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 딴 법안들 '심층진단'

툭하면 나오는 ‘국민정서법’ 실효성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법에 빗대어 ‘국민정서법’이라 부른다. 최근 들어서는 여론이 법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대표적으로 ‘김영란법’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름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안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론에 편승한 설익은 법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의 이름, 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 사건 피해자의 이름 등이다. 주로 정부·정치권·언론이 법안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법안들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 중 입법에 성공한 법안은 6개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 ‘전두환법’(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한 추징 강화), ‘오세훈법’(기업의 정치후원금 기탁 금지 등), ‘유병언법’(상속·증여된 범죄자 재산 몰수), ‘조두순법’(성폭력 범죄 심신 장애 감경 조항 엄격 적용), ‘최진실법’(친권의 자동 부활 금지) 등이다.
 
논의되다 폐기된 법안은 3개다. ‘정봉주법’(허위사실 공표죄의 성립 요건 강화), ‘나경원법’(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강화), ‘김장훈법’(고액 기부자의 노후 생계가 어려워지면 생활보조금 지원) 등이다.
 

국회 안팎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5개다. ‘김부선법’(아파트 관리비 투명 공개 제도화), ‘신해철법’(의료분쟁 시 강제로 조정 절차 개시), ‘김우중법’(범죄 수익 추징, 민간으로 범위 확대), ‘이학수법’(재벌가 관행적 세습과 불법수익 차단), ‘장그래법’(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이다.
 
 
이 같은 법안들이 고개를 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입법에 성공한 법안부터 알아본다. 최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정확한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정치인과 연예인, 드라마 주인공까지…
유명인 이름 따고 반짝 홍보효과 노려
 
김영란법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으나 여야가 막판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의결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안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 법안은 1년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두환추징법은 2013년 공무원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몰수·추징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제3자로까지 추징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법안이다.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검사가 관계인의 출석 요구 및 진술 청취,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에 대한 서류 등 제출요구, 특정금융거래정보와 과세정보, 금융거래정보 제공 요청, 기타 사실조회나 필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해 쉽지만…

설익은 경우 태반
 
오세훈법은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의미한다. 기업 등 법인의 정치후원금 금지와 지구당 폐지 등을 골자로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차단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에 마련된 법안이다. 당시 정치관계법 개정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라는 여론이 높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개혁적인 입법이 이뤄진 것이다. 기업활동과 소비시장 위축 및 과잉입법 우려도 있었지만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켜 우리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4년 발의된 유병언법은 사망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재산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상속·증여돼 추징할 수 없게 된 허점을 보완해 제3자에게도 추징판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 재산이 자식 등에게 상속·증여된 경우라 할지라도 몰수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몰수·추징 판결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과세 정보,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요청, 압수, 수색, 검증영장의 도입 등 재산추적수단도 강화했다. 하지만 제3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실효성 논란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조두순법은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감형을 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심신미약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공소시효를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경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
 
심신장애자보다 정도가 약한 심신미약자는 형이 감경돼 왔다. 법관이 전문가 감정 없이 피고인에 대해 이 규정을 적용, 형량을 깎아주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12월 등교 중이던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영구장애를 입힌 조두순이 전문가 감정 절차 없이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을 감경 받은 것이 조두순법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진실법은 부모가 이혼한 후 친권자였던 한쪽 부모가 사망한 경우 친권이 나머지 한쪽 부모에게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정법원의 심사를 거쳐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자를 결정한다는 제도다. 기존 친권자동부활제가 폐지된 것이다.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한 후 친권이 아버지 조성민씨에게 넘어가자 그동안 남매를 키워온 외할머니에게도 친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최진실법이다. 2013년 7월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정봉주법은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법안이다.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개정안으로 허위경력 등 공표죄와 허위 사실 공표죄의 구성요건에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된 것이 핵심이다.
 
허위경력 등 공표 행위와 허위 사실 공표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그 행위가 공공성 또는 사회성이 있는 공적 관심사안에 관한 것으로써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야당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 요건을 강화하는 정봉주법을 내놓았다.

