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 뺨치는 박근혜정부 공공기관 '낙하산 지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2.02 11: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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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낙하산 근절한다더니…"그럼 그렇지!"

[일요시사=정치팀] 새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던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박근혜정부 들어 실시한 78명의 공공기관장 인사 중 무려 45%에 달하는 34명이 '낙하산 인사'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이른바 '친박 공수부대'는 현 정부 들어 어느 곳까지 침투한 것일까?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지도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대선공신'을 챙겨달라는 여권의 공세가 점점 노골화 되고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은 최근 공개적인 자리에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에서 선거 때 노력한 분들을 배려해 달라"고 말해 주변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답변에 나선 현 부총리 역시 "특히 관심을 두고 보겠다"고 화답하면서 보는 이들을 더욱 황당하게 했다. 현 부총리가 공기업 사장들을 소집해 방만 경영을 질타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낙하산 없다?
이명박 뺨치네

낙하산 인사란 해당 기관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임명 되는 것이 마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과 같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며 미화하는가 하면, 정 최고위원의 사례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대선공신을 챙겨야 한다며 요구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그동안 공공기관의 방만·부실 경영의 원인으로 지적돼 왔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낙하산 인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는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만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선 없어져야 한다"며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었다.

"대선공신 배려해야" 노골적 요구에 굴복
78명 중 34명이 낙하산, 이명박정부 능가

실제로 정권 출범 초반에는 대선공신을 제외한 전문가 위주의 인사를 실시하면서 낙하산 인사 근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박 대통령도 당 안팎의 대선공신을 챙겨달라는 요구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박근혜정부 들어 실시한 78명의 공공기관장 인사 중 무려 45%에 달하는 34명이 낙하산 인사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장 의원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공공기관장 26명 중 14명, 기타 공공기관장 52명 중 20명을 낙하산 인사로 분류했다.

장 의원실은 18대 대통령선거 기간 박근혜캠프에서 활동했거나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몸담은 인사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한 조직의 참여인사 등을 낙하산 인사로 지목했다. 이밖에도 총선 이후 여당의 낙천·낙선 인사, 대통령 측근, 전문성 부족·도덕성 미달 등 기타 부적격 인사도 낙하산 인사에 포함했다.

도덕성 미달
전문성 부족


그렇다면 현재 박근혜정부에서 낙하산 논란을 겪고 있는 공공기관장은 누가 있을까? 우선 가장 최근에는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돼 논란을 빚었다. 김 사장은 지난 30년간 경찰생활만 한 인물로 한국공항공사와 관련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김 사장은 용산참사 당시 무리한 진압 명령으로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일으킨 인물이다. 김 사장은 이 책임을 물어 서울경찰청장에서 해임됐었다.

김 사장의 임명과 관련한 의혹도 있다. 김 사장이 임명된 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김 사장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에서 당시 세 명의 후보 중 꼴찌를 하고도 사장에 임명됐다. 여러 정황상 낙하산 인사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김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람으로 분류되는데 왜 박근혜정부에서 등용됐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에 대해 야권은 김 사장이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었던 영남대를 졸업했다는 점, 그리고 영남대 객원교수로 활동한 전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2일 임기를 시작한 최연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낙하산 논란을 겪었다. 최 사장은 새누리당 대전 서구을지역위원장 출신의 대표적인 친박인사다. 최 사장은 1차 공모에서 최종후보 3인에 들지 못했는데, 2차 공모에서 사장에 선임됐다.

한국농어촌공사 이상무 사장의 경우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캠프 중앙선대위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으로 활동한 인물로 공모절차 진행 중 취임계획서가 발견되면서 사전 내정설 논란이 제기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창수 사장도 사장 공모 당시부터 사전 내정설이 불거졌으며 공항과는 직접적 관계가 적은 국토해양부 제1차관 출신이다. 지난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는 2억여원을 사전 인출했다는 의혹을 사자 차관직을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임명된 공공기관장 면면을 살펴보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김한욱 이사장은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캠프 제주특별자치도 국민통합행복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10월 임기를 시작한 한국거래소 최경수 소장 역시 박근혜캠프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고, 지난 9월 임기를 시작한 국립공원관리공단 박보한 이사장은 전 새누리당 의원으로 지난 대선에서 유세지원단장을 지냈다.

한국장학재단 곽병선 이사장은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간사를 맡았었고,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는 박근혜캠프에서 교육정책 자문으로 활동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허영 원장은 19대 총선 당시 마산갑 지역에서 새누리당의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인물이다.

기타 공공기관 중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 김영목 총재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캠프 외교통일특보를 맡고 인수위에 참여한 인물이며,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은 대선 당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장도 낙하산 인사로 의심받고 있다.

현재 공석인 공공기관은 총 9곳으로, 이곳의 인사와 관련해서도 낙하산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엔 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새누리당 김성회 전 의원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0월 재보선 당시 서청원 후보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낙천 후 서 후보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소문이다. 김 전 의원은 육사 출신으로 의원 시절 지식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지역난방공사의 사장직을 맡기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여수광양항만공사의 경우는 지난 7월 사장 자리가 공석이 됐는데 지난 8월 공사가 구성한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가 사장 후보자를 결정하고도 선임 절차를 미루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 후보로 선발된 후보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잇따라 사퇴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해수부가 모 인사를 사장으로 앉히기 위해 임추위를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실정이다.


절차 무시
국민 무시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친박계 중진 새누리당 김학송 전 의원도 논란거리다. 김 전 의원은 3선의 중진이지만 지난해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위로성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캠프 유세지원단장을 맡았었다.

박근혜정부는 그동안 낙하산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공공기관장 임명에 신중을 기하느라 인선이 늦어진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낙하산 인사의 비율은 오히려 이명박정부 때보다 심하다는 지적이다.

장하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은 78명으로 임기 첫해 11월 기준 이명박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 18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로 의심되는 인사의 비율은 45%(34명)로 이명박정부 32%(58명)보다 높다는 것이다.

해당기관과 관련된 경력도 전무한데…
낙하산이 공공기관 부실경영 근본원인

최근 들어 공공기관의 방만경영과 부실 문제는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문제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공기업 부채가 500조원을 넘어서면서 공공기관 부실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하고 기획재정부도 “파티는 끝났다”며 고강도 공기업 개혁안을 예고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가 근절되지 않는 한 공공기관의 방만경영과 부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낙하산 인사의 경우 정당성이 부족한 탓에 복리후생 등을 미끼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노조가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기 시작하면 정상출근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낙하산 사장이 공기업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공기업 개혁을 위해서는 장기적 플랜과 안목이 필요한데 낙하산 인사에게 이러한 능력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일부 공기업 노조는 오히려 낙하산 인사를 반기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낙하산이 편하다?
노조도 환영

한국거래소 노조는 올해 초 성명서에서 "신임 이사장은 증권업계 인사가 아니라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실현해 나갈 역량과 자본시장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사여야 한다"고 밝혔다. 증권사 출신이 아닌 힘 있는 고위공직자를 신임 이사장으로 보내달라는 요구였다. 때문에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은 낙하산 사장과 노조의 합작품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로 공공기관의 단체협약을 보면 민간기업에선 상상하기조차 힘든 조항이 즐비하다는 지적이다. 고용세습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낙하산 인사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도 시급하지만 일각에선 인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보완을 한다고 해도 인사권자가 이를 회피하려고 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공공기관장의 자리를 정치적 보은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며 "정치권이 이러한 인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공공기관에 대한 개혁은 구호로만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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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