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재벌들의 주식기부 비밀

선행 하는 척 뒤에선 ‘호박씨’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재벌들의 주식기부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부분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을 교육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장학 사업은 미래 인재 양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재단 기부가 승계 작업에 이용되는 모습이다. 재벌들의 주식기부 속셈을 파헤쳐보았다.

제약사 창업주들이 잇달아 보유한 주식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웅제약의 창업주 윤영환 회장이 보유 주식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몰빵 않고
쪼개서 기부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이 대웅 주식 107만1555주를 전부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대웅제약 주식 40만4743주도 기부했다.

지난2월에는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의 부인 정인애 여사가 녹십자홀딩스 주식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대량 매각했다. 지난 2009년 타계한 허 회장의 유언에 따라 정 여사는 목암연구소에 110만주, 나머지 339만1740주를 장학재단 등에 기부한 것이다.

광동제약 설립자 고 최수부 회장도 보유하고 있던 광동제약 지분 6.82% 중 4.35%를 가산문화재단에 증여했다. 최 회장의 장남 최성원 광동제약 대표가 물려받은 지분은 단 1.52%로 재단에 넘겨준 주식보다 적다.


제약업계 회장들이 기부를 해서 재단을 키우는데 관심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 자수성가한 창업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 바닥부터 시작해 기업을 키우기까지의 서러움을 알기에 그만큼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대개 인재 육성과 후학 양성을 위해 모교에 사재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배경도 있다. 승계 작업을 위한 포석이 되기도 한다. 재단에 보유 지분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절감할 수 있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대웅제약 윤영환 회장의 주식기부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식을 재단에 기부하기 전 윤 회장은 대웅 주식 9.21%를 갖고 있었다. 9.21%의 보유 지분을 윤 회장은 대웅재단, 대웅 근로복지기금, 석천대웅재단 등 세 곳에 각각 나눠 넘겼다.

우선 지난달 윤 회장은 대웅 지분 2.49%를 대웅재단에 넘겼다. 이어 대웅 근로복지기금에 1.77%를 기부했다. 남은 지분 4.95%마저 윤 회장은 설립 예정인 석천대웅재단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윤 회장은 증여세 부담을 덜게 됐다. 증여세법 제48조에 따르면 재단과 같은 공익법인 이 특정회사 지분의 5%(성실공익법인은 10%)를 초과하는 주식 등을 출연 받은 경우 과세하도록 명시돼 있다. 즉 재단에 기부할 때 총 발생주식의 5%만 넘지 않으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윤 회장이 2세에게 직접 증여를 했다면 경영권을 넘겨받을 2세는 증여세 150억원 가량을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윤 회장이 직접 증여가 아닌 재단을 통한 기부 방식을 택하면서 해당 2세는 이 같은 거액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서 윤 회장에게서 가업을 이어받을 자녀들에게도 관심이 몰렸다. 아직까지 대웅제약은 후계구도가 뚜렷하지 않은 모습이다. 윤 회장 자녀들의 보유 지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웅제약은 지분 40.73%를 보유한 지주회사 대웅이 지배하는 구조다. 대웅은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이 가장 많은 11.61%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남 윤재용씨(10.51%), 차남 윤재훈씨(9.70%), 장녀 윤영씨(5.42%) 등의 지분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나마 3남 윤재승 부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윤 회장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윤 회장이 기부한 대웅재단은 윤재승 부회장이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아울러 대웅재단의 이사장은 윤 부회장의 모친 장봉애씨가 맡고 있다.

미래인재 양성 취지로 교육재단에 쾌척
알고 보니 꼼수…승계 작업용으로 변질

대웅제약은 이 같은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윤 회장의 주식기부에 대해 사회 환원일 뿐 승계 작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못 박았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제약사는 생명을 다루는 업체다보니 회장님은 평소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으셨다”며 “설립 예정인 석천대웅재단은 의학에 대한 전문 교육을 목적으로 한 재단으로 회장님이 다른 재단에 기부하고 그나마 남은 주식까지 기부하셨을 뿐인데, 이런 과정을 증여세 절감을 위한 의도라고 보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승계 작업을 위해 증여세를 절감하려는 의도였다면 다른 기업들처럼 우회상장을 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면서 “뭐 하러 재단을 세우고 기부까지 하는 어려운 방식으로 증여세를 덜려고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주식을 나눠서 기부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아래 재단을 지분 확보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며 “특히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행위가 빈번하고, 증여세를 피할 수 있어 주식 기부라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특정회사 지분의 5% 이상 주식 기부(신설공익법인 10%) 때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 제도는 지난 1993년 도입됐다. 이후 정치권이나 관련단체, 조세연구원 등에서 이를 완화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매번 경영권 대물림이나 편법적 기업 지배구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번번이 엎어졌다.

