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차남 전성시대 막후

왕관 뺏긴 형님들…조용히 야인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장자승계 원칙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장남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차남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 관측된다. 그룹 내 실세로 부상한 차남, 3남들 때문에 뒤로 밀려난 장남들의 비운의 그림자를 짚어봤다.

 
삼성, 현대차, LG, 롯데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의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어서면서 각 기업의 상속과 경영권 승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 경영권 승계에서 장남이 우위를 점한다. 이를 장자승계원칙이라 일컫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광모 LG상무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장남이 아님에도 경영 수완을 발휘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차남, 3남 회장들이 적지 않아 눈길을 끈다.

점차 무너지는
장자승계 원칙
 
글로벌 기업인 삼성도 장자승계원칙을 깬 기업 중 하나다. 현재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도 형을 제치고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삼성은 고 이병철 창업주가 경영권을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승계하면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후 장남 이맹희 회장은 CJ, 차남 고 이창희 회장은 세한미디어, 장녀 이인회 회장은 한솔,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 등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 분할 이후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2년 큰형 이맹희 회장과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차남 경영 시대의 막을 올린 이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이다. 고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에 입사 후 태평양제약 사장과 태평양 기획조정실 등을 거치면서 부친으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형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을 제치고 그룹 경영권을 잡았다. 서 회장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며 회사 실적을 높였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매출액은 4조원을 넘어섰다. 중국시장을 개척해 4000억원이던 회사를 10배 이상 키웠다. 반면 장남 서 회장은 건설 계열사 일부만을 물려받았다.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회장도 비슷한 경우다. 형인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이 하이트진로(당시 조선맥주)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하는 듯했지만 동생인 박 회장이 아버지인 고 박경복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후계구도가 바뀌었다.
 
식품업계에서는 삼립식품 창업주인 고 허창성 회장의 차남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장남 허영선씨는 부친으로부터 삼립식품을 물려받았지만 리조트 사업 투자 실패로 1997년 부도를 맞았다. 반면 차남 허영인 회장은 삼립식품의 자회사였던 샤니를 대규모 유통체인 업체 SPC그룹으로 성장시키면서 2002년에는 형의 회사였던 삼립식품까지 인수했다.
 
장자승계 원칙 옛말…능력 위주 선발
금수저 물었어도 능력 없으면 ‘아웃’
 
한라그룹도 차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고 정인영 창업주는 장남 정몽국씨를 1989년 부회장에 임명하며 한라중공업, 한라시멘트, 한라레미콘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을 맡겼다. 하지만 95년 차남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에게 총괄경영권을 쥐어주고 정몽국씨를 미국 지사장으로 내보냈다. 후계 갈등 때문에 한때 정몽국씨가 동생을 상대로 한라시멘트 등 주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형제간 다툼 양상을 벌였지만, 2009년 정몽국씨가 본인 소유의 한라건설 지분을 처분하면서 일단락됐다.
 
동원그룹은 기업 모체를 차남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차남 승계와 달라 눈길을 끌었다. 동원그룹은 금융은 장남, 식품은 차남이 가지는 방식으로 후계 작업을 완료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은 일찌감치 금융 사업을 맡아 2003년 동원금융지주 사장으로 부임했다. 이후 그룹에서 분리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고 한국금융지주를 맡고 있다. 차남 김남정 부회장은 2004년 부친으로부터 지분 증여를 통해 식품 사업을 물려받았다. 이후 2013년에는 동원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장자승계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조짐이 보이는 기업은 롯데그룹이다. 당초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는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 롯데 퇴출로 신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확정된 분위기다.


형보다 나은
‘아우 회장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월 일본롯데 계열사 세 곳에 이어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됐다. 한국롯데 계열사 등기임원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말 롯데상사 이사직에서 물러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월 롯데건설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으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롯데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롯데알미늄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안한 상태다. 롯데알미늄은 2월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 재선임 안건을 다루지 않았다.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임원직 유지 여부도 안갯속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3월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그룹 내 장악력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롯데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호텔롯데는 일본롯데 측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신동빈 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경영권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 신동빈 회장은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과 KT렌탈 인수전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또 존 필립 키 뉴질랜드 총리와 만나 뉴질랜드 수출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등 그룹 경영전반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을 가늠케 할 분수령은 오는 6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롯데알미늄 등기이사직이 만료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재선임에 실패한다면 차남 후계구도는 더욱 명확해진다.
 
대성산업 역시 후계구도가 장남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의 장남 김정한 사장이 최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3남인 김신한 사장에게 경영권이 쥐어지는 모양새다. 김정한 사장은 자신이 대표이사직을 맡아온 임플란트 업체 라파바이오 경영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한 사장의 이번 사임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대성산업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감에 따라 후계구도를 조기에 굳히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형보다 잘나가는 아우들
차남·3남 경영수업 매진
 
3남 김신한 사장은 2013년 초 김정한 사장보다 먼저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후 대성산업의 건설·유통사업부문을 맡아 자산매각과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주도해왔다. 김신한 사장은 지난해 11월 대성산업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후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성산업가스 사장을 맡고 있다. 김신한 사장의 대성산업 지분율은 0.07%로 부친 김영대 회장(0.32%)에 이어 개인 주주 가운데는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성산업의 지주회사인 대성합동지주 지분은 0.48%를 보유하고 있어 0.39%를 보유하고 있는 김정한 사장보다 높다.
 
김영대 회장의 차남 김인한씨는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성산업의 모태인 대성그룹은 2001년 창업주인 고 김수근 회장이 별세한 후 그룹이 분리돼 장남인 김영대 회장이 대성산업을 기반으로 대성합동지주를 경영하고 있다. 차남 김영민 회장은 서울도시가스를, 3남인 김영훈 회장은 대구도시가스를 기반으로 대성홀딩스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아직 후계구도가 정확히 나오지 않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이다. 차남 조현범은 한국타이어 사장이다. 그룹을 지배하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율은 각각 19.32%와 19.31%로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타이어 외에 다른 사업이 없던 한국타이어가 세계 2위 자동차용 에어컨·히터 기업인 한라비스테온공조에 이어 국내 1위 렌터카 회사인 KT렌탈 인수전에 뛰어들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인수합병이라고 하지만 장남과 차남 간 후계 구도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복잡한 지분 관계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다음 후계구도에

쏠리는 세간의 눈
 
효성그룹 장남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변호사가 떠난 뒤 장남 조현준 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렸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3남 조현상 부사장이 끊임없이 지분을 인수하고 있어서다. 현재 장남과 3남이 보유한 효성의 지분은 각각 10.87%와 10.47%로 엇비슷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무조건적인 장남 우선주의 보다는 경영 능력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세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현재 재계 3~4세들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서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단 얘기다. 자칫 방심하다간 동생들에게 왕관을 넘겨줘야할 수도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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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