이슈마다
졸속입법
 

나경원법도 정봉주법과 마찬가지로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와 관련해 논의된 법안이다. 나경원법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 방송, 신문, 통신(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바일메신저 포함) 등의 방법으로 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 배포를 목적으로 선전문서를 소지한 자에 대하여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봉주법과 나경원법은 상반된 내용으로 맞부딪히며 정치권의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지만 두 법안은 논의 중 폐기됐다.
 
김장훈법은 110억원이 넘는 기부를 하고도 정작 본인은 전세 아파트에 사는 가수 김장훈씨의 사례처럼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이 노후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 기부연금제도가 논의됐으나 18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별 진전이 없었고 결국 논의 중 폐지됐다.
 
각종 논란에 부딪혀 진전없이 증발하기도
인격권 침해 등 문제의 소지 적지 않아…
 
 
현재 국회 안팎에서 다섯 개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김부선법은 배우 김부선씨의 아파트 난방비 의혹 폭로를 계기로 계량기를 조작하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계량기를 위·변조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행법에는 공동주택 난방장치의 관리와 요금 부과의 근거가 되는 난방계량장치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태다.
 
 
신해철법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의료 분쟁 시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고인의 사망 이후 이 법안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돼 왔으나 의료계가 강제조정법이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 현재 법 제정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우중법은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타인명의로 숨긴 재산에 대해 몰수나 추징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이다. 김우중법은 앞서 설명한 전두환법의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을 일반 범죄로 확대한 것이다. 김우중법이 통과되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같은 기업인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도피,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범죄단체 수익 등 중대범죄는 검사가 차명재산임을 확인한 경우 추징할 수 있다.
 

이학수법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토대로 기업의 불법 이익을 국가로 환수하는 것이 골자다. 대법원은 2009년 4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학수법을 두고 재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위헌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장그래법은 35세 이상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장그래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미생>의 비정규직 주인공의 이름이다. 미생 원작자 윤태호 작가는 방송에서 장그래법에 대해 “만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법안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만 24세 이하의 주류광고를 금지하는 일명 ‘김연아법’이 등장했다. 영국·중국·일본 등 해외에서도 화제다. 지난달 27일 영국 국영방송 BBC와 28일 중국 관영 <중국국제방송> 및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자체기사는 “한국 국회가 만 24세 이하 젊은이의 주류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 제정에 나섰다”면서 “국민적 피겨스타 김연아가 3년 전 22세의 나이로 맥주 광고에 나온 것이 도화선이 됐다. 한국 국회는 당시 김연아의 광고가 청소년의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만 24세 이하는 어떠한 주류 광고에도 출연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있다. 그런데 여론의 반발이 만만찮다.

누더기 입법
입법취지 왜곡·변질
 
이름 딴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격권 침해 논란도 있었다. 2008년 법무부는 ‘혜진예슬법’(13세 미만 아동 성폭행 및 살인 시 사형·무기징역에 처하는 법 개정안)을 내놨다. 당시 법무부는 “살해된 두 아동을 애도하며 사회적 경각심과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 어머니가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헤아려 달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쳐 개정안은 혜진예슬법이라 불리지 않았다. 성범죄 가해자의 음주 감경 조항 적용을 엄격히 하는 ‘나영이법’도 같은 이유로 종적을 감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묻지마 법안 발의 실태
10건 중 7건 계류 중
 
19대 국회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법률안 발의 건수가 18대 국회 법률안 전체 발의 건수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일까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1만3902건이다. 18대 국회 4년간 발의한 법률안은 1만3913건으로 불과 11건 적은 숫자다. 19대 국회에서 매일 20건이 넘는 법률안이 발의된 셈이다.
 
15대 국회 때는 1951건이었다. 16대 국회 들어 2507건으로 늘었고 17대 국회에서는 7489건으로 더욱 늘었다. 그러다가 18대 국회 들어서는 1만건을 넘었다. 19대 들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1만2285건이다. 발의된 법률안 중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률안은 9319건으로, 미처리율은 67.0%다. 의원 입법은 현재 8939건이 처리되지 않아 미처리율은 72.8%를 기록하고 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