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계약서 ‘김석동 사인’ 수수께끼

두 장의 2·17 합의서…진본은?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외환은행이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은 지난 20012년 2월17일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그런데 당시 약속했던 ‘2·17 합의서’를 두고 최근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진실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같은 합의서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사인이 있는 문서와 없는 문서로 갈렸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문건 둘 중 하나는 가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조기통합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서명이 들어간 문건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

2·17 합의서는 지난 2012년 2월17일 하나금융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이면서 맺어진 것이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외환은행 노조가 서명 주체로 돼 있다. 합의서의 주요 골자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인위적인 인원감축 금지, 생산성 향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이익배분제 도입 등의 세부적 내용도 담겨 있다.

합의 당사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 측 입회인 자격으로 합의서 조인식에 참석했다. 당시 노사 양측은 합의서에 각각 서명하고 문건을 나눠 보관했다.

그런데 최근 이 문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서명을 했는지가 논란거리다. 함께 작성한 2·17 합의서는 김석동 위원장의 서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개로 나눠졌다. 애초에 두 가지 버전의 합의서가 만들어졌다느니, 원본에 없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나중에 들어갔다느니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 측이 갖고 있는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담겨 있다. 5년간 독립보장을 주장하는 외환은행 노조는 당시 김 위원장이 참석해 서명한 것을 근거로 2·17 합의 일종의 노사정 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사측이 보관중인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이름과 서명이 없다. 이렇게 되면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가 된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추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감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17 합의서에 대해 정부차원의 보증을 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합의서 마지막에 ‘노사정 합의서’라고 병기돼 있으면 노사정 합의라는 것”이라며 “입회인 자격으로 서명했지만 노사정 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 합의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서명한 것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라고 회피했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단순 입회자로서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이어 그는 “고용노동부와 협의가 있는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부처의 의견”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의서에는 ‘입회인, 금융위원장 김석동’이라는 김 전 위원장의 사인이 있는데 사인이 없는 합의서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중국에서 체류중이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도 국감장에 출석했다. 김 전 회장은 2·17 합의에 대해 노사 간 합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인데 김석동 전 위원장이 서명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합의서 원본에는 당시 김석동 전 위원장의 서명은 물론 이름 자체도 없다”고 답했다.

당사자인 김석동 전 위원장의 입장은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시민단체로부터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임에도 외환은행 인수 및 철수를 승인한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외환은행 인수 당시 금융당국 책임자로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알고서도 이를 묵인한 혐의에서다.

하나-외환 노조 조기통합 앞두고 대립
론스타 매매 때 맺은 문건 놓고 공방


외환 노조는 합의서에 김석동 전 위원장의 직위와 이름이 들어갔고,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당시 합의가 노사정 합의에 해당하며, 이 합의를 깨는 조기통합 관련 협상은 정부가 중재해야 응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아울러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한 의원은 사진을 통해 김승유 전 회장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전 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의 사이에 앉아 서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김승유 전 회장이 김기철 전 노조위원장이 서명하는 모습, 서명을 마치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노조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한 의원은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김 전 회장이 ‘노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금융위원장의 사인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위증”이라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금융위가 조기통합 문제에 뒷짐 지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애초 두개 버전?
나중에 서명했다?

그동안 2·17 합의서는 하나와 외환은행의 합병 기준으로 인식돼왔다. 하나금융지주는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지난 7월 김정태 하나지주 회장은 조기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올해 안에 통합하겠다는 의중을 보였다. 이후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 2·17 합의를 깨고 3년 만에 조기통합을 추진한 명분은 경영 위기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지 3년이 다 돼가지만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는 전무하고, 외환은행의 기초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금융은 투 뱅크(two bank) 체제로는 조직의 장기적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외환 은행은 통합 이사회를 개최하고 공식적인 통합절차에 착수했다. 29일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결국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하나·외환 은행은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어 조기 합병을 의결했다. 이어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를 거쳐 두 은행 간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합병 비율은 하나은행 보통주 1주당 외환은행 보통주 2.97주다. 사실상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흡수 합병하는 셈이다.

하나금융은 이달 초 금융 당국에 합병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승인에 최소 60일가량 걸릴 예정이다. 주주총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통합법인은 내년 2월쯤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도 통합법인 출범 일을 일단 내년 2월1일로 잡고 있다.

하나금융은 조기통합 시 연간 비용절감 2692억원에 수익증대 효과 429억원까지 더해 매년 3121억원에 이르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두 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연내 총자산 334조원의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 KB국민은행(292조원), 우리은행(273조원), 신한은행(263조원)을 압도한다.

