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면세점 전쟁' 7사7색 필승카드

불 보듯 뻔한 엔딩…누가 먹어도 뒤탈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대기업 몫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은 단 2장이다. 도전자는 HDC신라면세점, 현대백화점, 롯데면세점, 신세계그룹, 한화갤러리아, SK네트웍스, 이랜드그룹 등 총 7곳으로 3.5대1의 경쟁률을 나타내고 있다. 각 기업들은 저마다 승부수를 띄우며 기대하는 눈치다. 

 
유통업계 최대 화두인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선정에 대한 최종 일정이 오는 10일로 확정됐다. 관세청은 9∼10일까지 사업계획 발표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한다. 면세점에 출사표를 던진 대기업 7곳은 저마다 평가점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단 1점 차이로도 희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의 서울시내 면세점 심사 평가 기준을 보면 ▲관리역량(250점) ▲지속가능성 및 재무건전성 등 경영능력(30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 공헌도(150점) ▲기업이익 사회 환원 및 상생협력 노력(150점) 등 총 1000점 만점이다.
 
이중 경영능력이나 관리능력은 사실상 엇비슷하다.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금력과 재무구조, 인력, 인프라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업이익 사회 환원 및 상생협력 노력’에서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면세점 쟁탈전의 핵심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그룹은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을 따낼 경우 면세점 합작법인 현대DF를 통해 영업이익의 20%를 매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중소중견기업들과 손잡고 면세점업계 유일의 ‘상생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데 이은 두 번째로 이런 계획을 내놓았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면세점 특허기간인 5년 동안 300억원가량을 사회에 환원하게 될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 상장기업의 평균 기부금 비율은 영업이익의 1% 수준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면세점이 국가 특허사업으로 공익적 성격이 강한 만큼 영업이익의 20% 사회환원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기부금액을 지역축제 개발, 학술연구, 장학금 지원 등 관광인프라 개발 지원과 한 부모 가정과 불우아동 후원, 장애아동 수술비 지원 등 소외계층지원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또 현대백화점은 중소·중견기업의 무이자·저리 대출 등 금융 지원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도 만들 계획이다. 중소·중견기업과의 동반성장 계획인 ‘석세스투게더(Success Together)’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프로그램은 ▲우수 중소중견기업 발굴과 판로 개척 ▲협력사 자금 금융지원과 대금지급 조건 개선 ▲협력사 기술 지원 ▲협력사 복리후생 ▲협력사와의 소통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신세계]
 
신세계그룹은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매출의 2.7% 정도 수준의 금액을 기부금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세계 면세점과 백화점을 둘러보고 남대문시장으로 관광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향후 남대문시장 환경개선, 시장 마케팅 및 관광 콘텐츠 강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사업지원, 백화점과 면세점을 연계한 시장 우수상품 발굴 등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7개중 2개 선정 ‘경쟁률 3.5대1’
저마다 승부수 띄우고 승리 확신
 
신세계그룹은 남대문시장상인회, 중소기업청, 서울시, 중구와 협약을 맺기도 했다.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정부의 ‘글로벌 명품시장 육성’ 사업에 15억원의 지원금을 내놓기도 했다. 남대문시장의 콘텐츠 개발에 그간의 유통 노하우를 적극 제공하기로 한 셈이다. 
 
 
[한화]
 

사회환원 부문에서는 한화갤러리아가 선두다.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226억원을 벌어 10억원을 기부해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 5.54%를 기록했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집행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수준인 5%를 유지하는 한편 지역 상권과 주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공헌 활동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역 복지관을 대상으로 한 한화예술더하기 교육프로그램, 복지시설 내 태양광 발전 설비 무상설치, 사회적기업 한화B&B의 채용 연계형 바리스타 교육 등을 추진하기 위해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SK]
 
SK네트웍스는 영업이익의 2∼4%(50억 수준)를 기부금 형식으로 납부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동대문 상권 개발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2000~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주변 평화시장을 비롯한 전통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다. 또한 SK네트웍스는 서울시의 ‘매뉴팩쳐 서울’과 서울디자인재단의 ‘도제식 패션·봉제 동반육성’ 사업 지원을 위해 600억원의 패션 소상공인 동반성장 펀드를 조성해 K패션의 글로벌 명품화를 적극 선도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랜드]
 
이랜드그룹은 면세점 순이익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부금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랜드그룹은 중국 최대 여행사인 최대 여행사인 완다그룹을 통해 매년 100만명의 VIP 고객을 유치해 연평균 매출 1조원, 순이익 1000억원을 달성해 5년간 500억원을 기부금으로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랜드그룹은 2002년부터 10년 이상 순이익의 10%를 마치 기독교의 십일조처럼 사회에 환원해왔다.
 
