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떠나는 세상 여행

교통카드 달랑 한 장만 들고 떠나요!

용산역 ‘이벤트광장’·서울역 ‘열린콘서트홀’ 등 공연
경복궁·한옥마을 등 역사기행·맛집 찾는 재미도 쏠쏠
시민들 호응 커 지역 문화공간으로 거듭나
청계천·습지공원 등 휴식공간으로 다양화


지하철은 정확한 이동 수단인 동시에 저렴한 여행 수단이기도 하다. 런던, 파리, 도쿄, 홍콩 등 지하철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매년 수 만명에서 수십 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어 지하철을 이용해 자유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들 유명 도시 못지 않게 서울 지하철도 일찌감치 유용한 여행 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교통 체증 걱정도, 기름 값 걱정도 없이 지하철 노선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지하철로 떠나는 여행’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문화·예술이 흐르는 지하철

1호선 용산역 ‘이벤트광장’과 서울역 ‘열린콘서트홀’에서는 1년 내내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뮤지컬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을지로입구역, 사당역, 서울대역, 선릉역 등 지하철 역사 7곳에도 상설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잡아 시민이 참여하는 쌍방향 문화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재즈연주자, 국악연주자, 포크송 가수, 오카리나 연주자, 마술 공연, 어린이 밸리댄스단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지하철 예술 무대에 올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5호선 광화문과 공덕역 등에 자리한 상설 공연장에서도 포크송 라이브 공연과 연극, 노래,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이 선보인다.

3호선 남부터미널역은 과거 화물 터미널로 사용됐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예술의전당과 가까운 역’이라는 점을 강조해 벽화에 ‘문화와 예술’을 담았다. 우리 민족 춤과 국악 연주를 표현한 ‘국악 연주도’와 ‘민속춤’을 타일로 표현했다.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을지로3가역은 과거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의 성을 따서 역 이름을 지었다. 2호선과 3호선을 갈아타는 길목에는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도’를 커다랗게 그려 넣어 웅장한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4호선 미아삼거리역은 원래 장위동과 종암동, 돈암동 세 방면으로 갈라지는 지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승강장 벽면에는 색유리로 화려하고 추상적인 ‘밤나무골’을 그린 벽화가 있다.

3호선 교대역은 인근에 서울교육대학교가 있어 ‘교대역’으로 불린다. ‘교육의 중심지’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 역에는 ‘훈민정음’과 ‘서당풍경’이 벽화로 표현돼 있다. 

5호선 김포공항역 에스컬레이터 옆 노란 벽면의 ‘직녀가 꿈에서 본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전승 놀이인 칠교판 놀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6호선 동묘역은 천장에 수 십개 연이 매달려 있다. ‘연’이라는 주제의 작품으로 대보름 연 놀이를 통한 무한한 꿈과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5호선 왕십리역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달픈 삶과 희망을 엇갈린 명암으로 표현한 ‘노래하는 색’을 벽면에 전시했다.

역사기행

1호선과 3호선, 5호선이 연결되는 종로 3가역에는 종묘와 창경궁이 자리한다. 그리스 아테네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대한민국 서울에는 종묘가 있다. 이 두 건축물은 모두 신(神)을 기리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이다.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태조 3년(1394년) 12월에 착공, 이듬해 9월 완공됐다. 완공 직후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창경궁은 15세기 성종 때 3명의 대비(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세운 궁궐로 종묘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충무로역(3호선과 4호선 교차)에 내리면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을 구경할 수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조선시대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한양 5경’으로 불렸던 곳으로 정자와 연못, 나무로 꾸며진 전통 정원에 한국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각종 동식물이 살고 있는 생태 공원으로 충무로역에서 내려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3호선 안국역에서는 운현궁, 북촌한옥마을, 창덕궁을 모두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현궁은 조선 고종의 잠저(潛邸: 왕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인 동시에 흥선대원군의 정치 활동 근거지였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북촌은 조선시대에 왕족이나 고관대작이 거주했으며 860채의 한옥이 밀집된 고급 주거지였다. 지금의 북촌은 도심 주거에 맞게 개량된 한옥들과 박물관, 공방 등이 모여 있다. 부적과 민화를 볼 수 있는 ‘가회박물관’, 북촌에서 수집한 근대의 생활물건을 전시한 ‘북촌생활사박물관’ 외에도 ‘세계장신구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3호선 경복궁역은 역 이름처럼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유적지를 볼 수 있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북쪽으로는 북악산이 둘러싸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있다.

1호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동구릉은 1408년 조선 태조의 건원릉터로 쓰인 이후 9기(基) 17위(位)의 왕과 왕비를 안장한 곳이다. 건원릉, 현릉(문종과 비 현덕왕후), 목릉(선조와 비 의인왕후), 휘릉(인조의 계비 장령왕후), 원릉(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유릉(익종과 신정황후) 등 9개의 능이 있다.