자사주로
경영권 지키기

회장들은 자신의 기업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를 잔뜩 사들였다가 재단에 기부하기도 한다. 명목은 재단 기부이지만 실제 목적은 ‘경영권 지키기’ 및 상장 유지 조건을 갖추려는 의도에서 자사주 플레이를 강행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경영권 방어 또는 적대적 M&A시 자사주가 무용지물인 이유다. 그러나 자사주를 장학재단 등 공익재단에 기부 또는 출연하면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 의결권을 가지면 기업이 적대적 M&A 위험에 처했을 때 재단에 기부된 자사주가 일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회장들이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기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윤장섭 유화증권 명예회장은 지난 2008년 아들인 윤경립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후 꾸준히 자사주를 대거 사들이고 기부를 하는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를 기부했다. 지난달 그는 자사주 3000주를 기부했다. 처분단가는 주당 1만750원으로 윤 명예회장의 유화증권 지분율은 13.55%로 줄었다.

지난 3월에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 15만주를 기부했다. 윤 명예회장은 보유한 유화증권 주식 5만주와 10만주를 각각 학교와 성보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앞서 유화증권 오너 일가도 서울대, 고려대 등 자신들의 모교에 주식을 기부했다.


동시에 윤 명예회장은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공시에 따르면 윤 명예회장은 올해 들어 10차례 이상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적게는 10주에서 많게는 800주를 사들였다. 지난해에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를 기부하고 대거 매입했다. 당시 윤 회장이 사들인 우선주는 전체 거래량의 약 15%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 144건의 임원·주주 주요 특정 증권 등 소유상황보고서 중 대부분이 윤 명예회장이 자사주를 사들인 공시였다.

그렇게 사들이고 다시 우선주 3만5000주를 타인에게 증여하거나 기부했다. 지난해 3월 윤 회장은 김종학 감사에게 당시 종가기준으로 1억620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5000주를 증여했다. 김 감사는 1976년부터 유화증권에 몸담았던 유화증권맨이다. 또 1억20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주를 성보학원에 기부했고 1억35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주도 모교인 고려대에 기부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상장유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사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 나왔다.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르면 반기 기준으로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수의 1% 미만일 경우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다음 반기에도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 수의 1% 미만일 경우 상장 폐지된다. 윤 명예회장이 자사주를 매입해준 덕에 유화증권은 관리종목 지정 우려에서 피할 수 있었다. 

쪼개서 기부…속셈은 증여세 절감?
자사주 대거 사들인 뒤 기부 반복

눈높이 교육으로 알려진 대교그룹의 강영중 회장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강 회장은 증권가에서 ‘제2의 윤장섭 회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2012년 강 회장은 자신의 모교인 건국대에 대교 주식 8만2000주를 증여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70여 차례 자사주를 매입하더니 올해도 지난 1월 대교의 우선주 5910주를 취득한 것을 시작으로 40차례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그렇다고 강 회장의 지분구조가 취약한 상황도 아니다. 강 회장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교홀딩스가 보유한 대교 지분만 54.51%나 된다. 다른 특수 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62%를 넘는다. 따라서 강 회장 역시 경영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승계 작업도
기부 통해서?

최근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승계 작업 방식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SDS 상장에 이어 삼성에버랜드 상장이라는 두 번째 깜짝 소식에 경영권 승계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전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던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받은 승계 방식이 그대로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전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증여할 때 삼성문화재단에 지분을 넘겼다. 이건희 회장은 이 지분을 사들였다. 이병철 전 회장은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977년부터 지분 승계를 시작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이 납부한 증여 및 상속세는 약 181억원이었다. 당시 주식의 상속은 일반 거래세만 부과했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 역시 이 같은 승계 방식을 적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직접 증여에 비해 증여세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재단 기부 방식 가능성도 제기됐다. 삼성전자 및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지 않고 삼성 관련 재단에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5% 미만 지분 기부 시 증여세가 면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이번에는 증여세를 제대로 납부하는 ‘정공법’을 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3세들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 적어도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3.38%) 만큼은 전량 3세에게 직접 증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실적으로 직접 상속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행남자기 오너일가 지분 처분 '수수께끼'

행남자기 오너일가가 보유 지분을 잇달아 처분했다.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의 모친인 김재임씨는 주식 10.52%를 매각하기로 했다. 앞서 김 회장의 동생인 김태성 사장은 보유 지분 10.52% 가운데 5.96%를 장외에서 팔았다. 또 다른 동생인 김태형씨와 김흥주씨도 각각 3.31%와 0.83%를 매도했다. 이로써 김 회장을 포함한 최대 주주 측이 보유한 지분은 종전 58.68%에서 38.06%로 줄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행남자기 측에서 기업 매각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최근 행남자기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행남자기의 2012년 매출은 461억원으로 전년보다 14.1% 감소했다. 그해 3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매출도 4.7% 줄어든 439억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지만 영업 손실로 3억원의 적자를 냈다.

행남자기는 공시를 통해 이러한 의혹들을 부인했다. 행남자기는 공시를 통해 “당사는 대주주 지분 일부를 장외매도 했지만 경영권 매각 추진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와 별도로 자금조달 및 신규사업 검토 중에 있다”고 일축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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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