“1점 차이로 희비 갈릴 수도”
평가점수 높이기 막판 총력전

 
[롯데]
 
롯데그룹은 상생협력 우수기업, 가족친화기업, 사회적 기업 등 다수 인증을 받으며 지역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이번 시내면세점 입찰을 위해서 롯데면세점 측은 피트인 면세타운 운영을 통한 ‘상생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올해만 주변지역 및 소외계층을 위해 180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동대문 지역 디자이너 후원, 성동구의 사회적 약자의 자립 지원, 문화·예술 콘텐츠 창작자 및 예술가 지원, 사회적 기업의 상품 판로 개척 등이 활동 내용들이다.
 
[HDC신라]
 
HDC신라면세점은 ‘K-디스커버리 협력단’을 발족한다. K-디스커버리 협력단은 민관 네트워크로 한국의 재발견을 통해 서울과 쇼핑 중심의 관광 산업을 대한민국 전역으로 확장시켜 관광객 2000만 시대를 앞당기자는데 뜻을 함께한 이들로 구성돼 있다. HDC신라면세점이 구상한 관광활성화의 골자는 지자체가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면 HDC신라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코레일은 이들을 전국으로 실어나른다는 것이다.
 
중소·중견기업 전용관도 국내 최대인 3700㎡(1120평) 규모로 마련한다. 중소·중견기업 전용관에는 국산 화장품, 국산 핸드백, 지자체특산품, 한국식품명인, 중소기업전용 정책매장, 한국수산물코너, 코레일 특화매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HDC신라면세점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용할 금액은 200억∼300억원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면세점 입찰을 위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면세점 입찰' 막판 변수, 주차장 좁으면 말짱 도루묵?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사업자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형버스 주차장 확보 등 교통 문제가 막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가뜩이나 주차난에 교통체증으로 도심 주변이 혼잡한 상황에서 면세점 후보업체들이 후보지를 도심권으로 정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이후 급증한 중국인 관광객으로 서울 남산과 남대문, 명동, 면세점 주변 지역이 넘쳐나면서 극심한 교통 정체와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등으로 시민들이 각종 불편을 겪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대다수가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한다. 이를 수용할 주차공간을 비롯한 제반시설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면세점 가운데 매출이 가장 많은 소공점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버스가 평일 200여대, 주말 300여대에 달한다. 하지만 소공점 주차장에 한 번에 댈 수 있는 대형버스 수는 15대 정도다. 최대 2시간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하루 5∼6번 자리를 바꾼다고 가정할 때, 최대 수용능력은 75∼90대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주변은 늘 주차공간을 찾지 못하는 관광버스로 넘쳐나고 교통 혼잡이 발생하고 있다.
 
인근 광화문 부근 동화면세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동화면세점 부근은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관광버스 주차공간을 찾느라 늘 혼잡하다. 지난 4월 말까지 소공동과 명동 일대의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단속 건수는 월평균 152건에 달한다. 지난해 월평균 76건(총 912건)과 비교하면 100% 이상 증가한 셈이다.
 
특히 서울 등 대도시 면세점 등의 주차장은 대형버스를 댈 수 없어 이미 심각한 단계를 넘어섰다. 서울시 교통 혼잡비용이 연간 10조 원에 육박하고 이 중 약 6조∼7조원이 도심권 교통 혼잡비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서울시는 대표적 도심교통 혼잡구역인 남대문로와 소공로를 포함하는 6대 교통 혼잡지역을 지정해 교통관리 대책을 강화하고 해당 지역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교통수요 예측, 교통유발 부담금 징수 등 수요·공급 차원의 다각도 관리를 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관광버스 주차장을 571대에서 927대로 크게 확대하기로 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도심에서 버스 주차 시설 확대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 없어서다. 이에 서울시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신규 면세점 허가 때 관광버스 주차공간 확보를 우선 판단기준으로 고려해 달라고 건의했다.
 
서울시가 발간한 ‘2013 서울 통행 속도 보고서’에 따르면 숭례문-한국은행-명동-을지로-청계천-광화문을 잇는 남대문로의 평균속도는 16.6km로, 서울 전체 도로의 일평균 통행속도인 26.4km보다 9.8km나 느리다. 이런 상황에서 시내 면세점이 추가로 도심에 생기면 더 많은 중국인이 더 긴 시간 동안 도심 일대에 머물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기본적인 주차 시설이 완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 도심은 1년 내내 주차장이 될 수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물론 서울 시민들도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시내면세점 허가를 내줄 관세청은 심사 평가 요소 중 그 어떤 부분보다 대형버스 주차시설 확보 등 교통 체증과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 세심한 심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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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