‘5년 독립보장’ 금융위원장 서명
외환 쪽 문건 ○…하나 쪽 문건 X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하나·외환은행 간의 통합을 명분으로 30일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내년 3월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은행장직을 내려놓은 것. 통합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인수 이후 국내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투 뱅크 체제를 유지하는데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도 조기 통합의 이유다.


합병에 따른 존속법인은 외환은행으로 남기기로 했다. 순익 규모가 더 적은 외환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해야 법인세를 더 적게 내는 등 세테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합병당하는 외환은행 임직원들의 화를 달래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의 존속법인 양보에는 은행의 명칭을 염두한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병 은행 명칭은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추후 결정하기로 했지만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아직 명칭에 대해 ‘하나’라고 결정된 바 없고,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저희로서는 저성장, 저마진에 직면한 상태인 만큼 빨리 합쳐서 다른 은행에 없는 장점으로 위기를 돌파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와의 대화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사회가 끝났다고 대화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대화를 할 것이고,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내부적인 합병 절차를 마무리 짓고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이미 공표한 대로 조만간 물러난다. 초대 합병은행장으로는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달 초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소통’에서 돌연 ‘강경’으로 태도를 바꿔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외환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규모 직원 징계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 3일 외환은행 노조가 개최하려던 임시조합원 총회에 참석했거나 참석하려던 직원 898명을 징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권 사상 단일사안으로는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내부에서는 통합은행장에 대한 야심이 외환은행 출신 ‘외환맨’인 김 행장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김 행장은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에게서 ‘선배가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외환은행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총회 참석과 관련해 사상 최대 규모로 추진하던 직원 징계를 풀어주기로 했다. 당초 900명이던 징계 대상을 38명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 애초 898명에 2명이 추가된 900명이 징계 대상으로 분류되다가 이 가운데 862명(95.8%)이 제외된 것이다. 외환은행에 따르면 징계 대상인 38명은 견책 이하 경징계 21명, 중징계 17명(정직 3명, 감봉 14명)이다. 중징계 대상은 애초 56명으로 분류됐으나, 이 역시 약 3분의 1로 줄었다.

이러한 사측의 결정에 외환노조도 태도를 바꿨다. 사측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외환 노조도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나금융지주에 제의했다. 이로써 평행선을 달리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어떤 합의서가
법적효력 있나

노조는 “조건 없이 사측과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기통합 반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입장은 변함이 없고 대화는 2·17 합의 기반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조직과 직원들, 금융산업의 발전 등을 위한 것이라면 2·17 합의를 뛰어넘는 조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나금융과 외환노조가 각각 가지고 있는 2·17 합의서의 위조 여부를 떠나 어떤 합의서에 법적효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둘 중 하나의 법적효력이 있는 2·17 합의서가 하나-외환 통합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원히 묻히는 론스타 의혹들

외환은행은 한때 훌륭한 국산 금융브랜드로 꼽혔다. 능력있는 직원들이 모인 유망했던 은행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03년 론스타의 매각 후 외환은행은 이제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 품에 안기면서 외환은행도 조만간 금융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도 외환은행에 대해 이대로 사라지기엔 아까운 은행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매각됐지만 그렇게 쉽게 사라질 은행이 아니었다는 부연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과정은 아직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론스타 게이트의 ‘몸통’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인지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시계추를 돌려 2003년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이 사심이 끼어든 음모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관련자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외환은행 직원이 돌연사로 죽었고, 금감원 직원은 과로사로 죽었다. 두 사람은 외환은행 매각의 심사 서류를 다룬 핵심 실무자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핵심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을 6.1%대로 낮춰 잡은 의문의 팩스는 외환은행 직원의 컴퓨터에서 작성됐다. 금감원 직원은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51%에 달하는 외환은행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의 근거 자료는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찰 수사도 중단된 상태다. 이제 운명의 수레바퀴는 외환은행이 새 주인 하나금융지주를 만나는 지점까지 왔다. 론스타로부터 하나금융으로 다시 팔린 외환은행은 앞으로 간판마저 내려야 할 판이다. 기구한 운명 속에서 외환은행 직원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의 이면에는 구조조정 대상이 돼야 했던 직원들의 아픔과 희생이 서려있다. 은행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으로 들어가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론스타의 인수 과정 의혹도 이대로 묻혀질까 우려하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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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