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떠나는 세상 여행

교통카드 달랑 한 장만 들고 떠나요!

용산역 ‘이벤트광장’·서울역 ‘열린콘서트홀’ 등 공연
경복궁·한옥마을 등 역사기행·맛집 찾는 재미도 쏠쏠
시민들 호응 커 지역 문화공간으로 거듭나
청계천·습지공원 등 휴식공간으로 다양화


지하철은 정확한 이동 수단인 동시에 저렴한 여행 수단이기도 하다. 런던, 파리, 도쿄, 홍콩 등 지하철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매년 수 만명에서 수십 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어 지하철을 이용해 자유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들 유명 도시 못지 않게 서울 지하철도 일찌감치 유용한 여행 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교통 체증 걱정도, 기름 값 걱정도 없이 지하철 노선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지하철로 떠나는 여행’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문화·예술이 흐르는 지하철

1호선 용산역 ‘이벤트광장’과 서울역 ‘열린콘서트홀’에서는 1년 내내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뮤지컬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을지로입구역, 사당역, 서울대역, 선릉역 등 지하철 역사 7곳에도 상설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잡아 시민이 참여하는 쌍방향 문화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재즈연주자, 국악연주자, 포크송 가수, 오카리나 연주자, 마술 공연, 어린이 밸리댄스단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지하철 예술 무대에 올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5호선 광화문과 공덕역 등에 자리한 상설 공연장에서도 포크송 라이브 공연과 연극, 노래,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이 선보인다.

3호선 남부터미널역은 과거 화물 터미널로 사용됐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예술의전당과 가까운 역’이라는 점을 강조해 벽화에 ‘문화와 예술’을 담았다. 우리 민족 춤과 국악 연주를 표현한 ‘국악 연주도’와 ‘민속춤’을 타일로 표현했다.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을지로3가역은 과거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의 성을 따서 역 이름을 지었다. 2호선과 3호선을 갈아타는 길목에는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도’를 커다랗게 그려 넣어 웅장한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4호선 미아삼거리역은 원래 장위동과 종암동, 돈암동 세 방면으로 갈라지는 지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승강장 벽면에는 색유리로 화려하고 추상적인 ‘밤나무골’을 그린 벽화가 있다.

3호선 교대역은 인근에 서울교육대학교가 있어 ‘교대역’으로 불린다. ‘교육의 중심지’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 역에는 ‘훈민정음’과 ‘서당풍경’이 벽화로 표현돼 있다. 

5호선 김포공항역 에스컬레이터 옆 노란 벽면의 ‘직녀가 꿈에서 본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전승 놀이인 칠교판 놀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6호선 동묘역은 천장에 수 십개 연이 매달려 있다. ‘연’이라는 주제의 작품으로 대보름 연 놀이를 통한 무한한 꿈과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5호선 왕십리역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달픈 삶과 희망을 엇갈린 명암으로 표현한 ‘노래하는 색’을 벽면에 전시했다.

역사기행

1호선과 3호선, 5호선이 연결되는 종로 3가역에는 종묘와 창경궁이 자리한다. 그리스 아테네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대한민국 서울에는 종묘가 있다. 이 두 건축물은 모두 신(神)을 기리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이다.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태조 3년(1394년) 12월에 착공, 이듬해 9월 완공됐다. 완공 직후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창경궁은 15세기 성종 때 3명의 대비(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세운 궁궐로 종묘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충무로역(3호선과 4호선 교차)에 내리면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을 구경할 수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조선시대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한양 5경’으로 불렸던 곳으로 정자와 연못, 나무로 꾸며진 전통 정원에 한국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각종 동식물이 살고 있는 생태 공원으로 충무로역에서 내려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3호선 안국역에서는 운현궁, 북촌한옥마을, 창덕궁을 모두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현궁은 조선 고종의 잠저(潛邸: 왕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인 동시에 흥선대원군의 정치 활동 근거지였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북촌은 조선시대에 왕족이나 고관대작이 거주했으며 860채의 한옥이 밀집된 고급 주거지였다. 지금의 북촌은 도심 주거에 맞게 개량된 한옥들과 박물관, 공방 등이 모여 있다. 부적과 민화를 볼 수 있는 ‘가회박물관’, 북촌에서 수집한 근대의 생활물건을 전시한 ‘북촌생활사박물관’ 외에도 ‘세계장신구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3호선 경복궁역은 역 이름처럼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유적지를 볼 수 있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북쪽으로는 북악산이 둘러싸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있다.

1호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동구릉은 1408년 조선 태조의 건원릉터로 쓰인 이후 9기(基) 17위(位)의 왕과 왕비를 안장한 곳이다. 건원릉, 현릉(문종과 비 현덕왕후), 목릉(선조와 비 의인왕후), 휘릉(인조의 계비 장령왕후), 원릉(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유릉(익종과 신정황후) 등 9개의 능이 있다.

