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기업 4500억 비자금 미스터리

“오빠가 꼬불쳤다” 여동생의 반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오너가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법정관리 중인 중견 건설업체 삼환기업의 최용권 명예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여동생 최모씨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유산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검찰 고소로 이어졌다. 단순 재산 다툼에서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 같은 ‘남매전쟁’에 ‘피보다 진한 게 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중견 건설업체인 삼환기업의 최용권 명예회장이 여동생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유산상속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마침내 검찰고소로 비화됐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최씨가 친오빠인 최 명예회장을 상대로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남매 싸움
비자금 의혹
 
검찰 관계자는 “최 명예회장에 대해 기업비리 형태의 고발이 접수돼 사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소장에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조세 포탈 혐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살고 있으며 삼환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는 최씨는 최 명예회장이 조성된 비자금 4500억원 상당을 해외로 빼돌린 뒤 미국 하와이 등에 부동산을 샀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중동건설 사업과 해외사업 수주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 일부가 빠져나와 미국법인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최씨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최 명예회장 비자금 조성 혐의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환기업 측은 최씨가 불만을 품고 악의적인 고발을 했다며 비자금 조성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최씨가 최 명예회장을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아버지인 최종환 회장이 별세한 뒤 재산을 나눠 받는 과정에서 최 명예회장과 마찰을 빚어 소송으로 번지기도 했다. 최씨는 비자금 조성 혐의를 뒷받침할 자료를 수집해 검찰에 넘기고 있어 추가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12년 11월에는 삼환기업 노동조합이 최 명예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적이 있다. 당시 노조는 최 명예회장이 오랜 기간 현장에서 횡령해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 명예회장은 올해 4월 1심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차명계좌나 비자금과 관련한 내용은 무혐의 처리됐다.
 
이번 논란에 삼환기업 노조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 측은 최 명예회장 측이 유산상속에 불만을 품은 여동생 최씨가 악의적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으나, 최씨는 과거 노동조합에서 최 명예회장의 비자금과 차명계좌에 대한 고발을 했을 때, 최 명예회장이 만든 비자금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거짓 증언한 것에 분개해 선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망자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회장은 2012년 말 노조로부터 횡령 및 배임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은 세금추징으로 사건을 마무리했고, 검찰 또한 서울지방국세청과 최 명예회장 측근들의 진술만 듣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의 해외 비자금 형성은 기업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지사와 일본 동경지사를 유지한 결정적 이유가 최 명예회장의 해외 비자금 관리 때문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삼환기업 노조 측은 과거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하며 최 명예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던 손모 차장이 회사 보유의 타사 주식들을 불법적으로 매각하여 수십억대의 최 명예회장 차명계좌를 만든 증거를 포착해 서울중앙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최용권 회장 돈 해외로 빼돌린 의혹 제기
유산상속 놓고 갈등 빚다가 결국 법정행
 

삼환기업은 2007년까지 이익잉여금이 2000억원에 달했고 법정관리 이전까지 매출 및 수주가 1조원에 달하는 우량기업이었다. 그러나 최 명예회장의 폭력, 독단, 비리 경영으로 인해 법정관리에 이르렀고, 법정관리 조기 졸업 이후에도 기업 정상화를 위한 노력 없이 과거와 똑같은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2년에는 <한겨레>의 보도로 삼환기업 총수 일가의 반인권 경영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최 명예회장은 최모 전 사장, 오모 전 비서실장, 박모 전 상무 등 과거 사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고위직 임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갈비뼈 골절, 목 디스크 돌출, 고막 찢어짐, 맞다가 기절 등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현재 임원으로 재직 중인 지모 비서실장, 이모 총무이사 등도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세 경영자인 최모 상무는 보고가 늦었다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박모 상무를 폭행하기도 했다. 또한 이모 총무이사를 회사 업무가 아닌 본인의 선산 관리를 잘못했다고 꾸짖으며 산으로 끌고가 폭행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중 박모 상무는 중앙지검 조사부에 가서 폭행당했던 사실을 진술한 바 있다. 이러한 폭력에 삼환기업 이사회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로 추락했고 모든 의사 결정은 최 명예회장이 독단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 명예회장이 기업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명예회장은 2003년부터는 출근조차하지 않은 선친의 퇴직금 회사분 5억원을 불법적으로 받아가기도 했다. 이에 노조는 괘씸하다는 반응을 내비친 상태다.

어디에 숨겼나
은닉재산 진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명예회장은 본인이 보유했던 회사채 40억을 법정관리 돌입 시 회생채권에 포함시키기 위해 경영진을 이용해 채권단을 속이고 개인회사인 리온기업 명의로 청구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현행법상 1년 이상 보유했던 채권을 본인이 회생채권으로 청구할 시에는 불법이 아니지만, 본인 또는 특수관계인이 실소유주인 리온기업에 채권을 양도해 청구하게 되면 마땅히 부인되었어야 하나 불법적으로 시인을 유도해 기업에 손실을 초래하는 배임행위와 탈세행위가 발생하게 됐다.
 
