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병원들, 막가는 수술실 백태

환자 마취된 사이 의사·간호사 둘이…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병원 임상실습에 들어가기 전 간호학도들이 읊는 ‘나이팅게일 선서문’의 일부 내용이다.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사의 윤리 등에 대한 선서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 내용이다. 신성한 두 선언이 최근 일부 의료 종사자들에 의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계의 현주소를 파헤쳐보자.

지난달 28일 한 간호조무사가 개인 SNS를 통해 올린 사진은 가히 충격적이다.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J성형외과로 추정되는 병원 수술실에서 마취된 환자를 뒤로 한 채 생일 케이크를 들고 다니는가 하면 자기네들끼리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슴 성형에 쓰이는 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등 몰지각한 행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수술실에서 음식을 섭취하는가하면 돈다발을 들고 찍은 사진에는 수술용 1회용 장갑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 목적으로 말려놓은 장면이 함께 찍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 모습은 물론 환자의 신상이 적힌 ‘기록 카드’가 그대로 사진에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환자 뒤로하고
셀카, 생일파티

그녀들에게 ‘나이팅게일 선서’는 단순한 허례허식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런 철없는 행동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했다. 언론 또한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간호조무사는 계정을 삭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의료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함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해당 사건에 대해 보건당국은 진상조사에 나섰다. 29일 관할 보건소인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병원을 실사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확인한 뒤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수술 중 생일파티를 한 행위와 1회용 장갑을 재사용 목적으로 말려놓은 부분은 각각 의사의 비윤리 진료와 의료법 위반에 해당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의료법 제66조에 따르면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킬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장 1년까지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통상 관할 보건소가 보건복지부에 자격 정지를 의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보건당국은 보건복지부와 경찰 측에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고 비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의료법 위반 여부 등을 검토 중이다”며 “피해자의 신고나 보건당국의 의뢰가 들어올 경우 즉각 수사에 착수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건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0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올라와 논란이 된 적 있다. 중국 산시성 시안시의 한 대학 병원 수술실에서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이 누워있는 환자를 뒤로 한 채 서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해당 사진은 수술을 마친 뒤 촬영한 것으로 성공적인 수술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찍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논란은 거세져 갔고 결국 시 당국은 병원 원장을 비롯한 책임자 및 담당자를 면직 또는 감봉 처리했다. 사건의 유사성을 고려해 볼 때 처벌의 가이드라인으로 충분한 사례다.

해당 병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해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사진 촬영은 환자가 수술 뒤 회복 중일 때 촬영된 것이다”며 “(사진 속에 등장한 장갑은) 수술 끝나고 나서 수술 용기 같은 것을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장갑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해당 병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사과문에는 “몇몇 직원들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책임을 통감하고 해당 직원을 절차에 따라 징계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어 일부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사과문이 올라간 후 이를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상담의사 따로
수술의사 따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에 간호사가 한 명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버젓이 간호사 명찰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그중에 간호사는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 간호조무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개중에는 일반인도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한간호협회’는 법적 대응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이 대응을 준비하는 이유 중 핵심은 이 사건을 통해 간호사들이 매도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진을 통해 확인되는 명찰은 간호사를 사칭한 행위라는 것이다.

정신 나간 일부 의료 종사자들
수술 앞두고 찰칵…음주 집도도
실종된 의료 윤리에 국민 불안

1960년대에 간호인력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간호사 대체인력으로 신설된 간호조무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있으면 가능하며 ‘국·공립간호조무사양성소’나 ‘사설간호조무사양성학원’에서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을 받기만 하면 된다. 반면 간호사는 간호학과(3·4년제)를 졸업하고 국가(한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는 간호사 시험을 합격한 후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해야 된다. 의료법상 지위도 간호사는 ‘의료인’으로 구분되는 것에 반해 간호조무사는 ‘간호보조인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경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는 급여가 훨씬 적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속여 근무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환자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료 영역에 의료인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비단 해당 사건은 간호조무사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에는 의사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등장하는데 설명에는 “원장님과 함께”라고 적혀있다. 그녀들을 관리·감독해야 되는 의사가 이 같은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난받고 있다.

이러한 의료계의 비도덕적 행위는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지난달 19일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21살 여대생 정모씨가 끝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광대뼈와 턱뼈를 깎는 수술을 4시간 동안 받은 그녀는 수술 직후 회복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그녀를 집도한 담당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치과의사라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치과의사가 안면 윤곽 수술을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환자의 혈압저하 등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한 행위라고 말한다. 또한 숨진 정모씨는 당초 1000만원에 해당되는 수술비를 지불하는 대신 ‘비포-애프터’ 모델이 되는 조건으로 검사비 100만원만 냈다는 정황이 포착돼 정모씨의 수술에 일부러 전문의를 배치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혹을 샀다.

