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러난' 롯데 상납고리 실체

얽히고설킨 비리사슬…신동빈 회장 충격 받았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이 사상 최악의 ‘뇌물 스캔들’에 휩싸였다. 납품업체로부터 청탁 뒷돈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검찰수사는 주력계열사 핵심 CEO를 넘어 그룹 전체를 흔드는 모양새다. 롯데는 망연자실한 표정. 가뜩이나 ‘윤리경영’을 강조해온 그룹 이미지에 ‘뇌물 기업’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공교롭게 롯데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뇌물에 연루된 전력이 있다.

지난 1일 롯데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롯데홈쇼핑 납품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서영민)는 이날 납품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기고,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롯데홈쇼핑 전ㆍ현직 임직원 4명을 구속했다.

뇌물 뿐 아니라
자금 횡령까지

비리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소 납품업체로부터 청탁을 댓가로 뒷돈을 받은 뇌물 사건, 다른 하나는 회삿돈을 빼돌린 횡령 건이다.

뒷돈을 챙긴 뇌물 사건의 주요 인물은 이모 전 이사와 상품기획자 정모 전 팀장이다. 이 전 이사는 2008년 12월∼2012년 10월 약 4년간 각종 생활용품을 중간 유통하는 업체 5곳으로부터 방송출연 횟수와 시간을 편성하는 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9억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팀장은 2008년 12월∼2010년 1월 약 2년간 유통업체 한 곳으로부터 고급 승용차 한 대를 포함해 2억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가족, 친인척 등 명의로 차명 계좌를 만드는 수법으로 뇌물 통장을 관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들이 받은 뒷돈의 규모가 20억원이 넘는다고 보고 있다.


횡령사건에 연루된 인물은 롯데홈쇼핑 총무·관리 파트에 있는 이모 방송 본부장과 김모 고객지원부문장이다. 이들은 롯데홈쇼핑 본사 사옥 이전 과정에서 인테리어업체로부터 4억9000만원 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0년 롯데홈쇼핑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양평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이 본부장 등은 당시 임대 중이던 건물의 인테리어를 원상 복구하는 과정에서 업체에 비용을 과다지급한 뒤 차액을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회사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챙긴 횡령 금액은 용역·공사 대금 청구건을 포함해 총 6억5000만원에 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롯데 홈쇼핑 비리는 몇몇 부정한 직원의 단순 비리로 치부되는 듯 했다. 이후 사건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검찰이 이 본부장 등이 횡령한 돈의 용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 억원의 돈이 롯데그룹 최대계열사인 롯데쇼핑을 이끌고 있는 신헌 사장 계좌에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구매 담당자의 납품 비리가 회사 차원의 구조적인 비리사슬로 엮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 ‘뇌물 사건’ 후폭풍은 ‘롯데 그룹 상납고리’와 맞물려 일파만파로 번지는 분위기다.

최고위 임원
비리사슬 몸통?

신 사장은 이번 사건이 벌어졌던 2008∼2012년 사이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사정기관과 업계에 따르면, 신 사장은 당시 이들이 횡령한 돈의 상당액을 현금 뿐 아니라 신용카드 형태로 받아서 썼다. 외형상으로는 업무추진비 명목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신 사장 신용카드에 연결된 계좌가 이 본부장 명의의 통장 등 횡령한 돈이 들어있는 ‘비자금 창구’였다고 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대부분 상납 경로의 시작이 김 부문장에서 비롯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본부장이 경영지원 부문장을 지낸 2009∼2011년 당시 총무팀장이었던 김 부문장에게 업체에게 납품단가를 10∼15% 과다 지급하게 만든 뒤 그만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했고, 이를 비밀 계좌에 보관토록 했다는 것이다.

‘뇌물 스캔들’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원 구속
신동빈 회장 측근 신헌 사장까지 ‘일파만파’

이 본부장은 이후 비자금이 마련된 비밀 계좌에서 현금을 꺼내 수시로 신 사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횡령한 자금이 들어있던 이 본부장 계좌의 신용카드도 신 사장이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 전 이사도 사내에서 ‘신 사장 라인’으로 분류된 대표 인사로, 별도로 신 사장에게 뒷돈 일부를 상납했는지 조사 중이다. 이어 신 사장이 임직원들로부터 건네받은 돈을 그룹 내 다른 고위층이나 정관계 인사에 로비 명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신 사장이 애초에 횡령을 전제로 임직원들과 공모한 것인지, 신 사장이 또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상납했는지 여부가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며 “롯데홈쇼핑 현직 임원과 롯데백화점 현직 사장까지 연루된 조직적인 횡령사건으로 번지고 있어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장 최측근
도대체 왜…

롯데그룹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내부에서는 창사 이래 최악의 스캔들이 터졌다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신 사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있다.

