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발목 잡을 초대형 악재 넷

지금은 잘나가는데…앞날은 안갯속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형 악재들이 돌출했기 때문이다. 연비와 탈세, 결함 논란이 그것. 거기에 ‘강력한’ 국산 새 모델이 속속 출시되고 있어 수입차에 제동이 걸릴 지 주목된다.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악재에도 수입차 비중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간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승용차 등록대수 기준)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7803대)보다 36.4% 증가한 2만4275대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기록 
못 웃는 사정은?
 
이는 지난 3월 기록한 2만2280대보다 1995대 많은 월간 기준 역대 최다 판매기록이다. 지난 5월과 비교해서도 32%나 늘었다. 상반기 누적 수입차 판매대수 역시 지난해(9만4263대)보다 27.1% 증가한 11만9832대로, 반기 기준 역대 최다 판매기록을 경신했다.
 
브랜드별로 보면 BMW가 6월 한 달간 5744대를 팔아 압도적으로 1위다. 폭스바겐(4321대), 메르세데스-벤츠(4196대), 아우디(2150대), 포드(1150대) 등이 2∼5위를 차지했다. 이어 랜드로버(825대), MINI(785대), 렉서스(727대), 도요타(711대), 푸조(678대), 크라이슬러(602대), 포르셰(479대), 혼다(464대), 닛산(461대), 볼보(316대), 인피니티(254대), 재규어(253대) 등의 순이었다.
 

모델은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이 1062대가 판매돼 6월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로 꼽혔다. 폭스바겐 골프 2.0 TDI(1006대)와 BMW 520d(863대) 등도 인기가 많았다. 배기량별로는 2000cc 미만이 1만3886대(57.2%), 2000∼3000cc 8176대(33.7%), 3000∼4000cc 1630대(6.7%), 4000cc 이상 557대(2.3%)로 나타났다. 
 
 
수입차 관계자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신차 효과, 물량 확보 등에 힘입어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올해 수입차 판매대수는 역대 최다인 20만∼25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형 악재들이 돌출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악재는 연비 논란이다. 제조사나 소비자에게 모두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연비는 판매와 직결될 수 있어 더욱 더 그렇다. 논란은 일부 수입차들이 연비를 실제보다 10% 넘게 ‘뻥튀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최근 수입차 업체들은 유로6 모델의 공인 복합연비를 일제히 내렸다. 유로6 환경기준에 맞춰 출시한 폭스바겐, 푸조, BMW 등의 신차 연비가 기존 모델보다 낮아진 것.
 
폭스바겐은 골프 1.6 TDI 블루모션의 연비를 리터당 16.1㎞라고 표기했다. 기존 연비가 리터당 18.9㎞였던 것을 감안하면 14.8%나 떨어진 것이다. 지난 5월 국내 시장에 출시한 뉴 푸조 308 1.6도 이전 모델의 연비는 리터당 18.4㎞였지만, 새 모델은 16.2㎞로 11% 줄었다. 
 
‘불티나는 외제차’ 상반기 역대 최다 판매
전망이 그리…“제동 걸린다” 비관론 고개
 

하반기 국내 출시될 푸조 508 2.0 블루HDi 역시 연비가 리터당 13㎞로, 이전 모델(14.8㎞)보다 떨어졌다. 지난달 출시된 BMW 118d는 연비를 18.7㎞에서 7% 감소한 17.4㎞로 조정했다. BMW의 경우 일부 모델의 연비를 실제보다 작은 타이어로 측정해 연비 향상을 위해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들 차종은 유로6 기준을 적용한 국내 모델 연비에 못 미친다. 현대차의 2016년형 쏘나타 1.7과 기아차 신형 K5 1.7의 연비는 각각 16.8㎞다. 이제 ‘유럽 차들이 연비 좋다’는 말은 옛말이 된 셈이다. 특히 수입차들이 그동안 연비를 과장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입차 업계는 “신 모델을 출시하면서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부품들이 구 모델과 달라 연비가 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그동안 연비를 부풀리다 국내 연비 검증 강화를 앞두고 수정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오는 11월부터 국내 연비 검증을 강화할 예정이다. 수입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연비검증대상인 자기인증적합조사의 차량과 함께 안전도평가 대상 차량까지 연비 검증을 확대하기로 했다. 자기인증적합조사는 제작사가 자동차관련 법규와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스스로 인증해 판매하는 자기인증제도를 정부가 사후관리 차원으로 보완하는 제도.
 
현재 자기인증적합 대상 수입차는 아우디 A7 50 TDI, 렉서스 ES 300h, 재규어 XF 2.2D, 푸조 3008, 지프 컴패스, 모토스타코리아 이륜차 등 6종이다. 여기에 추가로 5종이 늘었다. 안전도 평가 대상 수입차는 폴크스바겐 폴로, 미니 미니쿠퍼, 인피니티 Q50, 포드 토러스, BMW X3 등 총 11종이 연비검증에 들어간다.
 
