타(12∼18%), 숙박 및 유흥업소(8∼10%), 상점 및 시장(2~5%), 야외(1∼5%) 순으로 나타났다. 이외 사무실과 공사장·창고·공지, 기관의 살인범죄 비율은 1∼3%대였다. 10년간 평균치는 집안(43.4%), 노상(18.3%), 기타(15.1%), 숙박·유흥업소(9.2%), 야외(3.5%), 상점·시장(3.4%), 사무실(2.3%), 공사장·창고·공지(2.1%), 기관(1.9%), 교통수단(0.8%) 순이다.

살인범죄를 포함한 전체 범죄 발생도가 가장 높은 장소는 노상(60.8%), 기타(11.1%), 집안(10.4%), 숙박·유흥업소(5.1%) 순으로 나타나 살인범죄 발생 장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최다 발생 지역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으로 나타났다.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3명, 안녕리에서 2명, 황계리·병점리에서 각 1명씩 살해돼 총 7명이 살해됐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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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