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으로 간 사장들 활약상

어제 동지가 오늘 적…친정에 비수 ‘팍’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에 ‘신(新)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너도나도 사령탑을 교체하면서 앙숙이었던 경쟁사 인력을 수혈하고 있어서다. 특히 ‘친정’을 향해 뒤통수를 제대로 날린 이적 CEO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들은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친정과 피 튀기는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이적 CEO들을 모아봤다.

경쟁사로 이적해 친정 회사와 정면 승부를 펼치고 있는 전문 CEO들이 각광받고 있다. 능력 있는 CEO들이 경쟁사에 스카우트되는 게 일반화된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식품·유통·IT업계를 중심으로 CEO들이 경쟁사로 옮겨 맹활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준비된 인재
파격 스카우트

SPC그룹은 ‘CJ 인재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CJ 출신 권인태 부사장을 영입해, 계열사인 파리바게뜨 마케팅BU(부사장)로 선임했다. 영업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진 권 부사장은 CJ그룹 지주회사인 CJ에서 전략지원 업무를 지휘해 왔다.

대구 영신고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6년 제일제당에 입사해 CJ푸드빌 경영기획실장, CJ제일제당 영업SU장 등 영업 담당을 거쳤다. 이후 CJ그룹 전략지원팀장(부사장), 홍보실장, CRS팀장 등을 지냈다.

SPC그룹은 그동안 경쟁사인 CJ푸드빌과 CJ제일제당에서 닦아온 권 부사장의 영업 노하우를 높이 평가해 영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SPC그룹과 CJ는 베이커리와 커피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라이벌이다. 업계는 이 점 때문에 권 부사장이 우선 계열사 마케팅을 총괄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룹의 경영전반에 관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권 부사장 영입 배경에 윤석춘 삼립식품 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윤 사장은 CJ에서 권 부사장과 한솥밥을 먹다가 2012년 SPC그룹 계열사인 삼립식품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윤 사장은 당시 CJ제일제당에서 식품과 영업을 두루 거친 인물로, 식품업계 생리에 대해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선사업본부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두부사업을 진두지휘했고, 이후 식품총괄본부장을 거쳐 영업까지 총괄한 바 있다.

식품·유통·IT업계 경쟁사 스카우트
영업력 강화·신사업 위해 외부 수혈

삼립식품으로 적을 옮겨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은 후에는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연결 기준)이 7849억원으로 2012년보다 31.1%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238억원으로 2012년 78억과 비교해 205.1%나 수직상승했다. 지난해 6월 육가공업체 알프스 식품을 인수하는 등 윤 사장의 과감한 투자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사장은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3일 대표이사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윤 사장이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가자 SPC그룹이 권 부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안다”며 “평소 앙숙처럼 지내는 경쟁사의 핵심 인력을 영입한 만큼 CJ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A+’성적표
구원투수 투입

동원그룹의 선택도 파격적이다. 지난해 3월 동원F&B의 동종 업계인 대상의 대표를 지낸 박성칠 사장을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박 사장 스카우트 배경에는 위기에 빠진 동원F&B를 구하려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0년 외환은행에 입사한 이후 1993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까지 삼성전자 PI(프로세스 혁신) 총괄, 2003년까지 i2테크놀로지 대표이사,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삼성전자 SCM(공급망 관리) 및 PI, 경영혁신 총괄 등을 역임하면서 ‘혁신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박 사장이 처음 식품업계와 인연을 맺은 건 2009년이다. 대상이 처음으로 외부 전문가 박 사장을 영입해 경영을 맡겼고, 취임 첫해 매출 1조원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실제로 대상은 박 사장 재임 기간인 2009∼2011년까지 영업이익은 534억원에서 943억원으로 76.6% 늘어났고, 영업이익률도 5.29%에서 6.77%로 상승했다.

위기에 빠졌던 대상을 살려낸 그는 동원F&B 사장 취임 후 온라인몰 규모를 늘리고 공급망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참치캔의 원가 구조를 개선하는 등 혁신을 주도했다.

그 노력에 실적이 화답했다. 동원F&B가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누적 매출(연결 기준)은 1조320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4% 올라 소폭 증가했으나 영업 이익은 52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0.4% 증가해 선방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를 ‘박성칠 효과’라고 부를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목할 점은 마케팅비와 R&D 비용 등 쓸 때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 같은 결과를 달성했다는 것”이라며 “박 사장 스카우트가 곧 수익성 개선이라는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2010년 1월 ‘진로출신 영업의 달인’인 장인수 하이트주조 사장을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발탁했다. 1993년 만해도 국내 시장 점유율 70%를 기록해온 오비맥주를 3년 만에 2위로 밀어냈던 ‘숙적’인 하이트진로의 최고 경영자를 영입한 것이다. 장 사장은 1994년 당시 오비맥주의 추락을 앞당긴 적장으로 전해진다.