검증 방식도 까다로워 진다. 자동차 연비 사후검증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각각 하다 지난해부터 국토부가 독자적으로 맡고 있다. 기존엔 도심연비와 고속도로연비를 합산한 복합연비만 따졌다. 앞으론 개별연비로 판정한다. 

연비 속속 내려
‘뻥튀기’ 의혹
 
국토부와 산업부, 환경부의 연비 공동고시에 따라 도심연비와 고속도로연비 모두 제작사 신고연비와의 차이가 허용 오차범위(5%) 안에 있어야 한다. 조사 차량은 1대로 하되 1차 조사에서 연비 부적합이 의심되면 3대를 추가 조사해 평균값으로 연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1차 조사는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2차 조사는 산업부와 환경부 산하 5개 기관이 맡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 업체들이 연비를 부풀리는 꼼수를 막기 위해 차종을 늘리고 판정 기준을 강화했다”며 “관련법은 오는 11월부터 시행되므로 변경안은 내년 연비 조사 때부터 적용된다”고 전했다.
 
 
탈세 문제도 수입차 업계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오너나 경영진이 고가의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세금을 탈루하는 편법이 도마에 올랐는데,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수입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업자 업무용으로 팔린 차량은 10만5720대로 조사됐다. 이렇게 팔린 찻값만 모두 7조4700억원에 달한다. 1억원 이상 수입차 1만4979대 중 83.2%(1만2458대), 2억원 이상 수입차 1353대 중 87.4%(1183대)가 업무용으로 판매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이른바 ‘슈퍼카’의 90% 이상이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된다. 업무용 차량은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라 차량 가격은 물론 취득세 등 각종 세금과 보험료, 기름값 등 유지비를 5년간 무제한으로 사업자 경비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오너나 그 일가, 또는 경영진이 고가 수입차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데 있다.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명의로 수입차를 구매한 뒤 개인용도로 타는 것은 결국 세금 탈루란 지적이다. 경실련은 “수입차에 주어지는 세제혜택이 해마다 2조5000억원에 이른다”며 “고가 수입차가 무늬만 법인차로서 사실상 탈세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대안으로 ‘캐나다 모델’을 제시했다. 캐나다는 업무용 차량에 대해 3만 캐나다달러(약 2700만원)까지만 경비처리를 해준다. 경실련은 “무제한인 업무용 차량 경비처리 기준을 3000만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00만원 초과금액에 대해선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연간 약 9266억원의 세금징수가 가능하다는 게 경실련의 계산이다.
 
경실련 측은 “국내 법인차 증가와 수입차 판매 증가는 무관하지 않다”며 “업무용 차량에 지원되는 세금혜택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김동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법인이 구입·리스·렌트한 업무용 차량에 대해 법인세법상 필요경비 인정액(손금산입)을 3000만원 한도로 제한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입차 시장의 판매 감소가 불가피하다. 수입차 10대 중 8∼9대가 법인에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업무용 자산취득에 대한 손금산입제도를 악용, 법인 명의로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마치 절세의 수단으로서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법인의 업무용 차량에 대해 찻값은 물론 유지비까지 전액을 비용처리 해주는 과도한 세제혜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비·탈세·결함 잇단 논란 ‘삼중고’
‘강력한’ 국산 새 모델들 출동 대기
 
해외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업무용 차량 구입비용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미국은 차량값이 1만8500달러(약 2000만원)를 넘으면 세금공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일본은 차량 가격 300만엔(약 2600만원)까지만, 호주는 5만7466호주달러(약 5000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처리해 준다.
 
김 의원은 “선진국처럼 세금공제의 한도를 정함으로써 최고급 차량을 법인 명의로 구매해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수입차 업계엔 두 가지 악재뿐만 아니라 결함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16일 혼다코리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 한국지엠에서 수입·제작·판매한 승용자동차에서 제작결함이 발견돼 자발적으로 시정조치 한다고 밝혔다.
 
 
리콜 규모는 ▲혼다의 CR-V 2730대(2003년 3월14일∼2006년 12월28일 제작), ACCORD 1647대(2003년 10월6일∼2007년 6월29일) ▲재규어의 재규어XK 44대(2011년 7월2일∼2015년 1월13일), 디스커버리4 947대(2014년 8월21일∼2015년 2월12일), 레인지로버 1094대(2005년 3월14일∼2012년 7월26일) ▲포드의 이스케이프 24대(연료펌프 결함·2014년 2월14일∼2014년 3월7일), 이스케이프 311대(계기판 결함·2014년 3월13일∼2014년 12월10일), 익스플로어 1171대(2011년 2월1일∼2012년 11월30일) ▲지엠의 말리부 1358대(2013년 9월3일∼2014년 2월19일) 등 8개 차종 총 9326대다.
 
