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생명 살인적 구조조정 실상

“사장님 악명대로 피바람이 불고 있다”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보험업계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통하는 정문국 ING생명 사장. 그는 올 초 ING생명 사장이 되면서 직원들을 위한 경영을 약속했다. 구조조정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고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정 사장의 약속은 반년도 되지 않아 깨졌다. 그의 악명대로 임원들은 줄줄이 나갔다. 직원들은 퇴직압박에 시달렸다. 정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ING생명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 노조는 정 사장의 취임을 막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지난달 29일 희망퇴직 기간이 끝났다. 그동안 수많은 ING생명 직원들이 퇴직면담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임신 중이었던 한 여직원은 면담을 받다 쓰러졌다. 또 다른 직원도 ‘차라리 자살을 하고 싶다’고 호소하다 실신했다.

구조조정 전문가
거짓말도 전문가

지난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PEF)에 인수된 ING생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정문국 사장이 지난2월 ING생명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당시 노동조합은 정 사장의 취임을 강력 반대했다. 그는 보험업계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정 사장은 알리안츠생명 사장으로 재직했던 때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조원들을 폭행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정 사장은 이러한 꼬리표를 떼기 위해 취임 전부터 먼저 노조에 손을 내밀었다. ‘노사 간 상호신뢰와 협력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취임식 직전에는 이명호 노조위원장을 따로 만났다. 그렇게 정 사장은 노사 화합을 위해 적극 노력했다. 이때만 해도 정 사장의 태도에 노사 분위기는 훈훈했다. 그런데 그의 약속은 반년도 지나지 않아 깨졌다. 정 사장은 6월부터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우선 임원 및 부장급부터 대폭 감축했다. 정 사장은 임원 32명 중 16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대규모 조직개편을 통해 중복 부서를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75명에 달했던 부서장급 인력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희망퇴직은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달 정 사장은 희망퇴직을 권고하는 메시지를 보내 직원들로부터 한바탕 욕을 먹었다. 그는 사내인트라넷의 CEO메시지를 통해 “희망퇴직 시행이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회사 또한 새롭게 변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냈다.

이와 함께 희망퇴직 교섭을 제안하는 내용의 공문을 노조에 보냈다. 정 사장은 “회사의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직원들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변화만이 모두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고,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대한 성의를 다해 희망퇴직 제안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을 예고한 것이다.

이러한 정 대표의 메시지에 ING생명 노조는 분노했다.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정문국 사장이 말하는 ‘희망퇴직’은 과연 누구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인가”라며 “바로 투기자본 MBK파트너스의 간절한 희망일 뿐, 노동자들에겐 ‘퇴직보상금’이라는 일시적인 당근을 제시해 절망적인 선택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합법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희망퇴직’ 과정에서 조직내부의 갈등과 불안감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노조는 지난해 12월 ING생명을 인수할 당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던 MBK파트너스가 반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겼다고 규탄했다. 경영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구조조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희망 없는
희망퇴직

ING생명은 희망퇴직 대상을 정해놓고 면담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희망퇴직 대상은 5년차 이상, 차장급 이하의 직원들이다. 2011년 1월1일 이후부터 입사한 직원은 제외됐다.


정 사장은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직원들에게 근속연수의 1.25배에 해당하는 퇴직금에 10개월치 월급을 얹어주는 ‘1.25N+10’ 패키지를 제시했다. 예컨대 급여가 400만원이고 10년차 직원이 희망퇴직을 하면 1.25 곱하기 10에 10을 더해 22.5개월치 평균 급여로 9000만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희망퇴직자는 예상보다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구조조정 전문가’정문국 사장 진두지휘
노조에 먼저 손 내밀더니…뒤돌아 뒤통수

오히려 면담진행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ING생명 두 직원이 면담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후 노사 갈등은 최고조에 치달았다. ‘찍어내기’ 논란이 이어졌다.

