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 딴 법안들 '심층진단'

툭하면 나오는 ‘국민정서법’ 실효성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법에 빗대어 ‘국민정서법’이라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여론이 법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대표적으로 ‘김영란법’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름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안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론에 편승한 설익은 법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의 이름, 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 사건 피해자의 이름 등이다. 주로 정부·정치권·언론이 법안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법안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 중 입법에 성공한 법안은 6개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 ‘전두환법’(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한 추징 강화), ‘오세훈법’(기업의 정치후원금 기탁 금지 등), ‘유병언법’(상속·증여된 범죄자 재산 몰수), ‘조두순법’(성폭력 범죄 심신 장애 감경 조항 엄격 적용), ‘최진실법’(친권의 자동 부활 금지) 등이다.
 
논의되다 폐기된 법안은 3개다. ‘정봉주법’(허위사실 공표죄의 성립 요건 강화), ‘나경원법’(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강화), ‘김장훈법’(고액 기부자의 노후 생계가 어려워지면 생활보조금 지원) 등이다.
 

국회 안팎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5개다. ‘김부선법’(아파트 관리비 투명 공개 제도화), ‘신해철법’(의료분쟁 시 강제로 조정 절차 개시), ‘김우중법’(범죄 수익 추징, 민간으로 범위 확대), ‘이학수법’(재벌가 관행적 세습과 불법수익 차단), ‘장그래법’(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이다.
 
 
이 같은 법안들이 고개를 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입법에 성공한 법안부터 알아본다. 최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정치인과 연예인, 드라마 주인공까지…
유명인 이름 따고 반짝 홍보효과 노려
 
김영란법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으나 여야가 막판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의결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안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법안은 1년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두환추징법은 2013년 공무원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몰수·추징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제3자로까지 추징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법안이다.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검사가 관계인의 출석 요구 및 진술 청취,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에 대한 서류 등 제출요구, 특정금융거래정보와 과세정보, 금융거래정보 제공 요청, 기타 사실조회나 필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해 쉽지만…

설익은 경우 태반
 
오세훈법은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의미한다. 기업 등 법인의 정치후원금 금지와 지구당 폐지 등을 골자로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차단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에 마련된 법안이다. 당시 정치관계법 개정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라는 여론이 높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개혁적인 입법이 이뤄진 것이다. 기업활동과 소비시장 위축 및 과잉입법 우려도 있었지만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켜 우리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4년 발의된 유병언법은 사망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상속·증여돼 추징할 수 없게 된 허점을 보완해 제3자에게도 추징판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 재산이 자식 등에게 상속·증여된 경우라 할지라도 몰수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몰수·추징 판결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과세 정보,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요청, 압수, 수색, 검증영장의 도입 등 재산추적수단도 강화했다. 하지만 제3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실효성 논란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조두순법은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감형을 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심신미약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공소시효를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경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
 
심신장애자보다 정도가 약한 심신미약자는 형이 감경돼 왔다. 법관이 전문가 감정 없이 피고인에 대해 이 규정을 적용, 형량을 깎아주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12월 등교 중이던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영구장애를 입힌 조두순이 전문가 감정 절차 없이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을 감경 받은 것이 조두순법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진실법은 부모가 이혼한 후 친권자였던 한쪽 부모가 사망한 경우 친권이 나머지 한쪽 부모에게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정법원의 심사를 거쳐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자를 결정한다는 제도다. 기존 친권자동부활제가 폐지된 것이다.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한 후 친권이 아버지 조성민씨에게 넘어가자 그동안 남매를 키워온 외할머니에게도 친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최진실법이다. 2013년 7월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정봉주법은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법안이다.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개정안으로 허위경력 등 공표죄와 허위 사실 공표죄의 구성요건에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된 것이 핵심이다.
 
허위경력 등 공표 행위와 허위 사실 공표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그 행위가 공공성 또는 사회성이 있는 공적 관심사안에 관한 것으로써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야당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 요건을 강화하는 정봉주법을 내놓았다.

