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년> 옥중 총수들 희비

최태원·이재현 울고 김승연·구자원 웃고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재계는 유례없는 폭풍전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내로라하는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간 양형공식처럼 여겨지던 이른바 ‘3-5 법칙(징역 3년 집유 5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총수들을 향한 사법부의 판단이 냉탕과 온탕사이를 오가고 있어서다.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전후해 옥중에 있는 재계 총수들의 운명이 갈렸다. 당초 재벌들의 수난이 예상됐지만 뜻밖의 훈풍이 불어오는 듯싶더니 이내 매서운 한기가 불어 닥쳤다.

450억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한 실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10대 재벌그룹 회장 중 처음으로 실형이 확정된 사례가 됐다. 이미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1년 가량을 제외하고, 남은 형기를 채워야한다.

혹시나 했는데…

지난 27일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최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동생 최 부회장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범행을 ‘공모’했다고 본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펀드출자가 갑작스레 결정되고 펀드가 결성되기도 전 이례적으로 선지급된 점,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송금된 돈을 최 회장 형제가 대출을 받아 메꾼 점,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최 회장 형제가 공모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바탕으로 최 회장 형제가 범행을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의 “(핵심증인인) 김원홍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선고됐으니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김원홍을 증인으로 신문해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것이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에 비추어 바람직한 조치일 수 있으나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 조치가 증거채택에 관한 재량권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까지 평가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최 회장 형제는 김 전 대표와 공모해 2008년 SK계열사로부터 펀드출자금 선지급금 명목으로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횡령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최 부회장이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함께 범행한 것으로 보고 최 부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모조리 집유…양형공식 ‘3-5 법칙’ 옛말
경제민주화 광풍 속 총수들 줄줄이 구속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용관)는 1657억 원의 탈세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다. 또 이 회장의 금고지기로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이 회장은 CJ그룹 직원들과 공모해 수천억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546억원의 조세를 포탈하고, 963억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 자산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에 비춰봤을 때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일 뒤 이 회장 측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3개월의 구속집행정지 연장도 신청했다. 법원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김앤장은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과 함께 건강상의 이유로 2번째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 측은 바이러스 감염이 우려돼 병원에서 면역요법을 받아야 한다며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장의 실형 선고가 있기 직전, 재계에는 한때 온기가 돌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지난 11일 석방됐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회장은 파기환송심까지 가는 사투 끝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김기정)는 특경가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과 사회봉사 300시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보면 김 회장의 배임 행위로 계열사에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과 김 회장이 피해회복을 위해 1597억원을 공탁한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들어 이같이 선고했다.

같은 날 같은 재판부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구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도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LIG그룹 총수 일가의 범행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린 매우 중대한 기업범죄”라고 지적하면서도, “피해자 570명의 피해액 834억여원이 회복 됐고, 사실상 피해자 전원과 합의한 점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돌아오는 총수들

이밖에 경제민주화 광풍과 함께 기소됐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의 1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조석래 회장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고령과 병력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돼 논란이 일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에 성명을 내고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다. 2012년 대선 이후 기대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 개선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재계는 사법부의 칼날이 어느 방향을 향하게 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의 판단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지만, 일부 사례로 법리적 판단보다 정무적 판단이 우선시 됐다고 보긴 어렵다”라며 “앞으로 재벌총수들에게 내려질 판결에 따라 결정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감 몰아주기’특혜 의혹
계열사 밀어줘도 ‘괜찮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6개 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그룹은 오너 일가의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는 꼼수로 규제를 피해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 51곳 가운데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대중공업과 금호아시아나, 한라, 한솔, 동국제강, 한국투자금융 등 6개 그룹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계열사와 20% 이상인 비상장계열사에 적용된다. 해당 기준을 충족한 그룹이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줄 경우 매출 5% 이내의 과징금과 함께 형사 처벌을 받는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지분이 10.15%에 그쳐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줘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상장사 4개를 거느리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 5.5%, 금호타이어 지분 2.83%을 소유하고 있어 역시 일감몰이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한라그룹은 정몽원 회장이 한라 지분 23.58%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준치인 30%를 밑돌아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한라그룹은 이인희 고문은 10개 상장사 가운데 한솔제지 지분만 3.51% 보유하고 있어 일감몰아주기 규제망을 피했고, 장세주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 대주주가 19명이나 되는 동국제강 역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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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