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재벌들의 주식기부 비밀

선행 하는 척 뒤에선 ‘호박씨’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재벌들의 주식기부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부분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을 교육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장학 사업은 미래 인재 양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재단 기부가 승계 작업에 이용되는 모습이다. 재벌들의 주식기부 속셈을 파헤쳐보았다.

제약사 창업주들이 잇달아 보유한 주식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웅제약의 창업주 윤영환 회장이 보유 주식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몰빵 않고
쪼개서 기부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이 대웅 주식 107만1555주를 전부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대웅제약 주식 40만4743주도 기부했다.

지난2월에는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의 부인 정인애 여사가 녹십자홀딩스 주식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대량 매각했다. 지난 2009년 타계한 허 회장의 유언에 따라 정 여사는 목암연구소에 110만주, 나머지 339만1740주를 장학재단 등에 기부한 것이다.

광동제약 설립자 고 최수부 회장도 보유하고 있던 광동제약 지분 6.82% 중 4.35%를 가산문화재단에 증여했다. 최 회장의 장남 최성원 광동제약 대표가 물려받은 지분은 단 1.52%로 재단에 넘겨준 주식보다 적다.


제약업계 회장들이 기부를 해서 재단을 키우는데 관심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 자수성가한 창업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 바닥부터 시작해 기업을 키우기까지의 서러움을 알기에 그만큼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대개 인재 육성과 후학 양성을 위해 모교에 사재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배경도 있다. 승계 작업을 위한 포석이 되기도 한다. 재단에 보유 지분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절감할 수 있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대웅제약 윤영환 회장의 주식기부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식을 재단에 기부하기 전 윤 회장은 대웅 주식 9.21%를 갖고 있었다. 9.21%의 보유 지분을 윤 회장은 대웅재단, 대웅 근로복지기금, 석천대웅재단 등 세 곳에 각각 나눠 넘겼다.

우선 지난달 윤 회장은 대웅 지분 2.49%를 대웅재단에 넘겼다. 이어 대웅 근로복지기금에 1.77%를 기부했다. 남은 지분 4.95%마저 윤 회장은 설립 예정인 석천대웅재단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윤 회장은 증여세 부담을 덜게 됐다. 증여세법 제48조에 따르면 재단과 같은 공익법인 이 특정회사 지분의 5%(성실공익법인은 10%)를 초과하는 주식 등을 출연 받은 경우 과세하도록 명시돼 있다. 즉 재단에 기부할 때 총 발생주식의 5%만 넘지 않으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윤 회장이 2세에게 직접 증여를 했다면 경영권을 넘겨받을 2세는 증여세 150억원 가량을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윤 회장이 직접 증여가 아닌 재단을 통한 기부 방식을 택하면서 해당 2세는 이 같은 거액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서 윤 회장에게서 가업을 이어받을 자녀들에게도 관심이 몰렸다. 아직까지 대웅제약은 후계구도가 뚜렷하지 않은 모습이다. 윤 회장 자녀들의 보유 지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웅제약은 지분 40.73%를 보유한 지주회사 대웅이 지배하는 구조다. 대웅은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이 가장 많은 11.61%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남 윤재용씨(10.51%), 차남 윤재훈씨(9.70%), 장녀 윤영씨(5.42%) 등의 지분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나마 3남 윤재승 부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윤 회장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윤 회장이 기부한 대웅재단은 윤재승 부회장이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아울러 대웅재단의 이사장은 윤 부회장의 모친 장봉애씨가 맡고 있다.

미래인재 양성 취지로 교육재단에 쾌척
알고 보니 꼼수…승계 작업용으로 변질

대웅제약은 이 같은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윤 회장의 주식기부에 대해 사회 환원일 뿐 승계 작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못 박았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제약사는 생명을 다루는 업체다보니 회장님은 평소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으셨다”며 “설립 예정인 석천대웅재단은 의학에 대한 전문 교육을 목적으로 한 재단으로 회장님이 다른 재단에 기부하고 그나마 남은 주식까지 기부하셨을 뿐인데, 이런 과정을 증여세 절감을 위한 의도라고 보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승계 작업을 위해 증여세를 절감하려는 의도였다면 다른 기업들처럼 우회상장을 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면서 “뭐 하러 재단을 세우고 기부까지 하는 어려운 방식으로 증여세를 덜려고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주식을 나눠서 기부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아래 재단을 지분 확보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며 “특히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행위가 빈번하고, 증여세를 피할 수 있어 주식 기부라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특정회사 지분의 5% 이상 주식 기부(신설공익법인 10%) 때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 제도는 지난 1993년 도입됐다. 이후 정치권이나 관련단체, 조세연구원 등에서 이를 완화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매번 경영권 대물림이나 편법적 기업 지배구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번번이 엎어졌다.

