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삼중고’ 내막

기약없는 비상에 직원들 ‘골골’

[일요시사=경제팀] 박효선 기자 = 한때 ‘바이코리아’ 열풍을 이끌며 국내 대표 증권사로 명성을 떨쳤던 현대증권. 하지만 현대증권도 증시 불황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매각을 앞둔 현대증권 사내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희망퇴직 규모와 보상조건 등 구조조정안을 두고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대증권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회사 내부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15년간 강성노조를 이끌어왔던 민경윤 노조위원장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노사의 불편한 관계는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이 ‘비상경영’ 돌입을 선언하면서부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숨만 푹푹
 
윤 사장은 향후 연간 800억∼10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에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윤 사장의 ‘비상경영’ 선언 이후 현대증권은 조직 통폐합과 운영경비 20% 축소 등을 진행했다. 
 
기존에도 현대증권은 임원 축소, 임원 퇴직위로금 폐지, 점포 축소, 리서치센터 구조조정, 운영경비 30% 축소 등의 활동을 추진해왔다. 최근 들어 더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부터 현대증권은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6일부터 나흘간 희망퇴직을 신청 받았다. 희망퇴직자들의 최종 퇴사일은 이달 말이다. 이번 희망퇴직은 휴직자를 포함한 전체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정년에 해당되는 직원(56년생)이나 기간제 계약직 직원은 희망퇴직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2500여명의 현대증권 직원 중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은 200여명에 불과했다. 전체 직원 중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600명의 인력 감축이 필요하다는 외부 경영 컨설팅 결과보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원이다.
 

이에 따라 현대증권이 남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봉 조정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악의 경우 경영상 해고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희망퇴직자가 현대증권 예상만큼 나오지 않은 이유는 타사보다 적은 퇴직위로금에 있다. 사실상 현대증권 직원들은 ‘삼중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직원들의 한숨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희망퇴직으로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된 데다 퇴직위로금마저 다른 증권사에 비해 훨씬 적게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은 반 토박이 났다.
 
현대증권의 위로금은 타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장급은 근속기간(25년 이상이면 6개월치)과 정년까지 남은 기간(15년 이상이면 6개월치)을 합쳐 최대 12개월치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평균 1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과장급은 11개월, 대리는 10개월치 정도다. 앞서 구조조정을 추진한 삼성증권은 부장급이 2억6000만원 규모의 위로금을 받았다. 우리투자증권도 2억4000만원 정도였다.
 
아울러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가격마저 뚝뚝 떨어져 직원들은 설상가상의 상황에 내몰렸다. 위로금마저도 토해내야 할 판이다. 현대증권이 유상증자를 할 때 대부분의 직원은 대출을 끼고 우리사주 물량을 받았다. 특히 2007년 현대증권이 유상증자를 하면서 직원들이 떠안은 우리사주는 반 토막이 났다.
 
타사보다 적은 위로금…우리사주는 반토막
희망퇴직 신청자 당초 목표 절반도 못미쳐
 

2007년엔 주당 1만6400원, 2011년엔 8500원이었다. 그런데 20일 현대증권 종가는 7400원이다. 평균가보다 40%가량 떨어진 수치다. 
 
희망퇴직에 이어 영업점 통폐합도 진행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증권은 다음 달 안으로 모두 18개 영업점을 통폐합한다.  
 
현재 현대증권의 영업점은 자산관리센터(WMC) 9곳, 지점 100곳, 영업소(브랜치) 6곳 등 모두 115개다. 이번 영업점 통폐합이 실시되면 지점과 영업소가 각각 87곳, 1곳으로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영업점 수는 기존보다 18곳이 줄어든 97개가 된다.  
 
현대증권은 영업점 통폐합을 내달 27일 실시할 예정이다. 통폐합되는 영업점은 다음 달 26일까지 영업한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대량 해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하지만 현대증권은 통폐합에 대해 “해직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위로금에 대해서는 타사와 비교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이미 희망퇴직을 실시한 대형 증권사들과 최근 2년간의 실적을 비교해보면 타사와 현대증권의 실적차이가 있다”며 “다른 증권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증권 노동조합은 회사 측의 구조조정안에 분노했다. 이동열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구조조정안은 역대 최악”이라며 “회사가 내놓은 구조조정안을 백지화하고 다시 교섭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희망퇴직도 노사 간의 합의 없이 진행됐다며 회사가 강제해고를 진행하면 전면파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현대증권이 10월 매각 과정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자 이전까지 희망퇴직 및 영업점 통폐합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노조는 분노했다. 제값 받고 팔기 어렵다는 우려에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 안팎에서는 매각을 위해 채권단이 현대증권의 인력 구조조정을 강하게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조심스레 회자되고 있다. 사실상 금융투자업계는 현대증권 매물을 크게 매력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대증권은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구조조정 임박
 
당초 업계는 현대증권 인수 후보로 범 현대가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 예측은 빗나갔다. 현대가도 매각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결국 현대증권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대증권이 사모펀드에 팔릴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실제 파인스트리트, 자베즈, 오릭스 등 세 사모펀드(PEF)들이 현대증권 매각과 관련해 실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4년 만에 은행권 총파업 예고
 
금융노조가 14년 만에 총파업을 예고했다. 관치금융과 복지축소 등을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오는 26일 찬반투표에서 조합원들의 찬성표가 더 많으면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는 지부 대표자회의와 중앙위원회를 열고 내달 3일 총파업 계획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금융노조는 산별교섭을 통해 조합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결정한다. 금융노조는 교섭에 앞서 ▲임금 6.1% 인상 ▲정년 60세 ▲통상임금 범위 확대 ▲국책공기업 자율교섭 보장 ▲근로시간 정상화 ▲여성할당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총파업 결의 이유로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에 따른 복지축소, 일방적 금융산업 재편에 따른 구조조정 우려 등을 꼽았다. 
 
금융노조는 “사측과 산별 대표단이 모두 18 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은 요지부동”이라며 “정부가 알아서 노동자들의 복지혜택을 깎아주겠다고 하는데 사측이 교섭에 합의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금융노조는 2000년 7월 정부주도의 인위적 합병에 반대하며 24개 사업장 6만5000여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2012년에는 91.3%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가결했지만 실제 총파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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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