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사’ 장진호 차명재산 추적

공중에 뜬 4000억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소주하면 ‘두꺼비’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진로그룹은 국내 주류시장을 휘어잡으며 재계 19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최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도피생활에 따른 스트레스와 상실감 등으로 사망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지만 뭔가 미심쩍다.

 
한때 재계순위 19위에 올랐던 진로그룹의 장진호 전 회장이 향년 63세로 중국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지난 6일 주중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숨을 거뒀다. 한국대사관 측은 그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장 전 회장의 시신은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지난 5일 베이징에서 화장됐다.

외형 넓히다 
IMF 때 몰락
 
장 전 회장은 숨지기 하루 전 지인에게 ‘괴롭다’는 표현을 쓰면서 도피생활의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과거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와 중국으로 출국한 뒤 도피생활을 이어왔다.
 
장 전 회장의 사망소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장학엽 진로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장 전 회장은 현재 주류업계에서 각각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주 ‘참이슬’과 맥주 ‘카스’를 국내 대표 브랜드로 키워내며 주류시장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키웠다.
 

국내 소주 시장은 1960년대까지 진로와 삼학이 양분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70년대 초 세금포탈 사건으로 삼학이 몰락한 뒤부터는 진로의 독주가 이어졌다. 진로소주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소주 3병을 사는 사람에게만 진로소주 1병을 팔기도 했다. 급기야 77년엔 진로소주 빈 병에 다른 소주와 물을 섞은 가짜 진로소주를 유통시키던 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진로그룹의 모태는 1924년 고 장학엽 회장이 평남 용강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다. 진천양조상회의 상징은 ‘원숭이’였다. 원숭이 좌우로는 쌀이 있었다. 이후 창업주는 51년 사사명을 ‘부산동화양조’로 변경한 뒤 소주 ‘금련’을 생산했다. 52년에는 부산 ‘구포양조’를 설립했다. 54년에는 서울에서 ‘서광주조’를 설립하고 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했다. 이때 원숭이가 ‘두꺼비’로 바뀌었다. 진로라는 이름은 66년에 탄생했다. 서광주조는 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 75년부터 진로라는 브랜드를 사용했다.
 
진로그룹은 거침없이 성장했다. 한때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재계 순위 20위권에 오르며 업계를 긴장케 했다. 그러나 무리한 사세 확장이 장 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진로그룹의 화려한 행보는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꺾였다.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진로그룹은 97년 7월 프로농구단 ‘진로매카스’를 SK텔레콤에 매각했다. 99년에는 자회사 진로쿠어스맥주도 오비맥주에 매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힘썼지만 악화된 경영 상태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진로그룹은 참이슬, 석수, 퓨리스는 하이트로 넘겼고 발렌타인 위스키도 페르노리카에 팔았다.
 
두꺼비 소주 히트치고 10여년 도피생활
한때 재계 19위 ‘주류킹’ 중국서 사망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 등을 통해 한국증권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을 통해 공중분해됐다. 2004년 4월에는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장 전 회장의 진로 지분 전량이 소각됐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아 징역 2년6월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장 전 회장은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전달했다가 1996년 8월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장 전 회장은 2005년부터 기약 없는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와 중국을 떠돌며 현지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과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사업을 통해 틈틈이 기회를 노렸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졌고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거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못해 한국에는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렀다.
 
2013년 장 전 회장은 2000년대 초 회사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차명으로 사들인 진로의 부실채권 4000억원어치를 몰래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로 전직 진로그룹 재무 담당 이사인 오모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바 있다. 진로그룹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2002년 오씨를 통해 진로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고 고소장을 통해 밝혔다.

회사 망치고 
화려한 생활
 
당시 장 전 회장은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 150억원 등 총 897억원을 들여 진로 부실채권을 사들였다”며 “총 5800억원어치를 액면가의 10∼20%대 가격에 사들인 뒤 오씨에게 채권 관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H사, C사, K사 등 차명회사가 동원됐다는 게 장 전 회장의 주장이다. 자신이 2003년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자 오씨는 이 중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빼돌렸다는 것이었다.
 
고소사건의 시작은 장 전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타계 후 88년 진로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 열을 올렸다. 취임 첫해 진로유통센터 개장을 시작으로 89년 종합광고업 진출(새그린), 연합전선인수, 조선신약 인수, 건설업 진출(진로건설), 91년 통조림 제조업체 펭귄인수(진로종합식품), 92년 진로쿠어스맥주 설립, 94년 진로 베스토아 설립과 위스키 사업 진출 등 계열사를 대폭 늘렸다. 이렇게 사업 보폭을 넓히다 보니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및 지급보증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들 계열사는 지원에 비해 경영성과가 부진했다. 2조원이 넘는 자금 중 회수되는 금액은 일부였다. 결국 97년 외환위기를 정통으로 맞으면서 부도 위기를 맞았지만 정부가 그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시켜 ‘진로 살리기’에 나섰다. 이때 금융권으로부터 800여억원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진로그룹은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후 일부 계열사는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됐고, 일부는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파산을 예방할 목적으로 채무 정리에 관하여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맺는 강제 계약) 결정을 받았다.
 
채무원금 상환을 5년 동안 유예 받는 게 진로의 화의조건이었다. 진로종합유통 등 7개 계열사는 자본잠식 상태가 심각해 제3자에 매각했다. 진로건설 등 7곳은 파산선고 혹은 폐업됐다. 1999년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넘어갔고, 진로 발렌타인은 해외기업에 인수됐다. 당시 고소장대로라면 그룹 주력사인 진로를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장 전 회장은 화의 중이던 진로의 부실채권들을 사모아 최대 채권자가 됐다. ‘재집권’ 시나리오로 풀이되기에 충분했다.
 
2년전 전직 재무담당 임원 고소
차명채권 4000억원 빼돌린 혐의
재판 결과는?…흐지부지 마무리 
 
5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에 성공한 장 전 회장의 재집권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는 듯 했지만 2003년 9월 장 전 회장이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면서 차질을 빚었다.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5개월여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5년6월의 싱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4개월 뒤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로 떠났다.
 

당시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인 2002년부터 이미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다.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현지 이름도 취득한 상태였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찬삼락으로 살면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현지에서는 ‘진로은행’으로 통했다. 19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진로그룹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과 함께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장 전 회장이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Hun Mana)의 비호 덕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로비 대상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 언론 등을 장악하고 있었다. 장 전 회장과 훈마나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훈센 총리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며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은행 매각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고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2012년 2월에는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이 한 언론을 통개 공개됐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이다양광’이라는 게임업체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체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2013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세금을 너무 많이 물려 한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장 전 회장을 고액 세금 체납자로 분류해 관리 중이었다.

갑자기 사망
의문점 없나
 
장 전 회장은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이지만 해외에서 화려한 도피생활을 했다. 그런데 장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앞서의 고소 건과 관련된 4000억원대 돈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도대체 이 돈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걸까.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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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