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재벌들의 주식기부 비밀

선행 하는 척 뒤에선 ‘호박씨’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재벌들의 주식기부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부분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을 교육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장학 사업은 미래 인재 양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재단 기부가 승계 작업에 이용되는 모습이다. 재벌들의 주식기부 속셈을 파헤쳐보았다.

제약사 창업주들이 잇달아 보유한 주식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웅제약의 창업주 윤영환 회장이 보유 주식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몰빵 않고
쪼개서 기부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이 대웅 주식 107만1555주를 전부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대웅제약 주식 40만4743주도 기부했다.

지난2월에는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의 부인 정인애 여사가 녹십자홀딩스 주식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대량 매각했다. 지난 2009년 타계한 허 회장의 유언에 따라 정 여사는 목암연구소에 110만주, 나머지 339만1740주를 장학재단 등에 기부한 것이다.

광동제약 설립자 고 최수부 회장도 보유하고 있던 광동제약 지분 6.82% 중 4.35%를 가산문화재단에 증여했다. 최 회장의 장남 최성원 광동제약 대표가 물려받은 지분은 단 1.52%로 재단에 넘겨준 주식보다 적다.


제약업계 회장들이 기부를 해서 재단을 키우는데 관심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 자수성가한 창업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 바닥부터 시작해 기업을 키우기까지의 서러움을 알기에 그만큼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대개 인재 육성과 후학 양성을 위해 모교에 사재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배경도 있다. 승계 작업을 위한 포석이 되기도 한다. 재단에 보유 지분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절감할 수 있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대웅제약 윤영환 회장의 주식기부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식을 재단에 기부하기 전 윤 회장은 대웅 주식 9.21%를 갖고 있었다. 9.21%의 보유 지분을 윤 회장은 대웅재단, 대웅 근로복지기금, 석천대웅재단 등 세 곳에 각각 나눠 넘겼다.

우선 지난달 윤 회장은 대웅 지분 2.49%를 대웅재단에 넘겼다. 이어 대웅 근로복지기금에 1.77%를 기부했다. 남은 지분 4.95%마저 윤 회장은 설립 예정인 석천대웅재단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윤 회장은 증여세 부담을 덜게 됐다. 증여세법 제48조에 따르면 재단과 같은 공익법인 이 특정회사 지분의 5%(성실공익법인은 10%)를 초과하는 주식 등을 출연 받은 경우 과세하도록 명시돼 있다. 즉 재단에 기부할 때 총 발생주식의 5%만 넘지 않으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윤 회장이 2세에게 직접 증여를 했다면 경영권을 넘겨받을 2세는 증여세 150억원 가량을 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윤 회장이 직접 증여가 아닌 재단을 통한 기부 방식을 택하면서 해당 2세는 이 같은 거액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서 윤 회장에게서 가업을 이어받을 자녀들에게도 관심이 몰렸다. 아직까지 대웅제약은 후계구도가 뚜렷하지 않은 모습이다. 윤 회장 자녀들의 보유 지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웅제약은 지분 40.73%를 보유한 지주회사 대웅이 지배하는 구조다. 대웅은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이 가장 많은 11.61%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남 윤재용씨(10.51%), 차남 윤재훈씨(9.70%), 장녀 윤영씨(5.42%) 등의 지분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나마 3남 윤재승 부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윤 회장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윤 회장이 기부한 대웅재단은 윤재승 부회장이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아울러 대웅재단의 이사장은 윤 부회장의 모친 장봉애씨가 맡고 있다.

미래인재 양성 취지로 교육재단에 쾌척
알고 보니 꼼수…승계 작업용으로 변질

대웅제약은 이 같은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윤 회장의 주식기부에 대해 사회 환원일 뿐 승계 작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못 박았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제약사는 생명을 다루는 업체다보니 회장님은 평소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으셨다”며 “설립 예정인 석천대웅재단은 의학에 대한 전문 교육을 목적으로 한 재단으로 회장님이 다른 재단에 기부하고 그나마 남은 주식까지 기부하셨을 뿐인데, 이런 과정을 증여세 절감을 위한 의도라고 보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승계 작업을 위해 증여세를 절감하려는 의도였다면 다른 기업들처럼 우회상장을 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면서 “뭐 하러 재단을 세우고 기부까지 하는 어려운 방식으로 증여세를 덜려고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주식을 나눠서 기부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아래 재단을 지분 확보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며 “특히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행위가 빈번하고, 증여세를 피할 수 있어 주식 기부라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특정회사 지분의 5% 이상 주식 기부(신설공익법인 10%) 때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 제도는 지난 1993년 도입됐다. 이후 정치권이나 관련단체, 조세연구원 등에서 이를 완화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매번 경영권 대물림이나 편법적 기업 지배구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번번이 엎어졌다.