롯데홈쇼핑 대표였던 신 사장이 자신보다 먼저 임원이 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 선배인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 등을 제치고 2012년 2월 롯데쇼핑의 백화점부분 사장 자리를 꿰찬것도 신 회장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사장은 취임 후 ‘젊고 패션이 강한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며 소통경영, 현장경영, 윤리경영 등을 강조해왔다. 특히 직접 고객들 앞에서 마술쇼를 기획하는 등 뛰어난 소통능력과 함께 ‘스타 CEO’기질을 보여왔다.

그렇기 때문에 신 사장의 뇌물 스캔들 연루는 그룹 내부에서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 사장 역시 그룹 비자금 조성에 이용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롯데그룹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는 반응도 있다. 롯데그룹은 비정규직 직원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직원 평균 연봉이 3801만원에 그쳐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롯데 임직원들이 낮은 연봉을 벌충하기 위해 납품업체에 손을 벌리는 것을 서로 묵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신 사장이 지난해 받은 연봉도 8억9400만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타 대기업에서 신 사장 위치에 있는 임원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롯데그룹의 비리 검증 시스템은 전통적으로 약한 편이다. 롯데는 내부 비리를 적발하는 감사팀장을 부장급이나 초임 임원으로 급을 낮춰놔, 비리를 적발하더라도 소신 있게 대처하기 힘든 구조를 취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애초부터 감사시스템을 내부 고위층 외압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어 놨다”면서 “이런 구조가 비리를 키우고, 뇌물 문화를 장착시켰다”고 지적했다.

‘돈이면 다 돼’
영화같은 로비전

사실 롯데그룹 내 뇌물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처럼 윗선과의 조직전인 상납구조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 꾸준히 ‘뇌물 스캔들’로 문제를 일으켜왔다.

우선 롯데그룹은 2006년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뒤 이듬해 롯데홈쇼핑을 출범시켰으며 인수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롯데는 태광그룹과 우리홈쇼핑 인수전쟁을 벌이면서 정·관계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슈퍼는 공무원과 민원인들을 돈으로 매수해 불량식품 사건을 무마시키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롯데슈퍼는 지난해 7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다 적발되자 행정처분 무마 조건으로 공무원과 민원인들에게 금품을 건넸다 적발됐다.


‘하청업체→임원→사장’ 상납구조
꼴찌 연봉·부실 감사시스템 지적

롯데건설은 그룹 ‘뇌물 비리’에 정점을 찍었다. 2011년 자금 유동성이 불안한 건설사로 지목되자 공격적인 수주전에 나섰고, 재개발 사업 추진 중 뒷돈 거래를 펼쳤다. 당시 롯데건설은 은평구 응암제2구역 주택재개발 공사를 따내기 위해 홍보용역 업체를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87억여원의 금품을 뿌린 혐의를 받았다.

2009년에는 영화 같은 로비전을 벌이다 적발됐다. 대형건설공사 공사수주를 받기 위해 입찰 심의평가위원을 상대로 억대의 금품 로비를 벌인 것이다. 당시 롯데건설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은 현장소장들은 입찰일 직전에 설계 설명 등을 명목으로 평가심의위원 후보자들을 접촉해 선물공세를 펼쳤다.

이후 입찰 당일 새벽에 공사관계자 수 백명을 후보자 집 앞에 대기시킨 뒤 후보자가 위원으로 선정돼 집을 나서면 곧바로 따라붙어 고액의 뇌물을 건네기로 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에는 뇌물을 주고 분양가 수백억을 부풀렸다 덜미가 잡혔다. 당시 롯데건설은 서울 청계천 일대의 롯데캐슬 재개발 건축 현장에서 전 현직 조합장에게 수 억원의 뇌물을 주고 공사비를 수 백억원이나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평당 분양가는 58만원이나 올랐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이 됐다.

롯데그룹의 잇단 뇌물 스캔들에 재계 한 관계자는 “갑을 관계가 명확한 우리 사회의 특성이 뇌물 비리를 고착화 시킨 것 같지만, 무엇보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가 기업 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뇌물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사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재수 없이’ 걸린 피해자들만 양산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롯데홈쇼핑 급성장 비결
‘갑질’로 덩치 2배 키워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롯데홈쇼핑이 지난 5년간 두 배 가까이 덩치를 키워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기간은 상납 의혹에 휘말린 신헌 롯데쇼핑 사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절과 맞물려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개별 기준 연매출 7732억원을 기록, 5년 전 연매출 3067억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매출 규모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52억원에서 738억원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이후 신 사장이 롯데홈쇼핑 대표로 취임된 이후, 폭풍성장이 가속화됐다. 신 사장 취임 당시 3067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4341억원으로 42%가량 성장했고, 2011년에는 636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7732억원의 연매출을 달성하며 매년 약 2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영업이익도 두 배 가까이 커졌다. 2008년 452억원을 기록하던 영업이익은 2011년 959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 738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매년 10~15%를 기록하며 양호한 수익성을 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롯데그룹의 갑질이 롯데홈쇼핑 5년 성장 스토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며 “공격적 마케팅과 채널 확보라지만, 그 이면엔 납품업체들의 눈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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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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