최 명예회장은 2012년 11월15일, 회생절차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현 경영진들로 하여금 전날인 11월14일 언론을 통해 ‘주식과 차명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금까지도 경영에 관여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들을 괴롭히고 있다. 또 기업회생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장과 최 명예회장의 두 아들만 근무하는 13층의 연간 임대료를 절감하기 위해 노조 측이 다른 층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으나 최 명예회장은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현재 최 명예회장은 변호사 3명을 대동하고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삼환기업이 내홍까지 겪으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환기업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은 2637억원이며 영업이익은 1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소폭 하락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개선된 실적을 바탕으로 영업현금흐름도 178억원가량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중 부채비율은 9043%에 달한다. 삼환기업은 2011년 704억원, 2012년 110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2년 7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초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하지만 삼환기업의 3월 공시 내용에 따르면 삼환기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6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49.08% 줄어든 수치다. 매출액은 5382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0.2% 늘었고, 당기순손실은 2786억원으로 0.6% 증가했다.
 
삼환기업의 전신은 1946년 세워진 삼환기업공업사다. 삼환기업공업사는 수도, 배관, 난방 등을 전문으로 했던 회사로 삼환그룹 창업자인 최종환 회장이 10여명의 기술자와 함께 세웠다. 한국전쟁 이후 최 회장은 자택 근처에 주둔해 있던 미국 공병대의 활동을 보면서 건설업체를 세울 결심을 하고 1952년 삼환기업공업사를 삼환기업(주)으로 전환했다. 이후 삼환기업은 다양한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검찰 수사…남매 전쟁 서막

풀리지 않는 의혹도 풀릴까
 
삼환기업은 62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공사를 시작했고 66년에는 베트남에 지사를 세우고 해외건설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60년대에만 일본 도쿄, 미국 클리블랜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해외 지사를 세웠다. 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사를 세우고 카이바~알울라 구간의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중동지역에 진출하면서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조선호텔, 프라자호텔, 삼성그룹 태평로빌딩, 서울지방검찰청과 대검찰청,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본점 등을 잇달아 지었고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등 굵직한 토목공사에 참여하며 시공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에 해외지사 세우기에 박차를 가해 81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82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83년 미국 뉴욕, 84년 미국 알래스카, 85년 미국 괌, 87년 방글라데시 다카 등에 해외 지사를 세우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삼환기업 주요 계열사로는 삼환까뮤, 삼환종합기계, 삼환컨소시엄, 신민상호저축은행, 삼환기술개발, 회현상사, 칠성흥업 등이 있다.
 
삼환기업은 96년 9월 창립 50주년과 동시에 최 명예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또한 장남과 차남이 경영수업을 받으며 부친의 경영을 도왔다. 삼환기업은 2007년까지는 대우건설 인수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튼실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해 2007년 9145억원에 이르던 매출이 2012년에는 778억원으로 줄었고 42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당기순이익은 991억원 적자로 급감했다.
 
회사가 기울자 당시 노조 측은 최 명예회장의 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는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허종 삼환기업 사장을 해임해 달라는 의견서를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에 제출했다. 허 사장은 최 명예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2006년부터 사장을 맡았다. 노조는 의견서를 통해 “대주주인 최용권 회장이 임원 등의 이름을 빌려 차명주식을 관리해 온 내역을 확보했다”며 “허종 사장의 이름도 차명계좌 내역에 들어 있다”고 밝혔다. 허 사장이 최 회장의 주식을 차명으로 관리했고,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경영 악화의 책임 등 법정관리인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

신화도 옛말

추락 가속도
 
이처럼 기업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최 명예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고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환기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부패는 끝없이 터져 나왔다. 2012년 초에는 최 명예회장과 삼환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신민상호저축은행은 대주주 불법 대출과 당기순이익을 200억원 부풀려 자기자본비율을 부당하게 산정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삼환 측은 차명계좌 의혹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결국 차명계좌 논란은 무혐의 처리돼 한숨 돌렸지만 그것도 잠시, 최근 삼환 오너가 남매전쟁이 불거지면서 최 명예회장을 둘러싼 새로운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벌가 골육상쟁사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형제 간 골육상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요 재벌가 집안  싸움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았다. 2001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 2002년 한진그룹 유산다툼, 2005년 두산그룹 형제분쟁, 2009년 금호가 형제갈등, 올해 삼성가 상속재산 법정다툼 등이 대표적이다.
 
2001년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으로 알려진 2세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바 있다. 이 분쟁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분리되면서 일단락됐다. 2002년 한진그룹에서는 조중훈 전 회장 타계 후 계열분리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이 정석기업 차명주식과 대한항공 면세점을 두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하면서 끝났다.
 
한집 건너 한집 ‘난’
 
2005년 두산그룹 역시 고 박병두 전 회장의 2세들이 회장직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으로 아픔을 겪었다. 2009년 금호그룹도 계열분리 과정에서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이 경영권 다툼이 있었다. 2012년 삼성가는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의 상속재산을 둔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이 분쟁은 올해 초 마무리됐다.

라면 사업을 두고 롯데와 농심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965년 라면사업에 진출하려고 하면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마찰을 빚었다. 한라그룹도 정몽국 배달학원 이사장이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측의 주식매도 건을 두고 사문서 위조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태광그룹도 이호진 회장 등 남매 간 상속분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그룹에서도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대성그룹도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간 법적 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내 주요 재벌그룹 가운데 아직까지 형제들 간 갈등이 공식적으로 터지지 않은 곳은 SK, LG, GS그룹 등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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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