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최태원 광폭행보 막전막후

회장님 돌아오니 활기가 넘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역대 재벌 총수 중 최장인 2년7개월(926일)간의 긴 수형생활을 마치고 ‘광복절특사’로 돌아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고 경기활성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뉴 SK 비전’을 내놨다. 최 회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경영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주말도 반납한 채 광폭행보를 보이며 경영활성화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 13일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하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절제된 사면’이라고 강조했다. 다음날 14일 오전 0시5분께 경기 의정부교도소 광복절 특사 출소자 43명 중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손에 성경책을 들고 밝은 미소를 보였다. 926일 만이었다.

‘뉴 SK 비전’
투자·고용 확대
 
기업 총수 중 유일하게 사면 받은 김 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고 감사하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SK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SK그룹과 최 회장 가족들은 오너의 사면을 위해 팔을 걷어부쳤다. 특히 최 회장은 지난해 연봉 301억 가운데 세금을 제외한 187억원을 옥중 기부했다. 이번 사면과 복권으로 최 회장은 주요 계열사 등기 이사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은 출소 직후 본사인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 들러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그룹 경영진을 만났다. 연휴 기간이었던 15일과 16일에도 출근해 그룹의 위기 극복 현황과 국가 경제 활성화 기여방안, 창조경제혁신센터 현황 등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는 김 의장과 수펙스추구협의회 김영태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지동섭 통합사무국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도 위기를 극복해 온 구성원들에게 감사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최 회장이 풀려나면 종합검진을 받는 등 수감생활 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악화된 건강부터 챙길 것이란 전망이 많았으나 출소 직후부터 업무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면서 ‘책임경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SK그룹은 일단 최 회장의 출소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17일 최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쉴 시간이 없다”며 “절박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경영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날부터 본격적인 강행군에 돌입했다. SK그룹은 최 회장 주재로 첫 ‘확대 경영회의’를 열고 경제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산업계의 두뇌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현재 건설 중인 공장의 장비투자 및 2개의 신규공장 증설 등에 46조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 회장은 투자 집행시기를 앞당기고 계획보다 투자규모를 늘리는 ‘획기적 투자확대’ 방안을 주문했다. SK전략위원회에 반도체 분야 46조원 검토안에 에너지와 화학, 정보통신 부문 투자를 확대해야한다고 요청했다.
 
최 회장은 “경영위기 극복과 경제 활성화 관점에서는 현 경영환경의 제약요건에서 과감히 탈피해 투자시기를 앞당기고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등의 공격적 투자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 외에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 분야의 투자확대 방안도 빠른 시일 안에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경영여건, 힘든 환경 아래 내가 앞서서 풍상을 다 맞을 각오로 뛰겠다”면서 그룹의 전 구성원이 힘을 합칠 것을 당부했다.

926일 공백 무색
거침없는 강행군
 
SK그룹은 향후 수년간 반도체를 중심으로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 등 5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정철길 사장은 투자가 시급한 반도체 분야에서 향후 신규 공장 2곳을 완공할 때까지 46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현재 건설 중인 경기도 이천의 M14 반도체 생산라인의 장비투자와 2개의 신규공장 증설에 이 같은 규모의 금액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18일 최 회장은 계열사 공장이 아닌 대전과 세종시, 충북 등 3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선택했다. 대전·세종·충북 창조센터를 첫 현장 방문지로 택한 것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날 SK그룹은 “최 회장이 대전·세종센터에서 추진 중인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기반시설로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점검하고 확인하기 위해 창조센터를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대전 혁신센터를 찾아 “창조경제 분야에서도 현재 속도와 범위보다 더 큰 활성화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개소 당시 “창조경제의 성과가 조기에 나올 수 있도록 SK가 갖고 있는 전 역량을 다해 추진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이날 오전 대전 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 사무실을 찾아 직원들과 인사한 뒤 입주 업체들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광복절특사로 2년7개월만에 경영 복귀
쉬지 않고 바로 출근…무리한 일정 소화
 
최 회장은 일부 업체의 시연장면을 지켜보면서 “다음 번 목표가 무엇인가” “사업 모델 특징이 무엇인가” “기술은 좋은데 사업모델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등 다양한 질문을 건넸다. 이후 인큐베이팅을 받고 졸업을 앞둔 벤처기업 대표들과 1시간가량 간담회도 진행했다. 최 회장은 대전센터의 주요 시설을 둘러본 뒤 입주 벤처기업의 사무실에서 근무중인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오후에는 세종센터를 찾아 창조마을 시범사업의 성과와 향후 운영 계획을 점검했다. 세종센터는 지난해 10월 시작한 창조마을 시범사업의 성과를 발전시켜 농촌형 창조경제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과 에너지 기술을 접목시킨 첨단 농법을 개발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살기 좋은 농촌,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들고 있다.
 
