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식 통일 청사진 완전해부

‘당근과 채찍’으로 대화 이끌어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25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후반기를 시작하게 되는 박근혜정부는 전반기보다 더욱 숨 가쁜 국정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외교부문에 있어서는 9·10월 연이어 빅2 정상을 만나는 일정이 예정돼있다. 8·15기념식을 전후로 박 대통령은 ‘통일’을 언급하며 만남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쁜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 초에 있을 중국 ‘항일전쟁·반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이하 전승절)’ 방문을 시작으로 10월에는 ‘메르스 사태’ 이후 무기한 연기됐던 방미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연내에 한·중·일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등 외교부문에 있어서 광폭행보를 펼치고 있다. 각국 정상들과 나눌 대화의 최대 화두는 ‘북한’이 될 것이라고 외교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정상회담
북한 압박

최근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이하 통준위)에 참석해 한 발언이 화제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이 지난 7월10일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열린 통준위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 참석해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며 한 참석자의 입을 빌려 보도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참석자 중 한 명은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 또한 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전했다.

통준위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발언이) 북의 급변사태를 시사한 것은 아니다’라며 확산을 경계했지만, 최근 8·15기념식을 전후로 박 대통령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발언을 아끼지 않고 있어 발언의 취지에 대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15일에 있었던 광복절 70주년 경축사 또한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로 완성될 것”이라며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이루고 민생을 해결하며 평화·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갈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설 도중 박 대통령은 ‘7·4남북공동성명’을 언급하는 등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고조되고 있는 남북 간 긴장관계로 인해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북한전문가 대부분의 생각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도발이 자행된 이후 북한은 줄곧 ‘조작된 모략극’이라고 말하고 있어 국내 여론은 악화 일로에 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달 초 있었던 이희호 여사 방북 때 북한은 “박근혜정부와는 남북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뜻을 전했다. 지난 20일 자행된 북한의 ‘포격도발’은 이러한 남·북 갈등을 절정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중국 전승절
김정은 초대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당국에서 추진하던 이산가족명단교환 및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공원 설치 등에 대한 제안도 잇따라 거절당하고 있어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박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북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제안이 담길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지뢰도발로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외교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해법을 찾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박 대통령의 방중·방미 소식으로 이러한 전망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전승절에 맞춰 중국을 방문한다. 청와대는 9월3일로 예정된 전승절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주석과의 만남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정상의 만남에서 다양한 얘기가 오고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북핵’ 문제도 그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북한의 제3차 핵실험 및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전승절에 맞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박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은 박 대통령에게 전승절 참석을 청한데 이어 김 위원장에게도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원했던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장 환영할 만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아직 북한 측에서 방문을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어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투트랙, ‘도발엔 단호, 대화엔 협력’
한·중·일 정상, ‘전승절’서 만남 추진


<연합뉴스>를 통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북·중 간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면서 “핵문제를 둘러싼 북·중 간 긴장과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10월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사태로 미뤄뒀던 미국 방문을 시작한다. 그달 16일에는 오바마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계획돼 있다. 당초 지난 6월16일 성사될 예정이었으나,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일정이 연기된 바 있다.

한·미 정상 간 대화의 화제는 단연 북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가 밝혔듯 두 국가 간 동맹국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등 대북공조, 동북아 안보 등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현지 소식을 전하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는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이번 10월 방미의 주 의제는 북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쇼프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이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 한반도 긴장 완화가 지지부진하다는 점, 김정은 체제가 아직 불안정하다는 점을 들어 한·미 정상이 나눌 대화의 핵심은 북한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한·미 정상회담
대북 공조 확인

2개월여에 걸쳐 방중·방미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여권의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는 정상급 인사들의 해외 방문에 대해 “아무리 급해도 1개월 전에는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며 “통상적으로 2~3개월 전에는 방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은 남·북 관계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지금보다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10월10일에 북한 노동당 70주년 행사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전례를 봤을 때 북한은 이날 ‘4차 핵실험’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못해도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등 무력시위를 벌일 것이란 게 북한전문가들 대부분의 예상이다. 따라서 남·북 긴장관계가 지금보다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0월 방미, 오바마와 북핵 현안 논의

10·10 노동당 70주년, 북 도발 예고

박 대통령은 이러한 도발에 맞서 한·중·일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전승절에 맞춰 아시아 국가들 간의 외교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연내 3자 정상회담이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한민국은 의장국으로서 10월 내 추진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3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가급적 올해 말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3자 회담이 성사되면 이후 ‘한·중’ ‘한·일’ 정상회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성사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한·일 과계 개선이라는 화두도 있어 박근혜정부는 일본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3자 회담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한·중·일 3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외교적 고립이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연내 추진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일 회담
북한 고립

최근 박근혜정부는 북한에 대해 ‘도발엔 단호, 대화엔 협력’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지뢰도발이 있었을 당시 “북한의 행동은 명백한 군사도발”이라고 말한 반면, 8·15경축사에서는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 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이 단적인 예다.

3자 회담 또한 같은 기조로 해석된다. 북한을 압박·고립해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낸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발 빠르게 진행될 외교전에서 박 대통령은 과연 청사진대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지, 그 출발점이 될 전승절에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전승절 참석, 국민의 생각은?

국민의 50% 이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에 참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중국으로부터 전승절에 초대받은 박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해야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 50% 이상인 51.8%가 ‘참석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반면 ‘불참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20.6%를 보였으며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27.6%로 조사됐다.

국민 50%↑ “박 대통령 전승절 참석해야…”

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참석 의견이 많이 나왔다. 50대의 경우 64.8%가, 60세 이상의 경우는 64.0%가 참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연령인 20대에서는 참석 의견이 32.1%, 불참 의견이 39.1%로 나타나 오히려 행사에 불참해야 한다는 응답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지난 18일 발표된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주간 정례조사에서는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메르스 사태 이후 지난 8주 동안 33~37%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해왔던 지지율이 8월 첫째 주엔 전주대비 4.6%포인트 오른 39.5%를 기록했고, 둘째 주엔 39.9%를 기록하면서 40%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이 같은 지지율 상승을 두고 전문가들은 지난 광복절과 관련된 행사의 영향인 것으로 보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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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