자사주로
경영권 지키기

회장들은 자신의 기업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를 잔뜩 사들였다가 재단에 기부하기도 한다. 명목은 재단 기부이지만 실제 목적은 ‘경영권 지키기’ 및 상장 유지 조건을 갖추려는 의도에서 자사주 플레이를 강행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경영권 방어 또는 적대적 M&A시 자사주가 무용지물인 이유다. 그러나 자사주를 장학재단 등 공익재단에 기부 또는 출연하면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 의결권을 가지면 기업이 적대적 M&A 위험에 처했을 때 재단에 기부된 자사주가 일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회장들이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기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윤장섭 유화증권 명예회장은 지난 2008년 아들인 윤경립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후 꾸준히 자사주를 대거 사들이고 기부를 하는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를 기부했다. 지난달 그는 자사주 3000주를 기부했다. 처분단가는 주당 1만750원으로 윤 명예회장의 유화증권 지분율은 13.55%로 줄었다.

지난 3월에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 15만주를 기부했다. 윤 명예회장은 보유한 유화증권 주식 5만주와 10만주를 각각 학교와 성보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앞서 유화증권 오너 일가도 서울대, 고려대 등 자신들의 모교에 주식을 기부했다.


동시에 윤 명예회장은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공시에 따르면 윤 명예회장은 올해 들어 10차례 이상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적게는 10주에서 많게는 800주를 사들였다. 지난해에도 윤 명예회장은 자사주를 기부하고 대거 매입했다. 당시 윤 회장이 사들인 우선주는 전체 거래량의 약 15%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 144건의 임원·주주 주요 특정 증권 등 소유상황보고서 중 대부분이 윤 명예회장이 자사주를 사들인 공시였다.

그렇게 사들이고 다시 우선주 3만5000주를 타인에게 증여하거나 기부했다. 지난해 3월 윤 회장은 김종학 감사에게 당시 종가기준으로 1억620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5000주를 증여했다. 김 감사는 1976년부터 유화증권에 몸담았던 유화증권맨이다. 또 1억20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주를 성보학원에 기부했고 1억350만원 상당의 우선주 1만주도 모교인 고려대에 기부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상장유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사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 나왔다.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르면 반기 기준으로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수의 1% 미만일 경우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다음 반기에도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 수의 1% 미만일 경우 상장 폐지된다. 윤 명예회장이 자사주를 매입해준 덕에 유화증권은 관리종목 지정 우려에서 피할 수 있었다. 

쪼개서 기부…속셈은 증여세 절감?
자사주 대거 사들인 뒤 기부 반복

눈높이 교육으로 알려진 대교그룹의 강영중 회장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강 회장은 증권가에서 ‘제2의 윤장섭 회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2012년 강 회장은 자신의 모교인 건국대에 대교 주식 8만2000주를 증여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70여 차례 자사주를 매입하더니 올해도 지난 1월 대교의 우선주 5910주를 취득한 것을 시작으로 40차례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그렇다고 강 회장의 지분구조가 취약한 상황도 아니다. 강 회장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교홀딩스가 보유한 대교 지분만 54.51%나 된다. 다른 특수 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62%를 넘는다. 따라서 강 회장 역시 경영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승계 작업도
기부 통해서?

최근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승계 작업 방식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SDS 상장에 이어 삼성에버랜드 상장이라는 두 번째 깜짝 소식에 경영권 승계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전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던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받은 승계 방식이 그대로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전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증여할 때 삼성문화재단에 지분을 넘겼다. 이건희 회장은 이 지분을 사들였다. 이병철 전 회장은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977년부터 지분 승계를 시작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이 납부한 증여 및 상속세는 약 181억원이었다. 당시 주식의 상속은 일반 거래세만 부과했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 역시 이 같은 승계 방식을 적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직접 증여에 비해 증여세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재단 기부 방식 가능성도 제기됐다. 삼성전자 및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지 않고 삼성 관련 재단에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5% 미만 지분 기부 시 증여세가 면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이번에는 증여세를 제대로 납부하는 ‘정공법’을 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3세들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 적어도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3.38%) 만큼은 전량 3세에게 직접 증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실적으로 직접 상속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행남자기 오너일가 지분 처분 '수수께끼'

행남자기 오너일가가 보유 지분을 잇달아 처분했다.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의 모친인 김재임씨는 주식 10.52%를 매각하기로 했다. 앞서 김 회장의 동생인 김태성 사장은 보유 지분 10.52% 가운데 5.96%를 장외에서 팔았다. 또 다른 동생인 김태형씨와 김흥주씨도 각각 3.31%와 0.83%를 매도했다. 이로써 김 회장을 포함한 최대 주주 측이 보유한 지분은 종전 58.68%에서 38.06%로 줄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행남자기 측에서 기업 매각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최근 행남자기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행남자기의 2012년 매출은 461억원으로 전년보다 14.1% 감소했다. 그해 3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매출도 4.7% 줄어든 439억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지만 영업 손실로 3억원의 적자를 냈다.

행남자기는 공시를 통해 이러한 의혹들을 부인했다. 행남자기는 공시를 통해 “당사는 대주주 지분 일부를 장외매도 했지만 경영권 매각 추진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와 별도로 자금조달 및 신규사업 검토 중에 있다”고 일축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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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