최 회장은 세종센터 관계자들에게 “농업이 첨단산업을 만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농촌형 창조경제 현장”이라면서 “이런 모델이 전국과 해외로 확산될 수 있도록 농업의 첨단 산업화를 구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방침에 따라 대전과 세종에서 진행되는 ‘쌍끌이 창조경제’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그룹이 보유한 특허 기술 공유를 확대하고 에너지·화학·반도체 기술을 벤처기업의 사업화 모델에 이식하는 활동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최 회장은 바이오·신약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도 방문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에 산재한 만큼 각 센터들의 특장점을 벤치마킹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취지다.
 
최 회장은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 대전·세종센터와 연계해 창조경제 활성화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SK그룹이 발표한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인 ‘고용 디딤돌’ 프로젝트와 청년 창업지원 모델인 ‘청년 비상’ 프로그램에 대해 “혁신적인 접근”이라면서 “이른 시일에 성공모델을 만들어 확산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SK그룹은 청년들의 창업과 취업경쟁력 확보를 방향으로 일자리 프로그램을 기획, 내년부터 2년 동안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의 청년고용 종합대책 발표에 호응해 선제적으로 일자리 창출 2개년 프로젝트를 내놓는 등 재계 경제 활성화 동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쉴시간 없다는 
절박함 느낀다”
 
주 내용은 매년 취업을 원하는 청년 2000명씩 모두 4000명을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통해 분야별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대학과 공동으로 창업지원센터를 설립해 2만명을 교육시켜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SK그룹의 행보에 다른 대기업들도 움직이고 있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최 회장은 “경영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기업은 사회 양극화, 경제활력, 청년실업 등의 사회문제와 별개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육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기업인에게는 기업의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국가 경제 기여가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복 70년에 내가 (사면받아)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온 선배 세대와 국가유공자, 사회적 약자 등을 위해 기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글로벌 경영 보폭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오는 10월 SK종합화학의 울산 넥슬렌 공장 준공식을 열고 사빅의 모하매드 알마디 부회장과 회동한다. 최 회장의 오랜 지인인 알마디 부회장과 만나는 것은 지난 2011년 4월 중국 보아오포럼 이후 4년여 만이다. SK종합화학과 사빅은 지난달 5일 SK의 고기능 폴리에틸렌 브랜드인 넥슬렌 생산 판매를 위해 자산 7100억원 규모의 합작법인 SSNC 설립계약을 체결했다.
 
SK종합화학은 이미 지난해 사빅과 합작사업의 일환인 넥슬렌 공장을 완공하고, 생산한 제품을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알마디 부회장의 회동이 합작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2004년 12월 알 마디 부회장이 사업차 내한했을 때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이를 바탕으로 2011년 3월 알마디 부회장에게 자사의 넥슬렌 기술을 소개했다.
 
협상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비행기에 오른 최 회장은 10여차례 알마디 부회장을 직접 만나 협상타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당초 SK와 사빅은 울산의 넥슬렌 제1공장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제2공장 건립을 목표로 협상을 추진해왔으며, 최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옥중 로드맵 출소 후 곧바로 실현
사업 현장 둘러보고 대규모 투자
 

같은 날 SK하이닉스를 찾은 최 회장은 “그동안 위기 속에서도 열심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준 임직원들 덕분에 SK하이닉스가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그룹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해줘 자랑스러웠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임금 상승분의 일정액을 협력사 직원들을 위해 내놓기로 한 ‘임금공유제’와 같은 사회적 책임을 위한 임직원의 노력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SK하이닉스발 상생문화 확산도 주문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안에 3세대(48단) 256기가비트(Gb) eTLC(엔터프라이즈트리플레벨셀) 3D 낸드플래시의 개발을 완료하고 자사 상표를 단 SSD를 직접 출고하고 관련 소비자 시장에도 직접 뛰어들 전망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현장경영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 발굴과 경제활성화에 가장 중요한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점을 직접 현장 방문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도 강화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옥중에서 집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저서를 통해 소외계층이 자립해 기업을 일구는 게 국가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그 일환으로 최 회장은 ‘경제기적’을 이끈 선배 세대들의 복지를 위해 통 크게 10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SK그룹은 국가 발전에 기여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 노인층 주거복지 해결을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 200억원, 내년에 400억원, 2017년 400억원을 순차적으로 기부한다. 특히 국가유공자와 독립유공자 후손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에 제안했다.
 
SK그룹 주요 계열사 주도로 사회적기업 모델을 발굴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경북장애청소년자립지원센터, 농촌공동체연구소 등을 지원 대상에 넣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들 기관이 제안한 사업에 1년간 총 5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할 예정이다. 장애청소년 자립 카페 및 바리스타 교육장, 농촌지역 다문화 여성 제빵 작업장, 요양원 세탁작업장, 북한이탈주민 패션상품 가공기업 등을 비즈니스 모델로 선정, 1년간 총 5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했다. 

