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코스피200 살벌한 흥망사

하루하루 피말리는 ‘쩐의 전쟁’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1994년 6월에 태어난 코스피200. 올해 스무살이 됐다. 20년 동안 코스피200은 한국경제의 상처를 안고 함께 성장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만큼 부작용도 많았다. 어떤 기업은 몸집을 불렸고, 어떤 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스피200을 통해 한국경제를 되짚어 봤다.

코스피200은 한국경제의 자화상이다. 코스피200에 상장된 기업들은 20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안에서 많은 변동이 있었다. 종목마다 오르고 떨어지는 폭도 제각각이었다. 2008년 이후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삼성, 현대그룹 등의 계열사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경제 자화상

주가지수는 주식시장의 기온이다. 주식시장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경제지표의 역할을 한다. 증권시장 규모와 오르고 내리는 상황은 한 국가의 경제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가지수 중에서도 코스피200지수는 사실상 우리나라 경제 지표의 역할을 한다. 코스피 종목 중 200개를 뽑아낸 코스피200지수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상장돼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200은 상장종목수의 20%밖에 되지 않지만 전 종목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종합 주가지수의 움직임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코스피200지수는 1994년에 도입됐다. 이후 코스피200은 20년 동안 한국경제의 기쁨과 슬픔을 안고 함께 성장해왔다. 코스피200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부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까지 한국경제의 흥망성쇠가 담겨있다.


도입 당시만 해도 코스피200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200개가 상장돼 있는 만큼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기업들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았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10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27.2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코트라(KOTRA)가 발표한 우리나라 상장기업 평균 수명은 20년이었다.

한국거래소가 1994년 6월15일 ‘코스피200’ 종목을 처음으로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3분의 1의 기업만 살아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만큼 코스피200은 20년 동안 온갖 굴곡을 겪었다. 상위 10위권 안에서도 커다란 변동이 일어났다.

코스피200지수가 도입됐던 당시 1990년대 시가총액 1위는 한국전력공사가 늘 차지했다. 90년대는 공기업의 강세로 한국전력, 한국이동통신 등이 코스피200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코스피200도 주저앉았다. 종목의 시총이 뚝 떨어진 것이다. 97년 97조8850억원이었던 코스피200 종목 시총은 98년 48조7256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90년대 한국의 대표 기업이었던 대우그룹 계열 5개사(대우,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대우통신, 쌍용자동차)는 99년 코스피200종목에서 퇴출됐다. 그렇게 김우중 전 회장의 대우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90년대 한전 등 공기업 전성시대
2000년대 들어 삼성·현대 쏠림현상


2000년대 들어서면서 코스피200 판도는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경쟁력이 약했던 공기업들은 위축됐다. 따라서 90년대 시총 1위를 차지했던 한국전력은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 2012년에는 10위권 밖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대신 벤처붐이 일면서 삼성전자, 네이버, SK하이닉스 등의 IT 관련 기업들이 강세를 보였다. 이때부터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1위 자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맞이하면서 코스피200은 또다시 위축됐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전 2008년 6월 코스피200 시총은 759조9501억원이었지만 2009년에는 641조3597억원으로 15.6% 감소했다. 시총 감소폭은 외환위기 때에 비해 적지만 충격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수의 국내 대기업만 살아남고 많은 기업들은 쓰러졌다.

리먼 사태 이후 기업의 양극화 현상은 뚜렷해졌다. 2010년 이후부터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투톱’체제를 이루며 달리고 있다. 현재 삼성과 현대그룹 계열사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40%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된 삼성그룹 상장사는 16개, 현대그룹은 20개 종목으로 집계됐다.

특히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30%에 육박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전날 보통주 기준으로 코스피200지수를 구성하는 전체 종목 중 삼성그룹 상장사의 시총 비중은 29.7%로 나타났다. 특히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시총 비중만 20.72%에 달했다.
 

지난 2009년 6월 코스피200지수에서 삼성그룹 상장사의 시총이 차지하는 비중은 21.8%였다. 5년 사이에 삼성그룹의 시총 비중이 8%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당시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된 삼성그룹 상장사 종목 수는 13개였다. 이후 삼성카드(2009년 6월12일), 삼성생명(2010년 9월10일), 호텔신라(2013년 9월2일)가 추가로 편입되면서 16개가 됐다.

이러한 삼성, 현대, LG그룹 등 주요 대기업 계열사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 코스피200지수에서 이들 기업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해지면서 주가 지수 등락률이 소수 기업에 좌우되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대장주에 치중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거래소에서도 코스피 200지수 내 삼성전자 비중에 상한선을 두는 방법 등 여러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거래소는 코스피200지수의 산출방식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코스피200지수가 발전하기 위해 총수익지수(Total Return Index)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고봉찬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인덱스 콘퍼런스 2014’ 주제 발표를 통해 “현재 코스피200은 시가총액 기반의 가격지수로 배당 수익이 고려되지 않아 시장 수요와 다소 괴리가 있다”며 “주요 해외지수의 경우 대부분 총수익지수를 발표하고 있어 지수를 벤치마크로 하는 정확한 성과평가 및 활용도 제고 등을 위해 총수익지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스피200 재도전사


코스피200에서 쫓겨났다가 재입성하는 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를 꼽을 수 있다. 과거 1997년 만도기계는 부도발생 및 은행거래정지로 코스피200지수에서 퇴장 당했다. 2000년에 결국 상장 폐지됐다. 그러다 2012년 15년 만에 코스피200지수로 돌아와 부활했다. 악재를 딛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코스피200 종목에 입성한 것이다.

소주 제조업체인 진로도 2003년 상장 폐지됐다가 6년여 만에 증시에 재입성했다. 상장 폐지 후 5년이 지났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재상장이 아닌 신규상장 절차에 따라 기업공개부터 진행했다. 이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면서 진로는 코스피200에 편입됐다. 현재 코스피200 시가총액 5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기아차도 1997년 사라졌다가 2000년 다시 돌아왔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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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