환자로서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어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마취가 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부지기수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를 악용한 사례도 다수 발생한다. 속칭 ‘쉐도우 닥터’라 불리는 사람이 대리 수술을 하는 것이다. 집도하는 의사의 수술 경험과 능력에 따라 외적 변화가 확연히 차이나는 성형외과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형외과의 경우 의사의 이름값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보니 몇몇 의사에게 환자가 집중된다. 그러나 실상은 유명의사가 환자를 상담한 후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면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눈뜨고 코 베인 격이다. 외국인들이 성형관광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는 등 국내 성형시장이 팽창했지만 그에 맞는 인력 수급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 치부하기에 윤리적 공백이 너무 크다. 이미 물질만능주의가 성형외과 업계에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술 마시고 수술
위생은 뒷전

술을 마시고 수술대에 오르는 의사도 있다. 지난해 11월28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3살배기 남자아이의 봉합수술이 진행됐다. 바닥에 쏟은 물에 미끄러져 넘어진 아이는 턱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찢어졌다.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 아이를 안정시켜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집도하러 온 의사 A씨의 행동이 이상했다. 비틀비틀거리며 수술실에 들어온 A씨는 위생장갑을 끼지도 않고 찢어진 부위를 얼기설기 세 바늘 꿰맸다. 이를 본 아이의 부모는 병원에 항의했고 그제야 병원 측 관계자는 다른 의사를 불러 여덟 바늘을 꿰매 정상적으로 수술을 종료했다.


A씨는 그 당시 술에 취해 있던 것으로 판명 났다. 1년차 전문의인 그는 3년차 선배와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했고 당직실로 복귀한 후 응급실 당직 콜이 울리자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원래 이 수술은 본인이 맡아야 될 수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병원 측에 따르면 그 당시 당직 의사는 2년차 선배 B씨였는데 “1년차인 A씨가 선배 B씨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이 직접 들어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문제의 A씨는 해당 병원에서 파면조치 당했다.

생일파티에 보형물로 장난
찍은 사진 SNS에 올려 파문

이 사건으로 병원의 방만한 인력 관리와 허점투성이 시스템이 문제로 지적됐다.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대학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도제식 인력관리와 응급 의료관리 시스템에서는 1년차 전문의가 술을 먹고도 응급실로 떠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A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위생 장갑을 끼지 않는 등 상태가 평소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근무자들이 A씨의 행위를 제지하지 못했던 점은 그만큼 병원의 응급 의료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12년 연속 ‘최우수 응급 의료 기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올해 초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는 자신들의 수술 횟수를 홍보하기 위해 ‘턱뼈로 쌓은 탑’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었다. 병원 로비 한편에 위치한 탑은 바로 수술을 한 환자의 턱뼈를 모아 쌓은 것이다. 인체의 적출물을 폐기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탑으로 쌓아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은 엽기를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했고 이를 본 시민들은 경악했다.

결국 해당 사건은 미국의 <타임지>에 까지 보도되었다. 이런 자신들의 행동이 의료 폐기물 관리법 위반인지도 몰랐던 병원장은 과태료 300만원을 물었고 당연히 ‘턱뼈 탑’에 대해선 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병원과 의료계의 현주소가 이렇지만 소송을 통한 구제는 요원하기만 하다. 수술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법을 적용하기 어렵고 수사를 하더라도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이라 과실을 찾아내기 힘들다. 또한 증거 인멸 등이 행해져도 알아낼 방도가 없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간호조무사 셀카 사건’이나 언론에 보도된 사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져만 간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설사 처벌이 행해져도 병원 측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일 예약취소 등 환자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진료는 계속할 수 있다. 근무하는 많은 의사 중 사고를 낸 의사 몇 명만 쉬면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병원 명을 바꾸든지 아니면 새로 병원을 차리면 된다. 의사 자격이 박탈당하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목숨을 잃은 환자는 다시 살아날 방도가 없다.

환자 턱뼈로
병원 로비에 탑 쌓아

프랑스 태생의 의사이자 사상가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후대에도 존경받는 이유는 비단 그가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활동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생명을 존중했고 인류애를 강조했다. 그는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며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슈바이처의 정의에 따르면 몇몇 병원과 의사 그리고 간호조무사는 악이라 불러도 될만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몇몇 사람으로 인해 국민은 물론 선량한 의료인들까지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관련 피의자의 죄질에 합당한 법 적용과 대승적 차원의 근무 환경 개선, 부도덕한 의료행위의 근절을 위한 지속적 교육 및 지도·감시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환자 38명 살해, 악마 간호사 엽기행각

한 달 동안 무려 38명의 환자를 죽이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은 이탈리아 간호사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38명의 환자를 살해한 뒤 충격적인 사진을 촬영한 이탈리아 간호사’라는 제목으로 다니엘라 포지알리(42)의 행동을 보도했다.

포지알리는 단지 짜증난다는 이유로 사형수에게 쓰이는 독극물을 투여해 환자 3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후 죽은 환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다.

공개된 사진에 의하면 그녀는 사망한 환자 바로 옆에서 엄지를 올리는가 하면 입을 벌리고 찍는 등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은 그녀의 직장 동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 간호사는 경찰 조사에서 “포지알리에게 저항할 용기가 없었다”며 “그녀는 보복심리가 강했고, 단순히 다음 근무 조를 고생시키기 위해 환자들에게 설사약을 투여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포지알리와 동료 간호사는 모두 병원에서 해고된 상태며 포지알리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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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