지하철역 인근 도심 휴식 공간

5호선 광화문역에서 만날 수 있는 청계천은 서울 강북의 중심가를 흐르는 10.92㎞의 하천이다. 지난 2005년 복원 공사를 마친 후 물길이 다시 열려 지금까지 7600만명의 관광객과 시민이 찾았다. 시작점인 청계 광장에서 4m 높이의 2단 폭포를 따라 내려가면 저마다 사연을 가진 다양한 다리와 조형물이 가득하다.

2호선 당산역의 ‘선유도 공원’은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해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이자 ‘물 공원’이다. 선유도 일대 11만407㎡의 부지에 수생식물원, 환경놀이터 등을 조성해 다양한 수생식물과 생태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양화지구와 연결된 선유교, 안개분수, 월드컵 분수 등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이 보인다.

2호선 뚝섬역의 서울 숲은 서울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다.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 숲, 잔디밭, 곤충식물원 등이 있으며 연중 무휴 24시간 개방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5호선 방화역의 ‘강서습지 생태공원’은 한강변 생물들의 서식처를 보존해 동식물의 모습을 관찰, 학습하도록 조성된 공원이다.
한때 쓰레기더미의 대명사였던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난지도는 10여 년의 복원 작업을 통해 지난 2002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 현재 ‘하늘공원’과 ‘하늘다리’ 등 다양한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에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 있다. 6호선 녹사평역은 돔 형태의 유리 지붕으로부터 지하 공간까지 눈부신 자연 채광이 쏟아져내려 마치 유리 궁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건축물이 아름다워서 역사 내에 자리잡은 넓은 홀은 결혼식장으로도 사용된 전례가 있을 정도다. 영화 <말아톤>이나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장으로도 활용됐던 이 곳은 독서 마당, 수족관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3호선 옥수역도 내부 구조가 아름다워 드라마나 한강의 촬영지로 자주 소개된 곳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도 옥수역의 매력 포인트. 특히 밤에 찾으면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할 수 있어 사진 작가들의 촬영 포인트로도 인기가 높다.

지하철 이용한 골목 구경

3호선 안국역 근처의 가회동 31번지 북촌한옥마을. 한옥들이 지붕 처마를 맞대고 있는 풍경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좁아졌다 넓어지고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하는 골목의 연결을 따라 떠나는 여행은 서울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 2호선 시청역에서 가까운 정동 돌담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던 곳이다. 번화한 도심이 생겨나고 대로가 만들어져도 이곳 돌담길이 주는 추억은 더 없이 소중하다. 인근에 정동 극장과 정동 교회, 구 러시아 공관 터, 시립미술관 등 문화와 역사가 깃든 곳들이 많다.

4호선 회현역에서 내리면 온갖 물건들로 가득찬 남대문 시장에 다다른다. 이 곳에는 상품 말고도 남대문 갈치조림 골목이 있다. 10여 군데 갈치조림 식당이 성업 중이며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희락’과 후발 주자로 단골들을 두고 있는 ‘내고향 식당’이 특히 유명하다. 골목은 좁고 지저분하지만 서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맛 골목이다.


지하철 타고 만나는 자연

1호선 오산대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물향기 수목원’은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연 면적 33만㎡ 규모의 대단지에 수생 식물 1600여 종류를 조성한 곳이다. 도심지에서 보기 드물게 자연 생태계가 숨 쉬는 습지 생태원 등이 자리해 수도권 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중앙선 양수역에서 도보 5분인 세미원은 물과 꽃의 동산이다. 장자의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 물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씻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에서 이름을 따온 세미원은 연못마다 아름다운 연과 부들, 창포가 가득하며 실내 온실 ‘석창원’에서는 연중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중앙선 끝 자락에 위치한 국수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있는 들꽃 수목원은 남한 강변에 자리한 국내 유일의 강변 수목원이다. 야생화 단지, 허브 정원, 자연 생태 박물관, 식물원 등 다양한 자연 체험 공간이 조성돼 있다.

4호선 오이도역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가면 시화호에 도착한다. 시화호는 한때 ‘죽음의 호수’로 기피 대상이었지만 갯벌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생명의 호수’로 재탄생했다.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2개 시와 1개 군에 걸친 넓은 갯벌 지대의 탁 트인 전경은 일품이다.

1호선 인천역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월미도는 1989년 7월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후 문화예술의 장, 공연놀이 마당 등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회 센터 등이 바닷가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찾는 이들이 많다. 월미도 관광용 모노레일(일명 ‘월미 운하레일’)이 예정대로 오는 7월 개통하면 지하철을 이용한 인천 여행은 보다 즐거워질 전망이다. 모노레일은 인천역 주변에서 출발해 월미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오는 6.3㎞의 순환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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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