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의 덫’ 협동조합 주의보

수상한 조합의 이상한 사업

[일요시사 경제2팀] 최현목 기자 = 퇴직금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인생을 투자한 직장인들이 받는 합당한 보상이다. 또한 한평생 자식에게 모든 걸 바친 부모들이 노후를 위해 남겨 둔 마지막 보루와 같다. 어느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손 벌리고 싶겠는가. 그러나 최근 이러한 퇴직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마치 세계 최고의 투자가처럼 퇴직금을 불려주겠다고 유혹하는 그들의 수상한 실태를 알아보자.

한국 전래동화 중 <요술항아리>라는 작품이 있다. 이 동화는 평소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한 농부가 밭을 갈던 중 어떤 것을 넣든 두 배로 늘어나게 해주는 요술항아리를 발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퇴직금만 맡기면 요술항아리처럼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불려주겠다고 자처하는 조합들이 있다.

수천만원 날려

서울의 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일하는 운전기사 A씨는 돈을 불려주겠다는 OOOO협동조합의 말을 듣고 약 4000만원 정도 되는 금액을 투자했다. 큰 돈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금 이상의 돈을 배당으로 받게 된다는 말만 믿고 금융권에서 대출까지 받았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돈이 들어왔다. 그러나 서서히 입금 시기가 늦어지는가 하면 배당금액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A씨는 해당 협동조합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관계자는 나중에 돌려주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결국 A씨는 투자금의 3분의 1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회사에서 퇴직한 B씨는 지인을 통해 △△조합을 알게 됐다. 이 조합은 B씨에게 골드바와 렌터카 등 해당 조합에서 취급하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면 회원 등급에 따라 적게는 몇만원에서 많게는 몇십만원의 배당금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민한 끝에 조합에 가입한 B씨는 퇴직금을 투자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당금이 처음에는 몇 번 들어오더니 어느 순간 지급이 되지 않았다. 실망한 B씨는 더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매월 어떤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활동하지 않으면 투자한 모든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고 B씨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B씨는 해당 조합에 1억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지만 돌려받은 금액은 3000만원이 채 되지 못했다.

불법 다단계 영업에 대한 조사를 맡고 있는 서울시청 민생경제과에 따르면 현재 무등록 불법 다단계 및 유사 수신 행위를 하는 업체의 수는 서울에서만 약 3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로 인해 발생한 전체 예상 피해액은 몇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피해자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은 법의 맹점을 파고든다. 금융·보험업을 제외하고 5명 이상만 모이면 설립이 가능한 협동조합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실체는 불법 다단계 판매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한 한 협동조합은 현재 3만명이 넘는 회원 수를 자랑할 정도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불법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정관을 만들어 조합원들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그들 조합은 이에 반하는 영업행위를 하기 일쑤다.

이들이 하는 영업행위는 결코 하위 조합원에게 수익이 분배될 수 없는 구조다. 그들은 물건을 판매할 때 시장에 나와 있는 것 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데 이를 테면 인터넷에서 8만원 주면 구매할 수 있는 주방조리기기가 이곳에서는 69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골드바부터 렌터카까지…피라미드 영업
주로 노인들 타깃 “직장인 퇴직금 노려”

굳이 경제원리를 따져보지 않아도 이렇게 시중가보다 높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할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결국 같은 조합원이나 그 주변인들이 간혹 구매하지만 재구매력이 발생하지 않게 되고 물건 판매 실적은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고 있는 것이다.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를 처벌하거나 투자한 금액을 돌려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우선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신분을 드러내면 다단계 사업을 한 사람으로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낙인 찍히게 됨은 물론이고 조합으로부터 협박을 받을 수도 있다. 조합을 상대로 고소를 해봐도 피해를 입증하기 힘들고 만약 조합원 관계자가 잠적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투자한 금액은 고스란히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법 협동조합에 대한 단속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민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청 민생경제과 관계자에 따르면 “불법 다단계 협동조합에 대한 피해 전화는 계속 걸려오지만 정작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라며 “영장발부를 위해 진술을 약속한 참고인도 단속 당일에 맘을 바꾸는 등 참고인 확보가 힘든 상황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피해자의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구제는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는 해당 불법·사기 아이템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또는 그와 유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카페가 있다. 취지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이곳을 만든 카페 설립자는 그동안 수많은 협박과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카페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다단계 종사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조심히 다녀라. 너 노리는 사람들 많이 있다”며 “칼침 맞겠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설립자에게 보낸 바 있다. 그리곤 “세상이 다 다단계구조란다”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도 이와 유사한 협박전화와 문자가 온다고 한다.

칼침 협박까지

국가가 협동조합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협동조합법. 그러나 허술한 법망과 사후관리의 부재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이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다단계 업체가 공제 조합에 가입되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공제 조합은 다단계 판매업자가 청약을 철회하거나 환불을 거부했을 때 판매원이나 소비자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곳으로 이 조합과 계약이 해지된 업체와 거래를 하면 피해를 입어도 보상을 받을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종 다단계 수법

지난해 12월 여행객을 모아오면 공짜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속여 수십억을 가로챈 부녀사기단이 경찰에 의해 잡혔다. 김양(28)은 여행사 직원을 사칭해 여행객 15명을 모아오면 공짜 여행을 보내준다고 유혹해 돈을 빼돌렸고 아버지(60)는 그 자금의 관리를 맡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800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며 피해액은 12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여행객의 항의를 하면 그녀는 간이 계약서를 보여주거나 현지 기후 사정이 나빠 비행이 어렵다는 등의 말로 피해자를 안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경찰은 사기 혐의가 있는 딸을 구속처리하고 이를 방관하다 못해 돈을 관리한 아버지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피해액 12억3000만원 중 김양이 돌려막기로 쓴 7억1000만원을 뺀 5억2000만원을 찾아내 피해자들에게 돌려줬다고 밝혔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