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최태원 광폭행보 막전막후

회장님 돌아오니 활기가 넘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역대 재벌 총수 중 최장인 2년7개월(926일)간의 긴 수형생활을 마치고 ‘광복절특사’로 돌아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고 경기활성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뉴 SK 비전’을 내놨다. 최 회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경영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주말도 반납한 채 광폭행보를 보이며 경영활성화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 13일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하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절제된 사면’이라고 강조했다. 다음날 14일 오전 0시5분께 경기 의정부교도소 광복절 특사 출소자 43명 중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손에 성경책을 들고 밝은 미소를 보였다. 926일 만이었다.

‘뉴 SK 비전’
투자·고용 확대
 
기업 총수 중 유일하게 사면 받은 김 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고 감사하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SK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SK그룹과 최 회장 가족들은 오너의 사면을 위해 팔을 걷어부쳤다. 특히 최 회장은 지난해 연봉 301억 가운데 세금을 제외한 187억원을 옥중 기부했다. 이번 사면과 복권으로 최 회장은 주요 계열사 등기 이사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은 출소 직후 본사인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 들러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그룹 경영진을 만났다. 연휴 기간이었던 15일과 16일에도 출근해 그룹의 위기 극복 현황과 국가 경제 활성화 기여방안, 창조경제혁신센터 현황 등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는 김 의장과 수펙스추구협의회 김영태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지동섭 통합사무국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도 위기를 극복해 온 구성원들에게 감사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최 회장이 풀려나면 종합검진을 받는 등 수감생활 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악화된 건강부터 챙길 것이란 전망이 많았으나 출소 직후부터 업무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면서 ‘책임경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SK그룹은 일단 최 회장의 출소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17일 최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쉴 시간이 없다”며 “절박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경영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날부터 본격적인 강행군에 돌입했다. SK그룹은 최 회장 주재로 첫 ‘확대 경영회의’를 열고 경제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산업계의 두뇌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현재 건설 중인 공장의 장비투자 및 2개의 신규공장 증설 등에 46조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 회장은 투자 집행시기를 앞당기고 계획보다 투자규모를 늘리는 ‘획기적 투자확대’ 방안을 주문했다. SK전략위원회에 반도체 분야 46조원 검토안에 에너지와 화학, 정보통신 부문 투자를 확대해야한다고 요청했다.
 
최 회장은 “경영위기 극복과 경제 활성화 관점에서는 현 경영환경의 제약요건에서 과감히 탈피해 투자시기를 앞당기고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등의 공격적 투자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 외에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 분야의 투자확대 방안도 빠른 시일 안에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경영여건, 힘든 환경 아래 내가 앞서서 풍상을 다 맞을 각오로 뛰겠다”면서 그룹의 전 구성원이 힘을 합칠 것을 당부했다.

926일 공백 무색
거침없는 강행군
 
SK그룹은 향후 수년간 반도체를 중심으로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 등 5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정철길 사장은 투자가 시급한 반도체 분야에서 향후 신규 공장 2곳을 완공할 때까지 46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현재 건설 중인 경기도 이천의 M14 반도체 생산라인의 장비투자와 2개의 신규공장 증설에 이 같은 규모의 금액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18일 최 회장은 계열사 공장이 아닌 대전과 세종시, 충북 등 3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선택했다. 대전·세종·충북 창조센터를 첫 현장 방문지로 택한 것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날 SK그룹은 “최 회장이 대전·세종센터에서 추진 중인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기반시설로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점검하고 확인하기 위해 창조센터를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대전 혁신센터를 찾아 “창조경제 분야에서도 현재 속도와 범위보다 더 큰 활성화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개소 당시 “창조경제의 성과가 조기에 나올 수 있도록 SK가 갖고 있는 전 역량을 다해 추진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이날 오전 대전 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 사무실을 찾아 직원들과 인사한 뒤 입주 업체들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광복절특사로 2년7개월만에 경영 복귀
쉬지 않고 바로 출근…무리한 일정 소화
 
최 회장은 일부 업체의 시연장면을 지켜보면서 “다음 번 목표가 무엇인가” “사업 모델 특징이 무엇인가” “기술은 좋은데 사업모델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등 다양한 질문을 건넸다. 이후 인큐베이팅을 받고 졸업을 앞둔 벤처기업 대표들과 1시간가량 간담회도 진행했다. 최 회장은 대전센터의 주요 시설을 둘러본 뒤 입주 벤처기업의 사무실에서 근무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오후에는 세종센터를 찾아 창조마을 시범사업의 성과와 향후 운영 계획을 점검했다. 세종센터는 지난해 10월 시작한 창조마을 시범사업의 성과를 발전시켜 농촌형 창조경제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과 에너지 기술을 접목시킨 첨단 농법을 개발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살기 좋은 농촌,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들고 있다.
 
최 회장은 세종센터 관계자들에게 “농업이 첨단산업을 만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농촌형 창조경제 현장”이라면서 “이런 모델이 전국과 해외로 확산될 수 있도록 농업의 첨단 산업화를 구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방침에 따라 대전과 세종에서 진행되는 ‘쌍끌이 창조경제’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그룹이 보유한 특허 기술 공유를 확대하고 에너지·화학·반도체 기술을 벤처기업의 사업화 모델에 이식하는 활동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최 회장은 바이오·신약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도 방문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에 산재한 만큼 각 센터들의 특장점을 벤치마킹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취지다.
 