ING생명 한 직원의 제보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임신 6주째였던 여직원은 면담 당시 퇴직의사가 없음을 밝혔는데도 사측이 3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그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온 끝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에 따라 노조는 사측이 육아휴직 중이거나 임신 중인 여성 직원에게 주로 퇴직강요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임신한 여직원이 실신한 뒤 노조 측은 ‘면담을 통해 퇴직을 압박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사측은 용어 순화 등 압박 수위를 낮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의 직원들에 대한 면담은 이어졌고, 또 다른 직원이 쓰러졌다. 이 직원 역시 퇴직의사가 없음을 밝혔음에도 해당 부서장이 ‘너와는 같이 일 못 한다’ ‘우리 부서에 네 자리가 없다’며 8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그는 극심한 압박에 시달리며 ‘차라리 자살을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결국 지난달 25일 그는 실신해 병원에 실려갔다.

익명을 요구한 ING생명 직원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총 8회에 걸쳐 소위 ‘찍퇴’ 면담을 실시했다”며 “면담과정에서 과중한 스트레스로 이 직원은 동료들에게 한강에서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개인적 중압감을 토로했음에도 불구하고 7차면담을 진행했다”며 “면담진행과정의 강압과 폭언에 근육 경직 및 호흡곤란을 일으켜 동료들이 119에 신고해 병원에서 긴급조치를 받았다”고 밝혔다. 현재 두 직원은 휴식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ING생명은 해당 직원이 병원에 실려 간 것은 사실이지만 퇴직 강요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희망퇴직 제도를 알렸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ING생명 관계자는 “5년 이상 근무자들이 주로 면담을 받았지만 특정 대상을 찍어서 면담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희망퇴직에 대한 안내를 받은 정도였다”라고 해명했다.

직원 쫓아내고
설계사 늘리기

ING생명은 본사 인원을 감축하는 것과 반대로 설계사 조직은 늘리는데 혈안이다. 정 사장은 설계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파격적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단기적 성과의 인센티브 제도에서 장기적 관점의 분할방식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ING생명이 도입하기로 한 인센티브 제도는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형식과 유사하다. 1년 동안 설계사들의 업무를 평가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분기별로 분산해 지급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센티브를 얹어주면서 기존 설계사는 붙잡고 다른 곳 설계사들을 끌어들여 실적을 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2년여 동안 매각작업이 지연되면서 설계사들의 숫자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 사장의 설계사 정책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설계사들 사이에서도 모집인을 붙잡아 두기 위한 임시방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생명보험사 한 설계사는 “ING생명이 실적이 조금만 괜찮아도 ‘우수설계사 상금’을 주고 이번 여름에도 해외여행을 대거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설계사들을 붙잡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당장 ING생명 모집인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길게 보면 실적경쟁 때문에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업계에 따르면 ING생명 설계사는 6000여명으로 파악됐다. ING생명 설계사는 2013년 4월 말 6700명에서 2013년 10월 6500명, 올해 1월 6100명, 4월말 현재 6000명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 감소폭은 줄어들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내부 상황을 보면 실제 영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소식이다.

이중에서도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 설계사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ING생명이 조직을 큰 것처럼 보이려고 영업을 하지 않는 설계사들의 자리를 빼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대주주 MBK가 5년 후 ING생명을 재매각할 때 높은 가격을 부르기 위해 본사 조직은 줄이고 영업인원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생명보험사의 설계사 수당을 높이는 정책은 실적을 높이기 위한 낚싯밥 같은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설계사가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 상품을 판매하려다 불완전 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연이다.