지하철역 인근 도심 휴식 공간

5호선 광화문역에서 만날 수 있는 청계천은 서울 강북의 중심가를 흐르는 10.92㎞의 하천이다. 지난 2005년 복원 공사를 마친 후 물길이 다시 열려 지금까지 7600만명의 관광객과 시민이 찾았다. 시작점인 청계 광장에서 4m 높이의 2단 폭포를 따라 내려가면 저마다 사연을 가진 다양한 다리와 조형물이 가득하다.

2호선 당산역의 ‘선유도 공원’은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해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이자 ‘물 공원’이다. 선유도 일대 11만407㎡의 부지에 수생식물원, 환경놀이터 등을 조성해 다양한 수생식물과 생태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양화지구와 연결된 선유교, 안개분수, 월드컵 분수 등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이 보인다.

2호선 뚝섬역의 서울 숲은 서울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다.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 숲, 잔디밭, 곤충식물원 등이 있으며 연중 무휴 24시간 개방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5호선 방화역의 ‘강서습지 생태공원’은 한강변 생물들의 서식처를 보존해 동식물의 모습을 관찰, 학습하도록 조성된 공원이다.
한때 쓰레기더미의 대명사였던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난지도는 10여 년의 복원 작업을 통해 지난 2002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 현재 ‘하늘공원’과 ‘하늘다리’ 등 다양한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에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 있다. 6호선 녹사평역은 돔 형태의 유리 지붕으로부터 지하 공간까지 눈부신 자연 채광이 쏟아져내려 마치 유리 궁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건축물이 아름다워서 역사 내에 자리잡은 넓은 홀은 결혼식장으로도 사용된 전례가 있을 정도다. 영화 <말아톤>이나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장으로도 활용됐던 이 곳은 독서 마당, 수족관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3호선 옥수역도 내부 구조가 아름다워 드라마나 한강의 촬영지로 자주 소개된 곳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도 옥수역의 매력 포인트. 특히 밤에 찾으면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할 수 있어 사진 작가들의 촬영 포인트로도 인기가 높다.

지하철 이용한 골목 구경

3호선 안국역 근처의 가회동 31번지 북촌한옥마을. 한옥들이 지붕 처마를 맞대고 있는 풍경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좁아졌다 넓어지고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하는 골목의 연결을 따라 떠나는 여행은 서울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 2호선 시청역에서 가까운 정동 돌담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던 곳이다. 번화한 도심이 생겨나고 대로가 만들어져도 이곳 돌담길이 주는 추억은 더 없이 소중하다. 인근에 정동 극장과 정동 교회, 구 러시아 공관 터, 시립미술관 등 문화와 역사가 깃든 곳들이 많다.

4호선 회현역에서 내리면 온갖 물건들로 가득찬 남대문 시장에 다다른다. 이 곳에는 상품 말고도 남대문 갈치조림 골목이 있다. 10여 군데 갈치조림 식당이 성업 중이며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희락’과 후발 주자로 단골들을 두고 있는 ‘내고향 식당’이 특히 유명하다. 골목은 좁고 지저분하지만 서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맛 골목이다.


지하철 타고 만나는 자연

1호선 오산대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물향기 수목원’은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연 면적 33만㎡ 규모의 대단지에 수생 식물 1600여 종류를 조성한 곳이다. 도심지에서 보기 드물게 자연 생태계가 숨 쉬는 습지 생태원 등이 자리해 수도권 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중앙선 양수역에서 도보 5분인 세미원은 물과 꽃의 동산이다. 장자의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 물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씻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에서 이름을 따온 세미원은 연못마다 아름다운 연과 부들, 창포가 가득하며 실내 온실 ‘석창원’에서는 연중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중앙선 끝 자락에 위치한 국수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있는 들꽃 수목원은 남한 강변에 자리한 국내 유일의 강변 수목원이다. 야생화 단지, 허브 정원, 자연 생태 박물관, 식물원 등 다양한 자연 체험 공간이 조성돼 있다.

4호선 오이도역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가면 시화호에 도착한다. 시화호는 한때 ‘죽음의 호수’로 기피 대상이었지만 갯벌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생명의 호수’로 재탄생했다.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2개 시와 1개 군에 걸친 넓은 갯벌 지대의 탁 트인 전경은 일품이다.

1호선 인천역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월미도는 1989년 7월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후 문화예술의 장, 공연놀이 마당 등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회 센터 등이 바닷가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찾는 이들이 많다. 월미도 관광용 모노레일(일명 ‘월미 운하레일’)이 예정대로 오는 7월 개통하면 지하철을 이용한 인천 여행은 보다 즐거워질 전망이다. 모노레일은 인천역 주변에서 출발해 월미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오는 6.3㎞의 순환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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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