국가경제에 기여
사회적 역할 강화
 
사회적기업 투자도 본격화된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고자 작년에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카이스트 청년창업투자지주를 만들었다. 청년 사회적기업가 5명을 올해 초 첫 투자 대상자로 선정했다.
 
출소 직후부터 전국 사업장을 도는 강행군에 나서며 현장경영을 이어가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최 회장을 두고 업계에서는 광복 70주년 특별 사면에 대한 보답차원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K그룹 임금피크제 로드맵
“정부 노동개혁에 동참”
 
SK그룹이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청년 고용확대 및 고용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 17일 SK그룹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데 이어 나머지 계열사들도 모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SK그룹은 이미 계열사의 90%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할 예정이지만, 다른 모든 계열사까지 대상으로 그룹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최근 노동 개혁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 천명에 따라 SK그룹도 청년 고용 확대 등을 위한 후속 조치로 임금피크제를 전 계열사에 도입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도입
이미 90% 조치 마무리 수순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17개사 모두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거나 도입을 완료했으며 SKC 계열과 워커힐도 수년 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황이다. 새로 SK그룹에 편입된 계열사나 일부 소형 계열사만 동참하면 그룹 전체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은 마무리되는 셈이다.
 
SK그룹은 다수의 계열사가 고령자법 개정 전부터 이미 정년을 60세로 정하고 있었으며, 정년 60세 미만인 회사는 고령자법 개정을 전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었다. SK이노베이션과 SK네트웍스, SK C&C 등은 정년을 60세까지 보장하고, SK텔레콤은 59세부터, SK하이닉스는 58세부터 매년 연봉을 전년보다 10% 줄여 책정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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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판 사건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은 또다시 정치적 격변기를 맞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서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 111일 만이자, 탄핵 심판 변론 종결 38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번 탄핵 심판은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것이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명시했다. 이날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국회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 판단했어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이 취임한지 2년 후 이뤄진 총선서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며 “결과가 피청구인 의도에 부합하지 않아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했으면 안 됐다”고 판단했다. 문 권한대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계엄을 선포해 국가긴급권을 남용하는 역사를 재현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초월해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상실하고 일반인 신분이 됐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도 퇴거해야 한다. 다만, 사저 경호 문제 등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즉시 관저를 비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헌재 파면 결정 이틀 뒤에 청와대 관저를 나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바 있다. 이번 파면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대부분 박탈당했다.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통상 최대 15년(10년+5년 연장)까지 경호를 받을 수 있으나, 임기만료 전 퇴임한 경우에는 최대 10년(5년+5년 연장)으로 줄어든다. 전직 대통령 예우 모두 박탈 정치권 ‘장미 대선’ 현실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다면 받았을 대통령 연금 수령 자격도 상실됐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보수연액(월급여의 8.85배)의 95%를 12개월로 나눠 받는다. 올해 윤 전 대통령 연봉은 약 2억6258만원(세전)이고, 이 기준에 따른 매월 연금액은 약 1533만원(연 기준 1억8397만원)이다. 이 밖에 기념사업 지원과 개인 사무실 및 보좌진 지원도 중단됐으며, 사후 국립묘지 안장 대상서도 제외된다. 공직 취임의 기회도 제한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4조 2항은 ‘탄핵 결정에 의해 파면된 사람은 결정 선고가 있은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하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선고된 날로부터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에게 남은 건 형사재판 절차 뿐이다. 형사재판은 탄핵 심판 결과와 별개로 그대로 진행되는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은 오는 14일 첫 정식 공판을 받는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상실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장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헌법 제68조는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일을 기준으로 하면 60일째 되는 날은 오는 6월3일이므로 이날까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에 따라 ‘오말육초’(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탄핵 결정으로 파면됐고, 정확히 60일째인 5월9일에 조기 대선이 실시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선례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도 60일째 되는 날인 6월3일에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선 시점이 6월3일보다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60일째 되는 날에서 가장 가까운 수요일인 5월28일이 조기 대선일로 유력하다는 예상도 나왔다. 어느 날짜에 선거가 치러지든,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탄핵 정국이 조기 대선 정국으로 급변했고, 이제 차기 권력을 향한 대권 경쟁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야 잠룡들은 탄핵 정국 속에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물밑 경쟁을 벌여왔다. 여권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정권 재장출의 목표를 두고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며 독주 체제를 굳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도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힌다.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없이 당선 즉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이날 “국가 안보와 외교에 공백이 없도록 굳건한 안보 태세를 유지하겠다”며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다음 정부가 차질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