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년> 옥중 총수들 희비

최태원·이재현 울고 김승연·구자원 웃고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재계는 유례없는 폭풍전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내로라하는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간 양형공식처럼 여겨지던 이른바 ‘3-5 법칙(징역 3년 집유 5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총수들을 향한 사법부의 판단이 냉탕과 온탕사이를 오가고 있어서다.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전후해 옥중에 있는 재계 총수들의 운명이 갈렸다. 당초 재벌들의 수난이 예상됐지만 뜻밖의 훈풍이 불어오는 듯싶더니 이내 매서운 한기가 불어 닥쳤다.

450억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한 실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10대 재벌그룹 회장 중 처음으로 실형이 확정된 사례가 됐다. 이미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1년 가량을 제외하고, 남은 형기를 채워야한다.

혹시나 했는데…

지난 27일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최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동생 최 부회장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범행을 ‘공모’했다고 본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펀드출자가 갑작스레 결정되고 펀드가 결성되기도 전 이례적으로 선지급된 점,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송금된 돈을 최 회장 형제가 대출을 받아 메꾼 점,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최 회장 형제가 공모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바탕으로 최 회장 형제가 범행을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의 “(핵심증인인) 김원홍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선고됐으니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김원홍을 증인으로 신문해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것이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에 비추어 바람직한 조치일 수 있으나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 조치가 증거채택에 관한 재량권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까지 평가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최 회장 형제는 김 전 대표와 공모해 2008년 SK계열사로부터 펀드출자금 선지급금 명목으로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횡령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최 부회장이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함께 범행한 것으로 보고 최 부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모조리 집유…양형공식 ‘3-5 법칙’ 옛말
경제민주화 광풍 속 총수들 줄줄이 구속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용관)는 1657억 원의 탈세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다. 또 이 회장의 금고지기로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이 회장은 CJ그룹 직원들과 공모해 수천억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546억원의 조세를 포탈하고, 963억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 자산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에 비춰봤을 때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일 뒤 이 회장 측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3개월의 구속집행정지 연장도 신청했다. 법원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김앤장은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과 함께 건강상의 이유로 2번째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 측은 바이러스 감염이 우려돼 병원에서 면역요법을 받아야 한다며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장의 실형 선고가 있기 직전, 재계에는 한때 온기가 돌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지난 11일 석방됐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회장은 파기환송심까지 가는 사투 끝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김기정)는 특경가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과 사회봉사 300시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보면 김 회장의 배임 행위로 계열사에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과 김 회장이 피해회복을 위해 1597억원을 공탁한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들어 이같이 선고했다.

같은 날 같은 재판부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구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도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LIG그룹 총수 일가의 범행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린 매우 중대한 기업범죄”라고 지적하면서도, “피해자 570명의 피해액 834억여원이 회복 됐고, 사실상 피해자 전원과 합의한 점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돌아오는 총수들

이밖에 경제민주화 광풍과 함께 기소됐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의 1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조석래 회장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고령과 병력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돼 논란이 일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에 성명을 내고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다. 2012년 대선 이후 기대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 개선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재계는 사법부의 칼날이 어느 방향을 향하게 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의 판단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지만, 일부 사례로 법리적 판단보다 정무적 판단이 우선시 됐다고 보긴 어렵다”라며 “앞으로 재벌총수들에게 내려질 판결에 따라 결정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감 몰아주기’특혜 의혹
계열사 밀어줘도 ‘괜찮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6개 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그룹은 오너 일가의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는 꼼수로 규제를 피해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 51곳 가운데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대중공업과 금호아시아나, 한라, 한솔, 동국제강, 한국투자금융 등 6개 그룹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계열사와 20% 이상인 비상장계열사에 적용된다. 해당 기준을 충족한 그룹이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줄 경우 매출 5% 이내의 과징금과 함께 형사 처벌을 받는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지분이 10.15%에 그쳐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줘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상장사 4개를 거느리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 5.5%, 금호타이어 지분 2.83%을 소유하고 있어 역시 일감몰이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한라그룹은 정몽원 회장이 한라 지분 23.58%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준치인 30%를 밑돌아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한라그룹은 이인희 고문은 10개 상장사 가운데 한솔제지 지분만 3.51% 보유하고 있어 일감몰아주기 규제망을 피했고, 장세주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 대주주가 19명이나 되는 동국제강 역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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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