샐러리맨 신화
장수 CEO

서울 대경상고(현 대경정보산업고)를 졸업한 장 사장은 1980년 진로에 입사, 30년 가까이 진로(2005년 이후 하이트진로)에서 영업현장을 누빈 국내 주류업의 산증인이다. ‘정치 깡패’로 불리던 유지광의 주류 도매상을 담당하기도 하고 ‘참이슬’의 성공을 이끌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8년 하이트주조·2009년 하이트주정의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고졸’ 핸디캡을 극복하고 정상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성공신화는 경쟁사인 오비맥주에서도 계속됐다. 누구보다 오비맥주의 강·약점을 훤하게 꿰뚫고 있던 그는 취임 후 재고를 줄이고 공장에서 막 나온 맥주를 최대한 빨리 공급하기 위해 영업 비용을 30% 이상 늘렸다. 신선한 맥주 생산을 위해 2000억원을 투자해 시설도 개선했다.

그 결과, 취임 2년 만에 ‘맥주본가’의 명성을 되찾았다. 하이트진로를 제치고 만년 2위에서 맥주 업계 1위를 탈환했다.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은 현재 6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지난 1월 오비맥주를 인수한 세계 1위 맥주 회사 AB인베브의 카를로스 브리토 최고경영자도 “오비맥주 경영진은 지난 몇 년간 회사를 업계 선두 주자로 성장시키는 큰 성과를 이뤘다”며 장 사장을 높이 평가했다. AB인베브는 장 사장에게 오비맥주 경영을 계속 맡기기로 했다.

권인태·윤석춘…베이커리 라이벌 CJ서 이직
‘고졸신화’장인수 카스 앞세워 업계 1위 탈환
‘매직 손’박성칠 취임 첫해 매출 1조원 돌파


화장품·생활용품 업계에선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돋보인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동종 업종 경쟁사인 한국P&G CEO를 지낸바 있다. 지난 2005년 LG생활건강 CEO로 영입된 후, 코카콜라음료·페이스샵·해태음료 등 11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매년 최고의 실적을 실현했다.

그가 LG생활건강으로 부임한 후 회사 매출은 2005년 3·4분기부터 올 3분기까지 34분기 연속, 영업이익은 2005년 1분기 이후 36분기 연속으로 성장하며 LG그룹의 새로운 주력 기업으로 떠올랐다. 생활용품과 화장품, 음료사업 등 각 사업부의 연간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2010년 차병원그룹의 차바이오&디오스텍에서 개발한 인체 줄기세포 배양액 원액을 원료로 공동 개발한 생명공학 화장품 ‘오휘 더퍼스트’는 그의 대표적인 성공 작품이다. 이 제품은 매년 평균 매출이 15%씩 늘고 있는 ‘효자 상품’에 등극했다. 이러한 성과로 차 부회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도 대표이사 자리를 10년 째 유지하며, 현재 LG그룹 부회장단 중 전문경영인으로는 가장 오래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IT업계에서는 ‘삼성 출신’들이 주목받고 있다. SK그룹이 경쟁사인 삼성전자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지낸 임형규 전 사장을 SK그룹 정보통신기술(ICT) 부회장으로 영입했고, 서광벽 전 삼성전자 부사장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전략총괄 사장으로 임명됐다.

자존심 싸움
새둥지서 훨훨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그룹 핵심임원이 경쟁업체에 이직하는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업계 분위기 탓에 경쟁사로 둥지를 옮기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될뿐더러, 수년째 이어온 라이벌간 자존심 싸움이 강해 인력 이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잇따르는 ‘경쟁사 러브콜’ 움직임에 대해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가장 경쟁력 있는 CEO는 해당 업계동향과 경쟁사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동종업계에서 경험 있는 인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CEO는 경쟁 업체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 영입을 원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준비된 CEO’라고 할 수 있다”며 “기존 회사의 경영 전략에 밝은 만큼 시장 대응과 전략 마련에 매우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내부에서 수혈이 되지 않을 경우 외부를 통해서라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자 마지막 퍼즐 맞추기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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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