이슈마다
졸속입법
 

나경원법도 정봉주법과 마찬가지로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와 관련해 논의된 법안이다. 나경원법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 방송, 신문, 통신(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바일메신저 포함) 등의 방법으로 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 배포를 목적으로 선전문서를 소지한 자에 대하여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봉주법과 나경원법은 상반된 내용으로 맞부딪히며 정치권의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지만 두 법안은 논의 중 폐기됐다.
 
김장훈법은 110억원이 넘는 기부를 하고도 정작 본인은 전세 아파트에 사는 가수 김장훈씨의 사례처럼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이 노후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기부연금제도가 논의됐으나 18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별 진전이 없었고 결국 논의 중 폐지됐다.
 
각종 논란에 부딪혀 진전없이 증발하기도
인격권 침해 등 문제의 소지 적지 않아…
 
 
현재 국회 안팎에서 다섯 개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부선법은 배우 김부선씨의 아파트 난방비 의혹 폭로를 계기로 계량기를 조작하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계량기를 위·변조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행법에는 공동주택 난방장치의 관리와 요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난방계량장치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태다.
 
 
신해철법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의료 분쟁 시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고인의 사망 이후 이 법안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돼 왔으나 의료계가 강제조정법이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 현재 법 제정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우중법은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타인명의로 숨긴 재산에 대해 몰수나 추징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이다. 김우중법은 앞서 설명한 전두환법의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을 일반 범죄로 확대한 것이다. 김우중법이 통과되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같은 기업인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도피,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범죄단체 수익 등 중대범죄는 검사가 차명재산임을 확인한 경우 추징할 수 있다.
 

이학수법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토대로 기업의 불법 이익을 국가로 환수하는 것이 골자다. 대법원은 2009년 4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학수법을 두고 재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위헌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장그래법은 35세 이상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장그래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미생>의 비정규직 주인공의 이름이다. 미생 원작자 윤태호 작가는 방송에서 장그래법에 대해 “만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법안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만 24세 이하의 주류광고를 금지하는 일명 ‘김연아법’이 등장했다. 영국·중국·일본 등 해외에서도 화제다. 지난달 27일 영국 국영방송 BBC와 28일 중국 관영 <중국국제방송> 및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자체기사는 “한국 국회가 만 24세 이하 젊은이의 주류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 제정에 나섰다”면서 “국민적 피겨스타 김연아가 3년 전 22세의 나이로 맥주 광고에 나온 것이 도화선이 됐다. 한국 국회는 당시 김연아의 광고가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만 24세 이하는 어떠한 주류 광고에도 출연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있다. 그런데 여론의 반발이 만만찮다.

누더기 입법
입법취지 왜곡·변질
 
이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격권 침해 논란도 있었다. 2008년 법무부는 ‘혜진예슬법’(13세 미만 아동 성폭행 및 살인 시 사형·무기징역에 처하는 법 개정안)을 내놨다. 당시 법무부는 “살해된 두 아동을 애도하며 사회적 경각심과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 어머니가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헤아려 달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쳐 개정안은 혜진예슬법이라 불리지 않았다. 성범죄 가해자의 음주 감경 조항 적용을 엄격히 하는 ‘나영이법’도 같은 이유로 종적을 감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묻지마 법안 발의 실태
10건 중 7건 계류 중
 
19대 국회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법률안 발의 건수가 18대 국회 법률안 전체 발의 건수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일까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1만3902건이다. 18대 국회 4년간 발의한 법률안은 1만3913건으로 불과 11건 적은 숫자다. 19대 국회에서 매일 20건이 넘는 법률안이 발의된 셈이다.
 
15대 국회 때는 1951건이었다. 16대 국회 들어 2507건으로 늘었고 17대 국회에서는 7489건으로 더욱 늘었다. 그러다가 18대 국회 들어서는 1만건을 넘었다. 19대 들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1만2285건이다. 발의된 법률안 중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률안은 9319건으로, 미처리율은 67.0%다. 의원 입법은 현재 8939건이 처리되지 않아 미처리율은 72.8%를 기록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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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