자사주로
경영권 지키기

회장들은 자신의 기업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를 잔뜩 사들였다가 재단에 기부하기도 한다. 명목은 재단 기부이지만 실제 목적은 ‘경영권 지키기’ 및 상장 유지 조건을 갖추려는 의도에서 자사주 플레이를 강행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경영권 방어 또는 적대적 M&A시 자사주가 무용지물인 이유다. 그러나 자사주를 장학재단 등 공익재단에 기부 또는 출연하면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 의결권을 가지면 기업이 적대적 M&A 위험에 처했을 때 재단에 기부된 자사주가 일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회장들이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기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윤장섭 유화증권 명예회장은 지난 2008년 아들인 윤경립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후 꾸준히 자사주를 대거 사들이고 기부를 하는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를 기부했다. 지난달 그는 자사주 3000주를 기부했다. 처분단가는 주당 1만750원으로 윤 명예회장의 유화증권 지분율은 13.55%로 줄었다.

지난 3월에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 15만주를 기부했다. 윤 명예회장은 보유한 유화증권 주식 5만주와 10만주를 각각 학교와 성보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앞서 유화증권 오너 일가도 서울대, 고려대 등 자신들의 모교에 주식을 기부했다.


동시에 윤 명예회장은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공시에 따르면 윤 명예회장은 올해 들어 10차례 이상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적게는 10주에서 많게는 800주를 사들였다. 지난해에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를 기부하고 대거 매입했다. 당시 윤 회장이 사들인 우선주는 전체 거래량의 약 15%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 144건의 임원·주주 주요 특정 증권 등 소유상황보고서 중 대부분이 윤 명예회장이 자사주를 사들인 공시였다.

그렇게 사들이고 다시 우선주 3만5000주를 타인에게 증여하거나 기부했다. 지난해 3월 윤 회장은 김종학 감사에게 당시 종가기준으로 1억620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5000주를 증여했다. 김 감사는 1976년부터 유화증권에 몸담았던 유화증권맨이다. 또 1억20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주를 성보학원에 기부했고 1억35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주도 모교인 고려대에 기부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상장유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사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 나왔다.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르면 반기 기준으로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수의 1% 미만일 경우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다음 반기에도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 수의 1% 미만일 경우 상장 폐지된다. 윤 명예회장이 자사주를 매입해준 덕에 유화증권은 관리종목 지정 우려에서 피할 수 있었다. 

쪼개서 기부…속셈은 증여세 절감?
자사주 대거 사들인 뒤 기부 반복

눈높이 교육으로 알려진 대교그룹의 강영중 회장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강 회장은 증권가에서 ‘제2의 윤장섭 회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2012년 강 회장은 자신의 모교인 건국대에 대교 주식 8만2000주를 증여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70여 차례 자사주를 매입하더니 올해도 지난 1월 대교의 우선주 5910주를 취득한 것을 시작으로 40차례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그렇다고 강 회장의 지분구조가 취약한 상황도 아니다. 강 회장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교홀딩스가 보유한 대교 지분만 54.51%나 된다. 다른 특수 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62%를 넘는다. 따라서 강 회장 역시 경영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승계 작업도
기부 통해서?

최근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승계 작업 방식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SDS 상장에 이어 삼성에버랜드 상장이라는 두 번째 깜짝 소식에 경영권 승계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전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던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받은 승계 방식이 그대로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전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증여할 때 삼성문화재단에 지분을 넘겼다. 이건희 회장은 이 지분을 사들였다. 이병철 전 회장은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977년부터 지분 승계를 시작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이 납부한 증여 및 상속세는 약 181억원이었다. 당시 주식의 상속은 일반 거래세만 부과했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 역시 이 같은 승계 방식을 적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직접 증여에 비해 증여세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재단 기부 방식 가능성도 제기됐다. 삼성전자 및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지 않고 삼성 관련 재단에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5% 미만 지분 기부 시 증여세가 면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이번에는 증여세를 제대로 납부하는 ‘정공법’을 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3세들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 적어도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3.38%) 만큼은 전량 3세에게 직접 증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실적으로 직접 상속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행남자기 오너일가 지분 처분 '수수께끼'

행남자기 오너일가가 보유 지분을 잇달아 처분했다.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의 모친인 김재임씨는 주식 10.52%를 매각하기로 했다. 앞서 김 회장의 동생인 김태성 사장은 보유 지분 10.52% 가운데 5.96%를 장외에서 팔았다. 또 다른 동생인 김태형씨와 김흥주씨도 각각 3.31%와 0.83%를 매도했다. 이로써 김 회장을 포함한 최대 주주 측이 보유한 지분은 종전 58.68%에서 38.06%로 줄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행남자기 측에서 기업 매각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최근 행남자기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행남자기의 2012년 매출은 461억원으로 전년보다 14.1% 감소했다. 그해 3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매출도 4.7% 줄어든 439억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지만 영업 손실로 3억원의 적자를 냈다.

행남자기는 공시를 통해 이러한 의혹들을 부인했다. 행남자기는 공시를 통해 “당사는 대주주 지분 일부를 장외매도 했지만 경영권 매각 추진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와 별도로 자금조달 및 신규사업 검토 중에 있다”고 일축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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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