혼다 CR-V와 ACCORD는 충돌로 인한 에어백(일본 타카타 부품) 전개시 과도한 폭발압력으로 발생한 내부 부품의 금속 파편이 운전자 등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규어XK는 시동이 꺼진 후에도 전면 차폭등이 꺼지지 않아 배터리가 방전될 가능성이, 디스커버리4는 ABS 자기진단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레인지로버는 전륜 브레이크호스 균열 또는 파열로 인해 브레이크액이 누유돼 제동성능이 저하될 가능성이 발견됐다.
 
포드 이스케이프는 연료펌프 내부 모터 불량으로 연료압력이 낮아져 주행 중 시동이 꺼질 가능성과 속도, 엔진회전수, 연료량, 냉각수온도 등을 표시하는 계기판이 내부 프로그램 오류로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익스플로어의 경우 차문 잠금 스프링 장치의 결함으로 차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거나 주행 중 열릴 위험이 있다. 지엠 말리부는 연료장치를 제어하는 연료컨트롤 유닛 내부 회로 부품 불량으로 엔진시동 불량 또는 주행 중 시동이 꺼질 수 있어 리콜 조치했다.
 
 
차시장 관계자는 “7월 들어 국내에 리콜된 차량은 1만3421대로 크게 늘었다”며 “이중 국내 생산된 한국지엠 차량(1358대)을 제외할 경우 수입차의 리콜 비중은 90% 이상에 달한다”고 말했다.
 
업무용 지원 제한
판매 급증에 제동
 
수입차 리콜은 올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결함신고센터에 따르면 1∼6월 상반기 리콜된 수입차는 202개 차종 9만17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E시리즈 등 3만4756대로 가장 많았다. 이어 BMW가 1만238대, 포드가 5094대, 크라이슬러가 3867대, 닛산이 3827대였다. 제작사는 한국GM이 가장 많은 21만7884대를 리콜했다. 크루즈, 라세티 프리미어, 올란도 등 3개 차종 9만9985대를 브레이크호스 누유로 리콜하고, 말리부와 알페온 등 7만8615대를 안전벨트 결함으로 시정조치한 바 있다.
 
수입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진 사이 국내차들은 전방위 공세에 나설 태세다. ‘강력한’국산 새 모델이 속속 출시될 예정이라 수입차 판매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올 하반기 창사 이래 최대 수량인 11종의 신차를 국내외 시장에 출시할 방침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준중형과 중형을 비롯해 대형차, SUV, 상용차, 친환경차 등도 선보인다. 자동차 업체는 보통 분기당 1∼2개 신차를 출시한다. 11종이나 되는 많은 모델이 쏟아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 승부수를 걸었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우선 7월 LF쏘나타 1.6 터보, 1.7 디젤 등 쏘나타 2016년형 모델과 신형 K5를 동시에 출시했다. 이들 중형차가 선봉에 선 모양새. 국내 중형차 시장의 입지를 굳힌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쏘나타의 엔진 모델을 7개, K5는 5개로 만들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높였다. 
 
특히 연비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대기아차가 새로 내놓은 디젤 모델의 연비는 ℓ당 16.8㎞(16인치 기준). 독일의 대표 디젤 세단인 BMW 520D(16.1㎞), 폭스바겐 파사트(14.6㎞)보다 높다.
 
3분기엔 아반떼의 신형 모델도 나온다. 아반떼는 지난해 한국 단일 차종 중 최초로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다. 세계 판매 모델 중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먼저 국내에 출시한 뒤 내년 상반기 미국시장에 내보낼 계획이다. SUV도 출격한다. 현대차의 크레타는 7월 인도 출시를 시작으로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판매를 확대한다. 상반기 국내 출시된 신형 투싼은 8월 미국, 9월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 기아차의 신형 스포티지는 3분기 먼저 국내에 선보인 뒤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다.
 
대형차와 상용차, 친환경차도 등장한다. 현대차는 대형 플래그십 모델인 신형 에쿠스를 연말에 선보인다. 현대차의 미니버스 쏠라티와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기아차의 K5 하이브리드 모델 등도 하반기 출시된다. 

리콜도 악영향
토종 11개 출시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다양한 신차들이 출시될 계획”이라며 “판매 확대 및 수익성 향상을 동시에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인 수입차 업계에 악재들이 돌출해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불거진 논란과 문제, 국내차 공세 등으로 발목을 잡힐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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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