구조조정은 ING생명이 매각가를 높이기 위한 방식이라고 보았다. 이 관계자는 “외국계 사모펀드인 MBK는 국내 경제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라며 “인수 가격보다 더 비싸게 매각하는 것만이 목표이기 때문에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남기기 위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설계사 정책으로 매각가를 높이기위한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외국계 자본에 먹거리를 떠안겨 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희망퇴직? 임직원 줄줄이 잘려
설계사 키워 실적 올리기 복안

정 사장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ING생명를 인수한 직후인 올 2월에 취임했다. 사모펀드는 통상 5년 정도 안에 기업 가치를 극대화한 다음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남긴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MBK파트너스가 정 사장에게 ‘실적 극대화’를 주문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ING생명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도 이런 맥락일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달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 사장은 희망퇴직 등의 인력 구조조정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정 사장은 “ING생명이 지난 2008년 업계 4위에 있을 때 월납보험료가 100억원 수준이고, 임직원 수는 1000명이었다”면서 “현재는 월납보험료 26억원으로 월 매출액이 30% 수준으로 줄었지만 직원 수는 그때와 똑같다”고 희망퇴직의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그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자살보험금
과징금 문제도

이런 와중에 ING생명은 자살보험금 미지급에 따른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400여건, 금액으로는 500억원이 넘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ING생명을 제재조치하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은 ING생명이 재해사망 특약 가입 후 2년이 지나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한 약관을 어기고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한 것을 명백한 규칙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고의가 아닌 과실로 보고 제재 수위는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ING생명에 ‘기관주의’와 과징금 4900만원을 사전 통보했다.

문제는 당국의 제재 수위가 아니라 ING생명이 추가로 지급해야할 보험금 규모다. ING생명이 지급해야 할 자살보험금은 500억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3분의 1 수준이다.

ING생명이 자살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면 올해 순이익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ING생명의 순이익은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2409억원에서 2012년 1993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실적은 1878억원으로 2012년 같은 기간(1525억원)보다 늘었다.

ING생명은 일단 금융위의 최종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ING생명 관계자는 “금감원의 과징금에 대한 통보는 아직 안 나왔다”며 “정식 통보 전까지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 결정이 내려지면 법정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순이익이 줄어들수록 경영진의 성과급도 작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ING생명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카페베네 '점포 후리기' 백태, 실적에 눈멀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카페베네에 19억4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가맹사업법 위반 행위에 부과된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가맹점에 할인행사 비용 전액을 떠넘기고 인테리어 시공 등도 본사를 통해서만 하도록 강제한 이유에서다.

공정위에 따르면 카페베네는 2010년 8월 통신사 KT와 제휴해 KT 멤버십 회원이 카페베네에서 음식료품을 구매할 경우 가격의 10%를 할인해주는 계약을 맺었다. 할인 금액은 KT와 카페베네가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당시 전체 가맹점 중 40%는 비용 부담 증가를 우려해 제휴할인 서비스 개시를 반대했다. 하지만 카페베네는 할인행사 진행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그해 11월부터 실시했다.

카페베네는 이후 본사의 비용분담분(50%) 전액을 가맹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했다. 카페베네는 당초 가맹사업자와의 계약서에서 판촉비용을 가맹본부와 가맹점주가 나눠 내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공정위 측은 카페베네가 가맹본부의 지위를 이용해 가맹점주에 불이익을 준 것으로 판단했다.

 

가맹법 위반 역대 최고 과징금

 

또 카페베네는 새로 가맹점을 내려는 가맹 희망자가 매장 인테리어 시공과 장비·기기 조달을 모두 본사 또는 본사가 지정한 업체를 통해서 하도록 강제했다. 가맹 희망자가 시공 위탁 요구를 거부하면 아예 가맹계약을 맺지 않았다. 카페베네는 가맹 희망자에게 계약 체결 전 미리 점포를 확보하도록 했다. 그런데 가맹계약이 불발되면 예비 가맹점주는 점포 임대료를 날리게 된다. 이 때문에 가맹 희망자들은 본부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아울러 카페베네는 지난 6월에도 블랙스미스에 축산물을 공급할 당시 ‘축산물판매업 영업·판매신고’를 하지 않아 식약처로부터 행정처분 제재 조치를 받은 바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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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