최 회장은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 대전·세종센터와 연계해 창조경제 활성화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SK그룹이 발표한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인 ‘고용 디딤돌’ 프로젝트와 청년 창업지원 모델인 ‘청년 비상’ 프로그램에 대해 “혁신적인 접근”이라면서 “이른 시일에 성공모델을 만들어 확산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SK그룹은 청년들의 창업과 취업경쟁력 확보를 방향으로 일자리 프로그램을 기획, 내년부터 2년 동안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의 청년고용 종합대책 발표에 호응해 선제적으로 일자리 창출 2개년 프로젝트를 내놓는 등 재계 경제 활성화 동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쉴시간 없다는 
절박함 느낀다”
 
주 내용은 매년 취업을 원하는 청년 2000명씩 모두 4000명을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통해 분야별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대학과 공동으로 창업지원센터를 설립해 2만명을 교육시켜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SK그룹의 행보에 다른 대기업들도 움직이고 있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최 회장은 “경영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기업은 사회 양극화, 경제활력, 청년실업 등의 사회문제와 별개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육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기업인에게는 기업의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국가 경제 기여가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복 70년에 내가 (사면받아)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온 선배 세대와 국가유공자, 사회적 약자 등을 위해 기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글로벌 경영 보폭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오는 10월 SK종합화학의 울산 넥슬렌 공장 준공식을 열고 사빅의 모하매드 알마디 부회장과 회동한다. 최 회장의 오랜 지인인 알마디 부회장과 만나는 것은 지난 2011년 4월 중국 보아오포럼 이후 4년여 만이다. SK종합화학과 사빅은 지난달 5일 SK의 고기능 폴리에틸렌 브랜드인 넥슬렌 생산 판매를 위해 자산 7100억원 규모의 합작법인 SSNC 설립계약을 체결했다.
 
SK종합화학은 이미 지난해 사빅과 합작사업의 일환인 넥슬렌 공장을 완공하고, 생산한 제품을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알마디 부회장의 회동이 합작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2004년 12월 알 마디 부회장이 사업차 내한했을 때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이를 바탕으로 2011년 3월 알마디 부회장에게 자사의 넥슬렌 기술을 소개했다.
 
협상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비행기에 오른 최 회장은 10여차례 알마디 부회장을 직접 만나 협상타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당초 SK와 사빅은 울산의 넥슬렌 제1공장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제2공장 건립을 목표로 협상을 추진해왔으며, 최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옥중 로드맵 출소 후 곧바로 실현
사업 현장 둘러보고 대규모 투자
 

같은 날 SK하이닉스를 찾은 최 회장은 “그동안 위기 속에서도 열심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준 임직원들 덕분에 SK하이닉스가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그룹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해줘 자랑스러웠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임금 상승분의 일정액을 협력사 직원들을 위해 내놓기로 한 ‘임금공유제’와 같은 사회적 책임을 위한 임직원의 노력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SK하이닉스발 상생문화 확산도 주문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안에 3세대(48단) 256기가비트(Gb) eTLC(엔터프라이즈트리플레벨셀) 3D 낸드플래시의 개발을 완료하고 자사 상표를 단 SSD를 직접 출고하고 관련 소비자 시장에도 직접 뛰어들 전망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현장경영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 발굴과 경제활성화에 가장 중요한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점을 직접 현장 방문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도 강화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옥중에서 집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저서를 통해 소외계층이 자립해 기업을 일구는 게 국가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그 일환으로 최 회장은 ‘경제기적’을 이끈 선배 세대들의 복지를 위해 통 크게 10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SK그룹은 국가 발전에 기여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 노인층 주거복지 해결을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200억원, 내년에 400억원, 2017년 400억원을 순차적으로 기부한다. 특히 국가유공자와 독립유공자 후손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에 제안했다.
 
SK그룹 주요 계열사 주도로 사회적기업 모델을 발굴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경북장애청소년자립지원센터, 농촌공동체연구소 등을 지원 대상에 넣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들 기관이 제안한 사업에 1년간 총 5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할 예정이다. 장애청소년 자립 카페 및 바리스타 교육장, 농촌지역 다문화 여성 제빵 작업장, 요양원 세탁작업장, 북한이탈주민 패션상품 가공기업 등을 비즈니스 모델로 선정, 1년간 총 5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했다. 

국가경제에 기여
사회적 역할 강화
 
사회적기업 투자도 본격화된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고자 작년에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카이스트 청년창업투자지주를 만들었다. 청년 사회적기업가 5명을 올해 초 첫 투자 대상자로 선정했다.
 
출소 직후부터 전국 사업장을 도는 강행군에 나서며 현장경영을 이어가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최 회장을 두고 업계에서는 광복 70주년 특별 사면에 대한 보답차원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K그룹 임금피크제 로드맵
“정부 노동개혁에 동참”
 
SK그룹이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청년 고용확대 및 고용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 17일 SK그룹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데 이어 나머지 계열사들도 모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SK그룹은 이미 계열사의 90%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할 예정이지만, 다른 모든 계열사까지 대상으로 그룹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최근 노동 개혁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 천명에 따라 SK그룹도 청년 고용 확대 등을 위한 후속 조치로 임금피크제를 전 계열사에 도입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도입
이미 90% 조치 마무리 수순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17개사 모두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거나 도입을 완료했으며 SKC 계열과 워커힐도 수년 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황이다. 새로 SK그룹에 편입된 계열사나 일부 소형 계열사만 동참하면 그룹 전체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은 마무리되는 셈이다.
 
SK그룹은 다수의 계열사가 고령자법 개정 전부터 이미 정년을 60세로 정하고 있었으며, 정년 60세 미만인 회사는 고령자법 개정을 전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었다. SK이노베이션과 SK네트웍스, SK C&C 등은 정년을 60세까지 보장하고, SK텔레콤은 59세부터, SK하이닉스는 58세부터 매년 연봉을 전년보다 10% 줄여 책정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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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